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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 아메리카 암 학회 (7) > (288/301)

131화.  < 아메리카 암 학회 (7) >

생물학이 예술의 경지를 넘었다.

강의실 한쪽에 놓인 그 유리 인큐베이터는 흡사 설치미술 같았다.

오가노이드에 붙은 종양에 면역 관문 억제제 APD가 들어갔다.

APD는 암세포 표면으로 몰려가 ‘면역세포 작동 중지 인자’인 PTLA-L1에 붙었다.

류영준은 이제 라이브 셀 이미저 (Live Cell Imager)라는 현미경을 켜서 인큐베이터와 연결했다.

모니터 한쪽에는 종양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아직은 그저 정적인 종양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시 세계에서는 막대한 작업이 일어나는 중이다.

많은 양의 PTLA-L1이 무력화되자 암세포 내부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난리 났네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녀는 류영준의 몸 밖으로 튀어나와 그 현상을 관찰하고 있었다.

생물체는 항상 일정한 성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항상성 유지 (Homeostasis)’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생물체 내에서 무언가가 작동하면 항상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PCLA의 무력화에 대해 암세포 내부에서 발생한 반작용 기작은 EGFR의 발현.

다만 이 EGFR은 정상세포의 것과 다르게 돌연변이다.

세포 내부로 성장 인자를 꾸준히 발생시키는 식으로 오작동한다.

암세포의 핵 (Nucleus) 내부에서 복제 작업이 촉진되었다.

DNA 중합 효소들이 움직여 염색체를 복제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생체 물질들이 추가로 생산되면서 세포 주기가 변했다.

이제 암세포들은 분열기로 접어들어 아메바가 이분법으로 증식하듯이 늘어났다.

DNA를 정확히 반씩 나눈 그 암세포들은 여전히 대량의 EGFR을 가지고 있었다.

분열 촉진 신호는 지금도 유효하다.

암세포들은 두 번째 분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DNA를 완전히 카피하고 분열할 정도의 바이오매스 (Biomass)를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

처음에 하나였던 세포는 불과 네 시간 사이에 네 배가 된다.

‘하이퍼프로그레션은 이미 시작되었다.’

학회가 끝날 때는 여덟 시간 후.

지금은 콩알만 한 종양이 그때는 오가노이드보다 더 커질 것이다.

“이건 천천히 지켜보시고, 이제부터 반응이 일어나는 동안, 제가 다른 주제로 발표를 좀 하겠습니다.”

류영준은 슬라이드에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그건 엄청난 양의 유전자 DNA 서열에 대한 정보였다.

“여기 있는 것은 표적 돌연변이에 대한 데이터입니다.”

“표적 돌연변이?”

객석이 술렁거렸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서는 앞으로 생체 내 유전자 외과 수술법을 이용해서 면역 세포들을 조작하고, 그걸로 다양한 암들을 치료할 겁니다. 이건 첫 번째 실험 후보군에 대한 정보입니다.”

여전히 과학자들은 혼란스러웠다.

저 후보군을 왜 학회에서 공개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로 ‘신약 후보’라는 건데, 제약 회사 대표가 신약 후보 물질을 학회에서 그냥 오픈한다?

설마설마 싶었는데, 마침내 류영준이 경악스러운 선포를 던졌다.

“저희는 이 정보들에 대해 특허를 걸지 않기로 했습니다.”

***

학회가 열리기 전.

백악관에서 류영준과 생명창조 팀이 미 과학기술정책 국장 제임스와 미 국립 보건원의 국장 콜린스와 미팅하던 때의 일이다.

“원천 기술은 수지상세포 우회법으로, 카게쿠니 교수님과 에이바이오가 특허를 갖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문제는 암 환자의 타입에 맞춘 치료법, 그러니까, ‘수술할 유전자의 선정’에 대한 발명권이 되겠죠.”

면역 세포의 유전자를 살아있는 사람의 생체 내에서 조작하는 기반 기술은 류영준이 개발했다.

하지만 어떤 암 환자에게 어떤 유전자를 조작할 것인가?

이것은 과학계가 아직까지 손 댄 적이 없는 거대한 무지의 덩어리다.

누군가 폐암에 A 유전자를 조작하는 게 효과적임을 새롭게 알아낸다면 그는 ‘A 유전자’를 특허로 등록할 수 있다.

일종의 지적재산이다.

류영준이 만든 것처럼 기술 서비스가 발명품이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응용할 수 있는 유전자의 변이 패턴 하나하나가 전부 지적재산이 되는 거다.

그리고 인간의 유전자는 약 2만 여 개.

그 중 어떤 것들의 어떤 방식의 변이 패턴들이 암과 관련되었는지, 인종과 성별과 나이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찾아내어야 한다. 게다가 한 번에 여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

여기서 발생하는 조합은 거의 무한한 수준이고, 변수는 무수히 많다.

“류 박사님이 금광을 열었고 이제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곳으로 골드 러시를 가는 세상이 되었군요.”

콜린스 박사가 절묘하게 평했다.

이제는 그 금광에서 금을 채취하는 가장 강력한 팀인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내부의 보상 분배 비율을 결정할 때다.

“6대 4로 나누시죠.”

제임스가 말했다.

“류 박사님.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 미 정부가 퍼붓는 지원은 정말이지 막대합니다. 이미 잘 아시겠지만 말이에요. 저희는 4할 정도의 발명권은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제임스는 본래 돈 같은 데 크게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학구적인 인물이며, 인류 의학의 진보를 중요시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암 정복’ 정도가 되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겠는가?

암은 심장 질환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인간의 사망 원인이다.

그걸 정복한다?

그 거대한 명예가 너무나 달콤하고 짜릿했다.

이 정도의 위업을 달성한다면, 부처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그 보상을 기대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다.

게다가 개인적인 보상이 아니라 미 정부가 받을 몫이다.

이건 미국의 과학기술정책 국장으로서 제임스가 따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미국은 직접 암 센터 바로 옆에 에이바이오의 암 연구소를 지어줬고, 미국이 그간 만들어놓은 암 연구의 모든 플랫폼을 공유해드렸습니다. 아시죠?”

제임스가 말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사실 약간 불안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를 처음 지을 때 당초에 계획했던 건 천재 류영준을 미국 과학 발전의 인재로 쓰는 거였다.

그리고 ‘암 연구’는 아무리 천재라도 혼자서 못한다. 엄청난 양의 환자의 데이터와 유전학 실험 노가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걸 잘 할 수 있는 미 국립 암센터를 빌미로 류영준의 천재성을 휘두르고 성과를 받아갈 생각이었다.

‘아니 근데 아무리 천재라도 이 정도 수준인 줄은 몰랐지.’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고 알츠하이머에 약효를 보일 때만 해도 인류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라 생각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근데 갑자기 암 정복이라니? 90 먹은 노인과 열 살 남짓한 소아의 말기 폐암과 간암을 잡는다? 게다가 골 전이에 하이퍼프로그레션에.......

이 쯤 되면 이제 미 국립 암센터의 지원은 보조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칼자루가 저쪽으로 넘어갔다.

미국이 그간 쌓아온 연구 자원과 데이터를 쓰면 암 정복이 더 빨라지겠지만, 단지 그뿐이다.

류영준이 한국에서 거대한 게놈 프로젝트 사업까지 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남자는 혼자서도 암 정복을 해낼 능력이 있으니까.

“……. 어떻습니까?”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6대 4를 제시했지만 사실 7대 3이나 8대 2 정도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류영준은 굉장히 충격적인 답을 던졌다.

“우리 그것들에는 특허를 걸지 맙시다.”

“뭐라고요!”

제임스가 경악해서 외쳤다.

콜린스는 입이 쩍 벌어져서 말을 잃었다.

“앞으로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치료 효과가 있는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이 사업에 달려들 겁니다. 그들을 유인하기 위해 유전자에 특허를 거는 것은 필요해요. 하지만.”

류영준이 말했다.

“그래도 암이 정복될 때까지 발견될 유전자 변이 중 대부분은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서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미국이 그간 쌓아온 암에 대한 연구 기반은 전 세계를 압도할 수 있는 수준이고, 당신은 아인슈타인이고 뭐고 다 쌈싸먹을 정도의 천재니까.”

“그리고 전 그것들에 특허를 걸고 싶지 않아요.”

“아니 왜요!”

제임스가 어이가 없어 소리쳤다.

“특허는 유인책이기도 하지만 그 사업에 뛰어드는 다른 사람들을 막아버리기도 하거든요.”

류영준이 말했다.

"......."

“아까 금광에 비유하셨죠? 만약 우리가 금을 캐낸 자리에 곡괭이질을 더 하면 또 다른 금을 캐낼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무슨 소립니까?"

“유전자 외과 수술은 지금 한 번에 40개까지 할 수 있어요. 유전자 개수는 2만 개 정도 되니까, 2만의 40제곱 정도 되는 양의 변수가 있다는 거죠. 여러 유전자들을 어떻게 섞어서 조작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겁니다. 근데 우리가 어떤 유전자 하나에 특허를 걸어버리면? 과연 사람들이 그 유전자를 더 연구하려고 할까요?”

"......."

“제임스 국장님께 저는 이전부터 깊이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저를 전적으로 지원해주셨죠. 저도 국장님께 많은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이렇게는 안 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한국에서 게놈 프로젝트 사업을 하고 있어요.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실무자들의 능력이 올라가면 미 국립 암센터가 그간 확보한 데이터를 상회하는 연구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

“그렇지만 제가 그걸 이용해서 성과를 독식하지 않고 미국에 있는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를 쓰는 이유는 딱 하나뿐이에요.”

“암 정복을 더 빨리 하려고요?”

콜린스가 물었다.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 후우……."

제임스는 깊이 숨을 내쉬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명예뿐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허……. 정말 경악스러운데, 이거 이 정도면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대통령 각하와 상의해보시죠.”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어떤 결론이 나든 그걸 학회 마지막 날에 발표하는 게 좋을 겁니다. 모두가 암연구소의 일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할 테니까요.”

“……. 알겠습니다.”

***

“이 과감한 결단에는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경악한 과학자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암 연구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기자들은 류영준의 발표를 찍으면서 손까지 떨었다.

과학 전문 기자들은 이미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발족에 대해 제임스 등을 깊이 취재했던 바 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류영준이 열어놓은 금광 안에 있는 금 대부분을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가 가져갈 거라는 걸.

‘근데 그렇게 캐온 금덩어리들을 다 무상으로 풀겠다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미친 건가?’

‘돈 방석 정도가 아니라 현찰로 빌딩도 쌓을 수 있을 만한 위업을…….'

자선 사업도 이런 자선 사업이 없다.

“미국 정부에서 지원했다고 하셨습니까?”

기자들 중 하나가 물었다.

“네. 맞습니다.”

“백악관에서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까?”

“미국 정부는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 대해 기존에 약속했던 지원을 전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굴될 표적 유전자에 대한 지적 재산의 발명권은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저 역시 포기합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는 앞으로 인류를 구원할 이 지식들을 전부 무상으로 나눌 것을 약속드립니다.”

"......."

장내를 한 번 휩쓸었던 소란이 이제는 가라앉았다.

충격과 혼란이 가득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덜컹.

강의실 문이 열리면서 수십 명의 과학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제이미 앤더슨의 강의를 듣던 사람들이다.

인큐베이터를 처음 꺼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이쪽이 워낙 시끄러워지니까 너무 궁금해서 다들 넘어와버린 것이었다.

“저……, 저것 좀 봐.”

처음부터 강의를 듣던 과학자 중 하나가 인큐베이터를 가리켰다.

“종양이 좀 커진 것 같은데.”

콩알만 했던 종양이 거의 두 배 크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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