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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 제1 연구소 (9) > (264/301)

107화.  < 제1 연구소 (9) >

-하지만 류영준. 김현택을 치료할 수 있을지는 확실히 몰라요.

로잘린이 말했다.

-저는 아직도 이 병원체의 정체를 정확히 진단하진 못했으니까요. 좀 더 근접해서 살펴봐야 해요.

‘근접해서?’

-김현택의 몸속에 잠깐 들어갔다 나와야겠어요.

‘그래도 되는 거야?’

-문제될 건 없죠. 어차피 그 병원체 말고는 저한테 시비 걸만한 조직은 없어요. 김현택의 면역세포 같은 게 저랑 상대가 되겠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술 담배와 운동부족, 만성피로로 망가진 50대 아저씨 몸속에 들어가는 게 좀 찝찝하긴 하지만, 이 방법뿐이에요.

‘좋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로잘린은 다시 병상 위로 기어 올라가서 김현택의 입술 안에 손가락을 쏙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몸은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슈욱하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윽.'

로잘린이 신음소릴 냈다.

식도에서부터 담배 쩐내가 난다.

그녀는 위장으로 내려가기 전, 적당한 지점에서 점막 속으로 파고들어 혈관으로 이동했다.

‘시야를 공유해드리죠.’

로잘린은 피트니스를 1점 소모하면서 류영준에게 김현택의 혈관 속 풍경을 보여주었다.

콜레스테롤과 지방이 가득 끼어 있었다.

‘이런 풍경은 처음이죠? 좀 끔찍할 겁니다.’

-너무 그러지 마. 대한민국 아저씨들 업무 스트레스랑 회식 때문에 그런 거니까.

류영준의 목소리가 넘어 왔다.

‘사실 류영준, 당신의 몸도 처음엔 이거랑 별 차이 없었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정말?

‘제가 당신 몸에 입주했을 때는 비슷한 상태였어요. 뭐 그땐 당신이 알코올 중독이었으니까 그럴 법하죠. 아무튼 지금은 제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청소하고 있습니다. 고마워하세요.’

-……고맙다.

로잘린은 대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이동했다.

‘아직까지 병원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실체가 없는 건 아닐까?’

만약 로잘린이 생각한 게 전부 맞아서, 김현택을 감염시킨 게 로잘린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병원성이라면 실물이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다.

로잘린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면역 세포들은 모두 작동이 중지됐군.’

의사들이 면역 억제제를 투여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김현택의 몸은 이미 남아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로잘린은 거대한 백혈구들 사이를 지나쳤다.

이번엔 동맥을 타고 블러드 브레인 배리어를 넘어 뇌로 이동했다.

‘앗!’

로잘린이 화들짝 놀랐다.

-왜 그래?

‘뇌의 상당 부분이 파괴됐어요. 으……. 이건 줄기세포 치료로도 다시 재건하기 힘들겠는데요.’

-나중에 나오면 손상 정도에 대해서도 좀 알려줘.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보자.

‘알겠어요. 근데 이런 시체나 다름없는 걸 회복시키는 방법은 지금 제 레벨로는 찾기 어렵습니다.’

-레벨도 많이 올려야지.

‘앗, 잠시만요. 뭔가 발견했습니다.’

로잘린이 움직임을 멈췄다.

눈앞에 검은 가스 덩어리 같은 게 둥둥 떠다녔다.

구균 같기도 하고 단백질 덩어리 같기도 한 특이한 물질.

‘이게 병원체구나.’

로잘린은 좀더 가까이 다가가서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이것은 생명체가 아니다. 따라서 몸속에서 증식하거나 활동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몸에 별로 해롭지도 않아야 정상이다.

김현택의 몸이 박살나버린 것은 정확히는 이 물질 때문이라기보다, 이 물질에 반응한 면역 세포들 때문이었다.

일종의 알러지 반응인 셈이다.

근데 사람이 뇌사에 이를 정도로 격렬한 게 특이하다.

‘대체 정체가 뭐지?’

미시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로잘린의 시각으로도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눈앞이 뭔가 씌워진 것처럼 희뿌연 느낌이다.

로잘린은 조심스럽게 물체를 건드렸다.

파악!

갑자기 석탄 탄내와 함께 수증기가 치솟았다.

콰앙!

이쪽으로 날아오는 날카로운 돌기들에 놀란 로잘린이 반사적으로 공격을 날렸다.

[퍼포린 과발현 420%]

펑!

검은색 동공 속에 구멍이 뻥 뚫렸다.

쉬익 소리와 함께 구체는 하얗게 증발해버렸다.

동시에 몇 가지 이물질들이 튀어 나왔다.

몹시 작은 화학 분자들이다.

로잘린이 아는 구조였다.

“프레드니솔론 Prednisolone?”

로잘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또 한 종의 화학물질이 추가로 흘러내렸다.

‘펜톡시필린 Pentoxifylline'이다.

한 데 지저분하게 엉킨 곰팡이 같은 모양새였다.

로잘린은 물 분자들을 끌어와서 그들을 가수분해시켰다.

자리를 정리한 후, 그녀는 다시 혈관을 탔다.

한참을 이동해서 들어왔던 길을 반대로 되감았다.

-푸하!

김현택의 몸에서 튀어나온 로잘린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된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안에서 병원체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건드렸더니 공격하려고 하더라고요.

“공격해? 널? 그래서?”

-없애버렸죠. 퍼포린으로 구멍 냈더니 사라지더군요. 쬐끄만 게 상대를 못 알아보고 덤비다니.

로잘린이 조그만 어깨에 힘을 주어 으쓱했다.

“……. 그럼 김현택은 치료된 거야?”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잡았다고 해도 폭탄이 터져버린 걸 어쩌지는 못하죠. 김현택은 끝났어요.

“그래?”

어쩐지 좀 씁쓸한 기분이다.

-뭐, 우리가 줄기세포를 잘 개발하면 회복시킬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지금 저는 레벨이 낮아서 좋은 방법이 안 떠올라요.

“그 병원체는 완전히 파괴된 게 맞고?”

-일단 김현택 몸속에 있던 것들은요.

***

-에이젠 제1 연구소장 김현택,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인한 뇌사 상태.

뉴스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6 연구소에서 류영준과 마찰을 빚어 언성을 높이던 와중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천벌이다.

-남 목숨 소중한 줄 모르는 놈이라 동정도 안 간다.

-그냥 호흡기 떼라. 산소 아깝다.

세간의 반응은 냉랭했다.

에이젠 본사에서는 사내 이사회가 열렸다.

류영준은 에이젠의 제1 연구소장이 되었다.

항암신약 부서와 진단기기개발 부서, 식물 기반 약품 연구부서, 단백질 공정 연구부서를 비롯한 7개 팀을 가지고 있는 알짜 연구소다.

에이젠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구 인력들이 류영준의 아래에 들어왔다.

항암신약 부서에서는 연구원들끼리 긴급회의가 열렸다.

“김 수석님 우린 이제 어떡해요?”

황찬미 책임 연구원이 머리를 움켜쥐고 말했다.

류영준이 항암신약 부서에서 김현택과 싸우고 생명창조 부서로 떠났던 날을 모두 기억한다.

그가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김현택 소장실을 나왔을 때, 항암신약 부서의 모든 이들은 그를 힐끔 쳐다보곤 외면했다.

이곳에서 류영준은 호불호가 꽤 명확히 갈리는 인물이었다.

일을 맡기면 완벽하게 해내고 열정도 있고 똑똑해서 좋아하는 선배들도 많았지만, 그 외골수 같이 깐깐한 성격 탓에 싫어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류영준 대표는 우리들한테도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김형석 선임 연구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근데 셀리큐어 때는 솔직히 어쩔 수 없었어요. 우리가 뭐 류영준 박사를 감싸면서 김 소장이랑 싸우기라도 하겠어요? 어떻게 그래요? 자기 여자친구도 헤어지자 하는 마당이었는데.”

현미주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하지만 류영준 박사한테 셀리큐어가 어떤 목적으로 구매된 건지 미리 귀띔해줄 수는 있었지. 아무리 들떠있는 데 찬물 끼얹는 일이라 해도 말이야.”

김주연 수석 연구원이 말했다.

“내가 부서장으로서 그런 걸 총대 메고 했어야 했는데 신경을 못 썼어. 그리고 류영준이 김현택 소장한테 썰려나갈 때도 적절하게 개입해서 보호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부장님 잘못 아니에요.”

황찬미 책임 연구원이 말했다.

“류 대표가 우리한테 감정이 있을까요?”

박시준 책임이 물었다.

“글쎄.”

철컥.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그건 류영준이었다.

“앗!"

“어어……."

놀란 김형석과 현미주 등이 와르르 일어나면서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철이 쏟아졌다.

그 가운데 황찬미의 팔에 부딪힌 김주연 수석의 휴대폰이 테이블에서 굴러 떨어졌다.

탁!

이쪽으로 다가오다 자연스럽게 낚아챈 류영준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오랜만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김주연 수석이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과학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인사했다.

“소장님, 지금 다른 팀들하고 미팅하고 계신 줄 알았는데요……."

“끝났습니다. 다음 미팅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와봤어요.”

류영준은 제1 연구소의 모든 부서와 미팅하고 있었다.

새로 소장으로 부임했으니, 각 부서들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 예……. 하하……."

김주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항암신약 부서의 연구 내용들은 제가 반년 전 데이터까진 알고 있으니, 20분 정도 짧게 브리핑만 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냥 지금 미팅 할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지금요? 프레젠테이션이 준비가 안 되어있는데요.”

“구두로 하죠.”

“어……. 잠시만요.”

“그리고 여러분이 혹시 걱정하실까봐 노파심에 말씀 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요.”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여러분한테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같이 좋은 연구를 하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이 부서에 있었던 만큼, 여러분 실력이 뛰어난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

“다만 저하고 같이 일하실 때는 연구 윤리에 대해서 좀 민감하셔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김주연이 숨을 흠뿍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럼 류 소장님,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네."

“항암신약 부서는 현재 네 개의 항암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효자 종목이었던 일로아는 이제 셀리큐어 때문에 은퇴하겠죠.”

“맞습니다.”

“혹시 일로아를 추가 개발하고 있나요?”

“아니요.”

“잘 선택하셨습니다. 셀리큐어는 보통 약이 아니에요.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약 세 개 중에서 둘은 약효가 좋고 부작용도 없어서 따로 추가 개발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 흡입형 폐암 치료제인 타그빅스가 문젭니다.”

김주연이 말했다.

“제 기억엔, 반 년 쯤 전에 제가 여기에서 연구하고 있었을 때도 그게 우리 부서의 주 프로젝트였던 것 같은데요.”

류영준이 말했다.

“맞습니다.”

“당시에 문제점은 타그빅스의 면역원성이 높아서 폐에서 자꾸 면역 반응을 일으킨다는 거였죠.”

“그렇습니다. 그게 아직 해결이 안됐습니다. 저희가 에이바이오의 유전자 가위, 캐스나인을 이용해서 면역원성을 일으키는 물질을 제거하는 전략을 계속 시도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잘 안 되던가요?”

“저희의 숙련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캐스나인에 익숙지 않아서요.”

“그럼 에이바이오의 캐스나인 테크니션들을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그들과 함께 공동개발하시죠.”

류영준이 말했다.

김주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예상하고 있었던 내용이다.

에이바이오에서 캐스나인을 전담하던 과학자들이 와서 도와준다면 훨씬 일이 간단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른 두 항암제, 악성 림프종과 신장암에 쓰는 치료제들이죠? 클러티닙과 앨리맙?”

“맞습니다.”

“그 둘은 추가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개발한다고요?”

김주연이 당황했다.

“하지만 소장님. 이미 임상까지 다 끝난 약이고, 약효도 좋고 부작용도 없습니다. 왜 굳이……."

“가격이 비싸니까요.”

“가격……?”

“암 환자 한 명당 억 단위로 깨져요. 보험 처리가 된다 해도 부담스럽죠. 국가한테도, 환자한테도.”

"......."

“하지만 약값 문제 자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클러티닙과 앨리맙만이 아니라 모든 바이오시밀러 의약품들을 통틀어서 말이에요.”

“네……?”

“제가 제1 연구소의 소장직을 맡게 된 이유는 둘입니다. 하나는 여러분 같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과학자들을 대거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류영준이 말했다.

“이곳에 식물 기반 의약품 연구부서가 있기 때문이죠. 전국에서 유일하고 세계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특이한 부섭니다. 그 부서를 이용해서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의 단가를 크게 낮출 겁니다.”

“식물팀이요?”

“네. 최소 천 분의 일. 많게는 십만 분의 일까지도 낮출 수 있을 겁니다. 전략을 잘 짜기만 하면요.”

“뭐라고요!”

과학자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김주연의 충격은 특히 엄청났다.

어떤 종류의 신약들은 로쥬 같은 대형 제약사가 폭리를 취하려고 가격을 의도적으로 높게 책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클러티닙과 앨리맙은 그런 약이 아니다.

비싼 이유는 ‘제조비가 높아서’다.

그리고 그 제조 공정은 현대 과학이 최적화한 산물이다. 근데 그걸 1/1,000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뭘…… 대체 뭘 어떻게 하신다는 건가요?”

이런 미친 소리를 에이바이오에서는 매일 해댔겠지? 그리고 전부 성공시켰겠지?

김주연은 손에 땀이 났다.

류영준이 말했다.

“지금 항암제를 비롯한 백신. 바이오 의약품들의 가격이 높은 이유는 그걸 생산하기 위해서 동물 세포를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배양액이 상당히 비싸서 엄청난 돈이 깨지죠. 만약 배양 시설이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되면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게 되고요."

"......."

“저는 담배식물에 바이오 신약을 합성하는 유전자를 집어넣을 겁니다. 식물의 잎에서 약물이 대량 발현되도록 말이에요. 잎 한 장을 믹서에 갈아서 주스로 만들면 열 명 분량의 신약이 나올 겁니다. 최종 목표는 인당 치료제 비용이 시장에서 파는 채소 값이랑 별반 차이가 없게끔 하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돼요. 외부에서 유입된 유전자가 그 정도로 발현량이 높지는 않을 겁니다.”

황찬미 책임이 반박했다.

“식물 세포의 지놈 안에다가 유전자를 집어넣으면 그렇죠.”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그걸 식물 세포의 엽록체에다 넣을 생각입니다. 한 개의 식물 세포는 200개 이상의 엽록체를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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