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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 셀리큐어 (2) > (248/301)

91화.  < 셀리큐어 (2) >

박소연을 만나러 에이젠에 찾아오기 전.

류영준은 한 손님을 만났었다.

이름은 맥키니.

52세의 미국인이고, 축산업계의 거물 중 하나다.

그리고 그는 췌장암을 앓고 있었다. 약 2년간 병원에서 여러 방법으로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지만 쉽지 않았다.

이젠 손 쓸 도리가 없다고 생각되던 시점에 류영준이 미국에서 진행한 췌장암 치료제의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본래 췌장 세포를 파괴하는 성질을 가진 버나바이러스를 조작해서 췌장으로 유도하고 암세포만 정확히 파괴하는 신기술.

치료제는 소량으로 다회 투여되었고, 영상 진단으로 살펴보았을 때 하루가 다르게 종양의 크기가 줄었다.

의사가 사진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매일 눈으로 체크할 수가 있었다.

치료법의 효율이 너무 막강해서 마치 마법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후반부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했던 병이 이렇게 쉽게 치료되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2주간의 약물 치료 후에 암세포가 완전히 사멸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류영준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에이바이오로 찾아온 맥키니는 류영준에게 연속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류 대표님 덕분에 다시 건강을 찾았습니다.”

“췌장암 치료법이 잘 먹혀서 다행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류영준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새로 개발한 기술들이 절망에 빠져있던 환자들을 완치시키는 걸 보면 항상 가슴 속이 뿌듯했다.

“류 대표님한테 건의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맥키니가 말했다.

“국제 특허 출원하신 것 중에 동물 신약 122종이 있죠?”

“어디서 들으셨나요?”

“아무래도 제가 축산업계에 있다보니 여기저기서 소문이 들어오곤 합니다. 엄청난 치료제들이 나온다고요. 아직 출원일로부터 1년 반이 지나지 않았고 승인되지 않아서 공개는 안 된 모양입니다만. 제가 듣기로 워낙 항목이 많은 데다 국제 특허니까 심사가 오래 걸린다던데 이제 거의 끝났다더군요.”

류영준은 대답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잠깐 기다려주었다.

“류 대표님. 그 치료제들에 더해서 혹시 진단 키트를 가축 전염병 용도로 쓸 수는 없겠습니까?”

맥키니가 물었다.

“가축 전염병에서요?”

“네. 저는 생물학 같은 건 잘 모릅니다만. 류 대표님은 어떻게든 해내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맥키니가 말했다.

“류 대표님 . 그것과 치료제가 있으면 매년마다 돌아오는 가축 전염병이라는 국가재난에서 수많은 가축들과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구한다고요?”

“네. 사람도 구할 수 있습니다.”

“음. 아무래도 전염병이 돌면 경제적인 피해가 크니까요. 농장주들한테 도움이 되긴 하겠죠.”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맥키니의 포인트는 그게 아니었다.

“대표님. 제가 얘기한 건 살처분 작업자들을 말한 겁니다. 그 일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릅니다. 렌더링 기계 돌아가는 거에다가 닭이나 오리를 집어 던지면 비명도 나오고 살점도 튀고 피도 나오고 난장판이에요. 일용직 노동자들 구하면 열에 여덟은 오전 작업하고 다 도망가요. 토하고 악몽 꾸고 난리도 아닙니다. 살처분 작업장은 생지옥이에요.”

"......."

“본래 공무원들을 시키다가 공무원들이 트라우마로 병가내고 일 그만두고 노조에서 시위하고 난리 나니까 일용직으로 외주를 돌리는 겁니다. 보통은 외국에서 온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이 그 일을 합니다. 미국에서 그런데, 아마 한국도 똑같을 거예요. 불도저로 돼지들을 밀어 죽이고 원래 닭이었는지 오리였는지 구별도 안 되는 살점들 뼛조각들 사이에서 피비린내에 찌들어서 기계에 동물들을 계속 갈아야 합니다.”

맥키니가 말했다.

"음......."

“그리고 빠른 시간에 전부 처분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다들 그 피투성이 지옥에서 밤을 새고 밥도 먹어요. 그러고 나면 전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이 오는 겁니다.”

“그렇군요.”

“경제적인 피해도 농장주를 자살로 몰고 갈 정도지만 살처분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도 무시 못 할 정도예요. 미국에서는 그 사람들 심리 치료를 국비로 진행해주는데 한국은 모르겠군요.”

“안할 것 같네요.”

국가 유공자들도 안 챙겨주는 나라인데.

류영준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장님 말씀대로, 진단 키트를 동물용으로 재편하면 분명 가축 전염병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다만 살처분되는 가축들이 한국에서만 수천만이 넘기 때문에 키트의 단가를 낮추는 게 관건이 되겠네요.”

“…….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게 있으면 분명 치료제와 시너지를 만들어서 축산업계에서 중요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

“그래서 저랑 의논하러 오신 거군요.”

박소연이 말했다.

“맞습니다. 일단 단가를 낮추는 방법은 진단 키트를 질병별로 세분화하면 될 것 같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사람들이 쓰는 에이체크업처럼 100여종 질병을 한꺼번에 다 진단하는 고집적 키트를 대량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살처분을 앞둔 상황에선 전염병의 종류는 이미 특정돼있으니까요. AI인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되는 상황이면 굳이 다른 질병까지 진단하면서 돈을 더 쓸 필요는 없죠.”

“가축 감염병들을 모두 진단할 수 있는 고집적 키트는 하나만 갖고 있다가, 상태가 안 좋은 닭이나 돼지한테 써보고, 어떤 병인지 확인한 다음엔 값싼 키트로 그 병이 퍼지는 것만 추적한다는 거죠?”

“맞습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PDMS 칩의 사이즈를 줄이고 구제역, 소결핵, 조류 독감 같은 특정 질병들을 하나씩 진단할 수 있는 소형 키트들을 만들어야 해요. 단가를 최대한 낮춰서.”

“알겠습니다.”

박소연이 답했다.

“근데 이번 프로젝트에는 생명창조 팀이 모두 들어오진 못할 거예요. 아마 고순열 씨랑 정혜림 씨만 참여할 겁니다.”

“네. 괜찮아요. 제가 잘 하면 되죠.”

박소연이 담담하게 답했다.

띵 띠딩 띵!

류영준의 휴대폰이 크게 울었다.

“잠깐만요.”

류영준은 휴대폰을 들었다. 송지현이었다.

“여보세요?”

-류 대표님!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비쳐 나오는 여자 목소리에 박소연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공했어요. 셀리큐어 말이에요. 엑소좀으로 코팅해서 간암세포에만 보내서 효율을 더 높이겠다고 했었잖아요? 됐어요!

“아 정말요?”

류영준이 환하게 웃었다.

“축하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저 마침 에이바이오 지나고 있는데, 혹시 잠깐 미팅 괜찮으세요? 아니면 데이터를 메일로 보내드릴 수도 있고요.

“아닙니다. 만나서 얘기하시죠. 제가 지금 그리로 갈게요.”

류영준은 전화를 끊었다.

“저는 다음 미팅이 생겨서 바로 가보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주세요.”

류영준이 박소연에게 말했다.

***

에이바이오에 도착한 류영준은 정문 앞에서 송지현을 만났다.

벤치에 앉아있던 그녀는 류영준을 보자 벌떡 일어났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류 대표님! 이것 보세요.”

그녀는 팔짝팔짝 뛰듯이 류영준에게 달려와서는 곧바로 태블릿에서 데이터를 열었다.

“하하. 서서 얘기할 거예요? 저쪽 카페 가서 보죠.”

“그럴까요?”

송지현이 머쓱해하며 태블릿을 가방에 넣었다.

한껏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흐뭇했다. 손대는 것마다 다 성공하는 반년을 보내느라 이런 감각이 무뎌져 있었는데.

연구자로서 저 기분이 어떤 것인지 류영준도 알고 있었다. 원했던 데이터가 절묘하게 튀어나와서 오랜 고생이 담긴 연구의 결실이 보일 때의 짜릿함.

“에이바이오 소속이셨으면 제가 인센티브라도 드렸을 텐데요.”

이동하면서 류영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지금에라도 이직할까요? 저 지원하면 받아주시나요?”

“그럼요.”

“하하. 고마워요. 하지만 전 셀리제너가 아직 좋아요.”

두 사람은 회사 바로 앞의 한적한 카페로 이동했다.

그리고 류영준은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마주쳤다.

“류 대표님?”

홍주희가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누구에요?”

송지현이 물었다.

“선유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선생님이세요.”

류영준이 설명해주었다.

녹내장 치료법을 처음으로 적용했던 임상시험 환자 손수영의 딸이 신생아 폐동맥 고혈압증이라는 병을 앓았었다.

그때 그 아기의 담당의가 홍주희였다. 그 아기를 치료하는 데 류영준이 힌트를 주면서 얼굴을 트게 되었었다.

“오랜만이네요. 홍 선생님. 바쁘신 분이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어요?”

류영준이 인사하며 물었다.

“아, 사실 류 대표님한테 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는데……. 연락하기가 좀 그래서 여기서 혼자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한테 부탁을요?”

“선유 병원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소아 간암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어요.”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소아 간암……."

-윽.......

로잘린이 신음 소리를 냈다.

“잠깐만요.”

약간의 두통이 머릿속에서 퍼졌다. 류영준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이동했다.

어쩐지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 갑자기 상태 왜 이러는 거야?”

류영준이 물었다.

-저 때문입니다.

“왜?”

-제가 탄생하고 당신의 몸에 자리 잡았던 때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지.”

-제 세포는 지금 억 단위가 넘지만 처음에는 한 개였습니다. 제 본체라고 할 수 있는 모세포죠. 모세포는 탄생 직후 당신의 혈관을 타고 뇌로 이동했습니다.

“뇌로?”

-세포가 가장 쉽게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포도당이고, 그게 가장 많이 공급되는 곳이 뇌거든요. 그리고 뇌에서 가장 신경절의 신호가 강한 곳에 자리 잡게 됐죠. 그곳이 어딘지 아시나요?

“어딘데?”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조직 내부의 신경세포들 사이. 과학과 연구윤리에 대한 당신의 강박이 뿌리박은 곳.

로잘린이 말했다.

-아홉 살에 죽은 당신의 막내 동생, 류새이에 대한 기억이 담긴 곳입니다. 류새이는 소아 간암으로 죽었죠.

“아……."

류영준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소아 간암이란 얘길 듣는 순간 그 근처의 신경세포들이 급격히 흥분하면서 제 모세포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럼 앞으로도 소아 간암 환자 얘길 들으면 이렇게 되나?”

-이젠 괜찮습니다. 제가 그 신경 세포들을 진정시켰습니다. 제가 해마의 신경세포들보다는 더 세죠.

“좋아.”

류영준은 숨을 고르고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송지현과 홍주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류영준은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 환자가 몇 살입니까?”

류영준이 홍주희에게 물었다.

“여자 아이고 아홉 살이에요.”

"......."

류새이와 정확히 똑같은 조건이다. 머릿속에서 또 무언가가 지끈거렸다.

[다시 진정시켰습니다. 괜찮아요.]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환자의 상태는 어떤가요?”

“간모세포종입니다. 종양의 위치는 우엽이고, CCG 8881B 요법으로 치료중이에요.”

“8881B?”

“시스플라틴 (Cisplatin)과 독소루비신 (doxorubicin)을 미국 소아암학회에서 제공하는 조건으로 정맥 주입하는 치료법이에요.”

“그런데 절 찾아오신 것은 치료가 잘 안 된 건가요?”

“……암세포가 약에 내성이 생겼어요.”

홍주희가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약은요?”

“아이의 예후가 그렇게 좋지 않아요. 더 독성이 높은 약을 쓰는 것은 그리 권장할만한 방법이 아니에요. 그래서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류 박사님을 찾아온 거예요. 근데 이쪽에…… 송 박사님? 이 분이 좋은 약이 하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홍주희가 송지현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송지현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영준이 말했다.

“송 박사님. 셀리큐어 데이터 한 번 봅시다.”

셀리큐어는 현재 존재하는 모든 간암 치료제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안전하다.

적어도 임상 1상 데이터는 그렇다. 그리고 로잘린의 시각에서 분석한 데이터도 그렇다.

부작용은 거의 없다.

***

이윤아, 9세.

친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그녀는 선유병원에 입원했다.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항암 치료를 그 조그만 아이가 받아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매일같이 주사 한 대 맞을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것은 그 작은 아이가 아직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날도 이윤아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앉은 채 스마트폰을 보면서 까르르 웃고 있었다.

“하하하, 엄마. 이거 봐. 이거.”

이윤아는 옆자리에서 2년 동안 폭삭 늙어버린 여인한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강아지하고 눈싸움 하는 거야.”

"응......."

몹시 지친 여인은 윤아의 옆모습을 보면서 힘없이 웃었다.

김효진은 겨우 서른셋의 젊은 엄마였다.

남들은 대학을 다니고 있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첫 딸을 낳았다.

그녀의 20대의 모든 기억은 딸과 함께였다. 청춘과 고스란히 맞바꾼 아이다.

김효진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아이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철컥.

병실 문이 열렸다.

이윤아의 담당의인 김춘정 교수와 신생아 중환자실의 홍주희, 몇 명의 간호사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을 발견하고 김효진은 자리에서 튕겨져 나오듯 일어났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류영준이 의사들과 함께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에도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다.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류영준……박사님……?”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은 그녀에게 인사하고 이윤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기분 탓인가.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져서 그런가.

류새이와 굉장히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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