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 에이즈의 정복자 (1) >
아르답은 인도에서 가장 큰 병원, 첸나이의 아폴로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폴로 병원 측은 중대한 발표를 준비하는 중이다.
연락을 받은 기자들이 아침부터 병원 로비에 수없이 모여들어 있었다. 그 중에는 외신 기자들도 상당했다.
그들은 오늘 나오는 발표란 게 어떤 것인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저희는 환자의 눈에서 줄기세포 어그리게이션이 완전히 사라졌음을 확인했습니다.”
병원장 비카스가 말했다.
이미 그 어그리게이션이 절반 이하 크기로 줄어들었다고 했을 때 모두가 이런 결말을 예측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것은 에이바이오와 슈마틱스의 전쟁에 있어 종전 선언과 같은 것이었다. 이미 슈마틱스의 패배가 점찍어져 있었지만 이제 공식적인 판정도 끝난 셈이다.
[에이바이오의 녹내장 치료 키트는 안전하다. 줄기세포 완전 사멸 확인.]
[종양도 생기지 않고 잘못 도입된 세포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제거된다.]
[키트 1까지만 처리한 대량의 줄기세포를 모두 눈에 넣어도 전부 자동 사멸.]
[에이바이오의 녹내장 치료 키트는 종양을 만들지 않는다.]
실시간으로 기사들이 작성되는 가운데, 비카스는 새로운 소식을 하나 전달해주었다.
“추가로 저희는 일주일 전에 에이바이오 측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가 말했다.
“에이바이오 측은 환자 아르답의 눈에서 안전장치의 작동이 종료되어 줄기세포가 전부 사멸한 것이 확인되는 대로, 아르답의 녹내장을 무상으로 치료하겠다고 저희에게 약속했습니다.”
이건 처음 공개되는 사실이다.
기자들의 눈이 커졌다.
타다다닥!
타이핑하는 그들의 손이 더 빨라졌다.
“에이바이오는 저희에게 줄기세포의 역분화와 시신경 분화를 진행할 수 있는 테크니션을 보내주거나, 아니면 환자 아르답을 한국으로 이송해서 치료하고 다시 인도로 돌려보내는 과정의 모든 비용을 책임지겠다고 했습니다.”
찰칵! 찰칵!
기자들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비카스가 말했다.
“저희는 에이바이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환자 아르답과 상의 중에 있습니다. 아르답은 다음 주 비행기편으로 한국에 갈 예정이고 에이바이오에서 치료받기로 했습니다. 이상입니다.”
기사와 뉴스가 쏟아져나가기 시작했다. 류영준의 이 선택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었다.
[시신경 치료와 줄기세포의 자동 사멸이라는 신기술이 난무하는 논쟁의 한가운데에서도, 에이바이오는 환자에게서 시선을 돌린 적이 없다.]
류영준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신문에 실린 사설을 읽었다.
이번에는 일을 진행하기 전에 기자들한테 보도 자료를 돌리며 요란 떨지도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에이바이오, 환자 아르답 치료 약속.]
[에이바이오 CEO 류영준, 중간 과정이 어찌 되었든 녹내장 키트로 치료받은 환자라면 에이바이오가 끝까지 책임져]
사측에서 먼저 공표한 자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의 이미지 상승효과가 더 강렬했다.
-에이바이오가 그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걸 공표하지 않았던 이유? 간단합니다. 그게 당연한 거니까 그런 거예요.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제가 알츠하이머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류영준 박사님하고 같이 면담을 굉장히 자주 했습니다. 그때 류 박사님의 관심사는 딱 두 가지였습니다.
-무엇이었나요?
-임상시험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리고 개발자인 자신에게 질문할 게 없는지.
-질문할 거요?
-네. 류 박사님은 아주 클래식한 과학자예요. 자신이 내놓은 데이터와 기술에 대해 전부 책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예상외의 현상이 나타나면 그게 아무리 별 것 아닌 것이어도 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군요.
-사실 그게 맞는 겁니다. 그게 진짜 기술 개발자와 과학자의 자세예요. 류 박사님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도의 환자도 치료를 끝까지 진행하려고 하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당연한 거라고 하셨는데, 요즘 안 그런 사람들이 많나요?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요즘 제약업계 과학자들은 장인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개발한 것에 대해서 ‘잘 안 된다’는 리포트가 들어오면 그에 대해서 아무런 답변을 안 합니다.
-그냥 무시해버리나요?
-네. 특히 대형 제약사들은 그냥 안 된다는 데이터를 폐기해버립니다. 제가 의사로서, 그들이 개발한 약을 쓰면서 생기는 부작용 같은 걸 리포트하면 아무런 답변도 돌아오지 않고, 그 부작용 리포트 자체가 그들이 내놓는 약리 자료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거죠.
신정주 교수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심지어는 제품화 이후의 데이터 피드백이 아니라, 아예 임상시험 단계에서부터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약효가 없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환자들에 대한 리포트를 그냥 없애버립니다. 대형 제약사들의 제품들 중에서 임상시험 데이터가 전부 공개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게 제품의 효용에 있어서 불리한 데이터들을 폐기해버린 거예요.
-아……. 그런 약들이 많이 있나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독감 치료제도 그런 사례 중 하납니다. 데이터 전부 공개하라고 의사들이 항의한 적도 있어요.
-어우. 충격적이네요.
-네. 당연한 얘기지만 제약사들이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됩니다. 문제가 있다는 피드백이 들어오거나, 그 제품으로 치료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가 나오면 제조사에서 그 문제를 진단하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지금 에이바이오를 보세요. 이건 처음부터 슈마틱스가 조작한 것이었는데도, 중간 과정이 어찌됐든 에이바이오의 제품으로 치료하는 데 실패한 환자이기 때문에 책임지겠다는 거 아닙니까? 슈마틱스가 어질러놓은 것이지만 치워주겠다는 거예요.
-크. 정말 볼수록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이런 게 전문가의 태도입니다.
신정주가 말했다.
-일반 시민들은 과학이나 의학을 잘 모르지 않습니까? 당장 아파 죽겠고 목숨이 오락가락하는데, 에이바이오가 잘했고 슈마틱스가 못 했고 그런 것 사실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건 당신들이 알아서 법정 가서 해결하고, 나 좀 치료해 달라’는 겁니다. 대부분 환자들 마음은 그래요.
-환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그 똑똑한 전문가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데 정신 팔려서 환자를 방치하면 환자는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래서 에이바이오는 환자에 포커스를 맞춘 겁니다.
-슈마틱스가 잘못한 것이어도, 에이바이오의 제품이었고, 의약이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 있는 녹내장 세계 최고 전문가로서 환자의 치료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 이런 태도라는 말씀이시죠?
-바로 그렇습니다. 환자들이 정말 원하는 ‘전문가’의 모습이란 게 바로 저런 것이죠. 다른 과학자들과 의료인들이 에이바이오가 지금 보여주는 태도를 꼭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
슈마틱스와 싸우는 것도, 아르답을 치료하는 것도, 연구와는 별개의 얘기다. 그것들이 바빠도 연구는 게속 진행되어야 한다. 진보하지 않는 것은 정체하는 게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니까.
여러모로 경황이 없었던 와중에도 류영준은 자신의 연구를 꾸준히 진척시켰다.
덕분에 사이언스 편집장인 사무엘은 또 하나의 논문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
“크리스퍼-캐스나인을 이용한 표적 DNA의 정확한 교정……"
그가 논문의 제목을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이게?”
어떤 압도적인 기술은 때때로 직관적으로 한번에 이해되지 않는 법이다.
사무엘은 황당한 표정으로 논문의 요약문을 천천히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악!"
같은 시각에 그보다 약간 더 빨리 논문의 요점을 이해한 제시가 소리를 빽 질렀다.
“왓 더……"
그녀는 충격으로 잠깐 말을 잇지 못하다가 사무엘에게 곧장 달려갔다.
“사무엘! 류 박사님 논문 읽었어요?”
“지금 요약문 보고 있는데 이게 뭔 소리예요?”
사무엘이 말했다.
“류 박사가 보낸 논문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집어치웠을 수도 있어요. 논문이 무슨 동물 실험 데이터도 하나 없고, 대부분은 인비트로 (in vitro, 시험관에서 진행된 실험) 데이터에 세포 실험 하나가 전부인데.”
그가 논문 서류를 흔들어보였다.
“이렇게 궁핍한 데이터로 쓴 논문을 사이언스에 보내다니. 류 박사가 사이언스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이 보내는 논문마다 다 실려가지고 자신감이 너무 높아지셨나 왜 이런……"
“사무엘! 이 논문에서 리포트하는 거 유전자 교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잖아요!”
제시가 소리쳤다.
“유전자 교정 얘기가 요약문에 나오기는 했는데, 아직 내가 본문을 다 읽어본 게 아니라서……"
“한번 천천히 정독해보세요 인간의 DNA의 30억 염기쌍의 모든 위치를 다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예요. 어디든 원하는 대로 마음껏 자를 수 있다고요!”
“모든 위치라는 게 모든 유전자를 말하는 건가요?”
“아뇨.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만, 이 기술은 모든 ‘DNA’를 말하는 거예요.”
DNA는 유전자보다 훨씬 더 거대한 개념이다. DNA 전체를 통틀어서 생체 물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는 2퍼센트 남짓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외 나머지는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거나 DNA의 구조를 유지시키는 등의 잡다한 일들을 한다.
그 DNA 전체를 조작할 수 있다.
글자수로 환산하면 무려 30억 자.
웬만한 도서관 하나 수준의 그 거대한, 인간의 천연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떤 위치든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찾아내고 편집할 수 있는 기적의 신기술.
논문의 본문을 읽어나가던 사무엘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이건 역분화 줄기세포 이상의 기술이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의 DNA에 생긴 모든 ‘문제’를 전부 치료할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유전병, 그리고 모든 종류의 암.
DNA의 오류에서부터 시작되는 질병을 전부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술이다.
“맙소사……"
사무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세포 실험 데이터 한 개 있는 거 자세히 보세요.”
제시가 말했다. 사무엘이 빠르게 논문을 넘기면서 세포 실험 데이터를 찾았다.
“역분화 줄기세포로 분화시킨 조혈모세포의 유전자 CCR5를 에디팅……"
사무엘이 논문을 읽었다.
“CCR5를 잘라서 망가뜨렸다고?”
사무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무슨 유전자인지 기억 안 나세요?”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티모시 레이 브라운 때 보고된 거잖아요. 에이즈 바이러스의 감염 통로.”
사무엘의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다.
“설마 이거 에이즈 완치 기술......."
그가 침을 꼴깍 삼켰다.
***
논문을 보내놓고 류영준은 골수 재생 팀 미팅에서 에이즈 치료 기술에 대해 발표했다.
“……해서 CCR5를 이런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캐스나인에다가 CCR5 유전자의 서열과 맞는 RNA를 입력해준 후에 세포 내에 집어넣으면 캐스나인이 CCR5 유전자를 찾아가 잘라버립니다. 이후 세포가 잘린 자리를 수정하고 나면 구조가 변해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는 식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이정혁 박사님께 받은 줄기세포를 가지고 이 방법대로 처리해서 CCR5를 조작한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그걸 배양해서 조혈모세포도 만들었습니다. 웨스턴 블랏으로 CCR5가 만들어지지 않는 걸 확인했고요. 이걸 환자의 골수에 이식하면 에이즈가 치료될 거라 생각합니다. 환자 티모시 레이 브라운의 골수에 넣어준 것과 동일한 케이스의 치료니까요.”
"......."
미팅룸에 충격 가득한 적막이 흘렀다.
카펜티어는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류 박사님, 저 기술은 단순히 유전병이나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 이상입니다. 아시죠?”
“네."
“저건 ‘유전자 조작’이 가능한 기술이에요.”
“맞습니다.”
“한 10년 지나면 저 기술로 시험관 아기들한테 유전자 조작을 하려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CCR5라는 유전자가 망가진 골수를 이식하면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다.
달리 얘기하면 수정란 단계에서부터 CCR5를 조작하면 아예 ‘에이즈 면역’인 아기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캐스나인이 발표되면 분명 그 방향으로 연구가 시작될 것이다.
그 누가 막아도 소용없다. 기술의 발전이란 것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결국 윤리를 넘어서는 법이다.
시작은 에이즈 면역 아기 정도겠지만 거기서 더 나아간다면?
키나 시력, 피부 따위를 결정짓는 유전자들을 조작해서 맞춤형 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처음엔 다들 겁먹고 나서지 못할 테지만, 결국은 그런 걸 시도하는 이들이 하나씩 나올 것이다.
어마어마한 윤리적 이슈가 야기될 거다.
과연 그 미래를 인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잘못될 경우엔 어쩌면 이 기술을 처음 찾아낸 류영준에게 막대한 비난의 화살이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기술을 공개하는 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결국 쓰기로 결심한 겁니까?”
“네."
류영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내버려둘 수 없으니까요.”
“……. 확실히 충격적인 걸 넘어서 경악스러운 기술이긴 합니다.”
카펜티어가 말했다.
“저는 일단 류 박사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저 기술로 CCR5를 조작해서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도 찬성이에요.”
“고맙습니다.”
“하지만 분명 종교 단체나 여러 보수적인 집단들에서 이 기술에 대해 시비를 걸 거예요. 어쩌면 슈마틱스 같은 놈들보다 더 상대하기 힘든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카펜티어가 경고했다.
“압니다.”
류영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여러분. 전 세계에서 에이즈 환자는 3천만 명이 넘어요. 그리고 이 기술로 앞으로 치료할 수 있는 수많은 유전병 환자들은 수 억이 넘을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이 두렵다고, 당장 눈앞에서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내버려두지는 않을 겁니다. 이 기술로 말미암아 문제가 생긴다면, 그걸 해결하는 것도 과학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