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 차세대 종합 병원 (2)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입니다. > (212/301)

55화.  < 차세대 종합 병원 (2) -여기서부터 유료 연재입니다. >

병원이라는 건 무엇인가?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치료 방법은 인간의 몸에 대한 인류의 지식에 기초한다.

상고시대의 병원은 사실상 주술 행위의 공간이었다.

주술사들이 불 피워놓고 기도드리는 게 치료 행위였다는 것이다. 병원이랄 것도 딱히 없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성직자와 분리된 최초의 ‘의료직’이 탄생했다. 현대 병원 시스템의 원형이다.

자연주의 질병관이 처음 성립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치료 행위는 주술적이었다.

예를 들어서 샘물을 마시고 깨끗이 목욕하고 치유실로 가는 조용한 터널을 지나면 마음이 가라앉고 질병이 치유된다는 식이다. 황당하지만 그 시대엔 그것과 피 뽑는 게 먹어주는 의술이었다.

로마에서는 ‘진료소’가 생겼다.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체계화되고 과학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중세 시대에는 이슬람권에서 상당히 발전한 형태의 병원들이 나타났다.

정신과 같은 게 별도로 존재하고 전문적인 의사를 양성하고 윤리 강령을 만들었을 정도다. 비록 지식수준은 미약했지만 말이다. 대부분 무료 진료에다가 퇴원 환자에겐 생활비까지 줬다는 점에선 웃기지만 현대보다 좀 더 나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대부분 국가들에선 치료란 게 여전히 환자의 돌봄과 요양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병원’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근대의 과학혁명 이후다.

의과학의 급속한 발전, 페니실린의 발견, 종두법의 발견. 마취법의 개발. 청진기의 발명, X선 검사법의 확립.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들이 하나씩 나오면서 병원도 급속도로 성장했다.

자선단체 겸 요양원 수준이었던 과거를 청산하고 질병의 실체를 알아내고 그걸 다루겠다는 과학적인 접근법과 연구에 불이 붙었다. 그 발전의 속도가 대단해서 순식간에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현대의 병원들은 최신 의학 지식과 기술로 무장하고 MRI나 수술 보조 로봇 같은 최첨단 장비와 함께 환자를 다룬다.

그러나 아직도 한계가 있다.

그게 뭘까?

‘현대 병원은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물론 기본적인 것 정도는 한다. 예를 들어 소아와 성인을 구별한다거나. 임산부를 구별한다거나.

하지만 비슷한 나이의 성인 두 명이 같은 질병으로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으면 같은 약을 받는다.

둘 다 같은 질병인데 같은 약 받는 게 뭐가 문제냐?

문제다.

“둘에게서 약이 듣는 정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의응답이 마무리될 무렵, 류영준이 말했다.

“지금은 초기 암환자들이 병원에 가면 퍼스트 라인 항암제를 처방 받습니다. 이마티닙 (Imatinib)이나 엘로티닙 (Erlotinib) 같은 거요. 그럼 그게 그 환자들에게 잘 들을까요? 효과를 보는 환자도 있지만 효과를 못 보는 환자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알츠하이머 임상 성공을 리포트하러 왔는데 더 놀라운 뉴스가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중이다.

“예를 들어 베뮤라페닙 (vemurafenib)이라는 물질은 비라프 (BRAF) 라는 유전자에 발생한 돌연변이를 잡아 죽이는 강력한 항암제입니다. 그 타입의 암세포에게 효과적이죠. 하지만 그 암세포가 멕 (MBK) 유전자의 돌연변이도 동시에 갖고 있다면? 그 암세포는 베뮤라 페닙에 저항성을 가집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러나 지금 현대 의학은 환자들을 치료할 때 환자 조직의 분자생물학적 특성을 조사하지 않습니다. 그냥 베뮤라페닙이나 이마티닙 같은 약을 써봅니다. 그리고 그 약이 안 들으면 다른 약으로 바꾸는 식이죠. 한 달 써보고 ‘잘 안 되네요, 이거 써봅시다.’ 또 한 달 쓰고 ‘이걸로 바꿔보죠.’ 하는 식입니다.”

약간 도발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의사들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영준이 지적하는 대상이 의사들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시스템과 과학의 한계죠. 유전자 서열 분석을 해서 좀 더 정밀하게 치료하려는 시도들도 있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병원들에선 인적, 물적 자원의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되는 약이 걸릴 때까지 닥치는 대로 써보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그게 환자들을 죽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게 ‘잘 듣는’ 약을 찾아서 헤매는 사이에 환자는 아까운 시간을 계속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제가 만든 줄기세포에 기초해서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가노이드가 뭡니까?”

기자들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오가노이드는 장기를 모방한 소형 조직입니다. 예를 들어 간암 환자의 간 조직을 떼어서 초소형 간 종양을 100개 정도 배양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거기다 100종류의 항암제를 처리해보는 겁니다.”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이해한 기자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만들어진 간 종양을 가장 많이 파괴하는 항암제를 골라서 환자에게 처리하면 훨씬 일이 간단해질 겁니다. 초정밀 진단을 치료와 병행하는 겁니다. 환자별로 겪는 시행착오의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으며, 별도의 치료제를 추가 개발하지 않더라도 지금 존재하는 것들의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시간 싸움이 관건인 수많은 환자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암 환자의 예시를 들었지만,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동시 진단 치료법은 거의 모든 질환에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팡! 팡!

플래시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오가노이드는 지금 당장 만들 수 있는 겁니까?”

한 기자가 물었다.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시도했고,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러나 에이바이오는 그 일을 빠른 시일 내에 해낼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 기술이 있기 때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는 모든 종류의 장기를 모방할 수 있는 오가노이드 기술을 만들 겁니다. 그리고 줄기세포를 이용한 척수, 골수, 연골, 뼈, 지방 조직, 피부, 장기를 재생하는 기술을 연구할 겁니다. 그래서 환자의 신체에서 크게 손상된 기관을 재생시킬 겁니다.”

앨리스는 다리가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저런 게 가능한 건가?

병원에서 저렇게 진료하고 저렇게 치료한다고?

“에이바이오에서 만들고자 하는 병원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 의학과,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초정밀 진단을 동시에 수행하는 최초의 병원입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의 병원이 될 것입니다. 요양시스템이 전부였던 중세 의학에서 과학에 기반한 현대 의학으로 진보했듯이, 현대 의학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라디오에서 류영준의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전문가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연의 대학병원의 신정주 교수였다.

-조선 말, 한국에는 최초의 서양식 국립 병원인 제중관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신정주 교수가 말했다.

-제중관을 운영하던 병원장은 에비슨이라는 의사 겸 선교사였는데, 제중관의 시설이 너무 부족해서 되게 힘들어하셨어요. 하루에 환자 260명을 볼 정도였답니다.

-환자를 260명? 하루에요?

진행자가 인터뷰를 받아주었다.

-네. 그래서 1900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메디컬 선교회에서 에비슨 교수가 청중들에게 한국의 의료 산업을 지원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어떻게 됐나요?

-당시 존 D 록펠러와 함께 석유회사를 건립했던 미국의 유명 석유왕 중 한 사람이 당시 돈으로 1만 불을 기부했습니다. 현 시가 수십 억이에요.

-수십억이요? 그 호소 한 번에? 이것도 대단하군요. 그래서 제중관이 더 커졌나요?

-그 기부자의 이름이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입니다. 그리고 그 기부금으로 세운 병원이 세브란스 병원입니다. 그 동안 세브란스가 수 많은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져왔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죠.

-이번에 류 박사님이 미국에서 하신 일을 에비슨의 호소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이젠 세브란스들이 나설 때죠. 다만 이번 사건은 한국에서 근대 병원을 설립하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 전 인류의 병원을 한 단계 진보시키는 위대한 실험이라고 생각됩니다.

‘내 친구지만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에이바이오 본사에서 라디오를 듣고 류영준의 강의 영상을 보던 박주혁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직원들이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컴퓨터로 뇌질환 학회 영상을 보고 있었다.

시차 때문에 반나절 지난 아침에서야 확인하게 되었지만 그야말로 간밤에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실검 1위가 류영준이었고 2위는 국제 통합뇌질환학회, 3위는 차세대 병원이었다. 그 셋이 무려 여덟 시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우리 대표 진짜 개멋있어. 1년 안에 저걸 다 하겠다니.”

정혜림이 말했다.

“왜 처음 듣는 것처럼 그래? 저번에 팀 미팅할 때 그런 얘기 하셨잖아. 앞으로 줄기세포로 이것저것 다 할 거다, 차세대 병원 만든다, 1년 안에 해내자.”

천지명이 말했다.

“아니 근데 설마 저 자리에서 전 세계 상대로 약속을 해버릴 줄은 몰랐죠. 펀딩 모으고 나면 이제 진짜로 사람들이 관심 갖고 지켜볼 텐데.”

박동현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오가노이드가 뭐예요?”

연구원들 곁으로 슬쩍 다가와 대화를 듣던 박주혁이 끼어들었다.

“소형 장기 같은 거예요. 솔직히 저걸 의학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예전부터 있긴 했는데 워낙 고난이도 기술이라 그 동안은 거의 판타지였죠.”

박동현이 답했다.

“우리 대표가 저렇게 일을 벌였으면 우린 이제 1년 동안 퇴근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나? 상상만 해도 짜릿하네.”

천지명이 큭큭 웃었다.

“그래도 이번에 새로 합류하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카펜티어도 오고.”

정혜림이 말했다.

“그 중 7할은 하반기에 합류야. 저마다 세계 곳곳에서 한 가닥씩 하던 사람들인데 자기 업무 정리하고 인수인계도 하고 와야지. 카펜티어도 그렇고.”

“하긴.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냥 우리가 퇴근 하지 말죠, 뭐. 동현 선배. 괜찮죠?”

정혜림이 박동현을 힐끔 돌아보았다.

“아, 나는 애기 보러 가야하는데. 나 와이프한테 잡혀 사는 거 알잖아.”

“대표님이 전처럼 앞으로도 기본 스킴 다 짜주시면 1년 안에 가능할 거 같은데.”

정혜림이 말했다. 천지명이 코웃음을 쳤다.

“야, 우리 대표가 아무리 천재여도 혼자 그걸 다 해낼 수 있으면 진지하게 외계인이 사람 가죽 쓴 거 아닌지 의심해봐야 돼. 멀더랑 스컬리 불러야 돼. 진짜.”

“기억하시겠지만 저는 옛날부터 꾸준히 회귀설 주장했습니다.”

고순열이 안경을 매만지며 끼어들었다.

"......."

“이젠 킹리적 갓심으로다가 진지하게 한 번 조사해볼 필요가 있달까.”

“근데 우리 대표가 뭐 하겠다고 해서 못한 적 한 번도 없잖아요?”

박동현이 지적했다.

“한 번 믿어보죠.”

연구실 한쪽에서는 에이바이오에 좀 더 일찍 합류한, 사이언스 학술지 커리어발 과학자들이 이 충격적인 감상을 나누고 받았다.

“갑자기 퇴사하고 싶다.”

제이콜은 울상이 되어있었다.

“솔직히 에이바이오 말고 다른 회사였다면, 1년 안에는 저 중에서 단 하나도 못 해낼걸요. 그리고 우리 인력풀이 줄기세포에 집중돼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카펜티어 교수님도 아직 안 오셨고. 펠리시다 박사님이 혹시 줄기세포로 넘어오실 예정인가요?”

그가 펠리시다를 쳐다보며 물었다.

“대표님 미국 가시기 직전에 미팅했는데, 저보고는 앞으로 프로바이오틱스에만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저 정도 규모의 사업을 벌이면서 동시에 프로바이오틱스도 한다고요?”

“아마 췌장암도 동시에 진행할 거예요.”

실화?

제이콜이 귀를 의심했다.

펠리시다가 말했다.

“그리고 프로바이오틱스가 어떤 건지, 이젠 저도 얘기 들었는데 이거 제이콥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에요.”

“진짜 정답지를 싹 다 알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이 조그만 회사에서 그걸 다 할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한테 아이디어가 있을 거예요. 직원들 몇 명 안 될 때도 몇 달 사이에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고, 녹내장을 치료하고, 알츠하이머도 치료한 사람이잖아요? 이젠 회사에 연구원도 30명 이상이에요. 류 대표님 정도의 천재성이면 사람 손만 많아지면 어떻게든 해낼 거예요. 전 믿어요.”

한 편, 에이바이오 행정 본부의 사무실 내선 전화는 폭주하다 못해 직원들이 받을 엄두가 안 날 지경이 됐다.

받고 끊으면 2초 안에 다음 전화가 울린다.

이런 사정은 에이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이바이오의 전화선들이 모두 불타서 계속 통화중인 상태가 지속되자 안달난 사람들이 에이젠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기자나 투자자, 기업가들, 정부 부처의 직원들, 또는 병원 관계자들이었다.

연구가 어떤 단계인지 묻거나 제발 투자하게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재단을 만들지도 않았는데 후원하겠다는 사람들이 벌써 나왔다. 병원 관계자들의 경우에는 ‘병원을 새로 짓지 말고 우리 병원을 이용해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그 병원 생기면 그쪽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얘길 했다.

알츠하이머 치료의 임상 시험 성공과 차세대 병원.

여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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