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 셀리큐어 (9) > (255/301)

98화.  < 셀리큐어 (9) >

하얀 색 액체가 관을 타고 이윤아의 가느다란 팔뚝으로 이동했다.

셀리큐어와 키메라 면역 세포 치료제다.

송지현과 류영준이 분투해서 만들어낸 모든 연구의 결과물들이 한 데 섞여 투여되고 있었다.

예상대로라면 각각 간암과 골전이를 치료하게 될 것이다.

이윤아는 얌전히 의료진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아직까진 그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송지현은 류영준을 슬쩍 살펴보았다.

그녀 역시 몇 주 동안 실험에만 매진해왔기에 컨디션이 매우 나빴으나 류영준은 더 심했다. 송지현은 그가 걱정되었다.

무엇보다 류영준은 트라우마 때문에 이 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줄곧 신경 쓰였다.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류영준이 양해를 구하고 병실을 떠났다.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만 같았다.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답답함이 전신을 휘감는 것 같았다.

키메라 면역 치료법와 셀리큐어는 분명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지금으로선 최선의 수이며, 류영준이 가진 지식으로 몇 번을 시뮬레이션 해봐도 성공 가능성은 분명히 높았다.

하지만 그게 100 퍼센트는 아니다. 그리고 실제 임상 사례가 없으니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서 김효진에게도 성공률에 대해 모른다고만 했다.

‘로잘린의 확인을 받지 못했어.’

로잘린은 모든 분자생물학적 현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류영준은 그렇지는 않았다.

동기화모드 없이, 그저 로잘린이 남겨놓은 사고 능력과 지식으로 추론한 게 전부였다.

그걸로 계산한 결과 성공률이 높다는 판단 하에 퇴원하겠다는 김효진을 설득했다.

정말 그게 잘한 짓일까?

류새이의 죽음이 계속 떠올랐다. 류새이는 병원에서 죽었다.

어쩌면 이윤아도 퇴원시켜야 했던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주어야 했던 게 아닐까?

치료법의 성공률은 높을 거라 예상되지만 비합리적인 불안감이 류영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어쩐지 실패할 것만 같은.

근거를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불길한 예감.

"......."

비상계단에 주저앉은 류영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류 박사님!”

누군가 뒤에서 류영준의 어깨를 확 감싸 안았다.

송지현이었다.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

송지현은 그를 안쓰러운 듯 쳐다보았다.

“계단 차가운데, 일어나요. 들어가요.”

“송 박사님은 이번 치료의 성공률을 얼마로 보세요?”

류영준이 물었다.

“매우 예외적인 사례라서 임상 데이터가 없으니 계산할 수 없잖아요?”

송지현이 류영준의 말투를 흉내냈다.

“알아요. 하지만……. 치료법의 개발자로서 대강 감이란 게 있잖아요.”

“저는 100 퍼센트예요.”

송지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류영준은 조금 놀랐다.

“과학자에게 자신의 연구 결과물은 자식과 같은 거 아닌가요? 우리가 우리 기술을 못 믿으면 어떡해요.”

송지현이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류 박사님. 우리가 만든 약들은 최고예요. 류 박사님은 그 악명 높은 췌장암도 치료한 적이 있잖아요? 이번에도 분명히 성공할 거예요.”

“……. 하지만 전 계속 제 동생이 떠올라요. 솔직히 신경 쓰입니다. 어쩌면 그 트라우마 때문에 제가 괜한 고집을 부린 게 아닐까 싶어서요. 보호자분의 말씀대로 윤아에게 추억을 쌓을 기회를 줬어야 했던 게 아닌지. 전 그게 걱정돼서……."

“동생분 때하고는 달라요.”

송지현이 말했다.

"......."

“류새이가 아니라 이윤아잖아요. 한 글자 빼고 다 다르네요. 얼굴도 다를 거 아녜요? 유전자도 전부 다를 테고. 동생분도 골반뼛속으로 골전이가 일어났었나요?”

“아뇨. 폐로 전이됐었어요.”

“그것 보세요. 완전히 다른 임상 케이스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류 박사님이 그때하곤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땐 대학생이었고, 지금은 세계 최고 과학자에 에이바이오의 대표잖아요. 우리가 해낼 수 있어요. 셀리큐어도 있고 키메라 면역 치료제도 있잖아요.”

“……. 그래요. 고맙습니다.”

류영준이 힘없이 답했다.

***

류영준의 편도체는 로잘린의 세포들에 포위되어 있었다.

로잘린은 지금 그들을 통제하면서 편도체와 일종의 공성전을 벌이는 중이다.

그리고 이 전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편도체에서부터 발생하는 자극에는 로잘린의 모세포가 직접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웬만한 생물학적인 현상들은 전부 통제할 수 있는 로잘린이었지만, 모세포가 받는 충격만큼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모든 로잘린의 세포들은 단일한 모세포로부터 분열해서 나온 것.

모세포는 류영준의 혈액에서부터 탄생한 최초의 생명체이자, 로잘린의 존재의 뿌리였기 때문이다.

‘트라우마가 모세포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로잘린은 모세포로 의식을 옮기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모세포가 편도체의 트라우마 조직 속에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조직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처럼 보였다. 주위의 모든 에너지와 신경 전달 물질들을 흡수해버리고 어떤 것도 뱉어내지 않는다.

류영준의 몸에 데미지를 주지 않으면서 편도체 깊숙이 자리 잡은 이 괴물을 처치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모세포를 꺼내기도 어렵다.

로잘린은 축적한 피트니스를 한 번에 모아 터뜨렸다.

[AKAM1 발현 80% 촉진.]

[KROII 발현 120% 촉진.]

[LOX 스위칭.]

[에피네프린 발현 30% 촉진.]

팍!

트라우마 조직의 혈관에 흐르던 몇 개의 지질이 튀었다.

아민과 뉴로펩타이드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로잘린은 그 중에서 글루탐산을 일부 수집해서 흡수한 후 트라우마 조직의 틈새에 구멍을 뚫었다.

[퍼포린 발현 200% 촉진.]

‘미안해요 류영준.’

본래 외부에서 침입한 박테리아 같은 유해한 생물체들을 파괴할 때 쓰는 천공기 같은 건데 류영준의 세포에다 쓰려니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그 막강한 무기인 퍼포린조차도 트라우마 조직에 약간의 상처를 남겼을 뿐 안으로 파고들지는 못했다.

‘이것도 안 되나?’

모세포를 구출해내는 전략은 계속 실패했다.

모세포가 저쪽에 잡혀있기 때문에 로잘린의 통찰력으로도 좋은 방법을 쉽게 찾아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이제 답은 하나뿐이다.

‘모세포를 트라우마와 융합시킨다.’

트라우마에게 잡아먹힐 바에는 모세포가 트라우마를 집어삼키게 하는 게 낫다.

세포 퓨전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포를 하나로 합치는 일이다.

류영준이 읽은 논문들의 기억을 살펴보면 인간들도 이런 작업을 해낸 적이 좀 있는 모양인데, 로잘린은 더 잘 할 수 있다.

[모든 GPCR 액티베이션.]

[막 단백질 대량 발현]

로잘린은 세포막 형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조절하면서 모세포의 세포막을 헝클어뜨렸다.

마치 세포 사멸 기작의 일부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다.

주르르륵.

막이 뭉개진 모세포는 트라우마 조직 내부로 내포작용 (Endocytosis)을 통해 진입하기 시작했다.

‘헉!’

비록 호흡 기관은 없었지만, 로잘린은 맘속으로 놀란 숨을 들이마셨다.

로잘린의 의식 속에 천천히 융합된 트라우마가 들어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슬픔이었다.

“이럴 수가!”

그건 로잘린에겐 신대륙 발견과 같은 충격이다.

평생 시각이란 걸 경험해본 적 없는 선천적 시각 장애인이 처음으로 앞을 볼 때의 경이로움이 이런 게 아닐까?

‘감정’과 ‘감각’이라는 것들이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니!

류영준을 통해서 그동안 간접적으로 느껴왔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 깊이와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오래 묵은 트라우마의 감정인만큼 격렬하기도 하다.

‘맙소사…….'

류새이의 앙상한 손가락을 쥐고 있는 류영준의 손에서 촉감이 느껴졌다.

로잘린이 이전에 경험해본 적 없는 아주 직접적인 감각이었다.

그 밖에 병실에 퍼진 약냄새, 류새이가 좋아하던 수국의 향기, 병원 앞에서 먹었던 순대국에 들어있던 조미료의 맛. 그것을 느끼면서 류새이에게 미안해하던 류영준의 죄책감들.

모든 경험이 로잘린의 세포들을 하나하나 일깨우고 있었다.

모세포는 그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습득했다.

신경 전하의 전달 같은 이론적인 설명으로 해석되는 현상이 아니다.

‘……황홀하다.’

로잘린은 눈이 없지만 눈물을 흘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온전한 자신의 몸을 갖추고 활동하는 생물체가 느끼는 것들이 이런 거란 말인가?

류영준이라는 온실 속에서 자라면서 머리만 굴리던 세포 생물체인 로잘린에겐 너무나도 감명 깊은 것이었다.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점차 절정을 향해 치솟았다.

류새이의 심전도 모니터에, 고요한 해수면 같이 평온한 직선이 그려지던 때.

모두가 울음을 터뜨리고 의사가 사망 선고를 내리던 때로.

한계까지 치달은 격정과 함께, 로잘린의 의식은 천천히 아득해져갔다.

‘쉽지 않다.’

모세포는 트라우마와 퓨전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래도 트라우마가 너무 강력하다.

모세포는 마치 미래에 부활하길 기대하며 잠드는 냉동인간처럼 가사상태에 빠졌다.

‘이 세계에 탄생한 이후 처음 느껴보는 위협이다. 생명의 위기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어쩌면 내 생명은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

지광만의 사주를 받은 어설픈 깡패들이 덤벼들 때도 가소롭기만 했는데.

이제 남은 희망은 류영준이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뿐이다.

.......

페이드아웃된 의식은 긴 잠에 빠졌다. 로잘린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현실에서 2주만큼의 시간이 흘러간 후.

반 쯤 죽어있었던 로잘린은 모든 세포를 한 번에 불태워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에 휘감겼다.

느껴진다.

류영준의 편도체에서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

“간암 조직 92 퍼센트 사멸. 골전이된 암세포들은 100 퍼센트 사멸했습니다.”

김춘정 교수가 리포트를 했다.

“아직 셀리큐어는 좀 더 투약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면 거의 완치 가능하다고 생각돼요. 이후에도 재발하지 않는지 5년간 지켜봐야할 테지만, 의사 소견으로는……. 다음 주 쯤에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상은 성공입니다.”

김춘정 교수의 말끝에 약간의 울먹거림이 섞였다.

선유 병원에서 40년을 보낸 백전노장의 노교수조차도 이번 임상 사례는 감동적이었다.

하물며 아이의 친모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은 말할 것도 없다.

"......."

김효진은 의자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채 어깨를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송지현은 시큰해진 코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녀는 류영준을 힐끔 쳐다보았다.

뜻밖에도 류영준은 울거나 감탄하거나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한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류영준은 짧게 인사하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가 나갈 기색을 보이자 김효진이 황급히 따라 일어나서 류영준을 붙잡았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류영준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이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괜찮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감사 인사를 받고 싶지 않았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쩌면 이윤아나 김효진이 아니라 류영준 자신이었기 때문에.

"......."

밖으로 나가는 류영준의 걸음에 힘이 빠져서 비틀거렸다.

송지현은 조용히 그를 뒤쫓았다.

어쩐지 말을 걸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뒷짐을 진 채 일정한 거리에서 따라가며 눈치를 살폈다.

류영준은 복도 끝으로 이동해서 작은 발코니로 나갔다.

그는 난간을 쥐고 병원 전경을 내다보고 있었다.

“끝났다. ……. 새이야. 이제 진짜 끝났어. 정말로. 이제부턴 간암으로 죽는 네 또래 애들은 없을 거야.”

류영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몹시 상쾌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류 박사님.”

송지현이 그의 옆으로 쓱 다가왔다.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샴푸 냄새가 흠뻑 넘어왔다.

임상 치료가 시작된 이후에 드디어 제대로 씻고 제대로 먹고 제대로 자기 시작한 송지현은 이제 다시 본래의 미모를 회복한 상태였다.

“괜찮아요?”

그녀가 물었다.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

류영준은 빙긋 웃으면서 송지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어?”

류영준의 눈이 커졌다.

“왜요?”

“아니……."

[동기화 모드 : 송지현의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도파민 발현 레벨 분석하기. 피트니스 소모 : 0.7/1초]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잘 지내셨어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성공하셨네요. 축하해요. 덕분에 저도 트라우마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구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근데 옥시토신이니 바소프레신이니 저것들 발현 레벨은 뭐야? 너 이런 것도 분석할 수 있었어?’

-이번 일이 저한테도 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단계 더 성장했어요.

[이제부터 로잘린의 세포는 류영준의 몸 밖에서 최대 30분 생존할 수 있습니다.]

[로잘린의 동기화 모드가 더욱 정교해집니다. 더 세밀한 해상도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피트니스 소모량이 더욱 효율적이게 변합니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

-송지현의 호르몬 비율 같은 거요.

‘그걸 알아서 어디다 써?’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과 도파민은 사랑을 느낄 때 폭증하는 호르몬들 중 하납니다. 흐흐.

'.......'

-그리고 새로운 능력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새로운 능력?’

[이제부터 로잘린을 통해 분자생물학 시뮬레이션 모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모드에선 피트니스 소모량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적게 쓰면 신약을 개발했을 때 가상의 환자를 설정하고 임상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많이 쓰면?’

-특정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그것의 지구적인 확산 경로와 그 결과에 대한 모든 것을 추적하고 경우의 수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생명 현상을 지구적인 시점에서 볼 수 있게 되죠.

‘미친…….'

-저 같은 생명체를 창조하는 데 성공한 이의 시야는 특별해야 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