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7) > (240/301)

83화.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7)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지분을 콘슨앤커슨이 확보하는 방법.

쉽게 내줄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간단치 않았다.

“콘슨앤커슨은 3세대 면역 항암 치료법 중 하나인 키메라 면역 치료법 (Chimeric Antigen Receptor T cell Theraphy)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 슈마틱스가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콘슨앤커슨으로 이전됐더군요.”

‘설마?’

데이비드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제발 그것만은 안 된다. 그 기술은 콘슨앤커슨의 미래나 다름없다.

데이비드의 심장이 요란하게 쿵광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표정을 침착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국제 특허를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 이전해주십시오. 그럼 지분을 드리겠습니다.”

키메라 면역 치료법.

면역 세포를 이용해서 암을 제거하는 기술이다.

원래 사람의 몸에서 암세포가 발생하면 면역 세포들이 암세포를 추적해서 파괴하는 기작이 있다.

인간의 몸이 스스로 암을 제거하는 천연의 방어법인 셈이다.

그게 더 잘 이루어지게끔 하는 게 키메라 면역 치료법이다.

과정은 엄청나게 복잡하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 세포의 일종인 T 세포를 추출한 다음 그 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한다. 그렇게 T 세포의 표면에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을 달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T 세포를 다시 환자의 몸에 투여하면 T 세포가 암세포를 찾아내어 파괴한다.

림프종 같은 혈액암에 대해서 특히 치료 효과가 높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라서 각광 받는 치료법이었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 번 시술하는 데 45만 달러.

우리 돈으로 4억이 넘는 금액이다.

“하지만 저는 그 치료법의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습니다. 효율도 더 높일 수 있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어떻게요?”

“저한텐 줄기세포 조작법도 있고 캐스나인도 있으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줄기세포 기술이 있기 때문에, 저희는 환자의 몸에서 면역 세포를 추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환자의 줄기세포를 만든 다음 그걸 골수로 분화해서 거기서부터 면역 세포를 대량 생산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골수에서 면역 세포가 만들어지니까요.”

"......."

“그리고 캐스나인으로 에이즈를 치료하기 위해 CCR5 유전자를 조작했던 것처럼, 그 면역 세포들이 암세포를 더 잘 죽일 수 있도록 최적의 유전자 엔지니어링을 해줄 수도 있죠.”

“그렇……죠……."

“콘슨앤커슨에서는 그 기술의 특허에 로열티를 엄청나게 높여서 누가 쉽게 연구할 수 없도록 만들어놨더군요. 아마 콘슨앤커슨에서 직접 그걸 독점적으로 연구하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맞습니다.”

“하지만 줄기세포도, 캐스나인도 에이바이오가 가지고 있습니다. 콘슨앤커슨은 그걸 상용화하지 못해요. 그러니 저희에게 이전해주십시오. 저희가 그 기술을 빛을 보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에이바이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줄기세포나 캐스나인이 있어도 우리 기술은 없잖아요?”

“저는 키메라 면역 치료법의 특허를 우회하는 다른 기술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좀 아까울 뿐입니다.”

"......."

이 남자는 신기술 만든다는 얘기를 계란프라이 하나 부치듯이 말한다.

근데 그걸 실제로 해내니까 문제다.

이번에도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던지는 말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진짜 키메라 면역 치료법을 우회하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그럼 정말 콘슨앤커슨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만약 저희 기술을 이전하면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지분은 얼마나 주실 겁니까?”

“2 퍼센트 드리겠습니다.”

“2 퍼센트! 겨우 2 퍼센트요?”

“겨우가 아닙니다. 앞으로 미국 진출하면 콘슨앤커슨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도 있으니 제가 특별히 파격적으로 드리는 거예요.”

“아니, 대표님. 키메라 면역 치료법은 3세대 면역 치료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기술입니다. 대표님도 아시잖습니까?”

“하지만 그게 빛을 볼 수 있는 곳은 에이바이오뿐입니다. 내버려두면 중요한 신기술이 아니라 ‘중요할 뻔한’ 신기술로 사장되겠죠. 그걸 2 퍼센트 정도에 사면 제가 지분을 많이 드리는 거예요.”

“만약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럼 아까 말씀드렸듯이 저는 다른 기술을 개발하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대표님은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지분을 2 퍼센트나 확보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찬스를 잃어버려서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이사회에서 추궁 당하실 수도 있고요.”

"후우......."

데이비드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잠재 가치가 얼마나 될까?

키메라 면역 치료법도 당장 뛰어난 수익 모델이 된다기보다는 잠재가치가 높은 기술이다.

에이바이오의 손을 거쳐야 진짜 가치 있는 물건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당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점에 연구소 지분 2 퍼센트와 키메라 면역 치료법 기술을 교환하는 건……."

“과감한 결단 잘 내리시잖습니까.”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이것도 지금 아니면 기회 없습니다. 데이비드 대표님.”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사회에서 충분히 논의하신 후에 답변 주셔도 됩니다.”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류 대표님이 췌장암을 치료하는 걸 실제로 보여주셨으니까요. 그걸 보증삼아 이사회에서 안건을 꺼내보겠습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

항상 화제의 중심에서 멀어지지 않는 에이바이오는 에이즈 퇴치 프로젝트로 세계의 이목을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그 분위기가 채 가라앉기 전에 그 이상으로 막강한 소식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류영준이 미국에서 돌아온 지 몇 주가 지났을 무렵, 마침내 항암 공략의 포문이 열린 것이다.

[에이바이오, 췌장암 치료제 임상 1상 성공.]

가장 먼저 나온 소식은 췌장암 치료제 얘기였다.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 진행되었던 췌장암 치료제의 임상 1상은 류영준이 펑장 교수를 만났을 때 이미 상당한 성과를 본 상태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다.

아직까지 시간상 임상에 대해서 ‘성공’이라는 판단을 내릴 만한 시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뉴스가 나오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워낙 예후가 좋았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환자들의 암세포는 빠른 속도로 사멸했고, 정상 세포에는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않았다.

거의 부작용이 없고 경구 투여 가능하며 약효가 매우 뛰어난 치료제다. 그에 대해 빨리 리포트 하고 싶었던 기자들이 자극적인 단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 터져 나온 초대형 뉴스 때문이다.

마치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뛰는 느낌으로, 이때다 하고 췌장암 임상에 대한 뉴스도 같이 터진 것이다.

미국에서 나온 뉴스는 당연히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설립 공표다.

[에이바이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암 연구소 설립 계약]

[미 연방정부, 연 30억 달러에 상당하는 지원 약속]

[미 국립 암센터에 축적된 암에 대한 모든 데이터와 기술을 제공.]

[콘슨앤커슨,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에 키메라 면역 치료법 특허 이전 계약.]

[콘슨앤커슨, 가장 유명한 3세대 면역 치료법의 권리를 포기하고 에이바이오의 손을 잡다.]

[‘암 정복’이라는 위업을 향한 첫 걸음.]

더불어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의 착공식에서 류영준이 한 연설이 매스컴을 타고 퍼져 나갔다.

“암은 거의 무한한 숫자의 변수들이 얽혀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질병입니다. 하지만 에이바이오는 그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췌장암을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하여, 임상 1상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는 앞으로 간암, 폐암, 전립선암, 뇌종양, 난소암, 백혈병, 피부암, 대장암, 유방암, 비호즈킨성림프종, 식도암, 갑상선암 등 모든 종류의 암을 잡을 예정입니다. 하루아침에 전부 처리하진 못하더라도 하나씩하나씩 정복해나가, 머지않은 미래에 암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열겠습니다.”

세상이 또다시 발칵 뒤집어졌다.

-지렸다

-지금 1301번으로 신고했는데 국뽕 여기다 신고하면 되는 거 맞지?

-ㄹㅇ국뽕 때문에 이제 환각도 보인다 어제 류영준 꿈 꿨음

-아니 미국 정부가 연 30억 달러를 퍼붓는데 우리 정부는 뭐하는데…….

-한국 정부가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거 봤냐 그리고 우리 정부는 돈도 없다

-그래도 에이바이오 초창기 설립에 우리 정부가 1,000억인가 조용히 지원했다 너무 까지 마라

-근데 콘슨앤커슨도 약 빨았나요? 갑자기 왜 저러지? 젤 강력한 경쟁사한테 핵심 기술을 줘버리네

-줄을 선 거 같음. 현명한 선택.

김현택 제 1연구소장은 류영준의 팬클럽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피드를 보면서 이를 갈았다.

“암 연구소를 짓는다고?”

그가 말했다.

맞은편 테이블에는 항암신약 연구부서의 수석 연구원인 김주연 박사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이상하군.”

김현택이 말했다.

“췌장암 치료제는 그렇다 쳐. 미 정부가 류영준을 지원하는 것도 오케이야. 근데 콘슨앤커슨이 키메라 면역 치료법을 에이바이오에 넘겨준다? 지분 한 조각 받고? 김주연 수석은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이상하죠. 이번에 류 박사가 미국 갔을 때 뭔가 딜을 한 게 아닐지.”

“내가 알기로는 콘슨앤커슨이 미국 각지의 병원에 엘리미나의 진단기기를 설치하고 그걸로 진단 시장을 장악한 다음 류영준을 압박해서 연구소 지분을 왕창 빼앗아가는 시나리오였는데.”

“그렇게 전개되면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는 사실 류영준 것이 아니라 미국 기업 콘슨앤커슨의 소유라고 기사 한 줄 흘리는 정도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그런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키메라 면역 치료법을 줘버렸잖아? 이건 오히려 그놈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됐단 말이야. 꼭 호랑이한테 날개 달아준 격이지 않나?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사실 정말 예상치 못한 전개다보니 저도 잘……."

김현택은 답답한 듯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대로 두면 위협적이야. 류영준은 원래 암을 연구하는 과학자였어. 자기 전문 분야로 돌아간 거야. 미국 정부와 최고의 연구소와 최대 규모의 제약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무슨 수를 쓰셔야 합니다.”

김주연이 말했다.

“소장님. 앞으로 암 연구의 중심이 에이젠의 저희 부서가 아니라 류영준의 암 연구소로 옮겨질 겁니다.”

"......."

"벌써 차기 CTO 자리의 후보에 류영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소장님보다 인기는 더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항암신약 분야까지 내주면......."

“콘슨앤커슨이 류영준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버린 거, 혹시 류영준이 지금 진단키트 개발하는 거랑 관련 있나?”

김현택이 물었다.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가봐야겠어.”

김현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외투를 덮어쓰고 김주연 수석과 함께 진단기기 개발 부서로 이동했다.

“여기 류영준 대표랑 같이 일하는 연구원이 누굽니까?”

김현택이 입구에서 송유라 수석에게 물었다.

“박소연 박사요?”

“박소연? 그 사람한테 안내해주세요.”

***

박소연은 노트북으로 류영준의 실험 자료를 보고 있었다.

정말 신비하고 경이롭다.

캐스나인으로 DNA를 진단한다는 아이디어도 획기적이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여 성과를 뽑아버린 저력도 대단하다.

실온에서 DNA가 증폭되는 메카니즘도 충격적이다. 뭐 하나 놀랍지 않은 게 없다.

아직 개발 단계지만 정말이지 엄청난 물건이다. 진단 필드의 구조가 통째 개혁될 것이다.

‘아마 이번 콘슨앤커슨의 결정의 배경에도 이게 있었겠지.’

어쩌면 췌장암 치료제보다 더 강한 아이템이 될 테니까.

“박소연 박사.”

연구실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오며 박소연을 불렀다.

박소연은 깜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껐다.

“소장님?”

“물어볼 게 있어서 왔습니다.”

김현택 연구소장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이번에 에이바이오의 류 박사가 소연 씨랑 같이 이곳에서 개발하고 있는 진단 키트 연구노트 좀 봅시다.”

“어…….그게……."

“어서요. 중요한 일입니다. 그게 뭐하는 물건인지 알아야겠습니다.”

박소연은 우물쭈물했다.

“자, 잠시만요.”

딸칵.

박소연은 노트북을 켰다. 실험 데이터가 들어있는 디렉토리를 따라가며 몇 개의 폴더를 열었다.

뒤에서 쏘아보는 김현택의 시선에 목덜미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잠깐만.

박소연의 손이 멈추었다.

‘이걸 줘도 되는 걸까?’

어차피 진단 키트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인 ‘캐스나인의 돌연변이 정보’는 박소연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그 내용에 대해선 류영준이 보안을 엄하게 했기 때문이다. 에이바이오 내부에서도 생명창조 팀원들밖에 모른다고 들었다.

따라서 그녀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오픈해도 사실 류영준에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

게다가 이미 완성을 목전에 둔 상태라서 누가 어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줘도 될까?

이 연구자료는 류영준이 에이젠 이사로서 진단기기 개발부서의 시설과 시료를 빌려서 개발한 거다.

연구소간의 협력 연구가 아니고, 김현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류영준이라면 내줬을까?

이제 와서 그와 다시 잘해본다거나 하는 걸 꿈꾸진 않는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다.

이곳의 과학자들은 류영준에게 배운 게 있다.

박소연은 특히 그 누구보다도 그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박소연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 죄송한데…… 저한테는 없어요…...."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없다고요?”

김현택이 눈살을 찌푸렸다.

"......."

“똑바로 얘기하세요."

“……반입니다.”

“네?”

“연구윤리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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