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 셀리큐어 (6) >
이윤아의 앞으로 돌아온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 버튼을 눌렀다.
싸아아아
마치 바닷물이 밀려오는 해변에 혼자 서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윤아의 간암 조직에서 벌어지는 생물학적 현상들이 류영준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되고 있었다.
간은 인간의 몸에서 단일 기관으로는 가장 많은 세포를 가지고 있는 장기다. 그 많은 세포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물질대사를 처리한다.
간은 인체 내의 화학공장이라고 할 만한 조직인 셈이다.
간이 그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른 장기들로부터 ‘원재료’에 해당하는 수많은 물질들을 끊임없이 납품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간은 동맥을 두 개 가지고 있다.
심장과 연결된 간동맥에서 신선한 산소를 실은 혈액을 받는다. 그리고 장과 연결된 간문맥에서 흡수된 영양소를 실은 혈액을 받는다.
두 동맥으로부터 하루에 공급 받는 혈액은 약 2,000 리터, 분당 1.4 리터의 혈액이 간을 지나간다.
혈류 흐름이 왕성한 장기인 만큼 그곳에서는 신생 혈관이 쉽게 생성되는 성질도 있다.
그 특성은 암세포에게도 적용된다.
‘앤지오제네시스 (angiogenesis)’
암세포가 새로운 혈류의 길을 내는 생물학적 작업이다. 신생 혈관들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거대한 난류를 형성한다.
그 목적은 포도당의 공급을 위해서다.
빠르게 증식하는 암세포의 주된 식량은 포도당이다. 가장 에너지로 바꾸기 쉬운 물질이기 때문이다.
새로 생성된 혈관으로부터 대량의 포도당을 흡수하면서 암세포는 무럭무럭 자란다.
이윤아의 어리고 연약한 간에서 증식한 암세포도 이 작업을 수행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혈관으로 직접 이동해 혈액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그건 마치 전염병 발생지역에서 이탈한 보균자와 같았다.
경찰이라 할 수 있는 면역 세포들이 그들을 추적해서 상당수를 제거했지만 놓친 것도 있다.
이윤아의 간암세포는 혈액을 타고 이동해서…….
-아악!
갑자기 로잘린이 비명을 질렀다.
[동기화 모드 종료.]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찌잉, 하고 강한 통증을 느낀 류영준은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비틀거렸다.
옆에서 송지현이 화들짝 놀랐다.
“괜찮아요?”
“……. 괜찮습니다. 송 박사님, 죄송한데 조금만 이따가 얘기합시다. 김춘정 교수님, 제가 잠시 후에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잠깐 생각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송지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류영준을 뒤따라가진 않았다.
어쩐지 귀찮게 해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병원 복도 끝으로 이동한 류영준은 비상계단을 반쯤 내려가서 사람들이 없는 곳에 섰다.
‘어떻게 된 거야?’
류영준이 로잘린에게 물었다.
-……. 저는 이걸 분석할 수 없습니다.
로잘린이 답했다.
‘뭐?’
-암의 전이를 추적하는 것은 저한테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피트니스를 엄청나게 소모해야 합니다.
‘하지만 피트니스 소모량은 5.3 이랬잖아? 그만큼은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0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상태창을 살펴보니 정말이다. 피트니스가 고갈돼있었다.
-그거 아세요?
‘뭐?’
-류새이도 죽기 전에 간암이 전이됐습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피트니스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난……. 기억 안 나.’
류영준이 말했다.
-너무 상처가 컸기 때문에 당신이 기억에서 지운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편도체에 들어가서 새까맣게 뒤엉킨 그 트라우마를 봤어요. 그 안에 저장된 단편적인 기억들 사이에는 분명히 간암의 전이에 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때 류새이의 담당의한테 그 얘길 직접 들었어요.
“내가 직접 들었다고?”
-네. 간암이 전이됐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무의식 속에 있습니다.
갑자기 류영준의 다리가 저절로 힘이 빠져 휘청거렸다. 류영준은 깜짝 놀랐다. 뺨에는 눈물도 뚜르르 흐르고 있었다.
마치 몸속에 숨어있는 다른 인격이 눈물을 흘린 것 같았다. 조금의 슬픔도 느끼지 못했는데 눈이 울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이번 일은 처음부터 저한텐 애 하나 치료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트라우마와 싸우는 거였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잠깐만…….'
류영준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마치 환각처럼 머릿속에 어떤 장면들이 어지럽게 떠다녔다.
어쩐지 어두침침한 느낌의 병실.
분주하게 오가던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죽어가는 막내의 작고 여윈 몸뚱이.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무력감.
7년 전의 그 지옥 같았던 나날들이 천천히 기억의 수면 위로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빛바랜 흑백 사진 같은 기억이 컬러로 변한 다음 눈앞에서 동영상으로 재생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로잘린은 해마와 편도체의 경계에서 분출하는 거대한 신경 물질들을 목도했다.
그건 마치 대지진 이후에 밀어닥치는 쓰나미 같았다.
-아……. 미친……. 일 났군요.
'.......'
류영준과 로잘린은 함께 기억의 단편들을 목격하고 있었다.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류새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오빠 나 이제 치료 안할래. 이제 다 나은 거 같아. 나 좀 살려줘……."
방사선을 비롯한 강력한 항암 치료를 하고나면 류새이는 항상 침대 머리맡에 토를 했다.
그리고 복통을 호소하면서 한 시간씩 울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막내는 어리광이 심했다. 넘어지거나 어디 부딪히기만 해도 칭얼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주삿바늘을 꽂을 때도 시체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전이됐습니다.”
담당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폐로 퍼졌어요. 간암세포의 성질을 거의 그대로 갖고 있어서 그곳에서 상당한 신생 혈관들이 생성되었고, 그게 폐포들을 눌러서 호흡을 막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던 그 장면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것처럼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 모습.
‘내가 늙어서 막내를 낳아가지고 애가 이렇다’며 자책하시던 모습.
죽어가던 류새이가 류영준의 손을 잡고 희미하게 웃던 그 표정.
-저기요? 류영준……?
로잘린이 불안한 듯 류영준을 연달아 불렀다.
류영준의 호흡이 가빴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폐를 물리적으로 짓누르는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었다.
-부교감 신경계를 움직여서 좀 진정시키겠습니다.
로잘린은 미약하게 회복된 피트니스를 짜내어 아세틸콜린 호르몬의 발현량을 조절했다.
류영준의 심박과 호흡이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좀 괜찮아요?
‘응……. 고맙다.’
-류영준. 지금 당신 편도체가 거의 쿠데타 수준이거든요? 제가 저쪽으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
-솔직히 저걸 쉽게 막아낼 자신은 없어요. 차라리 거북목이나 추간판 탈출증을 교정하는 게 낫지, 저 막대한 신경세포의 반란을 제가 혼자 어쩝니까? 피트니스도 고갈된 마당에.
‘……미안.’
-이렇게 합시다. 저는 지금부터 당신의 뇌로 몰리는 포도당의 상당 부분을 집어삼킬 겁니다. 그걸로 트라우마를 좀 방어해볼 거예요. 당신은 일주일간 당도가 높은 음식들을 섭취하세요.
‘로잘린. 난 이윤아를 구해야 해.’
-죄송하지만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저한텐 이윤아보다 당신이 더 중요하니까요.
류영준은 눈을 꾹 감았다.
-하지만 류영준. 그 동안 우리는 서로 상당히 많은 것을 주고받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감정들을 받았고, 당신은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가졌어요.
로잘린이 말했다.
-지능을 결정짓는 유전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나요?
'.......'
-그 유전자들의 발현량을 재면 지금 당신은 아인슈타인의 열 배가 넘을 거예요. 제가 자리를 비워도, 동기화 모드를 못 써도, 혼자서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찰칵.
눈앞에 떠있던 상태창이 사라졌다.
로잘린이 없어졌다.
이젠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편도체로 넘어가 류영준의 트라우마 조직 내에 자신을 파묻었으니까.
직접 신경 신호를 조절하면서 트라우마와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류영준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숨이 가쁠 정도로 무의식에서부터 울컥울컥 치밀던 기억과 감정들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에 로잘린이 편도체에 들어갔을 때처럼 감정이 전부 사라진 싸이코패스가 된 것도 아니다.
로잘린이 편도체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트라우마 조직하고만 합일해버렸기 때문이다.
류영준의 정신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김춘정 교수를 찾아갔다.
“이윤아 환자 CT 사진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류영준이 물었다.
김춘정 교수는 컴퓨터에서 사진 파일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간문맥으로 암 조직이 넘어와 있는 것 같은데요.”
류영준이 말했다.
“경계 쪽에 있습니다.”
“그럼 전이 위험이 있지 않나요?”
“있습니다.”
“셀리큐어는 전이된 간암 세포를 추적해서 파괴할 수 있습니다.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데는 효과적이죠. 하지만 어디로 얼마나 전이되었는지를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잘못 들쑤셨다가 부작용이 클 수도 있어요.”
"후우......"
김춘정 교수는 시름 가득한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류 박사님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암 조직이 전이되어도 초기에는 찾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
류영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제가 방법을 찾아오겠습니다.”
“무슨 방법이요?”
“전이된 암 조직을 초기에 진단하는 방법이요. 찾아내면 그 자리를 확인해주세요. 셀리큐어를 투약하는 건 그때까지 보류합시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극미량의 전이된 암 조직을 찾아내겠다고요?”
물론 류영준은 혈액 한 방울에서 암을 진단하는 신기술도 개발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몸에 암 조직이 존재하는지’를 진단하는 것이다.
몸의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암세포는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세포와 다를 바가 없고, 그게 부풀어 올라서 종양이 되기 전까지는 일반 조직과 구별이 안 된다.
그런데 전이 초기의 암세포를 어떻게 찾아낸다는 말인가?
“지금 이윤아 환자한테는 그렇게 시간이 많이 없어요. 류 박사님.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다음 주에 가지고 오겠습니다.”
“…….다음 주요?”
“네. 저는 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조금의 불확실성도 가지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완치시킬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일주일만 기다려주십시오.”
류영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아래층으로 이동해서 송지현을 찾았다.
“돌아갑시다.”
류영준이 말했다.
“네? 셀리큐어 치료는요?”
“잠깐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환자에 대해서 좀 더 정밀 진단을 해야할 것 같아서요.”
***
“요즘 대표님 왜 저러실까요?”
박동현이 정혜림에게 물었다.
선유병원에서 돌아온 류영준은 닷새째 실험실에서 살았다.
미팅도 전부 취소했다.
로잘린은 트라우마를 막아내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에, 류영준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했다.
그는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갔다. 로잘린의 시각에서 모든 정답들을 척척 뽑아내던 편리함을 놓고 과학자의 기본자세를 되찾았다.
하지만 로잘린을 만나기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류영준은 로잘린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비록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미시 현상들을 생생하게 관찰하는 동기화모드는 쓸 수 없었지만, 로잘린의 통찰력을 갖고 있다.
류영준은 간암의 특성, 암세포의 특성, 암세포의 전이 기작, 암의 진단 방법에 대한 논문들을 닷새 동안 70편을 읽었다.
유송미는 류영준의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휴지통에 가득 쌓인 당 보충제 껍질들을 보고 경악했다.
정말이지 요즘 대표는 이상해졌다.
저만한 인물을 저 정도로 미치게 만드는 일이 도대체 무엇일지 모두가 궁금해 했다.
선유병원에 다녀온 이후부터 저러니 셀리큐어 임상과 관련된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철컥.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류영준의 안색이 해쓱하다.
마침 안에 있었던 유송미가 류영준을 보고 말했다.
“대표님 이러다 당뇨 걸리시겠어요. 당 보충제 왜 이렇게 드세요?”
“상당수는 제가 먹은 거지만 아닌 것도 많습니다.”
“네?”
“실험용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당 보충제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포도당을 20배가량 더 많이 먹는다.
암 조직에서 포도당의 농도는 매우 높다.
“암세포는 포도당을 좋아하거든요. 그걸 위해서 혈관을 재배치할 정도로요.”
류영준이 말했다.
“포도당을 추적할 겁니다. 그게 암세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