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 첫 번째 제품 (1) > (217/301)

60화.  < 첫 번째 제품 (1) >

미팅을 마친 후 류영준은 대표이사 사무실로 가는 대신 실험실로 이동했다.

“혹시 화농성연쇄상구균 (streptococcus pyogenes) 있습니까?”

입구에서 만난 이주찬 박사에게 그가 물었다.

“글쎄요. 미생물 하는 팀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류영준은 곧바로 최명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박사님. 혹시 화농성연쇄상구균 균주 보관된 거 실험실에 있나요?”

-그건 사내에는 없어요. 저희는 유익균 종류만 가지고 있고 병원체는 몇 개 없습니다.

최명준이 대답했다.

화농성연쇄상구균은 괴사성근막염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일종이다.

아직 에이바이오에서는 관련 질병을 연구한 적이 없어서 이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젠은 아니다. 막대한 연구 소스를 가진 에이젠 본사에 수많은 생물종이 보관되어 있다.

류영준은 에이젠의 연구지원센터에 연락해 화농성연쇄상구균을 요청했다.

박테리아는 당일 오후에 고체 배양기에 담긴 콜로니 형태로 배송됐다.

추가로 짧은 DNA 조각도 몇 개 주문했는데 함께 도착했다.

류영준은 이들을 이용해서 화농성연쇄상구균의 유전자 중 하나의 DNA 사본을 떠냈다.

[캐스 나인 (Cas9)]

이 위대한 유전자의 이름을 붙였다. 크리스퍼 연관 단백질 9 (CRISPR associated protein 9) 이라는 뜻이다.

수십 년 전부터 박테리아 종들에서 크리스퍼 (CRISPR,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라고 불리는 미지의 DNA가 보고되어왔다.

그리고 그들과 연관된 여러 종의 생체 물질들에 대해서도 꾸준한 언급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정체에 대해서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던 그 정체를 로잘린이 가르쳐주었다.

-캐스나인은 사람이 원하는 DNA 위치를 정확히 자를 수 있는 유전자 가위입니다. 본래 박테리아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유전자들을 제거할 때 쓰는 것으로, 박테리아의 면역 체계 같은 것이죠.

엄청난 잠재가치가 느껴지니 손이 다 떨렸다.

‘원하는 DNA 위치를 정확히 자를 수 있다고?’

역분화 줄기세포 수준의 대혁명 아이템이다.

유전자 가위로 DNA를 자르는 것은 종이 공예하듯 가위질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DNA 같은 분자는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려운 초미세 입자이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손으로 가위질해서 자르겠는가? 절대 못한다. ‘DNA를 자른다’는 말은 화학 반응을 일컫는 것이다.

DNA와 유전자 가위를 같이 물에 타서 37°C에 두면 DNA 가닥이 싹둑 잘리는 식이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DNA를 자르는 과정에서 ‘원하는 위치’를 자르는 건 매우 어렵다.

기존에 사용되는 방법은 연구자가 미리 DNA를 전체 해독한 다음, 거기서 딱 하나만 존재하는 특이 구조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조만 인식하는 유전자 가위를 쓰는 거다. 그럼 그 위치 하나만 잘릴 테니까.

이건 책에서 특정한 단어를 찾아서 교정하는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책에서 딱 하나만 존재하는, 원하는 위치의 단어를 찾은 다음, 그걸 인식해서 교정하는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작업은 디자인 과정이 몹시 까다롭고, 운이 나쁘면 그런 특이 구조를 찾아낼 수 없어서 조작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이 기술로 작은 DNA 조각들을 조작해왔다.

그럼 이걸로 사람의 유전자도 조작할 수 있을까?

사람의 세포 한 개에 들어있는 DNA 총량은 글자 수로 ‘30억’ 자에 이른다.

200페이지 책 15,000권의 분량.

책 한 권이 아니라 도서관 단위의 정보량이다.

실험자가 그걸 전부 해독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그 분량에서 딱 하나만 존재하는 ‘단어’는 찾아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유전자 가위를 사람 세포 내에 넣으면 부대찌개 햄을 써는 것처럼 전부 산산조각 내버리는 것이다. 가위가 인식할 수 있는 특이 구조가 수없이 많으니까.

그 박살난 DNA는 당연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세포도 그냥 죽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의 세포에서 특정한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그 동안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캐스 나인은 잘리는 위치를 사람이 임의로 설정해줄 수 있습니다. 원하는 위치를 특정할 수 있도록 길게 표적을 디자인해서 캐스 나인과 함께 넣어주세요. 그럼 그 위치만 잘릴 겁니다.

인식하는 DNA 구조가 미리 정해져있는 기존의 가위들과 달리, 캐스 나인은 인식하는 DNA 구조를 사람이 정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유비’를 검색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형제의 연을 맺었고 한 날 한 시에 죽기로 했다.’를 검색하면?

15,000 권의 책 중에서도 삼국지만 튀어나오며 그 중에서도 도원결의 파트만 검색되지 않겠는가.

캐스 나인은 저 문장을 찾아서 교정하도록 연구자가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따라서 정확히 원하는 위치 하나만을 자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30억 개의 문자열 중 그 어느 위치든 정확히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셈이다.

‘이건 단순히 CCR5만 조작하는 아이템이 아니잖아.’

류영준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역분화 줄기세포가 재생 의학 분야의 기반 기술이라면, 이건 ‘유전자 치료’ 분야의 기반 기술이다.

모든 종류의 유전병은 본질적으로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발생한다.

돌연변이 발생으로 고장이 난 유전자만을 정확히 인식해서 자르고, 그 위치에 새로운 유전자를 덧대어 수리한다면?

이론상 모든 종류의 유전병을 전부 치료할 수 있다.

물론 기반 기술이기에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이정혁 박사님. 골수로 분화할 줄기세포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류영준이 골수 재생 팀의 실험실을 찾아가 물었다.

“네. 지금 배양중입니다.”

“저 조금만 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CCR5를 조작하려고 합니다.”

***

스위스 바젤의 한 고급 술집.

비싼 위스키 한 병을 테이블에 둔 채, 한 중년의 남자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슈마틱스의 대표이사 루카 테일러였다.

이윽고 모자를 쓴 덩치 큰 사내가 룸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남자가 인사했다.

“오랜만이야. 앤드류.”

앤드류는 루카 테일러를 도와주는 사업 브로커이자 로비스트다. 주로 활동하는 분야는 해외 임상시험에서 각국의 담당 부서를 설득하는 일, 그리고 슈마틱스의 신약의 판매 허가를 따내는 일이다.

하지만 보다 지저분한 것들도 종종 수행해왔다. 그는 루카 테일러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위스키?”

루카 테일러가 병을 들어보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요즘 술을 줄이는 중이라서요.”

“그럼 콜라?”

루카 테일러가 콜라병을 가리켰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에이바이오는 좀 어떤가? 자네 사람들이 좀 들어갔나?”

“네. 몇 명 합류시켰습니다.”

“류영준이 뇌질환학회에서 발표했던 것들이 정말로 에이바이오에서 개발되고 있나?”

“네. 류영준이 발표한 것 그대롭니다. 각 팀들이 실험 보안에 철저해서, 얻어낸 정보는 몇 없습니다만.”

“……. 정말 믿어지지 않는군. 그런 작업들을 할 수 있다니.”

“소문으로는 에이즈를 완치시킬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도 개발한다고 합니다.”

앤드류가 말했다.

“에이즈 치료제? 어떻게?”

“방법은 아직 모릅니다. 류영준이 아무한테도 공개하지 않았대요.”

“알아도 쉽게 따라 하기 힘든 거겠지. 애초에 줄기세포는 역분화 기술이 나오기 전까진 마이너한 분야였어. 세계적으로도 그쪽에 뛰어난 전문가는 몇 없었고,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다 에이바이오랑 계약했거나 계약하기로 약속한 상태니까 후발 주자인 우리가 류영준의 전략을 알아낸다고 해도 따라잡긴 어렵네.”

“그렇죠.”

“아무튼 에이즈 치료제를 만든다는 건 꽤 걱정되는군.”

“저도 신경 쓰이더군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 상상도 안 되지만, 만약 그게 나온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이즈용 항레트로바이러스 신약들은 전부 은퇴하게 될 거야.”

“그렇겠죠.”

“녹내장도 치료하고, 알츠하이머도 고치고, 척수도 만들고 골수도 만들고, 에이즈도 치료하고.”

“장기도 만들겠다고 했죠.”

“아주 예수 납셨어. 그걸 다 1년 안에 하겠다고?”

루카 테일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류영준이 지난 반 년간 이룬 업적을 보면 정말로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땐 그 놈이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지금은 말씀하셨던 것처럼 세계 최고의 줄기세포 전문가들이 다 류영준 편에 서는 중이니까요.”

“나도 그 놈이 약속한 것들 중 상당 부분을 해낼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더 황당한 거야. 정말로 1년 후면 에이젠과 에이바이오가 제약계를 독식하겠군. 우린 설 자리가 없어질 거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루카 테일러는 말없이 위스키를 따랐다.

“앤드류. 그 콜라 안 마실 건가?”

그가 물었다.

“네? 네.”

루카 테일러는 앤드류의 앞에 놓인 콜라병을 가져왔다.

“류영준은 지금 이 콜라 같은 상태야. 사람들의 기대치가 가득 차있지.”

그는 콜라병 뚜껑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는 병을 꽉 쥐고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쉬이이익- 팍!

김새는 소리와 함께 솟아오른 거품이 곧 뚜껑을 밀어내고 분출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흔들어서 터뜨려줘.”

콸콸 쏟아지는 콜라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이 업계의 명성이나 지지도라는 게 원래 모래성 같은 거야. 대중들은 과학을 알아서 그를 따르는 게 아냐. 일종의 종교적인 맹신이지. 위험성의 증거를 보여주면 분위기는 빠르게 반전되는 법이야.”

"......."

“모든 신약은 부작용이 있어. 부작용보다 약효가 더 강하면 약으로 쓰는 거지. 초점을 어디다 맞추느냐의 문제야.”

“계획이 있으십니까?”

“류영준의 모든 연구가 뿌리를 두고 있는 줄기세포를 무너뜨려야 해. 그게 위험하다는 인식을 세상에 퍼뜨리는 전략을 취할 거야.”

“옛날에 뉴럴클리닉스를 무너뜨렸을 때처럼요?”

“뉴럴클리닉스는 벤처라서, 줄기세포가 위험하다는 얘길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펀딩이 끊겨서 자멸했지. 하지만 에이바이오 뒤에는 에이젠이 있어. 그렇게 간단하진 않아.”

“그렇죠. 선동을 해도 결국 진실이 밝혀질 겁니다. 그 때까지 에이바이오가 무너지진 않을 테고요.”

“맞아. 그리고 류영준은 이미 알츠하이머의 치료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을 때부터 펀딩이 끊길 일은 없는 위치가 됐지. 뉴럴클리닉스처럼 잡을 순 없어.”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발목만 잡아둔 다음에 우리가 그들의 기술을 따라잡아야지.”

“그 발목 낚아채는 일을 제게 맡기시려는 것이죠?”

“그 놈이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직접 총괄하면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에 우리가 손을 댈 수는 없지만, 이제 곧 임상이 끝나는 제품이 하나 있지.”

“녹내장이요? 그건 앞으로 한두 달 안에 제품화가 진행될 겁니다.”

“맞아. 에이바이오가 생산한 최초의 기술이야. 그게 제품화되어서 세계에 공급되면 우리도 그걸 써볼 수 있어.”

"......."

“임상시험은 3상에서 끝난다고 하지만 일반인들의 기준에서 하는 얘기야. 제약계에는 임상시험 4상이라는 게 있고.”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제품화 이후의 문제 발생에 대한 피드백.”

텅!

루카 테일러가 콜라병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시점을 노려서 류영준의 발을 걸어 넘어뜨린다. 한 번만 휘청거리게 하면 충분해. 거품 좀 걷히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 회사 인력과 기술을 조금 빼내면 따라잡을 수 있어.”

“알겠습니다. 구체적인 계획을 짜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제품화까지 한 달 정도라면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하겠군.”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미 대표님이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앤드류가 씨익 웃었다.

* * *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류영준은 꽤 반가운 손님을 만나고 있었다.

에이젠의 CTO 니콜라스 킴이었다.

“벌써 회사 모습을 갖춘 걸 보니 내가 다 감격스럽군요.”

니콜라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류 박사가 연말 세미나에서 연단에 난입하던 게 생각납니다.”

니콜라스는 추억에 잠겼다.

“그 난폭한 연구소장들이 모두 충격으로 입을 다무는 꼴이 꽤 재밌었죠.”

“그랬나요? 조용히 계시던데 즐기셨는 줄은 몰랐네요.”

“하하. 그 때만 해도 천재적이고 행동력 넘치는 괴짜라 생각했는데, 사업가적인 기질도 뛰어난 것 같군요. 후원금 모아다가 그런 병원을 다 짓고.”

“의학을 발전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류 박사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겠지요.”

“요즘 에이젠은 좀 어떻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에이바이오가 커지는 걸 보면서 자극 좀 받은 모양입니다. 다들 연구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연구소장들은 약간 기가 죽은 것 같지만.” 

“그 성격 괄괄한 사람들이 기가 죽기도 해요?”

“원래 분노조절장애라는 게 자기보다 강한 사람들 앞에서 치유되는 거 아닙니까?”

니콜라스가 웃으며 말했다.

“다들 류 박사님이 자기네 밥그릇 깨부술까봐 끙끙 앓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에이바이오 대표지만 에이젠의 이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사실 저는 지금 상황 좋습니다. 연구소장들이 착해진 것도 흡족스럽고요.”

“요즘은 연구원들한테 잘해주나요?”

“에이젠 연구원들이 자꾸 에이바이오를 힐끔거리니까 이탈할까봐 무서운 모양입니다. 상당히 친절해졌어요. 길형준 소장은 특히 요즘 연구원들한테 커피도 사주고 영화 티켓도 뿌려대며 친해지려 애쓴다고 합니다.”

“하하하. 잘 상상이 안 되네요. 연말세미나 때 저한테 소리 지르시던 게 머릿속에 생생한데.”

“그래서 젊은 연구자들은 류 박사보고 류형욱이라고 부르더군요.”

“류형욱이요?”

“애견 훈련가 이름 가져다가 지었답니다. ‘세상에 나쁜 소장은 없다’고 사원들끼리 떠드는 걸 종종 지나가다 들었죠.”

“맙소사.”

류영준이 황당함에 웃음 짓자 니콜라스가 따라서 피식 웃었다.

“저도 그 동안 소장들보고 직원들한테 착하게 좀 대하라고 그렇게 타일렀는데 말을 안 들었거든요. 솔직히 류 박사한테 좀 고마운 마음입니다. 요즘 분위기면 에이젠은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을 거예요.”

“다행이네요.”

“오늘 내가 이 얘기 한 건 비밀입니다?”

“물론이죠.”

니콜라스는 차를 몇 모금 마셨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류 박사님. 혹시 제약계 카르텔에 대해 요즘 좀 들으신 것 있습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