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에이바이오 (5) (207/301)

50화.  에이바이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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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 병원의 원장 이준혁 교수는 원장실에서 심성열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에게 병원은 비즈니스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선유 병원은 지금 매우 잘나가는 중이다.

류영준이라는 희대의 천재 과학자 덕분이다.

임상 성공은 병원 입장에서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다.

어려운 질병을 최초로 치료해냈다는 명성을 세상에 떨치면서 병원의 인지도가 올라간다.

녹내장 임상 성공 이후 수많은 곳에서 투자가 몰려들었고, 전국에서 안질환 환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되었다.

“병원이 잘 되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심성열이 말했다.

“다 의원님이 신경써주신 덕분이죠.”

이준혁 교수가 웃으며 말했다.

심성열은 이준혁 교수와 오래 전부터 정치적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선유 병원은 거대 대학 병원이다. 대학 병원은 단순히 환자의 진료만 보는 게 아니라 연구와 교육도 수행한다.

별로 대단한 성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유 병원은 연구중심 병원으로 선정되어 8년간 192억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그 뒤에는 심성열이 있었다. 그는 선유 병원의 재단인 선유사회복지재단의 이사 중 하나였다.

공익 재단이며 선유 병원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심성열이 얻어가는 게 더 많은 곳이었다.

이번 알츠하이머 치료 임상에서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뚜르르르

내선 전화가 울렸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이준혁 교수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준혁입니다. 네. 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 알겠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는 난처한 듯 심성열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심성열이 물었다.

“잠깐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별 일 아닙니다. 임상 담당 교수님이 잠깐 보길 원하셔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가는 이준혁의 뒷모습이 어쩐지 시름을 잔뜩 끌어안은 모양새였다.

심성열은 그가 닫고 나간 사무실 문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

“혹시 박주남 환자분이 임상 시험을 받게 된 데에도 누가 로비하거나 부탁한 바가 있습니까? 에이젠의 줄기세포 부서의 직원이라든지. 솔직히 얘기해주십시오.”

류영준이 말했다.

“전혀 모릅니다.”

고인국 교수가 답했다.

“이번 피험자 선정에 외압이 들어온 경우는 심성열 의원의 사례 하나뿐입니다.”

“에이젠의 줄기세포 부서의 신영연이라는 주임 연구원이, 이번에 제외된 박주남 환자분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아서 여쭤보는 겁니다.”

“모릅니다. 박주남 환자분은 남편하고 둘이서만 와서 지원했습니다.”

“흠.”

류영준이 팔짱을 꼈다.

신영연은 상관없나?

박주혁이 옆에서 말했다.

“그 노부부가 임상 건 때문에 줄기세포 부서를 찾아갔다가 신영연을 만났고, 신영연이 너한테 모시고 온 것일 수도 있지. 아니면 아는 사이이긴 한데 그냥 임상 지원 방법을 가르쳐줬다, 정도거나.”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내가 너무 예민해졌나봐.”

철컥.

소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5, 60대 정도 되어 보이는 교수가 나타났다.

병원장 이준혁이다.

“아이고, 류 박사님. 안녕하세요. 연락도 없이 여기까지 먼 길을 다 오시고.”

이준혁이 반가운 척 웃으며 다가왔다.

“별로 멀지는 않습니다. 차로 10분 거립니다.”

“하하. 그런가요?”

“그래서 임상 시험도 이곳에 맡겼죠. 역분화 줄기세포나 신경세포 같은 걸 신선하게 공급하거나, 기술 지원을 해주기 용이하니까요.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거리 조건이 좋다는 것 말고는 제가 이곳을 임상시험 실시 기관으로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 환자분이 바뀐 것 때문에 화가 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준혁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류 박사님이 그 박수남 환자분이랑 아는 사이였나요?”

“박주남입니다.”

“박주남 환자분이요. 하하. 죄송합니다. 류 박사님한테 중요한 분인 줄도 모르고 저희가 실수를······. 시정하겠습니다.”

“중요한 사람이요?”

류영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한텐 그 환자들 전부 다 중요합니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제가 사적인 관계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아요? 피험자를 주관적으로 선별하는 행위는 데이터 조작입니다. 아시잖아요? 임상 시험을 엄격하게 통제하길 원해서 이 얘길 하는 겁니다.”

이준혁은 앗차 싶은 표정이 되더니 애써 웃어보였다.

“자자, 진정하시고요. 류 박사님. 환자 여덟 명 중에서 한 명 바뀐 게 뭐 그렇게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전부 다 똑같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인데요.”

“연구 책임자가 저고, 논문도 제 이름이 제 1 저자로 등재돼서 나갈 겁니다. 거기에 들어갈 데이터에 조작이 있어요. 아무리 원장님이나 고 교수님이 공저자로 들어간다고 해도 최종 책임은 저한테 옵니다. 근데 제가 진정할 수 있겠습니까?”

“뭐 이 정도 가지고 데이터 조작이라고 자꾸 그러십니까. 섭하게. 하하하. 처음부터 무작위 선별한 사람이 의원님 모친이었다고 쓰면 되지요.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 태도가 잘못됐다는 겁니다.”

“그럼 이제 와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의원님의 모친, 신말자 환자분도 이미 저희 쪽에선 서류상으로 등록된 임상 시험 대상입니다. 이제 와서 그 분을 다시 뺄 순 없잖아요?”

“심성열 의원님의 모친이면 나이가 꽤 있으실 것 같은데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여든 셋입니다.”

“그러면 만 80세 이상의 고령자(Aged, 80 and over)에 해당해서 임상에서 별도의 연령군으로 분류되지 않습니까?”

“미국 FDA를 비롯해서 그렇게 하는 곳이 많긴 하죠. 하지만 치매 치료제의 임상이고 하니까, 고령자가 포함되는 게 데이터 확보 측면에서 나쁜 건 아닙니다.”

“제 얘기의 요점은 처음 임상 허가를 받을 때에 그런 고령의 분류군을 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정도야 저희가 쉽게 수정할 수 있죠.”

“수정은 제가 담당의와 협의해서 결정할 일입니다. 임상 가이드 원칙을 따를 때는 원래 제외되었어야 하는 환자분입니다. 왜 자의적으로 피험자를 받으신 다음에 임상 시험 요건을 수정하려고 하십니까?”

“하하, 류 박사님. 그렇게 엄격하게 하나하나 다 따지면서 일을 하면 임상 시험 못합니다.”

“그래요?”

류영준이 이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럼요. 누가 그걸 다 지키면서 일을······.”

“그럼 하지 마세요.”

“······.”

이준혁은 얼어버렸고 고인국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정도 관리도 못하신다면 할 수 없죠. 그만한 능력도 안 되는 곳이라면 저도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임상 시험 중지하세요. 식약처와 임상시험심사위에는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귀찮은 서류 작업들을 다시 해야겠지만 상관없습니다. 다른 임상시험 실시 기관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하아.”

이준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류 박사님. 솔직히 얘기하겠습니다. 류 박사님도 앞으로 에이바이오 운영하시려면 정치권이랑 척지면 안 돼요.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척진다고 했습니까? 원칙과 윤리를 지키자는 것뿐입니다.”

“왜 심성열 의원님 같은 거대한 인물이 먼저 손을 내밀어주시는데 그걸 안 잡으시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한 번 눈 딱 감으시면 의원님의 어머님도 건강해지고, 류 박사님은 후견인을 얻고, 의원님도 젊고 유능한 인재와 네트웍을 가지시고. 모두가 해피한 것 아닙니까? 솔직히 답답하네요.”

“그런 과학자 잘 찾아보시고요.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임상은 다른 병원에서 진행할 테니 여기서 준비했던 것들은 전부 정리해주십시오.”

류영준이 가방을 들고 일어나려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심성열이었다.

못마땅한 눈빛. 꾹 다문 입술과 억지로 올린 입 꼬리가 보였다.

“의도한 건 아닌데 밖에서 얘길 좀 들어버렸습니다.”

심성열이 말했다.

그는 천천히 류영준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은 가까이에 선 채로 서로를 잠깐 동안 마주보았다.

피식.

심성열이 미소를 지었다.

“류 박사님은 제가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입니다?”

류영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류 박사님하고 친해지고 싶은데, 좀처럼 쉽게 되지 않는군요.”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다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의원님의 정치 활동을 돕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의원님께 연구 관련 청탁을 하지도 않을 거고요. 우리 관계에서 공사를 확실하게 구분해주셔야 합니다. 그래도 저랑 친해지고 싶으신가요?”

“왜 그렇게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건가요? 류 박사님 정도의 인지도와 명성이면 협력해볼 만한데요.”

“의원님 같은 분을 뒤에 두면 편해지긴 하겠죠. 임상 허가도 쉽게 날 테고, 식약처에서 판매 허가도 쉽게 날 테고요.”

“그렇겠죠? 아무래도 힘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말이에요. 국회에서 개발하시는 약물 기준치 같은 것에 대한 제한을 슬쩍 완화해줄 수도 있고.”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저도 제가 지금 우리나라의 과학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압니다. 제가 비록 첫 단추는 아니지만, 큰 단추는 될 것 같군요.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지만 과학은 독립 영역이고 객관의 학문입니다.”

“음.”

“과학자들에 의해서 개발되는 모든 약들은 그 약효와 부작용의 수준에 딱 알맞은 허가와 규제를 받아야만 합니다. 친하다고 더 느슨하게 풀어주고 그런 건 안 됩니다. 그 동안 제약사들이 어떤 주먹구구법으로 일을 해왔는지 저도 압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고요. 하지만 제 선에서부터는 그 문화를 바꾸고 싶습니다. 로비가 아닌 데이터로 개발을 증명하는 산업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해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 알겠습니다.”

심성열이 가라앉은 어조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류 박사님의 신념, 잘 알았어요. 그리고 이번 알츠하이머 임상은 제가 아무래도 의학이나 제약, 임상 뭐 이런 쪽은 잘 몰라서 실수를 했습니다.”

심성열이 말했다.

“류 박사님. 저라고 뭐 위법을 저지르고 싶다거나, 연구 윤리를 어기고 싶었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어머니를 도와드리고 싶어서 혹시 빈자리가 있는지, 원장님께 여쭤봤던 게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럼 원장님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충성심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 건가요?”

“원장님도 제가 나이 많은 어머니 모시면서 어떻게 생각하고 돌보는지 아시니까요, 딱한 마음에 제 청탁을 받아줄까 하고 실수하신 것이죠.”

“보세요. 이래서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하는 겁니다.”

“네, 이해했습니다. 류 박사님 신념을 재확인시켜드린 셈이 되네요.”

심성열이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임상 2상 때에 지원하겠습니다. 그 때에는 꼭 무작위 선택으로 진행되게끔 하겠습니다. 이제 걱정이나 노여움 놓으시고 원칙대로, 원하시는 대로 진행하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심성열은 빙긋 웃고는 이준혁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밖으로 나갔다.

류영준은 그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옛날 에이젠 제 6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 때도 심성열은 류영준을 자기편으로 회유하려다가 면박을 맞았다. 그리고 그 때도 지금처럼 사과하고 떠났다.

이번에는 그 때와 달리 약간 관계가 상할지도 모른다.

‘적이 될지도 모르지만 별 수 없지.’

이준혁이 류영준의 옆에 다가오며 슬쩍 물었다.

“뭐, 아쉽지만 일단 이렇게 마무리 되었군요. 임상은 그럼 원래 선별됐던 환자분 모시고 진행하겠습니다?”

“아니요?”

류영준이 대답했다.

“원래 선별되었던 환자분들로 진행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이제 원장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다른 기관으로 옮겨서 진행할 겁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

“주혁아 가자.”

“잠깐만요!”

이준혁이 황급히 류영준의 팔을 붙들었다.

“서, 선생님. 잠깐만요. 저희가 임상 진행하기로 계약서도 쓰고 다 했는데 이러시면 안 되지요······.”

“어차피 담당의도 그만두신다고 했는데요.”

류영준이 말했다. 이준혁이 놀란 얼굴로 고인국 교수를 돌아보았다.

고인국이 굳은 표정으로 확인해주었다.

“사표 쓰겠습니다. 이번 일로 저도 너무 많이 자존심을 다쳤고 이곳 업무에 회의를 느낍니다.”

“······.”

“수고하십시오. 이제 선유 병원에 임상 맡길 일 없을 겁니다.”

류영준이 이준혁에게 인사하고는 박주혁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에이젠으로 돌아가는 길.

생각에 잠겨있는 류영준을 박주혁이 힐끔 쳐다보았다.

류영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새끼. 불도저처럼 날뛰더니······. 솔직히 좀 무리했지?”

“······.”

“수고했어.”

“고맙다.”

“야 근데 궁금한 거 있는데.”

“뭔데?”

“대체 난 왜 데리고 온 거야? 혼자 전부 잘 해결하는구만.”

“혹시 법적인 문제로 다투게 될까 싶어서.”

“법전 봇 같은 거였구나.”

“그리고 내가 너무 흥분하면 말려줄 사람이 있어야지.”

***

류영준은 에이젠의 줄기세포 부서에 전화를 걸어 신영연과 통화했다.

신영연은 노부부하고는 정말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임상 시험에 지원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지원서 작성을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도 ‘선별 중에 떨어질 수 있음’을 몇 번이나 확인시켜드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 대상자로 뽑혔는데도 사후에 다시 제외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지자 류영준을 찾았던 것이었다.

-진짜로 전 연구 윤리 위반한 것 없어요! 제가 그랬으면 감히 어떻게 류 박사님을 찾아갔겠어요? 그쪽으로는 타협이 전혀 없는 분이시잖아요.

“그렇죠?”

-당연하죠. 류 박사님 성격이나 연구 태도는 에이젠 안에서 거의 교과서 수준인데요. 제가 피험자를 로비해서 선정시켰으면 그 사람들 데리고 류 박사님 찾아가는 건 자살 행위죠.

“알겠습니다. 그럼 그 노부부 연락처 좀 저한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연락처요?

“네. 한 번 만나 뵈려고 합니다.”

연락처를 받은 류영준은 주말에 시간을 내어 노부부의 집 근처를 찾았다.

교외 지역의 허름하고 오래된 집들이 늘어서있었다.

그 낡고 후미진 거리와 지저분한 도로는 대전의 부모님 댁을 떠올리게 했다.

류영준이 정윤대 인근에 얻은 아파트로 모셨고, 조만간 이사할 예정이지만 아직 그 집에 살고 계신다.

“······.”

좁은 집의 부엌 겸 거실에서 만난 강혁수는 잔뜩 위축된 모습이었다.

“제가 드릴 게 없어가지고······.”

강혁수가 물 한 잔을 내밀었다.

“할머님이 임상 시험을 받게 될 겁니다.”

류영준의 말에 강혁수의 얼굴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제게 감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할머님은 무작위적으로 선정된 겁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근데 임상시험의 실시 기관이 바뀔 겁니다. 그래서 원래 예정됐던 것보다 시간이 약간 더 걸릴 거예요.”

“······그런가요?”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치료가 진행되면 빠르게 호전될 겁니다. 근데 그 때까지 혼자 할머님을 돌보기 힘드실 것 같은데, 간병인을 쓰시는 건 어떻습니까?”

“안 그래도 여러 번 알아봤습니다. 전문 간병인이 없으면 우리 할멈 같이 많이 진행된 사람은 패혈증인가 뭔가가 오기 쉽다고도 하고, 제대로 관리하려면 요양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도 하고 그래가지고요.”

“그런가요?”

“예. 근데 너무 비싸더라고요. 택시 기사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걸 하겠습니까. 건강 보험도 우리 할멈은 뭐시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제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임상 시험 관계자끼리는 큰 금품이 오가면 안 됩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도와달라고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류 박사님이 그런 약을 개발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류영준은 빙긋 웃었다.

“할머님은 분명 좋아질 겁니다. 임상 선정 문제는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희망을 가지세요.”

“예.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노인의 배웅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다.

류영준은 강혁수의 집 현관 밖에서 걸음을 멈췄다.

강혁수가 완전히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그의 우편함에 작은 봉투 하나를 넣었다.

약간의 돈이었다.

임상 시험 때까지 입원하거나 전문 간병인을 쓸 수 있을 정도.

웃기고 씁쓸한 사실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질병 억제제 중 하나는 돈이다.

과학이 깃발을 꽂은 범위 안에서는 그게 치료와 연명을 좌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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