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에이바이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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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제너의 송지현은 에이바이오 1층에 와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류영준이 그녀의 강아지 브라우니를 치료해주고 그 보답 차원에서 같이 술 한 잔 했던 게 꿈만 같다.
춤 잘 추던 동네 아는 오빠가 데뷔하더니 몇 주 사이에 마이클잭슨이 된 느낌.
그냥 특이하고 실력 있는 과학자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이언스에 논문과 인터뷰가 실렸다.
그리고는 몇 달 사이에 온갖 뉴스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끌어 모았고 지금은 에이바이오라는 회사의 대표다.
‘내가 그런 사람이랑 사적인 친분이 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휴대폰에 류영준의 연락처가 있지만 호기심에라도 전화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송지현은 그에게 연락해 길을 묻는 대신 에이바이오 1층에서 혼자 헤매는 중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못 찾아서다.
“안녕하세요.”
우연히 마주친 최명준과 서윤주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못 보던 얼굴인데, 혹시 송지현 박사님?”
최명준이 물었다.
“네, 제가 송지현이에요.”
“반갑습니다. 최명준입니다. 지금 에이바이오에서 프로바이오틱스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반가워요.”
송지현이 그와 악수를 나눴다.
“회의실로 같이 가시죠.”
오늘은 프로바이오틱스 연합 미팅이 예정됐던 날이다.
성과를 공유하고 프로젝트의 진행 방향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셀리제너 쪽에서는 송지현이 대표로 참석했다.
세 사람은 함께 2층 회의실로 이동했다.
안에 류영준이 혼자 있었다.
빔프로젝터를 켜놓고 음료와 초콜렛 따위를 꺼내오며 회의실을 세팅하고 있었다.
“악! 대표님 제가 하겠습니다!”
최명준이 기겁하며 달려 나가 류영준의 손에서 다과를 빼앗았다.
“아, 괜찮은데. 하하, 고맙습니다.”
“대표님, 비서를 뽑으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런 일도 밑에 직원들 시키시고······.”
“회사가 더 커지면 생각해볼게요. 지금은 저 혼자서도 스케줄 관리엔 지장이 없으니.”
류영준이 컴퓨터 앞으로 이동했다.
“송 박사님. 미팅 자료는 메일로 보내주셨던가요?”
“네.”
“근데 여기 회의실 랜선 연결 상태가 안 좋아서요. 제 사무실에 가서 USB에 담아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기 있어요. 제가 USB에도 담아왔어요. 혹시나 싶어서.”
송지현이 USB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류영준에 USB를 꽂고 파일을 여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송지현이 말을 걸었다.
“캡슐 이중 코팅 성공했어요.”
“정말요? 잘 됐네요.”
“류 박사님······. 아니, 류 대표님이 알려주신 대로 하니까 잘 됐어요.”
“그냥 류 박사라고 불러주세요.”
“······.”
“아, 맞아. 송 박사님.”
류영준이 말했다.
“네?”
“셀리제너랑 같이 진행하고 싶은 일이 두 개 있어요.”
“두 개요?”
“하나는 췌장암 치료제의 코팅 기술 개발이에요. 기본 아이디어 스케치는 제가 제공할 거예요. 셀리제너는 캡슐 코팅 개발 경험도 많고 장비도 많으니까 금방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로열티까지 드리진 못하지만 금전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드리죠.”
“감사합니다. 대표님께 얘기해볼게요. 다른 하나는 뭐예요?”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뭐게요?”
“······.”
송지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요?”
“초기 간암 치료제 셀리큐어의 개발입니다.”
송지현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셀리큐어요?”
“에이바이오가 분화할 때 에이젠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같이 다시 개발합시다.”
송지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다시 물었다.
“셀리큐어를 가지고 오셨다고요?”
“네.”
“에이젠의 제 1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개발권과 특허 권리를 에이바이오가 넘겨받았습니다. 임상 2상부터 다시 진행할 겁니다.”
“······.”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겁니다. 더 진보한 신약이 그렇게 없어지면 안 되는 거니까요. 원하시면 개발 단계에 셀리제너가 참여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보상도 드리고요. 어때요?”
“기회만 주시면 저희는 꼭 하고 싶죠. 저희가 개발한 첫 번째 신약이었는데요. 저희한테 굉장히 의미하는 바가 커요.”
“좋아요. 다음에 셀리제너 대표님하고 같이 미팅 한 번 하죠.”
“다 준비됐습니다. 대표님!”
최명준이 프로젝터 화면에 프로바이오틱스 개발 진척 사항에 대한 슬라이드를 띄워놓고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미국 학회에 가야해서 한 시간만 미팅하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가야합니다. 빨리 끝내죠.”
류영준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학회 가신다고요?”
송지현이 물었다.
“네.”
“어디요?”
“국제 통합뇌질환학회요.”
“저도 모레 미국에 학회 가요. 다른 학회지만.”
“IUBMB?”
“어떻게 아셨어요?”
“이번에 열리는 것 중 거기가 제일 유명하니까요. 저도 뇌질환학회 끝나고 거기 갈 거거든요.”
IUBMB는 국제생화학 및 분자생물학연맹 (The International Union of Biochemistry and Molecular Biology)의 약자다.
셀리제너가 IUBMB에 가는 이유는 벤처 회사이기 때문이다. IUBMB는 가능성 있는 신기술들이 홍보되고, 그에 대해 국제적인 투자와 인재 채용 등의 일들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새로운 투자자들이나 구직자들, 또는 협력할만한 다른 회사들과의 만남이 필요한 벤처 회사들에게 최적이다.
류영준의 경우엔 약간 다른 목적을 갖고 있었지만.
“발표 시작할까요?”
최명준이 말했다.
“네.”
“일단 말씀해주셨던 균주,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는 구매했고요. 유전자 조작하라고 하셨던 부분들도 전부 진행했습니다. ATak711, YJ2, mCAL 세 개 유전자를 시퀀싱으로 확인했고 200% 과발현 시켰고, 웨스턴 블랏으로도 확인했습니다.”
“제가 에이먹Amuc의 발현량과 베지클을 확인해달라고 부탁드렸던 것 같은데, 혹시 그 부분도 되었나요?”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에이먹’은 2형 당뇨를 치료할 수 있는 박테리아의 생체 물질이다.
그리고 ‘베지클’은 박테리아가 에이먹을 수송할 때 쓰는 조그만 거품막 같은 것이다.
“바로 여기 있습니다.”
최명준이 기다렸다는 듯 슬라이드를 넘겼다.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에게서 발생된 베지클의 사진이 나왔다.
“에이먹에 녹색 형광 물질을 달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보시면 베지클에서 녹색 형광이 나오죠. 에이먹이 발현되어서 베지클에 싸여서 나오는 겁니다.”
류영준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최명준이 계속 말했다.
“형광 유세포 분석기를 이용해서 이 베지클들을 별도의 튜브에 받아냈고, FPLC로 정제해서 에이먹임을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근데 대표님께서 시키셨으니 한 것이긴 한데, 에이먹이 대체 뭐하는 물질인가요?”
최명준이 물었다.
류영준이 집착하는 일이니 뭔가 중요한 효과가 있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예상이 안 되었다.
“이혜원 변리사가 작업을 거의 끝냈고, 이 프로젝트가 이젠 에이바이오의 것으로 확정되었으니 얘기해드려도 되겠죠.”
류영준이 말했다.
“저 에이먹이라는 물질은 2형 당뇨의 치료제입니다.”
최명준은 하마터면 레이저 포인터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게······, 네? 이게 뭐라고요?”
“제 2형 당뇨는 일종의 자가 면역 질환이에요. 그리고 저 에이먹 단백질이 면역 세포들의 기능을 정상화해서 면역 반응을 억제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줄일 겁니다.”
“······.”
“에이먹 자체를 정제해서 정맥 투여해도 당뇨 치료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저 프로바이오틱스를 환자들이 먹어서 장내에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를 정착시키는 것이죠. 제 생각엔 심각한 환자라도 길면 세 달 안에 약효를 볼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걸 알아내신 건가요?”
송지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논문들 읽다가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최명준은 좀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었다.
“그럼······. 이건 의약품인가요? 아니면 건강기능식품인가요?”
기본적으로 질병의 예방 및 치료 목적으로 만들어진, 효능과 부작용이 뚜렷한 물품을 의약품이라 부른다.
그리고 효능도 좀 덜하고 부작용도 비교적 적어 안전하며, 특정한 질병을 표적으로 하지 않는, 광범위한 건강 증진 제품이 건강기능식품이다.
“둘 다 아니죠. 시중에 있는 어떤 당뇨 치료제보다도 효과적이지만 부작용은 거의 없고, 당뇨라는 명확한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광범위한 건강 증진 기능을 갖는 프로바이오틱스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서윤주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 세상 약품이 아니라는 거네······.’
최명준이 물었다.
“그럼 어떤 종류로 내실 건가요?”
“둘 다 냅시다. 에이먹을 정제해서 일반의약품으로 내고, 동시에 생균을 써서 건강기능식품으로도 내요.”
“······.”
“근데 식약처 허가를 받아내기가 굉장히 까다로울 것 같은데요.”
송지현이 말했다.
“GMO도 아니고 LMO잖아요?”
GMO는 유전자 조작된 식품이지만 보통 죽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유전자 조작된 옥수수의 분말 가루 같은 거다.
하지만 LMO (Living Modified Organism)은 유전자가 조작된, 살아있는 생물체다.
당연히 규제의 정도는 엄청나게 강력하고, 기존에 식약처에 등재되지 않은 미생물인 클로로토니스 균주에 대한 허가를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안전성을 입증해도, 시판됐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지는 게 두려우니까 식약처에서 굉장히 보수적으로 나올 거예요.”
“괜찮아요. 결국은 허가 내줄 겁니다.”
“그래요?”
“전 세계에서 2형 당뇨 환자 수가 3억 명이에요. 안전성과 약효를 명백하게 보여줬는데도, 지레 겁먹고 허가를 주저하느라 3억 명을 고통스럽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쪽으로 세계적인 권위자 한 분이 합류하셨습니다. 펠리시다 박사님이 수석 연구원으로 참여하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앞으로 한 동안 이 프로젝트에 회사 전력을 모을 거예요. 캡슐 코팅 기술 진척 사항도 한 번 보죠.”
“네.”
송지현이 발표 자료를 열어서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해서 영상 의학팀과 함께 쥐 실험을 통해 캡슐 코팅제가 소화기관을 지나쳐 장까지 무사히 표적 물질을 전달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키토산으로 2중 코팅을 한 알지네이트 하이드로겔의 효과를 확실히 보았고요.”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음에는 펠리시다 박사님하고 같이 미팅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미국 다녀와서도 한 동안 좀 바쁠 것 같습니다. 에이먹의 기초 셋업은 여러분께 전부 맡기겠습니다.”
***
금요일 오전.
사이언스에 논문이 나왔다. 제목은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의 재생과 알츠하이머의 치료> 였다.
약 15명의 저자가 등재되었다. 제 1 저자이자 교신 저자로 류영준. 그리고 임상 시험을 수행한 신정주 교수가 제 2 저자가 되었다.
이외에 줄기세포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과학자들과 환자들을 돌본 의사들이 기여도에 따라 후순위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저자의 소속을 명시하는 소속 (affiliation) 항목을 클릭하면 류영준의 회사가 나왔다.
<에이젠>에서 <에이젠, 에이바이오>로 바뀌었다.
편집장 사무엘이 손수 양식을 교정한 논문 요약문이 사이언스의 1면을 장식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AKKT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함으로써 직경 8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소형 줄기세포를 제작하였고, 이 세포에 캐벌린 리간드를 부착하여 블러드 브레인 배리어를 통과시킴으로써 뇌로 보내었다. 이후 3K3A-APC를 처리하여 해당 줄기세포를 신경으로 분화시켜 뇌를 재생시켰다. 우리는 여덟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본 치료술을 수행하여 모든 환자들의 뇌 크기와 인지능력, 사고능력이 일반인 수준으로 회복됨을 확인하였으며, 환자들은 5주간 어떤 부작용의 징후도 포착되지 않았다.>
본래 사이언스에 큰 논문이 나와도 그게 네이버 검색창을 점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논문도 논문 나름이다.
이 정도 소식에는 과학 전문 기자들이 논문을 다루는 커버 기사를 낼 수밖에 없다.
순식간에 이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에이바이오, 알츠하이머 완전 정복.
-치매가 없는 세상이 온다.
-뇌 질환이 사라지는 시대.
-줄기세포로 치매 완치한다.
불과 한 시간 사이에 40여 개의 뉴스가 올라왔다. 스포츠 뉴스 찌라시들 사이에는 좀 황당한 종류도 있었다.
-줄기세포로 수험생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킨다?
-줄기세포 기술로 발기부전도 치료 가능! 고개 숙인 남성들의 자신감을······[더 보기]
-에이바이오의 젊은 CEO 류영준, 미모의 배우 S양과 비밀 연애 의혹.
내용은 텅텅 비어있는 낚시성이다.
그냥 클릭을 유도하는 게 목표인 기사였다. 지금 에이바이오, 류영준 두 단어는 클릭수를 보장하는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미친놈들인가? 미모의 배우 S양은 또 누구야? 아무 말이나 찍어내는구만.”
출근길에 박주혁은 기사들을 읽으며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에이바이오의 사무실.
모든 내선 전화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10여 명의 직원들이 정신이 쏙 빠진 얼굴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아직 협의된 사항이 없어······.”
“대표님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투자와 미팅 제의가 빗발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