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 셀리큐어 (7) >
엿새째 되는 날에 류영준은 다시 선유 병원을 찾았다.
송지현 없이 혼자였다. 그는 곧바로 김춘정 교수를 만나서 아이디어를 꺼냈다.
“포도당을 찍어서 어디에 암이 전이됐는지 찾아봅시다. 암세포는 포도당을 많이 먹으니까요.”
“FDG를 쓰려는 겁니까?”
김춘정 교수가 물었다.
FDG.
풀네임으로 플루오르데옥시글루코오스 (Fluorodeoxyglucose).
방사성동위원소로 표지된 포도당이다. 당뇨 등을 연구할 때 많이 쓰이는 약물인데, 포도당과 매우 구조가 유사해서 포도당이 흡수되는 곳에서 쉽게 흡수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FDG는 양전자를 내뿜는데, 그걸 양전자 단층 촬영 기법으로 찍으면 포도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FDG가 방사성 물질이라는 것.
FDG는 계속해서 방사선을 내뿜는다. 체내에 지속적인 내부 피폭이 일어나고, 포도당처럼 쉽게 대사되어 소멸하지도 않는다.
오래 시간이 지나면 몸에서 소변으로 배출되지만 그때까지는 환자의 몸이 걸어 다니는 방사능 덩어리가 되는 셈이다.
“저는 반댑니다.”
김춘정 교수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어린애잖아요. 만약 나이 많은 환자고 전이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면 한 번 써보겠습니다. 하지만 이윤아 환자는 안 됩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만큼 전신에서 세포분열이 계속 일어나야 하고, 그러니만큼 DNA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내부 피폭은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김춘정 교수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FDG를 쓸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포도당을 찍읍시다.”
“네?”
“시간이 없으니 애초에 임상을 거치는 새로운 기술 같은 걸 개발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미 확보된 기술을 사용법만 바꾸고, 가장 안전한 물질로 포도당을 추적할 겁니다. 이윤아 환자한테 사탕 몇 개 먹여요. 그리고 포도당의 농도 변화를 MRI로 찍읍시다.”
김춘정 교수는 잠깐 얼어붙었다.
그는 순간 류영준이 미쳐버렸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저……. 류 대표님. MRI는 포도당 농도를 찍을 수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MRI로 포도당 농도를 찍어본 사람이 없었을 뿐이죠.”
"......."
김춘정 교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지?
MRI는 기본적으로 물 분자를 찍어서 뼛속의 골수나 연부조직 등의 정보를 풍부하게 얻어낼 수 있는 영상 진단법이다.
하지만 포도당이 물 분자도 아니고, MRI는 현미경 같은 광학 장치도 아니다. 그 미세한 물질의 흐름과 농도를 측정할 수는 없다.
그 혼란스러운 표정을 본 류영준이 먼저 설명을 시작했다.
“인간의 몸은 대부분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MRI는 환자의 몸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서 물 분자의 양성자들을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것이죠. 그 다음 일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쏘면 공명 현상에 의해서 양성자들이 특정한 전자기파를 내뿜는데 그걸 측정하면 ‘세포 내의 물 분자’의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게 MRI의 원리죠.”
“맞습니다.”
김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간단한 몇 개의 실험을 거쳐서 확인해본 결과, 포도당이 가지고 있는 하이드록실기에 붙어있는 양성자들을 MRI로 추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MRI로 자기장을 걸어주면 포도당의 양성자와 물 분자의 양성자 모두 특정한 방향으로 정렬됩니다. 그 다음 포도당의 양성자의 주파수에 맞는 전자기파를 쏘면 포도당의 양성자들이 떨어져 나와 물 분자로 옮겨가면서 물 분자들의 주파수 값이 변합니다.”
"......."
“포도당의 주파수에 맞는 전자기파를 발사한 후에, 물 분자의 전자기파 신호의 세기가 떨어지는 곳을 추적하면 포도당이 어디에 있는 지 찾을 수 있어요.”
김춘정 교수는 누가 해머로 뒤통수를 한 대 후려갈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문자 그대로 머릿속이 얼얼하다.
1983년에 최초 개발된 MRI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사용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MRI는 전자기파를 쏜 다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몸이 쏘아 보내는 전자기파를 측정하는 게 기본이다.
포도당을 전자기파로 건드려봤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생되는 시그널은 매우 약하다.
그래서 모두가 이런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류영준의 아이디어는 몸이 쏘아보내는 전자기파가 ‘줄어드는’ 것을 측정하자는 것이다.
포도당이 내뿜는 신호는 너무 작아서 측정이 안 되니까, 포도당에 의해서 물 분자가 변하는 것을 측정하자는 것.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었지만 가히 충격적이다.
“그 방법으로 포도당을 얼마나 측정할 수 있습니까?”
김춘정 교수가 물었다.
“제 실험에 의하면 마이크로몰 (PM) 정도의 낮은 농도의 포도당도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쥐의 정맥에 포도당을 투여해서 실험해본 건데, 포도당이라는 물질의 대사 과정이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사람 몸에서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 ‘뇌’를 제외하고 인간의 몸에서 포도당의 농도는 거의 일정한 데 반해 암세포가 있는 자리는 20배까지 증폭되어 있기 때문에 전이되었다면 분명히 튀는 값이 있을 겁니다. MRI 촬영 비용은 제가 댈 테니 한 번만 확인해주십시오.”
***
류영준과 김춘정 교수가 병실에 들어오자 이윤아는 약간 긴장했다.
지난번에 심각한 표정으로 얘길 나누고 류영준이 나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속상해했다.
그 상황을 토대로 이윤아는 몇 가지 전개를 추측한 끝에, 굉장히 아픈 치료를 받을 거라는 결론을 지었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에 김효진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온 류영준이 내민 것은 사탕이었다.
“윤아야 사탕 먹을래?”
류영준이 침대 끝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윤아는 눈치를 좀 보다가 가까이 다가가서 류영준의 손에 올려진 포도당 캔디를 집어 들었다.
그녀가 주저하자 류영준이 말했다.
“먹어도 돼.”
“.......레몬......."
"응?"
“레몬 맛……."
그녀가 류영준의 주머니에 삐져나온 사탕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레몬 맛 달라고?”
류영준이 봉투에서 레몬 맛을 찾다가 그냥 봉투째 내밀었다.
이윤아는 이번엔 자기 엄마 눈치를 봤다.
“먹어도 돼.”
김효진이 이윤아의 어깨를 꼭 안으면서 말했다. 그제야 이윤아는 긴장을 풀고 레몬 맛 포도당 캔디의 껍질을 뜯었다.
사탕 두 개를 먹은 후에 그녀는 MRI를 찍으러 이동했는데, 별로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거 시끄럽긴 한데 안 아파서 좋아요.”
보통은 냉각기가 돌아갈 때 춍춍 하고 나는 굉음과, 좁은 공간에 갇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소아들이 기겁하는 장비다.
온갖 항암 치료에 시달린 끝에 MRI를 오히려 좋아하게 되어버린 9살 아이라니.
그 태연한 모습이 역설적으로 짠했다.
김춘정 교수는 MRI 오퍼레이터와 류영준의 도움을 받아서 전자기파의 주파수를 포도당에 맞추었다.
“여기 누우세요.”
MRI 장비의 오퍼레이터가 이윤아를 환자 테이블에 눕히고 수건을 팔 아래 받쳐주었다.
“금속은 없죠?”
그는 습관적으로 재확인한 다음, 기계를 조작했다.
환자 테이블이 위로 올라가서 원통형 자기장 필드 안으로 이동했다.
김춘정과 류영준은 바짝 긴장한 채 노트북으로 오퍼레이터가 찍는 데이터 화면을 지켜보았다.
전자기파가 발사됨에 따라 수면 위에 파문이 일렁이는 것처럼 화면에 영상이 떠올랐다.
오퍼레이터는 밀리초 단위로 나누어진 영상을 움직이면서 시그널의 신호를 추적했다.
신호의 세기에 필터를 걸어서 줄어드는 값이 하이라이트되도록 했다.
"......."
김춘정 교수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골반 뼈 아래에서 강렬한 붉은색 신호가 튀고 있었다.
“골반 뼈 아래에 전이가 됐군요.”
"으음."
김춘정 교수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했다.
“나가서 얘기합시다.”
류영준이 김춘정 교수를 데리고 밖으로 이동했다.
***
김춘정 교수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온갖 생각을 다 했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골 전이를 진단하지 못한 채로 셀리큐어를 정량 투약했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셀리큐어는 뼛속으로 이동해서 암세포들을 파괴할 텐데, 화학물질에 불과한 만큼 그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는 못한다.
암세포 괴사 기작 (Necrosis)로 파괴된 세포 부산물들이 뼛속에 어질러질 것이다.
그런데 면역 세포들은 이런 지저분한 것들을 치워버리려고 몰려드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골수는 면역 세포들이 생성되는 장소다.
셀리큐어를 쓰면 골반 뼈에서 강력한 염증 반응과 함께 뼈가 전부 파괴될 수도 있다.
또는 암세포가 면역 기관을 장악해버려서 아무런 반응도 안 일어날 수도 있다. 그 경우엔 세포 괴사 부산물들이 인근 조직에 들러붙고 퍼져 나가면서 또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아직 한참 성장해야하는 소아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로 치닫게 될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전개다.
매우 특이한 임상 사례니까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김춘정은 다시 류영준에게 기대게 되었다.
‘이 남자라면 셀리큐어를 썼을 때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부작용이 덜 남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사무실 근처에 이르렀을 때, 그 희미한 희망은 좀 더 큰 기대감으로 변했다.
어쩌면.
‘류영준이라면 골전이를 완치할 수 있지 않을까?’
골전이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현재 없다.
셀리큐어도 완치시키진 못할 가능성이 높다.
뼈를 포함한 환부 지역을 파괴하며 강력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더라도 암세포를 궤멸시키진 못할 것이다.
몇 년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뼛속에서 암세포가 재발해서 자랄 거다.
셀리큐어는 그때까지 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킬 뿐이다.
그러나 류영준은 모든 암 중에서 최악의 난이도라는 췌장암도 치료한 적이 있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골전이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사무실에서 면담을 시작한 김춘정 교수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다행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다행이라고요?”
“초기에 찾았으니까요.”
“……. 치료할 수 있습니까? 셀리큐어를 쓰면 되는 건가요?”
“셀리큐어를 지금 쓰는 건 도박수가 있습니다. 간암은 잠깐 내버려둡시다. 전이된 뻣속의 암세포를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김춘정 교수가 절박한 심정으로 물었다. 류영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면 되나요?”
“이것도 실험적인 치료법이지만 미국에서 임상 3상까지 진행된 신기술입니다. 그리고 혈액암이나 골수종을 치료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죠. 3세대 면역 항암 치료법입니다. 셀리큐어 같은 화학물질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조작된 면역 세포가 직접 제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암세포가 괴사하면서 부산물들이 골수 내에 흐르는 문제도 없이 깔끔하게 처리될 겁니다.”
미국에서 임상 3상까지 진행된 항암 신기술.
김춘정 교수가 입을 딱 벌렸다.
“혹시?”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콘슨앤커슨한테서 그 기술을 샀습니다. 그리고 에이바이오는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최고의 과학자들을 데리고 있죠.”
***
카펜티어는 줄기 세포로 골수를 재생시키는 데 성공한 과학자다.
노벨상 수상자이며 면역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하나다.
실험실에 들어온 그는 제이콥을 불렀다.
“제이콥!”
“네?”
“지금 실험 뭐 하고 있어요?”
“어제 세포 트랜스펙션했고, 오늘은 다른 세포들 메인테인……."
“잠깐 선유 병원 쪽에 테크니션 지원갈 수 있습니까?”
“왜요?”
“대표님 지시사항이에요. 나랑 같이 갑시다.”
“대표님 지시사항이요? 무슨 일인데요?”
“콘슨앤커슨이 가지고 있었던 3세대 면역 항암 치료법인 키메라 면역 치료법 (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Theraphy) 알죠?"
“네. 저번에 대표님이 암 연구소 지분 팔아서 사오신 거 아니에요?”
“그 기술을 써서 치료해야하는 환자가 있습니다. 환자의 줄기세포에서 표적 마커를 조작해서 T 세포를 만들어낼 거예요.”
제이콥이 흥미를 보였다.
“어떤 환자인데요?”
“간암 환자인데 골전이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 설마 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아홉 살 어린애예요? 셀리큐어 임상 한다던?”
제이콥이 눈살을 찌푸렸다.
“맞습니다.”
“아……."
“간암 말기에 골전이. 최악이죠?”
“정말 그러네요.”
“대표님이 보낸 메일입니다. 보세요.”
카펜티어가 메일을 보여주었다.
[키메라 면역 치료법으로 골전이된 미량의 암세포를 먼저 걷어낸 다음, 셀리큐어로 간암을 치료할 겁니다.
이 환자는 현대 의학의 경계 밖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영역을 탐구하는 게 우리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