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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 (2) > (272/301)

115화.  <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 (2) >

“제가 추천 받았다고요? 노벨상 후보요?”

류영준이 놀라서 물었다.

-하하. 류 대표님 정도면 충분히 자격 있지요. 아니, 자격 있는 정도를 넘어서 유력하다고 할 수 있죠.

카펜티어가 답했다.

"......."

-물론 선정되어도 이번 가을에 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시죠?

“네."

-올해 수상자는 전년도 이맘 때 발송된 편지들에서 추천된 후보들 중에서 나와요. 거기서 이미 심사도 다 끝났을 테고요. 류 대표님은 내년 1월부터 심사받겠죠.

카펜티어가 말했다.

-내년도 노벨상은 류 대표님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노벨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노벨상 수상자들은 보통 이후 연구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좀 있어요.

“왜요?”

-제 경험상, 그리고 제 친구들 경험을 토대로 하는 얘기라 아주 확실한 건 아닙니다. 근데 노벨상 수상자들이 다른 과학자들에게 같이 연구하자고 제안을 하거나, 새로 어떤 연구 팀에 들어가면 그쪽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요?”

-네. 보통 노벨상 수상자가 끼어있는 그룹에서 논문이 나오면 스포트라이트가 노벨상 수상자에게 전부 쏠리니까요.

“아……."

-그리고 노벨상 수상자들끼리 모여서 연구를 하려고 해도 이거 원, 죄다 자기 분야에서는 먹어주던 사람들이잖습니까. 보통은 다른 사람 말도 안 듣고 고집불통인 데다가 성격도 괴팍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한국어로 뭐라더라? 얼마전에 박동현 선임한테 배웠는 데.

“뭘요?”

-아, 기억났습니다, 콘대! 노벨상 수상자들 대부분 콘대예요.

“꼰대 말인가요?”

-맞습니다. 꺼언대. 하하.

카펜티어가 말 끝에 약간 웃음을 터뜨렸다.

"......."

-저도 제이미 앤더슨하고 같이 연구를 잠깐 했었는데, 그 사람이 제 연구에 하도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고 신경을 긁어가지고 싸우고 나왔거든요.

“제이미 앤더슨이요?”

-네. 콜드스프링에버연구소 소장 말입니다.

"......."

제이미 앤더슨.

일반생물학 교재에도 실려 있는, 20세기 생물학계의 살아있는 레전드 중 하나다.

-아, 그거 아십니까? 콜드스프링에버연구소에서 나오는 논문들은 싹 다 제이미 앤더슨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모든 연구에 다 참여하는 겁니까?”

-아뇨. 그냥 자기 이름을 교신 저자로 넣으라고 연구자들한테 강요하는 겁니다. 거의 콜드스프링 바코드 수준이에요.

"......."

-얘기가 잠깐 샜는데, 아무튼 류 대표님은 노벨상 받으셔도 같이 연구할 사람이 없다거나 그런 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미 에이바이오 같은 회사를 직접 소유하고 계시니까요.

“그런가요?”

-그럼요. 저도 이미 류 대표님하고 같이 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류 대표님이 노벨상 수상자가 되면 오히려 에이젠의 경우엔 과학자들이 더 몰려들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엔 내년 10월,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통화를 끊고 류영준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한국은 과학계의 중심에서 소외되어 있는 나라다.

그 탓에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의학상 등의 과학계열 상의 수상 후보에 한국인 과학자가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과학자들에게 노벨상 시상식은 관전하는 것도 재밌다.

연구자들끼리 누가 상을 받는지를 두고 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대학원생 시절에 선후배들하고 같이 이번 의학상을 다우드나가 받느냐 죠지가 받느냐를 두고 술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세계 최정상의 스타 과학자들만 후보에 올라서,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라 할 만한 게 노벨상 게임이다.

‘그 후보에 내가 올라갔다니.’

그동안 연구를 하면서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니 새삼 충격적이다.

애국심으로 연구를 했던 건 아니지만, 과학계열에서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받는 걸 생각하니 은근히 뿌듯한 기분도 들고.

‘에이. 그만 생각하자.’

아직 받은 것도 아니고 후보로 추천받아 올라갔다는 것뿐이다.

내년 1월이나 되어야 심사가 시작될 것이고, 받는다고 하더라도 시상식까지는 1년이 넘게 남았다.

연구에나 집중해야지.

류영준은 유송미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에 천지명 수석 과학자님 팀이랑 같이 미팅했던 자료 다시 좀 갖다주실래요? 오가노이드 제작 쪽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잠시 후, 미팅 자료를 가지고 나타난 유송미는 뜻밖의 물건도 하나 전해주었다.

그건 금색 편지봉투였다.

고풍스러운 양초 도장으로 밀봉돼있었다.

“이게 뭔가요?”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교수위원회라는 곳에서 대표님한테 보낸 거예요. 저도 잘은 몰라요.”

류영준의 눈이 커졌다.

“카롤린스카 의대요?”

“네. 거기가 어디예요?”

설마, 설마 하는 기분으로 류영준은 봉투를 뜯었다.

안에 들어있는 편지를 몇 줄 읽고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스웨덴 왕립 과학 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을 최종 주관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후보들의 심사는 몇 개의 기관에서 나누어 한다.

노벨 의학상의 경우 유럽 최고의 의대 중 하나로 꼽히는 왕립 카롤린스카 의대의 교수들이 심사한다.

그리고 노벨상 심사의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

심사위원들은 심사에 어려움을 겪을 때,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할 수 있다.

-왕립 카롤린스카 의학 연구소 교수위원회에서 류영준 박사님께.

올해의 노벨 의학상 후보의 심사 과정에 자문을 요청 드립니다.

***

“그래서 언제 가냐?”

점심을 먹으면서 박주혁이 물었다.

“스웨덴?”

“어. 심사 보려면 네가 직접 가야 한다며?”

“안 가. 내가 왜 가?”

박주혁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류영준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뭔 미친 소리지? 노벨상 수상자를 뽑게 해준다는데 안 간다고?”

“나한테 상을 주는 거면 잠깐 휴가 내고 다녀오겠어. 하지만 내가 노벨상 후보 수준의 과학자를 심사할 수 있는 짬도 안 되고, 부담스럽고.”

“심사 받는 사람이 누군데?”

“나도 몰라. 그런 거 카롤린스카에 오면 알려주겠대. 아무래도 중요 기밀인데 외부에 유출하긴 부담스럽겠지.”

“누군지 몰라도 일단 심사 받는 사람이 연구하는 거랑 관련해서 네가 최고 전문가니까 너한테 편지 보낸 거겠지. 겸손할 필요 없어. 심사 자격은 무슨……. 네가 자격 없으면 네 밑에서 일하는 카펜티어 교수 같은 분은 뭐가 되냐.”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아까워. 노벨상은 누가 받든 좋으니까, 난 그 시간에 내 연구를 하고 싶어.”

류영준이 말했다.

“그렇게 얘기하면 또 설득할 방법이 없네.”

식사를 마친 후 류영준은 사무실에서 공손한 어투로 완곡하게 심사 참여를 거절하는 답장을 썼다.

‘이메일로 하면 1초만에 가는 걸 왜 이렇게 고전적인 방식으로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전통이 이렇다니까 최대한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조금 급해지면 전통이고 뭐고 없이 편리한 방식을 취하는 법이다.

류영준의 답장이 카롤린스카에 도착한 다음 날, 류영준은 카롤린스카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를 받았다.

저쪽에서는 아침 일찍 발신한 전화였다. 의대 교수들이 편지를 보자마자 거의 바로 전화를 건 셈이다.

-닥터 류?

“네. 안녕하세요. 류영준입니다.”

-반갑습니다.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소의 노벨 위원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헤리어트라고 합니다. 저희가 보낸 심사 자문 요청을 거절 하셨더군요.

“맞습니다. 제겐 너무 과분한 일이기도 하고, 저는 지금은 연구로 바빠서요.”

-류 대표님이 다음번 노벨상 후보에 오르셨다는 얘기 혹시 들으셨나요?

“들었습니다.”

-보통 후보로 추천된 사람들은 어느 경로로든 다 듣게 되더군요. 그럼 내년에 저희가 류 대표님을 심사하게 된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네."

-하하. 보통은 그런 입장이시면 저희가 심사 요청을 드렸을 때 스웨덴 항공편부터 끊을 겁니다. 그런데 연구가 바빠서 안 오신다니. 정말 소문 이상이시군요.

"......."

-하지만 류 대표님. 이번에 스웨덴으로 오시면 류 대표님이 하시는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이번 심사자의 핵심 성과물이 류 대표님이 연구하시는 것하고 접점이 꽤 있거든요.

“줄기세포 쪽입니까?”

-아닙니다. 그쪽은 상대적으로 신생 학문인 데다가, 류 대표님이 이미 세계에서 독보적인 일인자인데 누가 어떻게 류 대표님한테 도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떤 거죠?”

-류 대표님, 이번에 식물 기반 의약품들을 생산하면서 기존 신약들의 단가를 크게 낮추시는 걸 인상 깊게 봤습니다.

"......."

-하지만 키메라 면역 치료 시술은 가격에 아직 변동이 없지요?

“약간 낮췄지만 더 개발이 필요한 건 맞습니다.”

-그건 사람의 면역 세포 자체를 이용하는 거니까요. 식물 세포를 통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죠.

기존에는 동물 세포에서 정제하던 의약품들을 이젠 식물 세포에서 정제한다.

이 방법은 이미 수많은 의약품들의 단가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동물 세포 자체’가 의약품이라면?

면역 세포도 사람이라는 동물의 세포다. 그것 자체가 의약품인 이상 식물 기반 생산법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

식물 세포에서 동물 세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노릇 아닌가.

“그 부분은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니버셜 키메라 면역 세포를 만들려는 것이죠?

헤리어트가 물었다.

“맞습니다.”

유니버셜 키메라 면역 세포.

모든 환자에게 맘대로 쓸 수 있는 면역 세포 치료제를 말한다.

본래 키메라 면역 치료법은 환자의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조작된 면역 세포를 써야 한다.

그 때문에 모든 시술이 개인 맞춤형인 것이다.

환자마다 세포를 추출하고 암의 타입을 봐서 그에 맞춤 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걸 기성품화할 수 있다면?

대량 생산해둔 후에 암환자들이 찾아오면 냉장고에서 꺼내서 투여한다면?

‘치료 시술’에서 ‘치료제’가 되는 셈이다.

가격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별로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니다. 콘슨앤커슨도 이걸 하려고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으니까.

‘그리고 실패했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로잘린으로도 한 번에 결과물을 뽑아낼 수가 없을 정도.

류영준은 피트니스를 써가면서, 정답을 향해 한 걸음씩 힘겹게 내디디는 중이었다.

-이번 심사자가 암과 면역 세포와 관련된 쪽입니다. 자세한 건 지금 얘기드릴 수 없지만……. 류 대표님이 만들려고 하시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합니다.

헤리어트가 말했다.

“앗!"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암과 면역 세포 관련된 쪽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카게쿠니 교수?”

-.......

“아니면 올리버 교수님?”

-휴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류 대표님한테 분명 도움이 될 이벤트이긴 할 겁니다. 카롤린스카로 잠깐 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카게쿠니나 올리버라면 면역 체크 포인트 억제자의 개발로 몇 년 전에 암 학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사람들이다.

“제가 거기로 가면 그 분들의 연구물에 대해서 좀 배울 수도 있을까요?”

-마침 세미나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카게쿠니 교수님이 강의하십니다.

“가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과학자들은 평생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학부생부터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10년을 공부하고도 취직한 후에 또 공부한다.

업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진짜로 논문을 출력해서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새 지식을 외운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해당 필드에서 뒤처지기 때문에.

하지만 논문을 읽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학회에 참여하는 것도 상당한 공부가 된다.

‘어렵고 중요한 프로젝트니까 실무자들을 데리고 가야겠다.’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한테 회사 차원에서 베푸는 일종의 복지이기도 하다.

류영준은 사내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학회 참여자를 모으는 공고를 냈다.

[6박 8일 일정으로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에서 열리는 항암 면역 치료 세미나에 참석할 연구원을 모집합니다. 호텔 숙박비 및 항공 편은 회사에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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