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에이바이오 (6) (208/301)

51화.  에이바이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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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입원실에는 십여 명의 노인들이 병상에 누워있었다.

이곳은 줄기세포 기반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는 막강한 임상시험을 새로 맡은 기관이다.

임상시험을 시행한다는 얘기가 나올 때만 해도 전 세계의 뉴스가 떠들썩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조용해졌다.

그 동안 어떤 환자들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임상시험 담당의 신정주 교수가 들어왔다.

“좀 어떠세요?”

그가 박주남 환자에게 물었다.

“······.”

박주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면서 진료를 보던 신정주의 등 뒤로 류영준이 다가왔다.

연의 병원은 고인국 교수의 추천으로 고른 기관이다. 이제 류영준은 전처럼 서면 보고를 받는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찾아와 진행 상황을 체크했다.

담당의에겐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맘이 놓이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신정주 교수가 류영준이 찾아오는 걸 거북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정주는 고인국 교수와 친분이 있었는데,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전부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정주가 류영준에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새로 분화한 뇌신경이 자리를 잡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한 달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죠.”

류영준이 대답했다.

신정주가 진료하는 동안, 류영준도 동기화모드로 환자들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 편이 의사의 진료보다 좀 더 정확했다.

환자들 대부분이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치료 효과가 터지기 직전의 상태다.

원래 세포 치료제 종류의 생물학적 제재들은 실험을 했을 때 이런 경우가 많다.

마치 잠복기처럼 겉으로는 변화 양상이 드러나지 않지만 안에서 물밑 작업이 이루어지는 인고의 시간을 거치는 것이다.

특정 시점을 넘어가면 그 순간부터 약효가 지수 스케일로 솟구칠 것이다.

“아이고, 선생님 오셨습니까!”

누군가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류영준에게 인사했다.

강혁수였다.

꽤 자주 얼굴을 봤는데도 류영준이 나타날 때마다 이런 반응이다.

사실 강혁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우편함에 들어있었던 돈이 류영준의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볼 때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와서 깍듯이 인사하는 것이었지만, 류영준은 좀 부담스러웠다.

‘일부러 안 계실 시간을 맞춰서 찾아온 건데.’

류영준은 벌써 피곤한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거 드시렵니까?”

강혁수가 초콜렛바 하나를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근데 지금 택시 영업 하실 시간 아니에요?”

“우리 할멈 보려고 하루에도 대여섯 번은 옵니다.”

강혁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저 영감 완전히 애처가요.”

창가 쪽의 할머니 한 분이 놀리듯 말했다.

그녀는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로, 여기선 가장 정신이 멀쩡한 편이었다.

“우리 남편도 저렇게 좀 하면 얼마나 좋을까.”

강혁수는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더니 류영준에게 초콜렛 바를 다시 내밀었다.

“선생님,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어가지고 그렇습니다. 이거라도 드시고 힘 내십쇼!”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의사 선생님 드리시죠.”

류영준이 초콜렛을 신정주에게 양보했다.

“아직 환자분 차도도 없는데 이런 거 받는 건 좀 면목이 없는데요.”

신정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허허. 곧 좋아지겠죠.”

강혁수가 주름진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안 그래요? 할멈?”

그가 박주남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박주남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움찔.

류영준이 어깨가 꿈틀했다. 박주남과 시선이 마주치면서 메시지창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기화 모드 : 시냅토제네시스 (synaptogenesis)를 분석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 : 0.1/1초>

시냅토제네시스.

새로운 시냅스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성장한 뉴런과 뉴런 사이가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반응이 있을 텐데.

“면도.”

박주남이 강혁수를 마주보고 말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강혁수는 굳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박주남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면도해요.”

“지금······. 뭐라고······.”

충격으로 눈이 커진 강혁수 앞으로 신정주가 나섰다.

“할머니, 할아버지 알아보시겠어요?”

“······.”

박주남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녀에게 인지능력과 기억이 돌아왔다.

환자들의 뇌 속에서 지난 한 달간 일어났던, 알츠하이머 질환과 줄기세포 치료술의 전투에 종지부가 찍혔다는 반증이었다.

***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모든 환자들에게서 완전히 성장한 뇌신경세포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 번 회복기에 들어가자 엄청난 속도로 진전이 이루어졌다.

박주남이 면도 얘길 꺼낸 시점으로부터 불과 나흘 사이에 요실금을 하는 환자가 없어졌다.

일주일이 되었을 땐 거동이 불편하던 환자들이 혼자서도 느리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2주째에는 환자들의 인지능력과 사고능력이 알츠하이머를 앓기 전과 비슷한 수준까지 회복됐다.

“암산으로 100에서 7씩 빼면서 거꾸로 셈을 해볼게요. 할머니.”

신정주의 물음에 박주남이 대답했다.

“100. 93, ······86? 그리고, 어······. 79?”

“맞습니다. 더 하실 수 있어요?”

“72! 그리고, 어디 보자······. 10에서 빼고 3 남으면 2 더하면 5니까, 65?”

신정주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치료 전에는 100에서 1씩 빼는 것도 못하던 사람이다.

이젠 사고 능력이 또래 노인들의 평균값 이상일 수도 있다.

줄기세포가 뇌에서 종양을 발생시킨다거나 하는 부작용의 징후는 아직도 포착되지 않았다.

뇌를 찍은 MRI 데이터에서는 위축되었던 대뇌피질이 명확히 확장되었고, 위축되었던 해마가 정상화된 게 보였다. 확대되었던 뇌실이 정상 뇌처럼 작아졌다.

아직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의사로서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려도 될 것이다.

“완치되었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신정주가 말했다.

그의 문진 소견을 받은 사이언스의 에디터 제시는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박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감······사합니다······.”

제시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녹내장 치료랑은 임팩트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알츠하이머 완치를 목표로 하는 줄기세포 치료술의 임상 1상 성공.

학계나 병원들이 발칵 뒤집어지는 것은 둘째 치고 사회 전반에 대체 어떤 파장을 일으킬까?

기존에도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약들은 꽤 많았다.

그 중엔 완치를 목적으로 하는 것들이나 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들도 있었다.

올바이오나 네이처제닉, 후쿠오카 트리트니 클리닉 등에서 그런 연구들을 많이 진행했었다. 심지어는 임상까지 들어간 것도 많다. 지금 구글에 ‘줄기세포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검색해 봐도 잔뜩 나온다.

문제는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넘치는 패기와 도전 정신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신약과 제약사들은 차고 넘쳤지만 모두 거꾸러지고 말았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결국 지금 미국 FDA에서 승인받은 제품은 나멘다, 아리셉트, 엑셀론, 라자린, 이렇게 총 네 종뿐이다.

그리고 그 넷도 알츠하이머의 증세를 완화하시키나 진행속도를 늦추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손상된 뇌세포를 재생하고 완치시키는 포텐셜을 가진 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의 수는 전 세계를 통틀어 약 8천만 명.

매년 숫자는 가파르게 치솟아 2050년에는 2억 7천만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그런 미래가 오지 않겠지.’

질병의 특성상, 사람의 생명과 삶의 질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의 재정적, 감정적인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그야말로 노벨상을 열 번은 받아도 모자랄 사건이다.

“류 박사님하고도 인터뷰하실 건가요?”

신정주가 물었다.

“네, 그럼요.”

“근데 류 박사님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셔서 어쩌면 인터뷰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저도 전에 얘기만 들은 건데, 요즘 사업도 확장하고 있고, 알츠하이머 논문도 쓰고 계시고, 또 새로운 신약 임상 준비 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거의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잠을 못 잔대요.”

“오우······.”

“대신 논문은 조만간 투고하시지 않을까요? 이 정도면 당연히 사이언스에 실릴 것 같은데.”

“이번 달에 어떤 논문들이 나오든 상관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커버예요.”

“저도 기대되는군요. 류 박사님 덕분에 제가 사이언스에 이름도 올려보네요.”

신정주가 빙긋 웃었다.

***

“죽······여줘······.”

무려 34개 질병에 대한 122개의 신약 특허 등록이 모두 끝났다.

이혜원 변리사는 사무실 책상에 너부러져 있었다.

질병 하나에 여러 개의 신약을 묶어서 쓴다고 하더라도 ‘34개’분의 특허를 쓰는 셈이다.

‘진짜 두 개 정도만 더 있었으면 과로사 했을걸?’

근데 122개 신약의 실험 데이터가 전부 좋았다. 셀바이오에서 보내온 자료들을 보면 진짜로 한 개도 빠짐없이 싹 다 성공했다.

이게 말이 되나?

보통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은 수천 개의 후보 약물들을 질병 모델 세포주 등에 한꺼번에 때려 넣은 다음, 약효가 있는 하나를 골라내는 식으로 간다.

수천, 수만 대 일 정도의 확률로 발굴된다는 거다.

하지만 류 박사가 혼자서 수십 만 개의 후보 물질들을 테스트하진 않았을 것 아닌가?

이 후보 물질들이 약효가 있다는 건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좀 거칠게 비유하면 누가 뇌피셜로 마구 지껄인 게 다 맞아떨어진 셈이다.

마치 기존에 다 나와 있는 약인 것처럼 122개의 후보를 쏙쏙 뽑아 모은 다음, 적절한 실험만 속성으로 수행해서 데이터를 만들고 전부 특허 등록?

무슨 컨베이어벨트 굴러가는 모양새로 일이 처리됐는데 정말이지 경이롭다.

그 동안 류영준에 대해 뉴스에서 온갖 얘기들이 다 나왔지만, 역분화 줄기세포나 녹내장이나 하는 것들보다도 이혜원에겐 이게 더 신비로웠다.

그냥 천재 정도가 아니다.

‘집 지하실에 외계인이라도 감금돼있는 거 아냐?’

실없는 상상을 했다.

철컥.

현관 열리는 소리에 엉덩이를 의자에서 반 쯤 떼고 보니 박주혁이었다.

“헬로.”

“손님인 줄 알았네.”

이혜원이 김샜다는 듯 픽 웃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어정쩡한 자세로 멈추었다.

“어······?”

불현듯 머릿속을 한 줄기의 불안감이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 오빠 혹시······. 류 박사님이 다른 일을 또 주신 건 아니지?”

“흐흐흐. 너는 일감에서 벗어날 수 없단다, 노예야. 내가 지금 그 의자에다 묶어줄 테니까 퇴근 생각은 하지 마라.”

이혜원의 얼굴이 파래졌다.

“제발 하루만 여덟 시간만 자게 해줘.”

“그래도 그렇게 개고생해도 우리 대표님 놓치고 싶진 않지?”

“그야 당연하지. 놓치면 백수인데.”

이혜원이 오렌지주스를 꺼내 한 잔 따라 내밀었다.

“그래서 이번엔 무슨 일이야?”

“사실 일 주려고 온 거 아냐. 낚였지?”

“뭐야?”

“이번엔 스카웃하러 왔어.”

박주혁이 말했다.

“스카웃?”

“너 인하우스 변리사 할 생각 없냐?”

“에이바이오에서?”

“우리 대표님이 너한테 맡기고 싶은 일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연봉은 지금 네가 버는 것 이상으로 보장해줄 거야.”

“······.”

“뭐야 그 표정? 별로냐?”

“돈 많이 주는 건 좋지만 왠지 인하우스가 되면 일의 양이 지금의 몇 배가 될 것 같은데······.”

“전에 밥 먹으면서 아이템 몇 개랑 사업 방향 얘기 좀 들었거든? 난 몇 배 말고 몇십 배 예상한다.”

“미친······.”

“걱정 마. 너 혼자 하진 않을 거야. 사내 법무팀을 만들 건데 그 안에 특허 전담을 몇 명 둘 거야. 그리고 입사하면 지금보다 워라밸은 더 좋아질걸?”

“좋아진다고?”

“우리 회사 주 52시간 근로 시간 제한 지키니까. 다들 칼퇴근해.”

“진짜?”

이혜원이 경악했다.

“그래도 스타트업인데 그게 돼?”

“대표 머릿속에서 기초 연구가 다 끝나는 회사라서······.”

“당장 갈게. 계약서 어딨어? 지금 사인하고 싶은데.”

이혜원이 혹시나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말했다.

“좋아. 들어오면 아마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옮기는 것부터 할 거야. 전에 대표님이 너한테 그거 의뢰했었지?”

“응. 에이젠 제 6 연구소의 특허법률사무소랑 얘기하면서 진행 중이야.”

“좋아. 입사 후에 그거 처리해줘. 한 동안 네가 혼자 해야 할 거야. 대표님하고 상의하려면 할 순 있는데 아마 스카이프로 해야 될 거고.”

“스카이프로? 왜?”

“곧 미국에 출장 갈 거거든.”

“미국에?”

미국에서 투자받을 일이 있나. 이혜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박주혁이 말했다.

“국제 통합뇌질환학회에 간댔어. 줄기세포로 알츠하이머 임상시험한 거 결과 발표하고 펀딩 끌어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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