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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 첫 번째 제품 (3) > (219/301)

62화.  < 첫 번째 제품 (3) >

줄기세포 및 시신경 분화 키트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에이바이오 본사에서 실험법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아야 한다.

에이바이오 측이 그 경우에만 키트를 판매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까지 오는 데 교통비나 숙박비를 지원해 주진 못하지만, 교육 자체는 무료로 진행됐다.

때문에 녹내장 3상이 끝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에이바이오로 몰려들었다.

앞으로는 교육을 에이바이오의 줄기세포 전담 과학자들이 진행할 예정이지만, 처음이니만큼 첫 강의는 특별히 류영준이 직접 맡았다.

“보세요, 키트는 두 개입니다. 안약처럼 생겼죠? 둘 다 손으로 꾹 누르면 용액이 한 방울씩 나옵니다.”

류영준이 키트 제품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각각 키트 1번, 키트 2번이라고 부르거나, 역분화 키트, 또는 시신경 분화 키트라고 부릅니다.”

류영준은 키트를 휴지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먼저 체세포를 줄기세포 상태로 역분화시키기 위해서는 S0X2, cMyc, 0CT4, KTF4, 이렇게 총 네 종류의 유전자들을 과발현시켜야 합니다.”

그가 인큐베이터에서 배양접시를 하나 꺼내어 과학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배양접시에 환자의 체세포 샘플을 받아둔 상태는 이런 모습일 겁니다. 현미경 사진이 옆에 떠 있죠? 여기 있는 체세포는 제 것입니다.”

류영준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저희가 개발한 역분화 키트, 1번 용액을 열 방울 떨어뜨립니다.”

똑. 똑.

“이 용액 안에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이걸 다루려면 연구실 안전 관리 허가를 각국 정부로부터 받으셔야 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 바이러스는 아까 말했던 네 종류의 유전자들을 체세포의 DNA 내부에 삽입시킵니다. 그 유전자들이 발현됨에 따라 역분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실 이곳에 있는 과학자들 모두가 류영준의 논문을 읽어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류영준의 한마디, 한마디를 열심히 노트에 필기했다.

“용량은 배양액 1밀리리터당 한 방울씩, 배양 접시의 여러 위치에 골고루 떨어뜨려야 합니다. 이 상태로 3일이 지나면 역분화 줄기세포가 될 겁니다. 지금은 시범을 보여드려야 하니, 제가 미리 만든 역분화 줄기세포를 씁시다.”

류영준이 다른 배양접시를 꺼냈다.

“3일 후가 되면 이런 상태가 될 텐데, 보시면 형태학적으로 줄기세포의 구조를 띠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엑솜 시퀀싱이나 DNA 메틸레이션 분석 같은 방법을 통해서 추가 검증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건 여러분의 선택에 맡길 겁니다. 그다음 과정은 역분화된 줄기세포를 시신경으로 만드는 겁니다. 시신경 분화 키트 2번을 사용합니다.”

똑, 똑.

류영준이 배양액 위에 시신경 분화 키트 솔루션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이렇게 하면 시신경으로 분화됩니다. 다만 이때 하이드로코르티손이 5마이크로몰 농도로 포함된 배양액을 써야 합니다.”

류영준이 설명했다.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여기서 앞으로 약 열흘 동안 직접 이 실험을 해보게 될 겁니다. 실험 프로토콜 북을 배포할 테니, 돌아가신 후에도 그걸 보면서 따라 하시면 되고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류영준은 그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스위스, 영국, 미국, 프랑스, 수많은 국가들에서 넘어온 과학자들. 각자 소속도 다르다.

로쥬나 화이저 같은 대형 제약사 소속도 있고, 처음 듣는 벤처 회사 소속도 있다.

‘다니엘.’

류영준은 그중 한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슈마틱스에서 온 과학자다.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지만 과연 어떤 사람일지.

아무튼 이 사람은 열흘간의 교육을 수료하고 바이러스를 구매해서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인도에서 사용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 * *

류영준은 사무실에서 어디론가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에이바이오의 류영준입니다. 전에 받은 명함으로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조금 은밀한 얘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메일이 괜찮다면 회신 주십시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저녁.

퇴근을 준비하는데 류영준의 휴대폰에 메일이 왔다.

[저희가 보내드린 휴대폰을 쓰십시오. 이따 한국 시각으로 밤 9시에 통화합시다.]

‘보내드린 휴대폰?’

어리둥절해하는데, 누가 대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유송미입니다.”

“네. 들어오세요.”

3일 전에 채용된 비서다.

“대표님 앞으로 택배가 왔어요.”

유송미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뜯어보니 투박한 모양새의 폴더폰이 하나 들어 있었다.

그리고 밤 9시가 되자 정말 그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헬로.

기계로 변조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입니다.”

-반갑습니다. 메일 주셨기에 전화 드렸습니다. 류 박사님. 제임스입니다.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국 국장 제임스 홀드런.

류영준이 미국의 통합 뇌질환학회에 참석하기 전에 호텔에서 만났던 사람이다.

류영준에게 거대 제약 카르텔의 압박에 대해 경고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저랑 상담하고 싶으신 게 있다고요? 그것도 은밀하게?

“네."

-류 박사님이 저 같은 사람한테 이런 종류의 전화를 요구할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공적이고 깨끗한 행보만 취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한 환자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라 그렇습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얘기해보시죠. 대강 짐작은 됩니다만.

“저는 이번에 녹내장 치료법의 제품 개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도 전달받아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소식이 참 빠르군요.”

-네. 그리고 축하를 드렸으니 경고도 드리겠습니다. 제가 볼 때 에이바이오는 지금 그 제품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어요.

“뭐 들으신 것 있습니까?”

-이 자리에 있으면 듣기 싫은 것들도 종종 들립니다. 류 박사님께서 먼저 얘기해보시죠. 제게 연락을 주셨다는 건 류 박사님도 어떤 위험을 직감했다는 뜻 같은데요.

“슈마틱스가 인도에서 차세대 병원을 설립한다고 하더군요.”

-하하. 맞습니다. 제가 입수한 정보도 그겁니다.

“전 같은 필드에 있는 과학자에 대해서 기본적인 존경과 신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게 수상하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그냥 노파심이면 좋겠지만 그들이 만약 제 키트를 이용해서 환자 하나의 인생을 망가뜨리려고 한다면 상황이 험하게 돌아갈 겁니다.”

-솔직히 얘기하죠. 제가 볼 때, 슈마틱스는 환자한테 ‘안구 암’을 유발합니다. 슈마틱스는 이미 뉴럴클리닉스의 줄기세포 신약을 공격할 때 그 소재를 쓰기도 했고요.

제임스가 말했다.

-그리고 ‘줄기세포’라는 건 원래 ‘암세포’와 한 끗 차이입니다. 모든 과학자가 줄기세포 치료제를 쓰면서 가장 겁내는 게 암의 발생이니까요. 그 정도로 줄기세포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암 외의 다른 질병들을 유발한다면 줄기세포와 연결고리를 만들기가 까다로울 겁니다.

-그렇죠. 눈에다 염산 부어놓고 줄기세포 치료제 때문이라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줄기세포가 사람 눈을 녹이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걸 보고 누가 속겠습니까?

제임스가 말했다.

-그리고 환자 본인의 세포인데 면역 반응이 나온다면 슈마틱스 연구자들이 세포 배양할 때 무언가를 오염시켰다는 뜻이고, 감염성 질환이 생긴다면 의사가 시술할 때 위생을 소홀히 했다는 뜻이 되니까요. 전부 자기 얼굴에 침 뱉는 꼴이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안구 암은 아닙니다. 암이 발생하면 그건 줄기세포 때문이라고 강력히 주장할 수 있어요. 주장하지 않아도 암이 생겼다는 결론만 듣고도 사람들이 줄기세포 때문임을 의심할 겁니다.

“그렇겠죠. 암이라는 게 자연적인 요인으로 쉽게 발생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 같아도 줄기세포부터 의심할 겁니다.”

-맞습니다. 그럼, 슈마틱스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것 봐라, 류영준의 줄기세포는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방어하실 겁니까?

“암은 안 생깁니다.”

-무슨 소리예요? 지금 그 얘기 계속했잖습니까? 줄기세포를 대량으로 넣어놓고 방치하면 암이 생겨요. 제 얘기는 슈마틱스가 류 박사님의 키트를 하나만 쓸 거라는 겁니다. 1번 키트를 써서 줄기세포 상태로 분화시킨 다음, 2번 키트를 써서 시신경을 만드는 과정 없이 그냥 환자 눈에다 넣을 거라고요. 줄기세포가 대량으로 들어가면 암이 됩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그리고 슈마틱스의 잘못이라는 증거가 남지 않죠. 사람들은 그 암이 ‘시신경 분화가 덜 된 세포가 남아서 생긴’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 저거 키트 2번 써도 전부 다 시신경 되는 거 아니네. 운 나쁘면 줄기세포가 남아서 암 생기네’ 하는 겁니다. 그리고 위험하다고 인식하겠죠. 설마 처음부터 그냥 줄기세포만 넣었다고 의심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냥 줄기세포만 대량으로 넣어도 암은 안 생깁니다.”

-.......

“저희가 연구하고 있는 기술 중에 줄기세포의 척수 신경 분화 기술이 있습니다. 분화 효율이 매우 낮은데 상당한 성공률을 보이고 있죠. 어떻게 하는 건지 아시나요?”

-어떻게 하는데요?

“분화 효율이 낮기 때문에 줄기세포를 100배에서 1,000배 이상 용량으로 환부에 투여합니다.”

-미친……. 그건 그냥 종양을 투여하는 수준이잖아요? 순식간에 암이 퍼지지 않습니까?

“일정 시간 동안 분화하지 않는 세포들을 에이팝토시스 (apoptosis) 기작으로 보내어 세포 자살을 일으키는 안전장치를 걸어놨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시신경 분화도 같은 방식입니다. 두 번째 키트에 의해서 시신경 분화가 촉진되지 않으면 모든 줄기세포는 3주 안에 사멸해요.”

-.......

“본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걸어둔 안전장치였습니다. 실력 없는 과학자들이 에이바이오가 제시한 프로토콜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거나, 시신경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팩스(FACS) 같은 기계로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경우를 대비한 것이죠. 분화가 안 된 줄기세포 몇 개가 남아서 혹여 환자의 눈에 들어가더라도 암을 유발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제임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충격으로 말을 안 나왔다.

이런 기술이 된다고?

“그런데 과학자가 ‘실수’한 거라면, 대부분의 세포들은 시신경이라 망막에 자리 잡을 겁니다. 아주 극소수의 줄기세포만 환자의 안구 내에서 자가 파괴되겠죠. 그래서 보통은 줄기세포가 남아 있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냥 치료됐다 생각할 거예요.

-그렇겠죠.

“그런데 만약 어떤 과학자가 아예 시신경 분화가 시작도 되지 않은, 대량의 줄기세포를 그대로 환자의 눈에 넣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제임스가 침을 꼴깍 삼켰다.

-어떻게 되나요?

“안전장치가 가동했을 때, 줄기세포의 수가 많기 때문에 사멸 과정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어그리게이션(aggregation, 세포의 응집)됩니다. 응집된 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언뜻 보면 암 덩어리처럼 보일 겁니다.”

-설마....

“만약 슈마틱스가 암을 리포트한다면 그건 그들이 2번 키트를 쓰지 않고 줄기세포를 환자 눈에 투여했다는 뜻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저는 그 순간 전쟁을 벌일 겁니다. 환자의 눈에 생긴 종양이 3주 안에 사멸되는지 지켜보라고 할 겁니다. 사멸된다면 그것은 암이 아니라 안전장치가 작동한 것이라고요. 도대체 슈마틱스 수준의 과학자들이 어떻게 실험을 했기에 저런 결과가 나오느냐고 따질 겁니다.”

-제조사에 와서 직접 배우고 갔는데도 실험 스텝을 하나 빼먹어버릴 정도로 실력이 끔찍하게 형편없거나, 아니면 고의적으로 줄기세포 상태를 투여함으로써 환자의 눈에 암을 유발하려고 했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는 건가요?

“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만약 후자라면 제 모든 전력을 다해서 그들을 과학계에서 영원히 퇴출시킬 겁니다.”

-……제가 류 박사님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었군요. 폭탄은 슈마틱스가 들고 있었군요. 그럼 제게 부탁하고 싶은 건 대체 뭡니까?

“두 가지입니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슈마틱스가 제 키트를 아예 쓰지 않고 환자에게 다른 질병을 유발시키려고 하는 경우를 막아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세계 최고 제약사고 최고 브레인들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설마 그렇게 멍청한 수를 두진 않을 거예요. 그건 그 자체로 자충수입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어떤 질병을 만들든 암이 아니면 류 박사를 공격하기 어려워요. 결국 자기네들 실수 때문이 아니냐고 의심받을 테니까요. 세포 배양이든 수술이든 말입니다. 결국 환자 눈에 남은 흔적들을 쫓으면 진실이 밝혀질 테고요. 그들의 선택지는 결국 줄기세포의 최대 난적인 암, 하나뿐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노파심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는 것뿐입니다.”

-저도 류 박사가 걸어놓는 하나의 안전장치였군요. 좋습니다. 두 번째 부탁은 뭡니까?

“제가 기자회견을 열고 슈마틱스와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 슈마틱스가 다급한 마음에 환자를 없애버리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자기들이 종양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사실 안전장치가 가동돼서 자연 사멸되는 과정의 줄기세포라는 걸 세상이 지켜보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증거 인멸을 시도할 거라는 겁니다.”

-그럴 수 있죠.

“그 경우에 그 환자를 지켜주십시오.”

-이제 저한테 전화를 건 이유, 그것도 은밀하게 건 이유를 알겠네요.

“네."

-CIA를 움직여 달라는 뜻이죠?

“맞습니다.”

제임스가 빙긋 웃었다.

-대통령께 보고 드리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정보도 캐드리겠습니다. 만약 슈마틱스가 종양을 리포트한다면, 그게 어느 선까지 올라가는 일인지 찾아드리죠.

“감사합니다.”

-미국 암센터와 연계해서 에이바이오의 암 연구소 건설하는 거 잊지 마십시오.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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