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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 셀리큐어 (3) > (249/301)

92화.  < 셀리큐어 (3) >

“저……. 류 박사님. 혹시 저희 애를 치료하실 수 있나요?”

환자의 어머니, 김효진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묻어났다.

“아직 모릅니다. 저희한테 간암 치료제 신약이 있긴 한데 쓸 수 있을지는 봐야 압니다.”

류영준이 짧게 답했다.

그는 이윤아에게 몸을 기울였다.

“윤아야, 안녕.”

이윤아는 쌕 웃더니 몸을 돌려 베개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는 눈만 쏙 내어서 류영준을 힐끔거렸다.

“선생님한테 인사해야지.”

김효진이 이윤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윤아는 말없이 고개만 꾸뻑했다.

‘어떤 것 같아?’

류영준이 로잘린에게 물었다.

-셀리큐어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셀리큐어의 투여 횟수와 양을 정확히 맞춰주어야 합니다. 너무 과하면 정상 세포에 피해가 가고, 너무 약하면 암세포가 살아남아서 내성을 갖추게 될 겁니다.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데?”

-그걸 확인하려면 피트니스를 써야 합니다.

“그럼 써줘.”

-아.......

로잘린이 다시 신음소리를 냈다.

-큰일 났군요. 좀 이따 다시 메시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뭐? 왜?’

-저한텐 저 애들 수백 명보다 당신이 더 소중합니다. 지금 당신의 해마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차륵.

로잘린의 상태창이 사라졌다.

‘야? 로잘린?’

당황한 류영준이 로잘린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상태창도 나오지 않았다.

로잘린은 류영준의 해마 조직을 관찰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천만 개를 훌쩍 넘는 뉴런들.

한 개의 뉴런이 약 2, 3만 개의 다른 뉴런과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거대한 장기기억의 신경망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류영준의 기억의 도서관이다.

로잘린은 그들의 전기 신호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해마이행부와 전해마이행부 사이의 거대한 신경세포들 사이에 검은색의 무거운 신경들이 있다.

아주 오래된 조직이다.

로잘린이 보기에는 휴화산 같기도 하고 죽은 고목 같기도 했다.

그 안에는 요람에 들어있는 갓난아기 류새이를 처음 만난 순간, 그리고 류영준이 류새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던 때 손을 잡고 걷던 돌담길,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류새이를 위해 대학생 류영준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크레용품을 사주던 기억 등이 담겨 있었다.

'.......'

오랫동안 조금의 활동도 없었던 조직들이다.

그리고 류영준이 이윤아를 발견한 지금은, 노르에피네프린 (Norepinephrine) 같은 신경 전달 물질들이 용암처럼 부글부글 흘러내리고 있었다.

“피트니스 좀 쓰겠습니다.”

로잘린이 류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 야, 셀리큐어 농도 어떻게 처리하는 지나 좀 알려달라고!

“그건 조금 이따가요. 지금은 피트니스 전부 다 여기에 쏟아 부어야 해요.”

로잘린은 짧게 대답하며 몇 가지 유전자들의 발현량을 조절했다.

신경들이 진정되기 시작했다.

분출하던 신경전달물질들이 천천히 소멸했다.

삽시간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세포 수준의 감각으로는 수십 시간의 작업과도 같았다.

로잘린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근데 아까도 이렇게 잡았는데 왜 자꾸 흥분하는 거지?’

로잘린은 신경망 너머를 물끄러미 살폈다.

신경 흥분의 시작이 해마가 아니다. 저 너머에서부터 신호가 오고 있다.

트라우마는 류새이의 기억을 보존한 해마에도 일부 상흔을 남겼지만, 그 본체는 편도체 (馬桃體, Amygdala)에 저장돼있었다.

편도체는 해마의 끝에 연결된 무의식을 관장하는 조직이다.

그리고 어떤 기억의 정보들은 그곳에 감정의 형태로 갇혀버렸다.

‘아마 류새이가 죽던 때…….'

로잘린은 혈관에 몸을 실었다. 심장에서부터 박동하는 혈류를 타고 이동했다.

‘포도당이 많은 건 확실히 좋네.’

뇌의 유일한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이곳엔 몹시 풍부하다. 류영준이 점심으로 먹어준 탄수화물이 이곳에서 당의 형태로 가득 흘렀다.

로잘린은 혈액 내의 포도당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편도체를 향해 이동했다.

감정을 관장하는 신경 복합 조직, 편도체.

로잘린이 류영준의 몸에 들어온 이래로 지금까지 여러 번 그곳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까진 한 번도 세포를 직접 진입시킨 적은 없었던 영역이다.

“류 박사님?”

이윤아의 담당의 김춘정 교수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는 류영준을 보고 그는 흠칫 놀랐다.

얼음 같은 표정과 기묘한 눈빛이 어쩐지 강한 이질감을 주었다.

“류 박사님 ……?”

김춘정 교수가 다시 그를 불렀다.

“네."

“괜찮으세요?”

“네."

정말 괜찮다. 의식도 멀쩡하다.

그런데 어쩐지 모든 감정이 다 사라진 싸이코패스가 된 기분이다.

류영준은 좀 전까지 이윤아에게 느끼던 동정심과 슬픔이 싹 가시는 걸 느꼈다.

그리고 마치 짚더미를 몽땅 태운 후 재를 날려버리면 그 안에 있는 바늘이 쉽게 나오는 것처럼, 공허한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것은 류영준의 순수한 이성과 논리였다. 그것도 로잘린에 의해 지금까지 영향을 받아 극도로 날카로워진 사고다.

“셀리큐어로 치료할 수 있을까요?”

김춘정 교수가 물었다.

“진료 차트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자료를 주십시오.”

류영준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송지현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과 말투가 너무나 어색했다. 그녀가 아는 류영준 같지가 않았다.

***

김춘정 교수의 사무실에서 셀리큐어의 투여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간모세포종. 종양의 위치는 우엽. 수술로 종양 제거 후에 8881B 요법으로 치료했고.”

류영준이 진료 차트를 읽기 시작했다.

“174일 째에 간에서 다시 종양이 자라기 시작. 시스플라틴이나 독소루비신이 듣지 않았고 현재 크기는 2 센티미터.”

"......."

“애 체중이 어디에 나와 있죠?”

류영준이 물었다.

“젤 위에 있습니다.”

김춘정 교수가 답했다.

류영준은 진료차트의 윗부분에서 이윤아의 체중을 확인했다.

24킬로그램.

“1킬로그램 당 새로운 약형으로 제작된 셀리큐어 0.6밀리리터를 정맥으로 투여합니다. 2시간 동안 균일하게 들어가게 하면 됩니다. 치료 기간은 2주. 하루에 두 번씩.”

"......."

김춘정과 홍주희, 간호사들과 송지현이 류영준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아뇨……. 어떻게 그렇게 처음 나온 약의 투여 조건을 딱딱 짚어내시는 건지 신기해서……."

홍주희가 말했다.

그녀와 송지현은 류영준을 믿었지만 김춘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담당 환자이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모든 과정은 누군가에 대한 신뢰만으로 진행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하더라도.

“죄송하지만 그 투여법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김춘정이 물었다.

“왜 킬로그램당 0.6 밀리리터인가요?”

“셀리큐어의 농도를 환산하면 임상 1상에서 환자에게 사용되었던 용량의 60 퍼센트 수준으로 투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셀리큐어의 약형이 바뀌면서 투여했을 때 더욱 환자의 암세포에 안정적으로 도입되기 때문에 그 효율 증가분을 감안해야 합니다. 간암세포의 마커 물질인 XRCC를 특이적으로 인식해서 엑소좀 인테그레이션을 일으키면 기존 셀리큐어 도입보다 약 1.6배 효율이 증가됩니다. 따라서 도입되는 약물 자체는 임상 1상과 비교해서 정량입니다. 환자가 소아임을 감안했을 때 말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김춘정 교수는 잠깐 말을 잃었다. 그는 어버버하다가 간신히 입을 뗐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 하루에 두 번, 그러니까 12시간 간격으로 투여하고 1회 투여 시간은 2시간으로 하는 이유는요……?”

“방금 말했듯 투여된 셀리큐어는 엑소좀에 싸여진 형태로 간암세포에 특이적인 마커들을 인식해서 암세포에만 부착됩니다. 한 번에 모든 셀리큐어를 쏟아 넣지 않는 이유는 셀리큐어가 간 조직 전체에 골고루 접근할 수 있는 여유를 주기 위함입니다. 엑소좀이 세포 내에 들어가고 약 2분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엑소좀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이 붕괴되거든요.”

류영준이 설명을 좔좔 쏟아내었다.

“따라서 2시간 동안 천천히 주입된 엑소좀들은 순차적으로 암세포에 진입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많은 암세포들에 접근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한 번에 몽땅 쏟아부으면 일부 암세포에만 엑소좀들이 전부 들어가겠죠.”

"......."

“2주 동안 치료해야 하는 이유는 암의 크기 때문입니다. 셀리큐어가 한 번 도입되었을 때 종양의 표면 70 퍼센트를 제거한다고 하면 지금 얘기한 조건으로 총 26회 이상 투여되어야 이론적으로 모든 암세포를 사멸할 수 있습니다. 추가 2회는 그 사이에 암세포가 증식하는 것을 고려한 값입니다.”

"......."

툭.

홍주희의 팔꿈치가 실수로 노트를 쳐서 떨어뜨렸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얼른 노트를 집어 들었다.

김춘정 교수는 내색 하지 않았지만 속으론 경악했다.

‘인간이 무슨 로봇도 아니고 저런 분석이 가능하다고?’

투여법에 대한 근거를 묻긴 했지만, 솔직히 ‘이전 임상 데이터가 이랬고 얘는 애니까 이 정도로 한 번 해봅시다.’ 정도의 답만 돌아와도 치료를 승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것은 류영준 본인이었다.

마치 로잘린이 그의 입을 빌어서 대신 설명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놀람’도 이성적인 놀람이다. 내가 이렇게 정확한 분석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나? 하는 합리적인 의심 같은 것.

감정적인 동요는 전혀 없었다.

감정이 제거된 상태였기 때문에.

***

-으으.......

병원을 빠져나오는 길에 로잘린이 신음소릴 냈다.

동시에 류영준은 머릿속에 빠져버렸던 나사 같은 게 하나 채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정상적인 페이스로 돌아온 기분이다.

“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나 아까 제대로 설명한 거 맞아?”

-전부 정확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 대체 어디 갔던 거야? 내 몸에 무슨 짓을 했어?”

-저야말로 묻고 싶습니다……. 이 편도체 어쩔 겁니까?

“뭐?”

-청소 좀 하고 삽시다. 혼자 쓰는 몸도 아니신데.

"......."

황당한 기분이다. 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신의 트라우마가 들어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고 왔습니다. 정말 지옥 같았어요. 제 평생에 그렇게 방대한 우주는 처음 보았습니다.

“너한테 평생이래봐야 반 년 남짓한 기간 아니냐?”

-그렇긴 합니다. 아무튼 그 무의식에 돌아다니는 특이 구조물들을 좀 치우고 왔습니다.

“트라우마라는 건 뭐야? 나한테 트라우마가 있어?”

-장난하세요? 엄청나게 많아요. 가난한 어린 시절에 대한 구질구질한 열등감부터 시작해서 아주 그냥……. 정리 좀 해요!

"......."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건 류새이에 대한 거였습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그건 엄두가 안 나서 건드리지도 못했어요. 하하. 김현택이 옛날에 셀리큐어를 훔쳐서 이걸 자극했다고요? 미쳤네요. 운 나빴으면 살인도 났겠는데요.

"......."

-아무튼 이건 너무 거대해서 제가 치울 방법은 없습니다. 당신이 직접 처리하셔야 해요.

“내가?”

-제가 세포 사멸 기작으로 제거하려면 피트니스가 만 단위로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상황에 따라서 그걸 금방 뿌리 뽑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세포가 아니라 거대한 인간이니까요. 제가 한 명의 시민이면 당신은 국가 같은 크깁니다. 제가 혼자 못하는 일을 당신은 할 수 있죠.

“류 대표님!”

누군가 류영준의 뒤를 빠르게 쫓아오며 소리쳤다.

송지현이었다.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인사도 없이 혼자 가시다니……. 너무하세요.”

송지현이 서운한 듯 말했다.

감정이 없던 좀 전까진 볼일이 끝났으니 그냥 간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약간 미안해졌다.

올 때도 한 일행이었는데, 인사도 없이 굳이 두고 혼자 나오는 게 좀 이상하기도 하다.

류영준이 말했다.

“죄송해요. 가시죠. 모셔다 드릴게요.”

그는 송지현과 함께 회사 차량이 있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송지현이 말을 걸었다.

“저 근데……. 괜찮으세요?”

“저요?”

“평소랑 좀 달라 보이셔서요. 약간 언짢으신 거 같기도 하고.”

“아, 괜찮아요. 좀……."

류영준은 설명할 말을 찾다가 차마 로잘린 얘긴 못하고 비슷한 이유를 꺼냈다.

“제가 소아 간암에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트라우마요?”

“제 막내 동생이 소아 간암으로 죽었거든요.”

“아……."

송지현이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침묵이 흘렀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류영준은 미안한 마음에 먼저 말을 걸었다.

“그게 사실 제가 대학원에 진학하고 본격적으로 과학을 시작한 계기이기도 해요. 소아 간암 치료제를 만들고 싶어서.”

송지현이 류영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랬군요. 그래서 셀리큐어를 제 1연구소가 빼앗아갔을 때 연구소장이랑 싸우신 거예요?”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나요?”

“이쪽 업계에 있으면 알 사람들은 다 알죠.”

송지현이 말했다.

“그때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학부생이었지만, 지금은 에이바이오 같은 회사를 이끌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이번에는 제발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송지현이 류영준의 등을 살짝 토닥였다.

“셀리제너가 7년을 연구하고 묻혀버린 걸 류 박사님이 구해준 신약이잖아요. 우리가 같이 엑소좀 코팅을 씌워서 효과도 높였잖아요. 이번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땡.

엘리베이터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

-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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