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 셀리큐어 (8) >
이윤아에게 투여되는 약은 이제 거의 모르핀 같은 강력한 진통제뿐이었다.
존재하는 항암제들은 전부 안 먹히고 다른 치료법은 없다.
사실상 의학이 포기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홉 살 어린애 입장에선 고통스러운 항암제를 투여 받지 않으니 좋을 뿐이다.
몸 상태가 워낙 나쁘니까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진 못했지만 침대에선 나이답게 꽤 발랄했다.
“엄마 나 유튜브.”
이윤아는 요즘 한 유튜브 채널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와 동갑인 아홉 살 초등학생이 하는 방송이다.
지금은 놀이공원에 가는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나도 다 나으면 여기 갈래.”
이윤아가 말했다.
"응......."
김효진은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힘없이 대답했다.
류영준과 제이콥, 김춘정 교수와 간호사들이 들어온 것이 그때였다.
“혈액을 좀 채취하겠습니다.”
김춘정 교수가 말했다.
그는 이미 김효진에게 모든 상황을 전했다. 간암이 전이되어서 골반 뼛속으로 들어갔다고.
그 골전이 암세포를 치료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고.
때문에 류영준 박사가 셀리큐어 치료를 중단하고 키메라 면역 치료법이라는 신기술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까지.
“잠깐만 나가서 얘기 좀 해요.”
김효진은 코를 훌쩍이며 의료진과 류영준, 제이콥을 데리고 밖으로 이동했다.
“이제 치료를 포기할까 생각중이에요.”
김효진이 말했다.
“포기하다뇨?”
김춘정 교수가 놀라서 물었다.
“……. 놀이공원에 가고 싶대요. 윤아가요. ……병원에서만 계속 있었잖아요. 지금에라도 포기하고 놀이공원도 데려가고, 강가에 물놀이도 가고……."
김효진이 눈물을 닦아냈다.
잠깐의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에 김춘정 교수가 입을 뗐다.
“담당의로서 저는 보호자분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존중합니다. 하지만 류 박사님이 계시잖아요……. 류 박사님이 의료계에 공급한 것들이 어떤 효과를 보였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도 교수님들만큼은 당연히 모르지만 우리 딸 보면서 암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어요. 어려운 약물 이름들을 이제 줄줄 꿰고 논문들도 알아요. 키메라 면역 치료법도 알아요. ……그거 쓰려면 준비하는 데 세 달은 걸리잖아요.”
김효진이 말했다.
“류 박사님. 솔직히 말해주세요. 그 기술로 제 아이가 살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나요?”
“이윤아 환자 같은 케이스는 매우 예외적이라서 임상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확률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김효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녀가 애써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아기 데리고 퇴원할게요."
“3주.”
류영준이 말했다.
“제가 3주 안에 약을 준비하겠습니다.”
키메라 면역 치료법 (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Theraphy).
현존하는 암 치료법 중 가장 막강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이다.
환자의 면역 세포를 꺼낸 다음, 그들에게 암세포를 압살할 수 있는 기관총을 쥐여주는 것이다.
최고의 무기를 보급 받은 면역세포들은 돌아가는 즉시 암세포를 소탕하고 환자를 완치시킨다.
“하지만 고형암에 대해서는 효과가 뛰어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뼛속에 들어간 골수종과 혈액에 떠도는 암세포들을 키메라 면역 치료법으로 제거한 다음, 셀리큐어로 간암을 치료할 겁니다. 여기까지 5주 안에 끝낼 계획이에요. 그 기간을 마지노선으로 잡았습니다. 그래서 키메라 면역 치료제를 준비하는 건 3주로 끊었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 3주……가 가능한가요?”
김효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1회 치료비용이 4억 원에 이르는 기술이다. 그 천문학적인 가격만큼 치료제를 제작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그 이유는 면역 세포를 배양하는 게 매우 어렵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도 굉장히 어렵기 때문이다. 3달도 최소 기간으로 잡은 것이다.
“3주라고요……?”
김효진이 갈등에 잠겨 중얼거렸다.
“저한텐 줄기세포 기술과 캐스나인 기술이 있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
“면역 세포의 배양과 유전자 조작 모두 기존에 콘슨앤커슨이 하던 것보다 수십 배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습니다. 훨씬 빨리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래도 시간 싸움이긴 하겠지만.”
“익스큐스미……."
류영준과 함께 온 제이콥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그가 류영준에게 영어로 말했다.
“대표님, 지금 분위기 심각한데 어떻게 얘기가 진행되는 건가요? 제가 한국어를 아직 별로 못 배워서.”
“곧 끝날 겁니다. 그때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류영준이 제이콥에게 짧게 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김효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쪽에 있는 연구원은 에이바이오에서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납니다. 칼텍 생명공학과를 조기졸업하고 노벨상 수상자의 연구실에서 최고의 학술지 중 하나인 셀에 논문을 낸 사람이에요. 전 세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청년 과학자 중 하납니다.”
"......."
“저희는 이미 골수 재생에 성공한 바 있고, 에이즈를 완치시킬 때 캐스나인 기술로 유전자를 조작한 적도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카펜티어와 여기 있는 제이콥, 그리고 제가 직접 실험을 할 겁니다.”
"......."
"반드시 기한 안에 맞춰서 이윤아 환자를 살려내겠습니다. 한 번만 더 희망을 가져주세요.”
***
일주일이 지난 후 에이바이오.
“미디어 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미디어는 동물 세포 배양액을 일컫는 용어다.
류영준은 제이콥한테 RPMI 배양액을 받았다.
이윤아의 조직 세포를 줄기 세포로 역분화시켰다. 류영준은 이제 그걸 다시 골수의 일종인 T 세포로 분화하고 있었다.
카펜티어와 제이콥이 류영준의 작업을 도와주었다. 골수 내에서 혈액을 생성하는 조혈모세포를 제작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완성시킨 이들이다.
단순히 지식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숙달된 노하우와 뛰어난 테크닉이 요구된다.
류영준은 조혈모세포를 만들어본 경험은 없지만 세포 실험 숙련도가 높았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는 로잘린의 감각이 남아있었다.
왼 손의 신경 세포 중 117만 여 개를 정확히 흥분시키는 정확도가 류영준에겐 없지만 대강의 흉내는 낼 수 있다.
촤르르륵!
정확히 12바퀴 반 돌아간 플라스크 뚜껑을 왼 손 검지와 엄지로 쥐고, 배양액과 세포를 파이펫 에이드로 꺼냈다.
“SFG-1928z 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레트로바이러스의 일종이다. 특정 유전자들을 세포 내에 집어넣을 때 쓰인다.
제작된 바이러스 용액을 카펜티어에게서 받은 류영준은 그걸로 줄기세포들을 감염시켰다.
이미 면역 세포로 분화시키는 바이러스도 처리했다.
남은 것은 캐스나인으로 몇 가지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충분히 들어가서 유전자 발현이 안정되고 세포 상태가 좋아지면 캐스나인을 단백질 복합체 형태로 넣을 것이다.
약 5일의 시간이 추가로 소모되었다.
그 사이 류영준의 몰골을 갈수록 수척해졌다.
“대표님 면도 안 하세요?”
아침에 사무실에서 시체처럼 소파에 쓰러진 류영준을 발견하고 유송미가 물었다.
“면도할 시간이 없네요. 샤워도 사내 샤워실에서 최대한 빨리 하고 있습니다.”
"......."
“여태 개발했던 어떤 것들보다도 많은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서요.”
류영준은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유세포 분석기 (FACS)라는 장비를 이용하여 원하는 조건들을 최적의 형태로 갖춘 세포들만 선별해야 한다.
류영준은 예전에 구매했던 유세포 분석기를 돌려서 형광 시그널로 세포들을 추출했다.
배양 끝에 천만 개로 시작한 세포들 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10만 개 남짓이다. 완치시키기에는 세포 수가 모자랄 수도 있다.
중간 단계에 있는 세포 스탁 (Cell stock) 들을 풀어서 치료제를 더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좋아도 3주가 빠듯하긴 하네.’
일부러 더 짧게 잡았다.
이윤아의 치료는 시간 싸움이기 때문이다.
골수에서 암세포를 걷어낸다고 끝이 아니다. 진짜 적은 간암이니까.
키메라 면역 치료제는 간암 같은 고형암에는 별 효과가 없기 때문에 혈액암과 골반 뼈의 골수종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셀리큐어를 써야한다는 것은, 그 만큼 간암 치료가 늦어진다는 뜻이다.
그게 걱정이었다. 이미 이윤아의 간은 암세포에 점령당한 것과 마찬가지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류영준이 자기 자신과 제이콥, 카펜티어를 채찍질하며 실험이 한참 진행되던 중이었다.
송지현이 에이바이오를 찾아왔다.
***
“류 대표님. 치료 전략에 대해서 들었어요. 키메라 면역 치료법으로 골전이된 암세포들을 먼저 걷어낸 후에 셀리큐어를 투약한다면서요?”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모자랄 수도 있어요. 지금 임상 환자의 간은 거의 정상 기능을 못하는 수준이에요. 셀리큐어를 빨리 투여해야 돼요.”
류영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밤낮없이 달리고 있어요.”
그 사실은 류영준이 직접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초췌한 몰골과 잔뜩 자란 수염 떡진 머리를 보면 씻는 것도 거의 이삼일에 한번 꼴일 게 분명하다.
“잠은 좀 주무세요……?”
송지현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가끔 조금씩 잡니다.”
“……. 셀리큐어를 지금 투여해요.”
“안 돼요. 골반 뼈에서 문제가 생길 겁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대로 가면……."
송지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셀리큐어를 간으로만 보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 그럼 골반 뼈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없이 간암을 치료하면서 키메라 면역 치료법으로 골전이도 치료해서 완치시킬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류영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쉽지 않겠죠. 정말이지 절망적이네요. 암은 너무 어려워요.”
송지현이 괴로운 듯 말했다.
“류 대표님. 저는 엑소좀 껍질에 암세포의 표면의 물질들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달아주기만 하면 그걸로 될 줄 알았어요. 차라리 엑소좀 코팅 없이 써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골반 뼈로 이동할 확률이 좀 줄어들 것 같은데요.”
“그래도 결국 전달될 겁니다. 간세포에만 셀리큐어가 들어가도록 해야 해요.”
“……. 그 악명 높은 췌장암도 임상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데 간암이 이렇게 애먹일 줄은 몰랐어요.”
“췌장암?”
류영준의 눈이 갑자기 번뜩 뜨였다.
“네?”
“췌장암이요?”
“네……. 류 대표님이 개발하셨잖아요. 췌장암 치료제.”
“맞아요.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네?”
“췌장암 치료제는 버나바이러스를 이용한 거였어요. 췌장 세포만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죠. 그것과 똑같은 전략을 엑소좀에서 취하면 되잖아요? 우린 간세포만 감염시키는 너무나 유명한 바이러스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 헤파티티스……?”
송지현이 얼은 표정으로 말했다.
“간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입니다. 헤파티티스 E형의 바이러스 껍질에 달려있는 물질들을 분리해서 엑소좀에 섞어요. 그럼 정상 간세포를 감염시키진 못하지만 셀리큐어를 간 조직에만 몰려들게 할 겁니다.”
류영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더니 구글에 바이러스의 정보를 검색했다.
[Hepatitis E virus]
바이러스의 모식도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류영준은 이번엔 에이젠의 연구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헤파티티스 바이러스 부탁합니다.”
그가 말했다.
-생바이러스가 필요하신 건가요?
“빨리 나오는 거면 DNA 형태든 생바이러스든 뭐 상관없어요. 아무거나 주십시오.”
***
약물의 캡슐 코팅과 엑소좀 제작, 그리고 셀리큐어의 약형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송지현이 헤파티티스를 맡았다.
그녀는 류영준에게 받은 헤파티티스 바이러스 DNA를 가지고 셀리큐어로 돌아가자마자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났던 류영준의 상태는 꽤 심했다. 모든 신경을 이번 임상시험에 쏟아붓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셀리큐어의 개발자이자 이번 임상시험의 담당자 중 하나로서 송지현은 좀 부끄러웠다.
‘나도 류 박사님만큼 이 일에 매진해야 돼.’
셀리큐어를 간암에만 보내는 아이디어도 류영준이 떠올렸다.
그걸 실행하는 것만이라도 할 수 있어야 앞으로 류영준을 볼 면목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번 일은 류영준에게 단순히 새로운 신약의 임상시험이나 어린 환자의 치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었다.
송지현은 류영준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류 박사님의 막내 동생이 소아 간암으로 죽었다고 했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데는 분명 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윤아의 치료에 실패한다면 그 천재가 어떤 충격과 상처를 받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송지현은 류영준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도움만 받아온 그를 위해서 셀리큐어를 또 한 단계 진보시킬 때였다.
류영준은 키메라 면역 치료법을.
‘그리고 나는 셀리큐어를 완성시켜서 임상시험 투약일에 만나는 거야.’
헤파티티스 바이러스의 구조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송지현은 바이러스의 껍질 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들 중에서, HEV-2 라고 알려진 물질을 주목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에서 두 번째 오픈 리딩 프레임 (Open Reading Frame)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송지현은 이 유전자를 분리한 후, 인 비트로 트랜슬레이션 (in vitro translation) 기술을 통해 생물질을 합성하고 엑소좀에 코팅했다.
실험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그녀의 얼굴도 점점 류영준처럼 초췌해졌다.
***
신약 투약이 예정된 날.
류영준은 갈색 약병에 담긴 정제된 키메라 면역 치료제를 가지고 선유 병원에 나타났다.
그리고 송지현은 셀리큐어가 담긴 조그만 앰플을 가지고 나타났다.
둘 다 에이젠의 GMP 시설에서 정제된 물건들이었다.
모두가 긴장해있었다.
“진행하겠습니다.”
김춘정 교수는 두 약물을 이윤아의 정맥에 투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