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 식물 기반 의약품 (3) >
브라카(BRCA)라는 이름의 유전자가 있다. 유전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전자 중 하나다.
브라카는 인체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17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브라카 1번, 또 하나는 13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브라카 2번이다.
유명한 이유는 그들이 ‘암 발생 억제’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DNA는 자외선이나 화학물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체내의 활성 산소 등에 의해서 꾸준히 파괴된다.
DNA가 파괴된 세포는 사멸하기 때문에, 세포 내에는 손상된 DNA를 다시 수리해서 사멸을 방지하는 기작이 존재한다.
브라카 유전자는 DNA 손상을 고치는 유전자들 중 하나다.
근데 만약 브라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어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DNA는 손상된 상태로 방치되어 그 세포는 그냥 사멸한다.
하지만 운 나쁜 경우에는 브라카 없이 좀 어긋난 모양새로 수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세포는 암세포로 돌변해버린다.
“따라서 브라카 유전자가 고장난 세포들은 암세포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진단기기개발 부서 직원들은 류영준의 프레젠테이션을 들으면서 노트에 필기하고 있었다.
류영준이 강의를 계속했다.
“브라카 유전자 내의 어느 위치에 돌연변이가 있느냐에 따라서 암 발생 확률도 달라지지만, 보통 브라카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은 50% 확률로 유방암이 생기고 15% 확률로 난소암이 생깁니다. 안젤리나 졸리의 경우에는 87% 확률로 유방암이 발생하고 50% 확률로 난소암이 발생한다는 진단을 받았죠. 결국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과 난소, 나팔관 절제술을 받았고요.”
“이번에 진단 사업으로 브라카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하시는 건가요?”
송유라 수석이 물었다.
“맞습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WHO 통계에 따르면 매년 45만 8천 명의 사람들이 유방암으로 사망합니다. 미리 유전자 검사로 발병 위험성에 대해서 인지할 수 있으면, 암의 발생을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되겠죠.”
"......."
“제가 원하는 그림은, 국민들이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아서 브라카 같은 유전자를 검사하고, 발병률이 높은 사람은 예방적인 절제술을 받거나, 자주 진단 키트를 사용해서 스스로 체크하는 겁니다. 아주 이른 초기에 검진에 성공해서 바로 치료를 받으면 생존률이 드라마틱하게 올라가니까요.”
류영준은 직원들에게 서류를 나누어주었다.
“여기 있는 데이터들에는 유명한 유전자 변이 24종이 들어있습니다. 브라카 유전자 변이 3종을 포함한 데이터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이 24개의 표적 돌연변이를 검진해주는 사업을 시작할 거예요.”
과학자들은 서류를 넘기면서 돌연변이 리스트들을 확인했다.
-P53
-KRAS
-EGFR
모두 브라카처럼 유명한 것들이다. 세포 사멸 신호의 조절 유전자나 성장 신호의 조절 유전자 등.
그리고 모두들 이 24개의 타겟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류영준은 거대한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것은 ‘새로운 타겟을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아직 과학계가 잘 모르는, 하지만 브라카 돌연변이만큼 중요한 암 발생의 지표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미지의 유전자 A의 돌연변이가 림프종 환자들한테서만 발견된다면 그걸 ‘림프종의 징후’라고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1억 명의 DNA를 전부 해독하는 거대한 크기의 게놈 프로젝트.
거기서부터 얻어낼 빅데이터는 어쩌면 인간의 몸에서 발생하는 모든 암 종을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송유라는 전율로 손이 떨렸다.
류영준이 역분화 줄기세포를 시작한 이후 ‘질병 치료 사업’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상당히 많은 선진국들이 차세대 병원을 건설하고 있고 줄기세포 테크니션에 투자하는 중이다.
지금 임상에 들어가 있는 치료제들은 머지 않아 제품이 되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서.
이제는 ‘질병 예측 사업’에서 대대적인 구조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DNA 분석에 최고의 테크니션들이고, 여기엔 세계 최고의 장비인 엘리미나 DNA 분석기가 200대나 있습니다. 유전자 검사 사업은 이르면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합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
항암신약 부서와 식물 기반 의약품 연구 부서는 둘 다 충격에 빠져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충격이 가시질 않는다.
“대체 어떻게 성공시킨 걸까요……?”
김형석 선임이 중얼거렸다.
식물 세포에서 앨리맙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정말로 되어버렸다.
“솔직히 이게 말이 됩니까? 어때요? 식물 팀 생각은?”
김주연 수석이 어안이 벙벙한 듯 물었다
“저희가 식물 세포에서 동물 유전자를 발현시키는 걸 10년 했는데 단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장진호 수석이 대답했다.
“근데 지금 소장님이 한 달 사이에 성공시켰다는 거죠?”
“네……."
담배식물의 수백만 개의 타겟 위치들 중 십여 개를 쏙쏙 골라냈다. 마치 이걸 조작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는 유전자 가위를 들고 그것들을 자르고 붙이고 엽록체에다 새 유전자를 집어넣고 난리를 치더니 별안간 잎에서 앨리맙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10만 피스짜리 퍼즐을 10분만에 다 맞춰버리는 알파고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어떤 퍼즐이든 집어드는 순간 10만 군데 중 정확한 위치에 기계적으로 탁탁 꽂아 넣는 거다.
“인간이 저럴 수가 있습니까?”
"......."
철컥.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류영준이 들어왔다.
“어라. 회의실 쓰고 계시네요. 비어있는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저희 이제 끝났습니다. 그만 해산할 겁니다.”
장진호가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며 말했다.
“소장님 쓰셔도 되는……헉.”
그의 말끝이 당혹감에 먹혀버렸다.
류영준의 등 뒤로 손님이 한 명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에이젠의 대표 이사 윤대성이었다.
“대표님!”
놀란 직원들이 일제히 인사했다.
“이번에 앨리맙의 식물 세포 발현을 책임지고 견인해준 연구원들입니다. 칭찬 한 말씀 해주시죠.”
류영준이 윤대성에게 그들을 소개해주었다.
윤대성이 말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앨리맙을 이제 매우 싸게 생산할 수 있게 되었네요. 사실 이게 회사 입장에서 정말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하하.”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류영준이 따라 웃으면서 윤대성을 회의실 안으로 들였다.
“그, 그럼 저희는 나가보겠습니다.”
항암신약 부서와 식물 기반 의약품 연구 부서 직원들이 류영준과 윤대성에게 인사하며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류영준은 회의실 문을 닫고 윤대성과 마주보고 앉았다.
“대표님, 평택에 대규모 GMP 시설 새로 설립하기로 했던 건 있잖습니까?”
그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있지요.”
“그거 식물 기반 생산 시설로 세팅하는 거 어떻습니까?”
“그리고 거기서부터 앨리맙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네. 앞으로 바이오 신약들을 전부 식물 기반 생산 체제로 가져갈까 합니다. 오염의 가능성도 적고, 생산량은 월등히 높으니까요. 특히 항체 종류는 기존에는 계란 같은 걸 이용해서 생산했는데, 식물에서 만들면 생산 효율이 수십 배 이상 좋아질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앨리맙 생산에 성공했기 때문에 앞으로 식물에 기반해서 바이오 신약을 생산하는 방법은 이제 신약 생산의 트렌드가 될 겁니다. 그 분야에서 앞서가려면 대규모의 GMP 식물 기반 생산 시설이 꼭 필요해요.”
사실 윤대성도 류영준이 이 제안을 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요구사항에 그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걱정이 있다.
“근데 류 박사. 약값을 그렇게 급락시켜도 되겠습니까? 난 이게 어쩌면 우리 밥그릇을 스스로 파괴해버리는 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 그에 적응해서 밥그릇도 바꿔야죠. 탱크가 개발된 시대에 칼 들고 전쟁터에 나갈 순 없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
윤대성은 눈을 감고 고민에 잠겼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대표님한테 도움을 받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한테요?”
“유전자 검사 사업과 값싼 치료제들은 보험사들한테 좀 압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죠.”
“저도 법무팀하고 같이 대응 방법을 마련하는 중입니다. 근데 이 과정에서 대표님 도움이 좀 필요해요.”
“흠.”
윤대성의 머릿속에선 밥그릇 고민이 싹 사라졌다.
이번 사업은 에이바이오가 하는 게 아니다. 에이바이오는 엘리미나 장비를 대여해주는 형식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에이젠의 제1 연구소다.
즉, 이 사업을 보험사들이 공격하면 그건 류영준만이 아니라 윤대성도 흔드는 게 된다.
‘정말 영악한 사람이다…….'
윤대성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에이젠의 지분을 야금야금 파먹으면서 윤대성과 대립해오던 류영준이, 이번에는 윤대성을 방패막이로 앞에다 던져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됩니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이젠의 모든 연구 부서 중에서 퍼포먼스와 인지도로 1, 2위에 해당하는 항암신약 부서와 진단기기개발 부서가 하는 일이 아닌가.
게다가 윤대성은 류영준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언젠가 경영권을 놓고 싸우게 되더라도, 지금 다른 놈들이 류영준을 공격하는 것은 심기가 불편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전력으로 지원하겠습니다.”
***
이사회가 새로 열렸다.
부사장 백중혁은 임길원 전무의 눈치를 보면서 그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류영준 대표의 움직임이 빠르더군요.”
저 답답한 목소릴 듣고 있자니 임길원은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생각보다 움직임이 빨라?’
장난하나? 고작 1년 사이에 그 사람이 임상에 집어넣은 신약이 몇 개인데 저딴 소릴 해?
류영준의 연구는 다른 과학자들과 완전히 다르다.
그에 대한 임길원의 평가는 ‘천재 과학자’ 같은 인명적인 개념보다는 ‘바이오 혁명’, ‘4차 산업’ 같은, 마치 어떤 사회 현상이나 진보의 트렌드 같은 것이었다.
‘저 늙다리들이 조금만 더 일찍 내 말에 귀 기울였으면 이 파도를 잘 탈 수도 있었을 텐데.’
임길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좀 늦긴 했습니다만, 임 전무. 혹시 뭐 좋은 아이디어 없습니까?”
백중혁이 물었다. 임길원은 짜증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이제 없어요. 류영준 박사가 녹내장 치료제를 내놓을 때 쯤부터 제가 계속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때부터 대처를 했어야 했어요.”
“……. 유전자 검사의 신빙성을 물고 늘어지면서 언론 게임 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절대 안 됩니다!”
임길원이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유전자 검사의 신빙성이요? 그건 과학 문제잖아요! 그건 실험적으로 계산 가능하고, 논문으로 나올 수 있는 그런 거라고요!”
이 늙은이가 진짜 미친 거 아닌가? 아무리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이어도 그렇지, 그 괴물 같은 류영준의 홈그라운드로 들어가서 싸우겠다고?
“백 퍼센트 에이즈 반대 여론 꼴 납니다. 류영준이 방송 나와서 어떤 미친, 상상도 못한 실험 같은 걸로 눈앞에서 증명해버리면 우린 개박살 나는 거예요. 그리고 류영준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그런가?”
백중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후우……."
임길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견제하는 걸 포기하는 건 어떻습니까? 류 대표한테 오히려 붙어서 그 유전자 검사 사업에 대해 배우고, 그 사업을 지원해주시죠. 그리고 그걸 토대로 보험 상품을 새로 개발하는 겁니다.”
“새로 개발하다니?”
“유전자 검사의 시대에 맞는 보험 상품들을 설계하는 거죠. 그게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합시다.”
대표 이사 황준영이 말했다.
“임 전무가 얘기한 걸 하나의 루트로 가지고 가고, 다른 한 편으로는 유전자 검사가 개인 정보 보호법을 위반하므로 불법화 규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정부에 압력을 넣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