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2) >
데이비드는 이사회가 끝나자마자 과학기술정책국장 제임스와 미팅을 잡았다.
에이바이오의 미국 진출.
과연 그 혁명가 류영준은 미국의 의료 시장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같은 필드에 있는 한 명의 과학자로서 몹시 기대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경쟁 업체의 경영자로서는 꽤 긴장되는 일이다.
‘류영준.......'
공격적인 수를 어설프게 쓰는 건 안 된다.
그 남자는 과학기술의 연구개발에도 천재지만 정치와 경영에 있어서도 상당한 고단수다.
슈마틱스의 공작을 간파하고 대비해뒀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받아쳐서 박살내버리지 않았던가.
그만한 거대기업이 한번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고 거꾸러졌다.
백악관이 지원했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건 류영준의 반격 타이밍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CIA까지 준비해놓고 먹잇감이 거미줄을 밟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리고 그는 백신 반대 여론을 꺾기 위해서 생방송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도 보였다.
아르답의 기자회견도 어쩌면 그의 손아귀에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류영준은 경영자로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셈이다.
미국 시장에서도 분명히 그 재능은 충만하게 발휘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 시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류 박사.’
데이비드는 류영준의 생방송 영상을 다시 보면서 미소 지었다.
정공법으로 경쟁하면서 취할 것들만 취한다.
에이바이오가 이 땅을 독점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기업 간의 경쟁의 쟁점은 그저 신기술이 다가 아니니까.
“대표님.”
데이비드의 비서 앨리스가 찾아왔다.
그녀가 말했다.
“과학기술정책국 국장님하고 스케줄 잡았는데 이틀 후 오후 두 시로 정했습니다.”
“고마워요. 근데 앨리스.”
“네?”
“혹시 반창고가 처음 어떻게 개발됐는지 아십니까?”
“……. 글쎄요?”
“100년 쯤 전에 우리 회사의 구매과에서 탈지면 구매를 담당하던 직원이 있었어요. 이름은 존 딕슨.”
데이비드가 말했다.
“당시에 존은 달콤한 신혼을 즐기고 있었는데, 아내분이 좀 덜렁대는 성격이라 자주 넘어지고 부엌칼에 베어서 여기저기 다쳤답니다. 존은 항상 아내의 상처에 거즈와 테이프를 붙여서 치료해줬죠.”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얘길 왜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그 분의 가장 큰 걱정은, 자기가 회사에 가있는 동안 아내가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 거였어요. 고민 끝에 존 딕슨은 의료용 테이프 가운데에 거즈를 미리 붙여놔서 아내가 필요할 때 쉽게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놨습니다. 그게 최초의 반창고예요.”
데이비드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이 60에 이른 장년의 몸이지만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에 슈트가 잘 어울렸다.
건강관리를 잘해온 덕이다. 데이비드는 마치 자와 초침으로 잰 것처럼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다.
데이비드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뭐 대단한 신기술 없이,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융합한 간단한 발명품이었지만 20세기 의료용품 중 최고의 아이템이 됐죠. 콘슨앤커슨의 당시 회장님이 그 물건을 발견하고 감탄하면서 제품화했습니다. 우리 회사를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역 상품 중 하나였죠. 존 딕슨은 나중에 부사장까지 올라갔고요.”
“아……."
데이비드는 빙긋 웃었다.
“그냥 그 얘길 하고 싶었습니다. 앨리스도 남자친구 생기면 꼭 존 딕슨처럼 스윗한 남자였으면 좋겠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앨리스가 머리를 매만지며 웃었다.
데이비드는 밖으로 나갔다. 산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콘슨앤커슨은 수많은 다국적 제약회사 중에서도 명실상부하게 꼭대기에 있는 회사다.
제약업계 매출 1위.
에이바이오처럼 어마어마한 신기술을 휘둘러대서가 아니다.
원래 큰돈은 자잘한 데서 나오는 것 아닌가. 음료수 제조 회사인 코카콜라가 세계 브랜드 1위였던 것처럼 말이다.
콘슨앤커슨의 주 매출은 반창고, 진통제, 로션, 콘택트렌즈 같은 소소한 제품들이다.
이런 점에서 콘슨앤커슨은 사실 에이바이오와는 업종이 겹치지 않는다. 직접 충돌할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에이바이오가 골수이식 수술 따위를 할 때 의료용 접착제를 공급하면서 서로 상부상조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상황을 낙관하는 이사들도 있었다.
데이비드는 아니다.
“자, 류영준이 항암제를 만들려고 미국에 온다. 콘슨앤커슨은 이제 어떻게 할까.”
너무나 재밌는 전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업계 1위 기업을 이끌면서 감히 경쟁자가 없었던 데이비드는 이젠 젊어진 기분마저 느꼈다.
“그 남자는 줄기세포 치료라는 분야를 최초로 열었다. 줄기세포만 해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을 텐데, 그 1년 사이에 당뇨 치료제도 만들어서 임상에 넣었다. 그리고 에이즈 백신도 개발했다.”
산책길을 걸으면서 데이비드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항암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미 국립 암센터를 집어삼키려고 이곳으로 온다. 이미 제임스 국장을 삶아놓았고.”
다들 류영준을 줄기세포 기술의 아버지라고들 하지만 데이비드의 생각은 다르다.
그 남자에게 줄기세포는 아이템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에이즈 백신이나 당뇨 치료제나 프로바이오틱스, 췌장암 치료제 따위의, 줄기세포와 관련 없는 것들을 하지 않았는가.
‘류영준은 언젠가 이쪽 필드로도 밀고 들어올 거다.’
콘슨앤커슨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될 것이다.
그의 성장세를 꺾는다면 어느 지점이 가장 좋을까?
‘항암제.’
세상에서 가장 변수가 많은 분야. 그 어떤 질병보다도 복잡하고 다루기 어려운 질병.
류영준이라는 천재조차도 이 벽을 넘을 때는 모든 면에서 확신을 갖지는 못할 것이다.
공작을 펴서 미끄러지게 할 생각은 없다. 질주하게 두되 콘슨앤커슨이 그의 어깨에 올라타고 목줄을 쥐면 그만이다.
그럼 어떻게?
질병을 의약이 다루는 방법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
1.예방.
2.진단.
3.치료.
질병이 ‘암’이라면 보통 1번은 불가능하다. 자궁경부암처럼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희귀한 형태가 아닌 이상 암은 예방할 수 없다.
암의 발생 원인이 ‘운이 나빠서’이기 때문이다.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변이는 완전히 우연이다. 아무리 건강하게 생활해도 암은 생길 수 있다.
그리고 3번은 솔직히 류영준을 이길 수 없다. 시작부터 췌장암을 뜯어고치겠다는 사람이 아닌가?
하지만 2번, 진단 시장은?
의약의 물줄기에서 진단은 치료보다 상류에 있다.
그곳의 물길을 잡는다면?
진단 시장을 장악한 다음에 류영준에게 손을 내밀면 그는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협력 관계를 만들면서 그를 길들인다.’
데이비드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앨리스. 지금 엘리미나 회사에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미팅하자고 전해주세요.”
-엘리미나요?
DNA 분석으로 세계 최고인 회사다.
엘리미나는 혈액 내의 DNA를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그리고 사람의 몸에 암세포가 존재한다면 혈관에 암세포의 DNA가 극미량으로 흐른다.
그걸 찾아내서 분석하면 암의 존재를 내시경 없이도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 아무도 시도하거나 상용화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데이비드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큰 그림이 그려졌다.
각 병원에 엘리미나의 DNA 분석 기계를 배치하고, 그걸 활용해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의 DNA를 분석해준다.
모든 환자들의 암의 진단을 독점하는 것이다. 그러면 류영준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는 그의 기술이 쓰이겠지만, 환자를 병원으로 보내는 것은 콘슨앤커슨이다.
그 세상에서 류영준의 항암제는 제한적인 역할밖에 할 수 없다.
류영준이 말기 췌장암까지 치료할 수 있는 항암제를 만들어도, 모든 환자들은 췌장암이 초기일 때 이미 진단될 것이기 때문이다.
***
몇 개의 미팅을 정신없이 치렀다.
류영준은 이제 생명창조 팀과 얘기하고 있었다.
“간 오가노이드는 어떻게 되어가나요?”
“완전 노답이에요……."
박동현이 힘빠진 목소리로 답했다. 천지명이 설명을 덧붙였다.
“줄기세포를 간세포로 분화하는 것까진 돼요. 근데 그걸 매트릭스에서 조직으로 배양하는 과정에서 손 테크닉 난이도가 너무 높습니 다. 배양액을 50 마이크로리터 만큼 쓰는데, 그 가운데에 정확히 덕트 세포를 찔러 넣어야 해요. 그게 좀 어렵습니다.”
“대표님이 실험하시는 것처럼 하면 가능하겠지만……. 우린 그렇게 못하거든요.”
박동현이 전에 류영준의 실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잠깐 고민에 잠긴 류영준이 곧 입을 뗐다.
“우리 그거 한 동안 멈춰놓고 다른 거부터 하죠.”
“어떤 거요?”
박동현이 물었다.
“이번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프로젝트 공모를 열었는데 혹시 아시나요?”
“뎅기 바이러스요?”
정혜림이 물었다.
“오, 알고 계시네요.”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보통 1선 연구자들은 맡겨진 실험들을 수행하는 것도 바빠서 다른 프로젝트나 국책 사업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기 때문이다.
“후후.”
정혜림의 어깨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녀가 팀원들에게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구원이면 이 정도는 알고 있어줘야죠. 다들 분발하십쇼. 예?”
“정확히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천지명이 류영준에게 물었다.
“뎅기바이러스의 백신이나 감염 치료제 또는 감염을 진단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겁니다. 이 중에서 우린 진단 기술 개발 쪽을 진행할 겁니다.”
류영준이 대답했다.
“진단이요?”
“네. 사실 전에 질병관리본부랑 미팅을 했습니다. 에이즈 퇴치하듯이 뎅기열도 퇴치할 수 있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요?”
“지금은 회사의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서 다른 일을 벌일 여유가 없다고 했죠.”
“근데 결국 하시려는 건가요?”
정혜림이 불안한 듯 물었다.
“질병관리본부가 뎅기열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지금 우리나라가 뎅기바이러스의 위협을 받기 시작해서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뎅기바이러스는 본래 베트남 같은 더운 지역에 사는 모기가 옮기는 바이러스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뎅기열 발생위도가 북상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뎅기바이러스가 이미 상륙했습니다. 작년에 확진자도 나왔고요.”
“그렇죠.”
박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거예요? 치료제나 백신 말고?”
배선미가 물었다.
“우리가 지금 임상시험을 거치면서 치료제나 백신까지 개발할 여력이 안 돼요.”
“그래요?”
“네. 여러분은 이거 빨리 하고 다시 간 오가노이드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
“아……."
팀원들이 마른세수를 했다.
류영준은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뎅기열 자체는 사실 특별한 치료가 필요 없습니다. 1주일만 지나면 자동으로 호전되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뎅기 출혈열이나 뎅기 쇼크증후군인데 이들은 집중 치료가 필요하죠. 그래서 질병을 통제하는 관건은 ‘정확한 진단’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아주 값싸고 빠르고 정확한 진단키트를 개발해야합니다. 이 감염병을 통제하는 데 엄청나게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류영준은 노트북에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하나 열었다.
“그 진단 키트의 기반 기술입니다. 아직 메인 아이디어의 스케치 정도라서 좀 더 발전시켜야 해요.”
류영준이 말했다.
“어떤 원리인가요?”
“캐스나인 기술 기억나시나요?”
캐스나인.
글자수 30억 자에 해당하는 거대한 인간의 DNA 정보에서 아주 정확히 한 위치만을 찾아내서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다.
“정확히 한 위치만 자를 수 있다는 말의 뜻은, 그 위치 정보를 가지고 있는 DNA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죠.”
류영준이 말했다.
“이걸로 혈액에 떠다니는 뎅기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잘라보는 겁니다. 만약 잘린다면? 환자는 뎅기열에 감염된 거고 아무 반응도 없다면 감염되지 않은 거죠.”
“와아……."
생명창조 팀이 감탄을 터뜨렸다.
유전자 가위를 이런 방식으로도 쓸 수 있다니.
“싱크빅 얼마나 하셨나요.”
박동현이 말했다.
“그런 거 안 했습니다. 그리고 이 진단 기술로 할일이 하나 더 있어요. 뎅기열 진단에 더해서 이걸로 ‘암’을 진단할까 생각중이에요.”
“암이요?”
생명창조 팀의 눈이 커졌다.
류영준이 설명했다.
“우리 몸에 암이 존재하면 암세포의 DNA가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아주 극미량이지만 말이에요. 그걸 캐스나인으로 잡는 거예요. 뎅기열과 같은 원리로 말입니다.”
"......."
“저는 캐스나인 단백질을 동결건조해서 형광물질과 함께 담아둔 키트를 만들 겁니다. 사람의 혈액을 거기에 떨어뜨리면 뎅기바이러스나 암세포의 DNA를 자르면서 키트의 색깔이 변하게끔 할 거예요.”
“지금 설마 개발하려고 하시는 게……."
“이 진단 키트는 임신 테스트기 같은 제품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판매처는 편의점이나 마트. 일반인들이 구매해서 동봉된 채혈침으로 자기 혈액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어떤 종류의 질병이 있는지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겁니다.”
"......."
“병원에 갈 필요 없고, 엘리미나 같은 DNA 분석 회사의 고급 장비를 빌릴 필요도 없어요. 일상 속의 의사로 만들 겁니다."
“맙소사……."
“췌장암의 가장 큰 문제는 치료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진단하기 어렵다이기도 하거든요.”
류영준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