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제1 연구소 (4) >
“2주만에 끝내겠다고요?”
김현택이 충격을 받은 듯 물었다.
“네. 2주면 가능합니다.”
“진심입니까? 류 박사가 신약 만드는 데 도가 텄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런 종류가 아니에요. 신소재를 개발하는 겁니다.”
“압니다. 그러니까 더 쉬운 거 아닌가요? 임상시험 같은 게 필요 없는 거잖아요?”
류영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김현택은 더욱 당황했다.
이 프로젝트의 제안자인 김현택 본인도 마땅한 실험 아이디어가 없는 상황이다.
제안자의 입장에서도 솔직히 2년 안에 해낸다고 확신할 수 없는 연구다.
근데 류영준이 그걸 할 수 있다고? 2주만에?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김현택이 물었다.
“연잎은 표면에 3마이크로미터 지름 크기의 수많은 혹이 있고 그 위에 나노입자의 발수성 코팅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게 연잎 효과를 이루어내는 핵심 기재죠. 그 섬유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분리해서 생체 물질을 합성하도록 한 다음 정제하면 됩니다.”
“말이야 쉽죠. 그 유전자가 뭔지 알아내는 방법이 마땅찮아서 그걸 찾아내는 데만……."
“그 유전자는 7번 염색체의 302번 개방형 해독틀 (Open Reading Frame, ORF)입니다. 학계에 등록되진 않았지만 유전자 후보죠.”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등록된 게 아니다보니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연잎 유전자 정도로 부를까요?”
"......."
김현택은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셨다
“진심으로 하는 얘깁니까? 아니면 지금 날 놀리는 겁니까?”
“제가 왜 놀리겠습니까? 다 진심입니다. 그 유전자를 망가뜨렸을 때 연잎 표면 구조가 파괴되었다는 논문이 있습니다.”
“그런 논문이 있다고요?”
“중국의 청쿤 대학교에서 발간하는 교내 논문에 나온 데이터입니다.”
김현택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음 듣는 대학이다
“대체 그런 곳에서 나온 교내 논문을 어떻게 찾아낸 겁니까?”
“이번에 과기부 2020 과제로 소장님 프로젝트가 선정된 걸 확인한 다음에, 연잎 관련 문헌들을 좀 조사해봤죠.”
좀 조사해봤다고 하지만, 문헌들을 ‘꼼꼼히 뒤지는’ 정도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솔직히 김현택은 그처럼 초야에 묻혀있는 무명의 논문을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어떤 과학자도 그런 문헌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다.
물론 류영준의 경우엔 얘기가 좀 다르다. 로잘린을 통해서 정답을 먼저 알아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정답을 검색어로’ 조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정답에 문제를 끼워 맞추는 식이니까.
“근데 그런 이름 없는 논문에 나온 이야기가 제대로 된 것이겠습니까? 재현이 안 되는 논문들 수두룩합니다. 그 논문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김현택이 따졌다.
“논문을 보고 제가 직접 테스트를 해봤으니까요.”
“테스트를 해봤다고요?”
“네."
이건 더 충격적이다. 김현택이 빳빳하게 굳었다.
“아니, 류 박사. 그게 가능합니까? 과제가 선정된 지 얼마나 됐다고 실험을 해볼 수가 있습니까? 그것도 보통 실험도 아니고 유전자 조작 실험을?”
“저한텐 캐스나인이 있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연잎을 사다가 아그로박테리움을 통해서 캐스나인을 집어넣어 그 후보 유전자를 잘라버렸습니다. 다섯 시간만에 잎의 표면이 망가져서 연잎 효과를 잃어버리더군요.”
정말 할 말이 없다.
아주 숙달된 박사급 과학자에게 맡겨도 지금 류영준이 지금 얘기한 데이터를 생산하긴 쉽지 않다.
진단기기개발 팀이 달려들어서 1년 정도 연구하면 저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말까다.
유전자 조작 실험은 어떤가?
캐스나인이 없었다면 그 실험을 하는 데에 최소 반년은 걸릴 것이다. 기술이 있다고 해도 류영준처럼 잘 다루는 게 아니면 한 달 이상은 걸린다.
근데 그 모든 과정을 하루만에 싹 다 스킵해버리고 1년 반짜리 연구 결과물을 들고 나타난다고?
‘이 괴물 같은 새끼…….'
불찰이다.
이 생각을 진즉에 했어야 했다.
이놈은 원래 이런 놈이었다. 온갖 거대한 불치병들, 인류의 오랜 적들을 가볍게 쓰러트리고, 인류사 최악의 감염병 중 하나인 에이즈 조차 무릎꿇려 놓지 않았는가?
2주만에 한다는 건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그 기간도 겸손하게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남들은 프로젝트의 계획을 짜고 배경 스터디를 하고 있을 시간에 이 남자는 그걸 끝내고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다.
“제가 이 정도 정보만 드려도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소장님, 사실 진단기기개발 부서가 이 프로젝트에서 할 일은 ‘연잎효과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발굴’ 아니겠습니까? 제 얘기가 맞다는 걸 한번 교차검증만 하면 진단기기개발 부서 할 일은 끝날 것 같은데요.”
"......."
“그 다음에는 단백질 정제 팀에서 그 유전자로 생체물질을 합성하는 일을 해야겠죠. 그때도 제가 도움을 드릴 테니, 진단기기개발 부서는 저한테 몇 년 양보해주십시오.”
김현택이 주먹을 파르르 떨었다.
"......."
그가 힘겹게 입을 뗐다.
“안……돼……."
“네?”
“류 박사. 이제 그만 좀 하게.”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자네는 이미 가질 만큼 가지지 않았나? 꼭 이 회사를 빼앗아가야 만족할 건가? 아니면 셀리큐어 때 일 때문에 나한테 원한을 가져서 이러는 건가?”
류영준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아니 대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저 감정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 아시잖아요. 그리고 지금 제가 제안 드리는 것은 김 소장님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 아닙니까?”
"......."
“소장님.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인력을 써서, 연잎 효과 신소재 개발에 더해서 게놈 프로젝트까지 하는 거잖아요? 물론 게놈프로젝트의 보상은 제가 받겠지만, 소장님은 ‘그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을 가진 부서’를 돌려받는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자산이 될 텐데요.”
김현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솔직히 얘기하지. 류 박사. 자네가 에이젠의 경영권을 탐내는 이유가 뭔지 나도 아네. 셀리큐어를 내가 빼앗아서 없애려고 했던 것처럼 경영진이 반윤리적인 일을 저지를까봐 막으려는 거 아닌가?”
"......."
“하지만 자네는 이제 하고 싶은 연구를 맘대로 하고 경영진에게 휘둘리지 않을 만큼 컸어. 근데 왜 굳이 내 목을 졸라가면서까지 에이젠의 꼭대기로 바득바득 가려고 하느냔 말이야.”
김현택이 말했다.
“나나 윤대성 대표님이 자네만큼 천재적인 연구 능력은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도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굴러온 사람들이야. 정말 정면으로 싸우길 원하나? 우릴 파괴하려면 자네도 출혈이 있을 거야. 이제 제발 그만 좀 하게. 이 회사는 윤대성 대표와 나, 지광만 본부장이 주역이 되어 키워낸 곳이야. 자네가 아무리 천재라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이걸 꿀꺽 먹어버릴 순 없단 말이야.”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류영준은 답답한 듯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후우......."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약간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류영준은 김현택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김 소장님.”
그가 말했다.
“솔직히 지금 얘기하는 것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뭐라고?”
“현대 의학은 서구 중심적입니다. 모든 신약은 유러피안 백인의 몸에 맞추어져서 제작되고, 동양인들이나 히스패닉, 아프리칸,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 아메리칸, 오세아니안 같은 인종들은 의학 연구에서 배제되어 있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김 소장님도 제약을 하고 생물학을 하는 과학자니까 아실 거 아닙니까? 인종간의 유전자적인 차이는 생물학적으로 존재합니다. 피부색 따위 말고요. KRT1 유전자 따위의 발현량이나 복제수가 다르단 말입니다. 의학이 개인 맞춤형으로 진보하려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 걸림돌 중 하나가 서구 중심적인 데이터베이스입니다.”
"......."
“그걸 해결하자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류영준이 말했다.
“아니, 경영권 얘기가 대체 왜 나옵니까? 제가 회사 CEO 자릴 달라고 했나요? 소장님 자리를 달라고 했습니까?”
"......."
“김 소장님.”
류영준이 김현택 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김현택을 쏘아보는 그 눈빛은 옛날에 이곳에서 ‘좆같은 쓰레기’라며 쌍욕을 퍼붓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에 정치를 집어넣지 마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
“셀리큐어 때랑 똑같군요. 소장님이 없애버릴 뻔했던 그 약이 이번에 아홉 살 어린 아이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아십니까? 지금 전 세계의 식약청에서 그 약에 관심을 갖고 있고, 간암 환자들은 그걸 기적의 치료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
“저는 소장님이 저지른 그런 일들이 언젠가 중요한 순간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놈프로젝트 같은 중요한 연구를 하찮은 이유로 가로막지 마세요. 소장님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
“별로 생산적인 토론을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네요.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좋은 답변을 들을 수 있길 바랄게요. 류영준은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김현택은 한참 동안 빈 테이블을 노려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쾅!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분노가 들끓어서 혈관이 다 터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씨바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소파를 힘껏 걷어찼다.
저 놈은 CTO 후보까지 빠르게 급상승했고, 니콜라스가 퇴임하면 그 빈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 성장세를 지켜볼 때도 위협은 느꼈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화가 난다.
‘대학원 졸업한지 1년 남짓한 풋내기 박사 나부랭이가 날 이렇게까지 엿먹여?’
콰앙!
태블릿을 벽에다 집어던졌다.
‘서른 살 애송이가 나한테 과학을 하는 자세를 가르쳐? 이 바닥에서 30년 넘게 연구를 해온 나를?’
“후우……."
김현택은 벌개진 얼굴로 숨을 씩씩 내쉬면서 창문을 거칠게 열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의 폭주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지?’
어떻게 해야 저 새끼를 엿 먹일 수 있을까? 지광만처럼 과격한 방법이라도 써야하나?
김현택이 고민에 잠겨있을 때였다.
똑똑.
누가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김현택의 비서는 밖에서 김현택의 고성과 태블릿을 집어던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문에 그는 꽤 긴장해있었다.
지금 전할 이야기가 매우 끔찍한 소식이라서 더했다.
“뭔데?”
비서의 표정이 심상찮은 것을 본 김현택이 물었다.
“그……. 지금 TV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을 알고싶다 방송 예고가 나오고 있는데."
“근데?”
“셀리큐어에 대해서 제1 연구소의 직원 중 누가 내부고발을 했습니다.”
"......."
김현택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그 중요한 신약을 소장님이 셀리제너로부터 사서 사장시켜버리려고 했다고......."
***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류영준에게 사과도 했다.
박소연은 이제 한국에서 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끝마쳤다.
마지막으로 남은 게 하나 있는데, 셀리큐어의 뒤에 있었던 제1 연구소의 음모를 고발하는 일이다.
이유는 크게 셋이다.
첫째, 그게 정의로운 것이니까.
김현택은 아직 이 일로 징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받아야 할 몫을 받아야 한다.
둘째, 박소연 자신의 속죄다.
그 당시 류영준을 배신하고 숨어버렸던, 부끄러운 과거를 씻어내는 작업이다.
셋째, 떠나기 직전 류영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다.
연잎 효과 신소재 연구는 날치기로 통과시킨 프로젝트다. 제안서는 제대로 완성조차 되어있지 않았고, 개발 계획은 듬성듬성 비어있다.
이딴 걸 국가 과제로 밀고 가는 이유는 류영준이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걸 막기 위해서겠지.
박소연은 그 속 보이는 전략을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집 소파에 앉아서 방송을 보고 있었다.
얼굴엔 모자이크, 목소리엔 기계음 변조가 들어간 채로 박소연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지금 의약계 최고의 화제가 되고 있는 그 간암 치료제, 셀리큐어가 없어질 뻔했던 사건입니다. 에이젠은 간암 치료제 일로아를 팔고 있었고, 항암신약을 주로 연구하는 김현택 제1 연구소장이 위기감을 느낀 거예요. 그래서 셀리제너로부터 임상 1상이 끝난 셀리큐어를 사서 추가 개발하지 않고 사장시키려고 한 겁니다.
‘굳이 얼굴이나 목소리 변조 안 해도 되는데.’
어차피 회사 그만둘 거니까.
박소연은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걸 반대하던 류영준 박사님, 그러니까, 지금 에이바이오 대표님이 김현택 소장하고 쌍욕을 주고받으면서 싸웠어요. 당시엔 그분이 주임급 연구원이었는데 좌천돼서 다른 연구소로 부서이동 당했어요.
-류영준 대표님이요? 부서이동이요?
인터뷰어가 물었다.
-네. 에이젠의 인사과 자료를 찾아보시면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나중에 류영준 박사님이 성공해서 에이바이오를 창설할 때 셀리큐어의 개발권을 에이젠으로부터 받아서 나오신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에요. 에이젠에 두면 없어지는 약인데, 지금 다들 알다시피 그건 아주 중요하고 뛰어난 약이니까 어떻게든 살려내려고 하신 거죠.
박소연은 휴대폰을 슬쩍 보았다.
아직 방송이 나가는 중인데 벌써부터 여론이 살벌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아니 저거 진짜냐? 검경 이거 확실히 조사해라 어디까지 연루된 건지]
[시발 네 달 전에 우리 어머니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X같네 진짜 시발 개새끼들]
[반대하는 류영준을 좌천시키면서까지 신약을 없애려고 했다고?]
[신약 연구하는 과학자라면서 저게 사람 새끼냐?]
박소연은 맥주를 꼬르르 몇 모금 마셨다.
이 고발의 파장은 엄청난 진폭을 동반할 거다.
어쩌면 윤대성의 자리까지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
김현택은 분명히 경질될 테고, 국가 과제라는 그 프로젝트는 공중 분해되거나 다음 연구소장이 맡을 것이다.
그 혼란한 가운데 류영준은 어떻게든 게놈프로젝트를 진행시킬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