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 식물 기반 의약품 (6) >
에이젠생명의 발족과 그들이 파는 보험 상품에 대한 이슈가 무섭게 끓어올랐다.
세간에서는 ‘저걸 보험 상품으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논쟁도 벌어졌다.
에이젠생명이 시작한 보험업은 기존의 것과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달랐기 때문이다.
기존 보험사들이 거절하는 발병 고위험군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상품을 판다.
보험료 안에 진단 키트 가격이 기본적으로 포함돼있고, 고객은 보험료를 납입한다.
계속 진단 키트로 자가 검진을 해서 만기까지 암이 발병하지 않으면 끝.
만약 발병할 경우에는 에이젠이 보상을 하는데, 그 보상은 치료비 지원이 아니었다. 그보단 차세대 병원을 통한 ‘치료’ 자체에 가까웠다.
그리고 치료의 범위가 상품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위암 발병률 0.001%, 유방암 발병률 45%인 고객이 있다 치자.
이 고객은 ‘유방암 케어’만 가입할 수도 있고, ‘위암 케어’도 가입할 수 있다.
당연히 많아질수록 보험료도 올라가지만 닥치는 대로 전부 들어도 기존 보험사들이 팔던 보험 상품과 가격차가 심하게 나진 않는다.
케어 상품에 가입한 후, 해당 상품이 보장하는 암이 발병한다면?
고객은 모든 종류의 치료를 완치 혹은 사망 시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심지어는 골수종이나 혈액암이 발병한 경우, 그걸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는 키메라 면역 치료법까지 가능하다.
4억짜리 치료 시술을 지원받을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기술을 쓰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심각해지기 전에 진단 키트가 질병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치료를 지원받을 뿐인데, 병을 일부러 키울 환자는 없다.
그리고 아주 이른 초기의 골수종과 혈액암은 클리반 같은 치료제를 이용해서 빠르게 완치시킬 수 있다.
하나 있는 문제점은 클리반이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걸 식물 팀이 해결했다. 15개의 표적들 중에서 가장 먼저 성과를 본 신약이었다.
-에이젠이 클리반을 식물 세포로부터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담배 식물 한 그루에서 환자 열 명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의 클리반을 얻을 수 있다. 에이젠의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 부서 장진호 수석 연구원은 이 기술로 기존에 1알에 11만 원이었던 클리반의 가격을 1,000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으리라 전망…….
기술 혁신의 뉴스가 매일같이 TV와 신문에 올랐다.
앨리맙과 클러티닙. 그 다음엔 클리반.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법은 기존 의약품 생산 시장에 빠르게 침투했다.
무서운 속도로 신약들을 하나씩 흡수해 혁신을 이루고 있었다.
“에이젠생명이 하게 될 보험업은 자본을 가지고 하는 금융 게임이 아닙니다. 에이젠생명은 금전적인 보상을 보장해주는 게 아니라, 치료를 보장해줍니다. 에이젠의 자회사인 만큼, 고객들이 내는 보험료는 에이젠에도 흘러들어가고, 그건 연구개발비로 재투자됩니다. 더 싸고 더 좋은 치료제를 개발해서 고객의 건강을 책임지고, 발병의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식입니다.”
류영준은 기자회견 후에 내놓은 인터뷰 기사에서 좀 더 자세히 에이젠생명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와중에 그는 새로 올라온 유전자 검사 결과 이용 개정 안에 대해서도 평을 보탰다.
“지금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가 고객의 동의를 받아서 에이젠에 데이터 열람을 요구하면, 에이젠이 고객의 유전자 검사 결과 데이터를 보여주도록 돼있습니다. 여기서는 데이터 분석법이나 데이터 선별에 대한 항목이 없어요. 이것만 봐도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유전자 검사에 대해 깊은 이해 없이 졸속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법안에는 데이터 원본을 전달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원본이라면 가공되지 않은 로 데이터 (Raw data)인데, 보험사에서 그걸 분석할 수 있을까요? 또는 HPV 감염 데이터가 백혈병 보험에 필요할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DNA 정보는 주민등록번호나 집 주소 같은 것보다 훨씬 은밀하고 중요한 개인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설명하는 강력한 기준이 되니까요. 심지어 취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런 민감한 건강 정보는 최대한 보안을 높여야 합니다. 보험 가입자가 가입하려는 상품과 관련된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해서만 적절하게 처리된 분석 데이터로 제공하는 방향이 되어야 할 겁니다. 그에 대해서도 보험사가 보안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요.”
류영준의 인터뷰가 나간 이후, 잠깐 혼란을 겪던 여론은 다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류영준이 에이젠에서 고객의 정보를 보험사들에게 팔았다는 음모론들은 쏙 들어갔다.
그저 역풍만 불어올 뿐이다.
- 류영준이 유전자 검사 데이터를 팔았다 어쨌다 하던 놈들 다 어디갔냐
- 상식적으로 셀리큐어 사건을 보면 모르겠냐? 그 TMJ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뭐 당연한 걸 갖고 물어뜯는지
- 근데 사실 알바인 거 너무 빤히 보이던데. 기존 보험사들이 견제했던 거 아닌가?
- 근데 에이젠생명 보험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 나 SG생명 가입돼있는데 그냥 해지하고 에이젠생명 가고 싶다.
- ???:리스크가 높은 고객이면 리스크를 없애주면 되는 거 아닌가? 왜 그걸 못하지?
┗ 이공계 다 정복하고 이제 문과 잡아먹기 시작ㅋㅋㅋ
- 에이젠생명 보험 문의하고 싶은데 어디로 전화하면 되나요?
아무리 발병률이 높고 가족력이 있고 이전 병력이 있어도 가입 가능한, 심지어 저렴한 보험 상품.
게다가 보장하는 것은 금전 보상이 아닌 ‘완치.’
물론 실패해서 회사가 손실을 보고 환자가 죽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최소화할 수 있다.
에이젠은 에이젠생명이 창립되기도 전에 보험 가입 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에이바이오에 쏟아져 들어왔던 유전자 진단 서비스 문의 이상이다.
그리고 에이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같은 전개는 세계 곳곳의 제약사와 식물학자들에게도 강한 자극을 줬다.
“에이젠이 저 신약들을 다 개발하기 전에 우리도 뛰어들어야 합니다.”
콘슨앤커슨의 대표 데이비드는 이사회에서 말했다.
“류영준 대표가 식물 기반 의약품 생산법에 특허를 걸었을 거예요. 그거 피해갈 방법 찾아보고, 방법 없으면 로열티 줘도 되니까 달라는 대로 주고 우리도 그 기술을 차용해야 합니다. 앞으로 미래 트렌드는 식물 기반 의약품으로 완전히 바뀔 거예요. 당장 생산라인부터 만듭시다. 그리고 식물 전공한 과학자들 대거 모집해요.”
“데이비드. 메트라이프에서 연락 왔습니다.”
이사들 중 하나가 말했다.
“메트라이프?”
미국의 초거대 건강보험사다.
“에이젠에서 지금 류영준 대표가 하는 거, 똑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되면 같이 협력하고 싶다고요.”
"......."
데이비드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우리가 지금 에이젠 기술 따라가려면 몇 년은 걸리는데……."
“느려도 따라가긴 해야죠. 그게 맞는 방향이니까.”
“녹내장 제품 내놓을 때만 해도 강적이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지금은 좀 격차가 벌어지는 느낌이군요. 우리 모두 좀 분발해야겠습니다. 일단 메트라이프 미팅 잡아주세요.”
***
“아니 X발 저게 말이 돼?”
SG생명의 대표 황준영은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뇌 정지가 온다더니.
어마어마한 업계 포식자가 등장하는 상황인데, 너무 어이가 없으려니 어떤 대처 방안도 떠오르질 않았다.
“대표님, 이제 어떡하죠……?”
백중혁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나라고 그걸 어찌 압니까. 아니 저걸 어떻게 막아? 저런 게 보험 상품이 맞긴 한 거야?”
"......."
“임 전무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임길원에게 물었다.
임길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에 시선을 흘려놓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임 전무?”
“네?”
임길원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임 전무처럼 젊고 똑똑한 사람이 좋은 아이디어 좀 내 봐요. 이 위기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건지.”
"......."
임길원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는 이번 에이젠생명의 발족에 엄청난 공포와 감탄을 동시에 느꼈다.
공포는 이제 SG생명을 비롯한 대형 보험사들이 에이젠생명과 경쟁해야한다는 것 때문이었고, 감탄은 에이젠생명의 놀라운 아이디어 때문이었다.
치료비를 지원해준다거나, 몇천만 원을 보상으로 준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치료 자체를 보장하는 보험사라니.
진단 키트나 식물 기반 치료제 같은 신기술로 이런 걸 할 줄이야.
정말 경이롭다.
저런 기술 발전이, 보험 같은 금융업하고는 거리가 먼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밀접하게 연관되다니.
“우리가 선수를 쳤어야 했습니다.”
임길원이 말했다.
“진즉에 류영준 대표에게 연락해서 이런 방식의 보험 상품들을 개발하고 싶으니 협업하자는 식으로 얘길 했으면 됐을 겁니다. 제가 여러 번 안건을 올렸는데……."
“음!”
백중혁이 기침 소리를 냈다.
“임 전무, 지금 날 탓하는 건 아니죠?”
그가 물었다.
“……. 아닙니다.”
“우리가 류 대표한테 얘길 했더라도 저만한 아이템을 류 대표가 넘겨주지 않았겠죠. 이 결과는 어쩔 수 없는 거였습니다.”
백중혁이 말했다.
‘정말 그럴까?’
임길원은 류영준에 대해서 꽤 많이 분석했다. 류영준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다른 사업가들 입장에서 다행스럽게 돈 욕심이 별로 없다.
그가 돈 버는 게 목적이었다면 치료제의 가격이 대폭 하락되는 식물 기반 의약품 같은 걸 안했을 수도 있다.
개인 특허가 백 몇십 개 있다지 않은가?
그 천재성으로 신약 하나 더 만드는 게 낫지, 치료제 단가 떨어뜨려서 제 밥그릇 크기 줄일 수도 있는 일을 왜 하겠는가.
‘이번 에이젠생명의 보험업을 우리가 하겠다고 일찍 나섰다면 류영준은 협력 관계를 맺고 밀어줬을지도 모른다.’
본인은 연구에 집중할 시간도 모자라니까. 다른 데 신경 쓰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미 다 늦었다.
임길원이 말했다.
“지금은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에이젠생명처럼 에이젠한테서 다이렉트로 연구 결과물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입장도 아니고요. 정보력도 모자라고 그런 제약 기술도 없고……. 금융업만으로는 저 별난 혼종 산업을 상대할 방법이 없어요.”
***
한 동안 제1 연구소에서 업무들을 보던 류영준은 오랜만에 에이바이오로 돌아왔다.
편안한 본진에 들어온 기분이다.
사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에이바이오가 아니라 에이젠 제1 연구소였지만, 지금은 에이바이오가 더 친근했다.
대표 사무실로 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펑!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갑자기 앞에서 폭죽이 터졌다.
생명창조 팀을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이 앞에 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뭐예요?”
“에이젠 제1 연구소 소장에 에이바이오 대표에 에이젠생명 대표까지 3관왕 하시는 기념.”
박동현이 말했다.
“에이, 무슨 소리예요. 제가 보험사 운영을 왜 합니까.”
류영준이 손사래를 쳤다.
“그럼요?”
“에이젠생명은 에이젠과 에이바이오가 주식을 대부분 보유하고 있어요. 우리는 오너가 되는 거고, 회사 운영은 전문 경영인을 고용해서 맡길 겁니다.”
“누구한테 맡기시려고요?”
“그건 이제 생각해봐야죠. 일단 공개 모집한 후에 면접까지 거쳐서 가장 괜찮은 사람으로. 개인적으로는 맡기고 싶은 사람이 있긴 한데, 그래도 공정하게 뽑아야 하니까요.”
“그 사람은 누군데요?”
정혜림이 물었다.
“SG생명에 있는 전무입니다. 40대에 임원이 되어서 그쪽 업종에선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더군요.”
천지명이 끼어들었다.
“그 정도 인물이면 오라고 모셔도 영입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하물며 본인이 자원해서 면접까지 볼 리가……."
“안 되면 말고요.”
류영준이 대화를 나누는데 복도 저 끝에서 박주혁이 나타났다.
“어! 류영준! ……대표님.”
그가 반가워서 소리쳤다가 사람들을 보고 얼른 호칭을 붙였다.
“잠깐 얘기 드릴 거 있습니다.”
박주혁이 말했다.
그는 류영준을 대표 사무실로 데려가서 밀어 넣고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제1 연구소에서는 할 일 잘 끝났냐?”
그가 물었다.
“뭐, 그럭저럭. 이젠 여기서 지휘할 수 있을 거야. 다행히 연구소랑 여기랑 거리적으로도 가깝고.”
“그렇구나. 야, 그보다 이것 좀 봐라.”
박주혁은 서류 몇 장을 꺼냈다.
그가 하나하나 열어서 설명해주었다.
“류영준이 고객 개인 정보를 팔았다는 식으로 선동 댓글 달았던 놈들 잡은 거야.”
“어떻게 잡았어?”
“그냥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발해서 연락한 다음 에이바이오 법무팀입니다, 하니까 질질 짜던데.”
“그냥 놔줘. 난 별로 신경 안 쓰니까.”
“나도 원래라면 그랬겠지. 류영준 클래스에 방구석 악플러들한테 욕 좀 먹는 거야 뭐 대순가. 하지만 내가 잡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단다.”
“뭔데?”
“그 댓글들 SG생명에서 여론 조작하려고 썼던 거야. 여기 본인들이 자백한 증거물들도 있고.”
박주혁이 서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