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 진단 키트 (3) >
모기는 ‘과 (Family)’ 단위를 칭하는 용어다.
즉, ‘모기과’는 ‘고양이과’나 ‘개과’ 같은 크기의 체급이라는 뜻이다.
고양이과 안에는 사자도 있고 치타도 있고 고양이도 있듯이 모기 과에 속하는 곤충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이들은 43개의 속 (Genus)으로 나누어지고, 이후 약 3,500개의 종 (Species)로 나누어진다.
물론 곤충의 분류는 기준이 애매하기 때문에,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르기도 하고 유전학의 발전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이긴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중에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종은 불과 1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되게 적네.”
-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에 이미 많은 종을 멸종시켰습니다. 거기에 곤충 10여 종을 보탠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왜 사람들이 유독 모기를 멸종시키는 데 생태계의 혼란을 우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생태계의 아래쪽에 있는 생물일수록 멸종했을 때 파장이 클 수 있으니까.”
-물론 벌 같은 생물을 멸종시킨다면 그 파장을 못 이기고 인류도 멸망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모기는 아니에요.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곤충은 수없이 많습니다.
곤충 생태학만 수십 년간 연구한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문제다.
실제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실버스프링 연구소에서 대토론을 한 적 있었는데 완전 개판이 됐었다.
이 분야 최고 대가 중 하나인 레지옹 박사가 얼굴이 벌개져서 ‘학부생도 아는 트로픽 레벨 (Trophic level)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도 없는 무식한 새끼들’이라며 학회장에 소리를 질러댄 사건은 생태학계 전설 중 하나다.
근데 그도 그럴 것이 이슈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안건이지 않은가.
그걸 이렇게 단호하게 딱 잘라서 문제없다고 얘기할 수 있는 로잘린이 특이한 것이지, 과학자들이 부족한 게 아니다.
“아무튼 아무 문제가 없다면 진행할 가치는 있겠네.”
류영준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구글이나 게이츠 재단에서 진행하는 모기 멸종 프로젝트는 여러모로 좀 비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저한텐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들이 있죠.
“어떻게 하면 되는데?”
-캐스나인을 이용해서 모기의 정낭의 유전자 중 하나인 Kpaf2에 돌연변이를 일으키세요.
“그럼 어떻게 되는데?”
-그 모기와 짝짓기를 한 암컷들이 낳는 알에서는 수컷 모기만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수컷들도 돌연변이를 갖고 있어서 그들이 낳은 자손도 수컷만 나오죠. 몇 세대만 지나면 성비가 박살납니다.
“미친……."
-성비 균형을 파괴해서 수컷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하는 겁니다. 제주도 기준으로 돌연변이 수컷 천만 마리를 만들어서 자연계에 풀어놓으면 여섯 세대 후에 암컷의 비율은 0.01 퍼센트 이하로 줄어들 겁니다. 몇 년 더 지나면 멸종이죠.
"......."
류영준이 충격에 굳어있자 로잘린이 말했다.
-지금 저는 효율성을 약간 희생해서, 보다 더 안정적인 방법을 설명 드린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맘 같아선 뎅기바이러스를 조작해서 모기들을 감염시키고 싶습니다. 뎅기 바이러스가 장에서 번식해서 침샘까지 번진다는 말은, 생식기관에도 퍼질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로잘린이 말했다.
-조금만 조작하면 그걸 모기의 ‘성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기에게 에이즈 같은 치명적인 유행성 성병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모기의 생명을 위협하게끔 해주면 순식간에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모기는 멸종이에요.
“대신 그 방법을 쓰려고 하면 그 치명적인 뎅기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지면 어쩔 거냐는 반대 여론에 부딪히겠군.”
-그런 걸 제가 미리 계산하고 좀 더 안정적인 방법을 추천해드린 겁니다.
“……그래, 고맙다. 현실적인 실행에 있어서는 성비 균형을 무너뜨리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을 것 같네.”
류영준이 말했다.
“근데 당장 이번 여름부터 제주도에서 이 프로젝트를 쓸 수는 없어. 모기를 준비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까."
-모기가 알에서 성충이 되기까지는 2주에서 3주면 충분합니다. 유전자 조작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이 미친 프로젝트를 보건복지부에서 허가 내주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 거 같니? 검토하는 데만 세 달은 걸릴 거야.”
-으으윽.......
로잘린이 메시지창 없이 신음소리를 냈다.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서류가 몇십 장은 필요할 테고 꽤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지.”
-정말 답답하군요. 암 걸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너 그런 거 없잖아.”
-당신 눈높이에 맞춘 설명입니다. 일종의 압존법 같은 비유예요.
“제주도의 뎅기바이러스는 그리 유행성이 크지도 않기 때문에 진단키트만 잘 써도 아무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어.”
류영준이 말했다.
“모기 멸종 같은 큰 칼은 소 잡는 데 써야지. 좀 더 꼼꼼히 준비해서 국제 프로젝트로 가져가야 해.”
-국제 프로젝트로요?
“모기가 옮기는 질병을 위험도로 나열하면 뎅기바이러스는 번호표 뽑고 한참 기다려야할 거야. 앞에 말라리아나 황열, 지카, 치쿤쿠니아 같은 온갖 질병들이 잔뜩 줄 서있거든. 대부분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유행하는 전염병이지.”
류영준이 말했다.
“이건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해야하는 프로젝트라는 뜻이야. 나보다 먼저 시작했던 게이츠 재단과 구글의 지원을 받고 세계 협력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돼.”
지금부터 준비해서 에이즈 퇴치의 다음 프로젝트로 시작하는 것이다.
류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옆방의 비서실로 이동했다.
서류 몇 장을 분류하던 유송미에게 그가 말했다.
“송미 씨. 국제보건기구에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
“국제보건기구에요?”
“네. 모기 멸종 프로젝트 건으로 미팅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
차세대 병원.
아르답은 인터넷 메일로 카마티푸라의 매춘부들과 소식을 주고받고 있었다.
-안녕, 아르답. 잘 지내고 있어? 몸은 많이 좋아졌고? 네가 인터뷰를 한 이후로 국제 구호 단체와 인도 정부가 카마티푸라에 개입하고 있어. 여길 관리하던 깡패들하고 경찰들 전부 잡혀 들어가거나 도망갔어. 우리는 너랑 아는 사이라고 하니까 메일 주고받으라고 컴퓨터를 줬어. 네가 또 인터뷰를 하게 되면 잘 말해달라고 전해달래.
아르답은 입가에 미소를 걸어놓고 메일을 읽었다.
발신인은 아르답을 키우다시피 했던 어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학교도 다니면서 글도 배웠던 그녀는 열다섯에 카마티푸라로 팔려갔다.
지옥 같은 생활을 30년간 해왔지만 이제 끝이 보인다.
카마티푸라는 해방되고 있었다.
국제적인 관심이 쏠리면서 UN이 개입하고, 인도 정부가 집중적으로 성매매 업자들을 단속하기로 했다.
그 동안 쉬쉬되었던 많은 부패 경찰들과 깡패들이 잡혀 들어가거나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적은 이제 질병 뿐.
하지만 카람찬트 파마틱스에서부터 양산된 에이즈 치료제가 트럭 단위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제백신연구소에서는 이 지역을 에이즈 임상시험 대상 지역으로 선정하고 백신 접종을 진행했다.
류영준이 직접 TV에서 자기 자신을 모르모트로 쓰면서 강렬한 액션을 취해준 덕분에 임상시험에 자원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백신은 정말로 효과가 좋았다.
에이즈 바이러스의 확산이 강력히 저해되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인도의 대형 병원들은 에이바이오의 도움을 받아 골수이식 치료를 진행했다.
에이 바이오에서 파견한 테크니션들이 만들어준 골수로 환자를 하나씩 완치시켜 나갔다.
물론 이 치료시술의 가격이 빈민들이 부담할 만한 건 아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뒤에는 세계보건기구가 버티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후원에 기반한 초국적 프로젝트는 빈민들에게도 느리지만 순번이 돌아가게끔 해주었다.
카마티푸라는 빠르게 변했다.
-그리고 아르답. 전에 네가 얘기했던 에이바이오의 진단 키트가 이곳에도 공급되고 있어. 인도 공급품은 카람찬트가 생산한대. 그 키트로 에이즈 환자들을 빠르게 진단해서 치료하고 있어.
진단 키트는 선진국의 시민들의 건강을 매일 체크하는 데도 유용하지만, 그 진가는 감염병 위험 지역에서 발휘된다.
저렴함, 정확함, 신속함.
이 세 가지 요소는 감염자를 짧은 시간 내에 찾아내어 격리시키는 과정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저력을 보였다.
-사람들 얘기로는 우리 지역에 이렇게 우선적으로 치료제와 백신, 골수이식과 진단 키트가 공급되는 게 류영준 박사님 덕분이래. 그분이 인도에 오셨을 때 높은 사람들한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대.
아르답은 메일을 계속 읽었다.
-넌 뇌졸중 임상시험을 받고 있다고 했지? 잘 되어서 빨리 인도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어.
아르답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답장 버튼을 누르고 메일을 썼다. 내일이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이다.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메일이다.
***
공항에 도착한 아르답은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을 마주했다.
슈마틱스의 파멸과 콘슨앤커슨의 인수.
에이바이오의 신기술과 폭발적인 브랜드 가치 상승.
첫 번째 줄기세포 치료제의 첫 세대 치료 환자.
카마티푸라에서 태어나서 뇌졸중에 녹내장에 안구암까지 겹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남자.
하지만 이젠 다르다.
아르답의 뇌신경은 모두 재건되어서 다리 마비 증세가 사라졌다. 녹내장도 완치되어 눈도 잘 보인다.
차세대 병원에서 집중 관리를 받으면서 영양 불균형도 바로 잡혔다.
굳이 의학적인 진찰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눈빛과 혈색만으로도 건강해진 게 보일 정도였다.
그는 한국에 들어올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한 희대의 행운아가 되었다.
그가 다시 인도로 귀국한다는 소식에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것이다. 절반은 외신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남자가 갑자기 등장해서 기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다.
“류영준이다!”
누군가 소리를 빽 지르자 기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류 박사님!”
기자들이 허둥대는 사이 류영준은 케이캅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아르답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르답.”
그가 다정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르답이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했다.
마침 아르답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서 기자들이 준비한 통역사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대화가 현장에서 번역되어 실시간으로 기사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이제 귀국하시는 건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류 박사님은 어디로 가시나요?”
“세계보건기구와 미팅이 있어서 잠깐 출국합니다. 근데 공항에서 이렇게 또 만나게 되네요.”
류영준은 아르답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몸은 좀 어때요?”
“덕분에 이제 다 나았습니다. 다리 한쪽의 마비도 풀렸고요. 눈도 잘 보입니다. 완전히 건강합니다.”
“다행이네요.”
“저……. 제가 슈마틱스한테서 보상금을 받으면 전부 에이바이오 재단에 기부하고 싶습니다.”
아르답이 말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부탁입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제가……. 제가 이 빚을 어떻게 다 갚나요?”
“카마티푸라로 돌아가면 그곳의 환자들을 돌보는 데 써주세요. 그리고.”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도 법무팀이 슈마틱스를 고소해서 국제 재판으로 끌고 가는 중입니다. 저희 몫은 저희가 알아서 받아낼 테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뇌졸중 치료 같은 건 임상시험이었으니 저희가 오히려 사례를 드려야 하는 입장이고요.”
"......."
아르답은 입술을 달싹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류영준을 마주하고 있으니 고마움이 점점 더 진해졌다.
그의 인생은 완벽한 절망 속이었다. 가진 것은 한 푼도 없고, 불치병 둘에 가족이라 할 만한 사람들은 모두 에이즈 환자.
‘신이 있다면 나를 이런 곳에 처박아두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삶을 저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류영준으로 인해 모든 게 뒤집어졌다.
슈마틱스 같은 악당들의 비열한 공작까지 예측하고 단순한 치료 이상의 준비를 갖춰둔 사람.
절망의 골짜기 저 아래 깊은 곳에 처박혀있던 그의 삶을 끄집어내 빛을 보게 해준 사람이다.
심지어 카마티푸라를 휩쓸던 최악의 감염병, 에이즈를 상대로 정면에서 맞서 싸워준 사람이다.
그곳의 삶은 크게 바뀌고 있었다. 바로 어제 받은 메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감사의 인사는 아무리 해도 모자란다. 가슴 속에서 짓물러 울컥울컥 올라오는 그 고마움에 아르답은 그에게 목숨도 바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귀국을 앞두고 류영준을 마주하니 그 감정이 더욱 예리해져 눈물샘을 찔렀다.
“감……사합니다.”
아르답의 목소리가 떨렸다.
“감사합니다……. 류 박사님 . 정말, 정 말…… 감사합니다.”
아르답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카마티푸라에 백신이랑 치료제도……. 우선 공급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아르답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폭발해버린 감정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
류영준이란 인물의 존재 자체가 그의 평생의 괴로움에 대한 보상 같았다.
“카마티푸라가 에이즈 위험 지역이라 우선 공급한 것뿐입니다.”
류영준이 아르답을 다독이며 말했다.
“……제 평생에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르답이 류영준을 꽉 끌어 안으며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하고 살겠습니다……. 평생 감사하면서 살겠습니다.”
“하하. 너무 마음에 빚으로 두지 마세요. 이제 귀국하시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아. 그리고 이건 선물입니다."
류영준이 빙긋 웃으면서 진단 키트 하나를 내밀었다.
“사실 제가 쓰려고 가져온 건데, 돌아가셔서 한 번 써보세요.”
찰칵! 찰칵!
기자들이 잇달아 사진을 찍어댔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와, 그의 신기술이 구원한 환자가 하나의 프레임에 담겼다.
***
전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르답과 공항에서 만난 것은 상당히 드라마적인 연출이 되었다.
세계보건기구 측의 스케줄에서 류영준과의 미팅 예정이 공개되면서, 그 우연한 만남에는 극적인 분위기가 더욱 강해졌다.
스위스 제네바에 도착한 류영준은 세계보건기구로 이동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가판대의 조간신문 1면에 류영준과 아르답의 사진이 있었다.
“뭐야 이거? 뭐라고 적혀있는 거야……?”
그리고 전부 불어라서 읽을 수 없다.
하지만 대충 분위기가 감동적이다 어쩐다 하는 것 같다.
로잘린의 속도로 앞만 보고 질주하는 과학이 인간애를 잊지 않았다.
냉혹하고 철저한 과학의 발전 가운데 탄생하는 역사적인 장면들은 의외로 휴머니즘이다.
설마 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보니 온갖 커뮤니티와 팬클럽이 거의 폭발해버린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