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화.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1) > (234/301)

77화.  < 에이바이오 암 연구소 (1) >

방송을 마친 류영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렌지 주스를 꺼내서 한 잔 마셨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남은 바이러스 처리해도 되죠?

로잘린이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일반 면역 반응으로 다 없애려면 얼마나 더 걸리지?”

-모든 바이러스가 완전 제거되는데까지 74시간 이내입니다.

“나쁘지 않네.”

-하지만 그 며칠 동안 꽤 몸이 무겁고 피곤할 겁니다. 그냥 지금 제가 치워버릴게요.

“좋아.”

[면역 반응 조절 중.]

[대식세포 표적 위치 유도중.]

[역전사 효소 파괴 및 바이러스 제거.]

로잘린은 피트니스를 약간 소모하면서 면역 반응을 조절하고 바이러스를 파괴했다.

-이제 백신 개발하는데 걸리적거리는 사람들 없겠죠?

로잘린이 물었다.

“그렇게 쉽게 해결될 리가 있냐.”

류영준은 소파에 기대앉으면서 다리를 쭉 뻗었다.

“백신 반대 여론은 계속 있을 거야.”

-백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필요한지 전부 설명해줬는데도요?

“이성적으로 설득되어도 한번 반대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반대해. 자기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정말요?

로잘린이 놀란 듯 되물었다.

-왜 그런 거죠? 잘못된 걸 이해하고도 인정하지 않는다고요?

“사람들은 그래. 그런 걸 인지부조화라고 하지.”

-제가 태어난 후에 보고들은 것들 중에 가장 난해한 일입니다. 이 경우에 이해했다는 말은 인정했다는 것과 동의어 아닌가요? 이해했는데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저한텐 ‘뜨거운 아이스티’ 같은 느낌입니다.

로잘린이 말했다.

“인간들은 그래.”

-이럴 수가. 그럼 방송하고 강연하고 다 쓸모없는 일이었나요?

“그건 아냐.”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반대론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이탈할 테고, 백신에 대해 모르던 사람들도 이젠 그쪽으로 잘 가지 않을 테니까 확실한 이득은 있지.”

-그렇군요.

“강하게 반대하던 사람들은 끝까지 고집을 부리겠지만 그 단체는 이제 힘을 잃을 거야. 항체 맞은 바이러스처럼.”

-이해했습니다.

“아무튼 이제 급한 일들은 다 했어. 백신의 임상시험은 국제백신연구소가 할 테고, 치료제 생산은 카람찬트가 하고, 골수이식도 이젠 내 손 떠났으니 한 동안 숨 좀 돌려야지.”

류영준이 말했다.

“그보다 로쥬가 조용한 게 더 수상해.”

-로쥬요?

“원래 에이즈 치료제로 돈을 꽤 벌던 회사야. 그게 사라진다고 큰 타격을 입진 않겠지만 에이즈 퇴치 프로젝트에 인도의 복제약 회사들이 참여한 것도 짜증날 테고 날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도 이상하거든?”

류영준이 말했다.

“분명 뭔가 하고 있을 텐데.”

쾅쾅!

누가 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박주혁이었다.

약간 화가 난 표정이었다.

“야 이 미친놈아! 바이러스를 네 팔뚝에다 왜 주사해!”

“과학자한테 연구물은 자기 자식 같은 건데 못 믿으면 어떡하니.”

류영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 혈압……."

박주혁이 뒷목을 잡으며 고개를 들었다. 류영준이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웃어?”

박주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자식 진짜 정신 나갔지! 아오! 이 막나가는 놈을 어떡하지 진짜.”

그가 장난과 진심이 반 쯤 섞인 헤드락을 걸었다.

“아, 미안, 미안. 이제 조심할게.”

류영준이 빠져나오면서 말했다.

“진짜지?”

“그래. 가족들한테도 잔소리 엄청 들을 거 같으니까 넌 잔소리 여기까지만 해.”

박주혁은 짜증난다는 듯 류영준을 쏘아보았다.

“그래 너희 부모님이 어련히 혼내시겠냐. 그건 됐고, 이번에 업계에 재밌는 사건 하나 터졌는데 알아?"

“재밌는 사건?”

“콘슨앤커슨이 슈마틱스를 먹었어.”

“정말?”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오늘 아침에 공개된 정보야. 슈마틱스 너한테 명치 맞고 나서 거의 코마상태까지 갔었잖아? 거의 재기 불능이었거든?”

“아무래도 업종 자체가 의약 쪽인데 환자한테 종양을 일부러 유도했다는 게 좀 치명적인 타격이었지.”

“그치. 근데 콘슨앤커슨은 원래 슈마틱스 지분을 꽤 가지고 있었어. 그래서 이 기회에 인수해버린 모양이야.”

“와……."

“그게 끝이 아냐. 슈마틱스 말고 스위스에 본진을 둔 다국적 제약사가 하나 더 있잖아?”

“로쥬?”

류영준이 눈을 크게 떴다.

슈마틱스의 임원들 대부분이 로쥬 출신이다. 그 좁은 스위스에서 함께 협력하고 경쟁하며 발전한 두 회사는 굉장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로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지만 인적 네트워크 단계에서부터 끈끈한 것이다.

“설마……."

“콘슨앤커슨은 슈마틱스 임원들의 지위를 그대로 보장해줬어.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콘슨앤커슨이 로쥬하고 대량의 지분 교환 협상을 해서 성공적으로 마쳤나봐.”

“그럼 콘슨앤커슨하고 로쥬가 서로 관계회사가 된 거야?”

“맞아.”

"......."

“지금 주가가 오락가락하면서 정확히 견적 잡기 어렵지만 전문가들 예측으로는 그들 세 회사를 다 합치면 시총 1,000 조원이 넘을 거래.”

박주혁이 말했다.

“에이젠의 다섯 배야. 파이저의 세 배고.”

“그런 제약 공룡이 생겼구나.”

“아무튼 콘슨앤커슨이 파이저하고도 협상중인 것 같더라고. 만약 거기서도 어떤 계약을 체결한다면 그야말로 세계 최대 대기업이야.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괴물 기업이 되겠지.”

“그렇군.”

“왜 그렇게 태연하냐? 누가 봐도 널 견제하려는 게 뻔해 보이지 않아? 그 사람들은 네가 결국 에이젠 대표 이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에이바이오의 연구 능력과 에이젠의 인프라가 합쳐지면 상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거지.”

박주혁이 말했다.

“그리고 슈마틱스가 피박살나는 걸 보면서 본격적인 위기를 체감한 거야. 백악관까지 네 편에 서는 걸 보면서 이거 그냥 내버려두면 진짜 위험하겠다 싶었던 거라고. 그래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뭉치는 거야. 에이바이오를 견제하려고.”

“알아.”

류영준이 말했다.

“근데 왜 그렇게 태연해?”

“그 회사들이 뭉쳐서 더 좋은 약을 잘 만들어내면 좋은 거지 뭐.”

“시이벌……. 너는 진짜……."

박주혁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걸 보며 류영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야.”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류애도 중요하지만 우리 회사도 중요하지.”

“뭔가 해야 하지 않아?”

“우린 이미 많은 걸 하고 있어. 다들 바쁘게 연구하고 있고 상당한 성과를 뽑고 있잖아? 이걸로 충분해.”

“콘슨앤커슨 대표에 대해서 좀 찾아봤는데, 그 사람 진짜 위험인물이야.”

“유명한 사람이지. 제약업의 스티브잡스 같은 느낌?”

“이미 알고 있네. 상당히 능력 좋다던데. 이번에만 봐도 슈마틱스를 먹어버리고 그 기세 타고 로쥬까지 잡아버렸잖아? 파이저까지 한 그룹에 끌어들이면 어떡해?”

“어떡하긴 뭘.”

류영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경쟁할 만한 회사가 하나 생기는 거지.”

***

한 동안 만나는 사람들마다 잔소리를 했다. 무모한 짓 하지 말라고. 아무리 백신에 확신이 있어도 바이러스까지 투여하는 건 심했다면서.

‘백신에 대해서도 확신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바이러스 투여는 로잘린을 믿고 저지른 것에 가까운데…….'

하지만 뭐 로잘린에 대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조심하겠다고만 둘러대고 넘겼다.

그 사이 에이바이오의 홈페이지와 팬클럽 페이지에선 류영준의 에이즈 백신 셀프 임상시험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팬클럽은 그렇다 치고 회사 홈페이지엔 왜……?”

황당해하는 류영준에게 유송미가 설명했다.

“지금 여론 분위기 엄청 좋거든요. 경영팀에선 대표님의 생방송 영상으로 보도 자료도 돌렸어요.”

“보도 자료요?”

“네. 지금 대표님 이미지 엄청나게 좋잖아요. 이 기세 타고 회사 이미지도 동반상승 시켜야 한다면서.”

류영준의 생방송을 진행하기 전.

국제 사회는 아르답이 눈물로 호소한 기자회견에 온갖 신경을 모으고 있었다.

백신 개발 반대 여론을 향해 개발도상국의 실정을 알리며 펑펑 울고 엎드려 빌었던 아르답의 모습은 온갖 매스컴을 장식했다.

전 세계가 눈물을 짜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류영준이 생방송 중에 백신의 효능을 보겠다고 아예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투여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그게 아르답의 눈물에 반응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 사람은 그냥 천재 과학자가 아니다. 엄청난 살신성인을 갖춘 의학의 개척자다.’

전 세계에 각인시켜버린 이미지는 이전과는 좀 달랐다.

류영준은 이미 줄기세포 치료법들을 임상시험에 넣으면서 천재성은 크게 주목 받은 적 있다. 하지만 인격적인 부분은 여태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셀리큐어 때문에 연구소장을 들이받았다거나, 임상시험 환자가 바뀌어서 병원장과 싸웠다거나 하는 것들은 세간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슈마틱스의 공작을 카운터로 파괴해버린 것도 똑똑하고 유능한 것으로 비춰졌지, 인성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사람들이 이번 사건의 흐름을 이해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1. 에이즈 치료제인 카람피아 생산을 위해 인도에 방문했던 류영준은 개발도상국의 비위생과 감염질환의 만연함을 체감했다.

2. 류영준은 아르답이 에이즈 백신 개발을 반대하지 말아달라고 울면서 호소하는 걸 TV로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3. 류영준은 하루라도 빨리 에이즈를 퇴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백신 개발을 가속하기 위해서 안전성과 약효를 널리 알려야 했고, 이를 위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실험을 진행했다.

4. 빨리 그에게 노벨상을 줘라.

“그런 분위기라고요?”

류영준이 황당한 듯 물었다.

“지금 대표님은 사람들한텐, 의학에 자신의 몸을 헌신해버린 위대한 성인 같은 사람이에요.”

유송미가 말했다.

“그거 좀 과한 이미지 같은데요……. 솔직히 부담스러운데.”

“하지만 사실인데요. 뭘. 류 박사님이 옛날에 연구윤리 때문에 싸우거나 했던 일화들도 갑자기 떠오르면서 지금 여론 엄청 뜨거워요. 한번 검색해보세요.”

"......."

유송미의 말은 진짜였다.

트위터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여론이 장난 아니다.

-천재성에 인격까지 완벽하다.

-무슨 마블 코믹스에 나올 거 같은 인물이다. 모든 면이 너무 대단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생방송 해외 반응 긁어왔다ㅋㅋㅋ오늘 국뽕 치사량임.

-나 미네소타 사는데 미국에서도 백신 반대 여론 지금 확 꺾였다. 그전에는 에이즈 백신 개발 반대하는 사람들이 행진도 하고 그랬는데 거짓말처럼 싹 없어짐.

-인정하진 못해도 사회 분위기상 눈치는 보겠지.

-그 동안 매드싸이언티스트 1위가 자기 팔뚝에서 칼로 정맥 자르고 고무관 꽂아서 도관술 개발했던 베르너 프로스만 아니냐? 근데 솔직히 이제 왕관 넘겨줘야 됨.

-근데 전 너무 무서웠어요. 류 박사님 건강 상할까봐 걱정됩니다. 제발 조심해주세요. 연구 오래오래 하셔야 하잖아요.

-선유 병원에서 일하던 레지다. 류 박사님이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선유 병원에서 하다가 옮긴 이유 썰 푼다. 임상 쪽 간호사들한테 들은 거라 확실함. 5분 후에 글 내린다. feat. 정치인 S씨.

“별 얘기가 다 나오네……. 특히 알츠하이머 임상시험 옮긴 이유는 아는 사람도 몇 없었는데.”

“임상시험 얘기 나와서 말인데요.”

유송미가 말했다.

“아까 대표님 잠깐 나가셨을 때 에이젠 임상시험 관리 센터에서 연락 왔었어요.”

“뭐 때문에요?”

“뇌졸중 임상시험 셋업 끝나서 1상 시작한다는 거하고, 제 2형 당뇨 치료제 에이먹 임상 1상 성공했다는 소식이에요.”

류영준이 벌떡 일어났다.

“에이먹 임상 1상 성공이라고요?”

“네. 한번 연락해보세요.”

류영준이 전화를 집어드는데, 유송미가 말했다.

“그리고 전해드릴 거 두 개 더 있어요. 잠시만요.”

“뭔데요?”

유송미가 휴대폰을 꺼내 메모를 확인하며 말했다.

“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진단 키트 개발 관련해서 대표님하고 미팅했었잖아요? 거기서 국책 프로젝트 공모 냈으니까 기획서 제출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에이젠의 김영훈 이사님이 한번 보고 싶다고 미팅 날짜 잡아달라고 하셨어요.”

김영훈.

SG그룹에서 에이젠에 꽂아 넣은 사람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미국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국에서 연락 왔어요. 미국에 언제 오시냐고 묻던데요. 거기서도 미팅 날짜 잡자고 ……. 진짜 대표님 업무량 살인적이네요.”

“암 연구소 건설하는 것 때문인 거 같은데.”

류영준이 생각에 잠겼다.

“일단 미국 출장 날짜 잡아주세요. 그리고 저는 지금은 당뇨 치료제 임상 리포트 확인하러 갈 건데, 생명창조 팀 오늘이나 내일 사이에 미팅 잡아주시고, 셀리제너랑 프로바이오틱스 팀은 다음 주 중에 미팅 잡아주세요.”

“잠깐만요 천천히 얘기해주세요.”

유송미가 재빨리 메모하며 말했다.

“근데 대표님, 셀리제너한테는 미팅 안건이 뭐라고 전할까요?”

“췌장암 치료제 개발에 대해서 얘기할 겁니다.”

***

“줄기세포를 넘어서 항암 시장을 건드린다고 들었습니다.”

콘슨앤커슨의 이사회.

메이슨이 말했다.

“미국 과학기술정책국에서 그걸 지원한다고 하더군요. 국립 암센터 옆에 연구소를 짓는다고 그랬고요.”

리처드가 좀 더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이사들의 표정은 꽤 어두웠다.

슈마틱스를 인수하고 로쥬와 손을 잡으면서 거대하게 몸집을 불렸다.

파이저와의 협상도 꽤 잘 진행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영준의 미국 진출은 그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제가 제임스 국장을 만나보겠습니다.”

대표이사 데이비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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