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에이바이오 (3) (205/301)

48화.  에이바이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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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이오 사옥 1층 홀에는 스타벅스가 입점해있었다.

류영준은 어제 나온 직원 복지 카드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텀블러에 담아주세요.”

그가 내미는 텀블러를 보며 박주혁이 말했다.

“웬 텀블러야?”

박주혁이 물었다.

“부엌 찬장에 하나 굴러다니기에 가져왔다.”

“정윤대라고 써있는데. 학교 텀블러인가보네?”

“그러네. 나도 지금 알았어.”

류영준이 텀블러 겉면에 적힌 ‘JUNGYOON UNIVERSITY’를 확인했다.

“학교 다닐 때 어디서 받은 적 있나보지. 나 학부 때부터 대학원까지 10년을 있었던 곳이잖아.”

류영준이 말했다.

“아니. 그런 거 아닐걸.”

“어떻게 알아?”

“밑에 작은 글씨로 2019년이라고 적혀있으니까. 우리 같은 고인물도 이미 졸업한지 한참 됐을 때야. 누가 봐도 네 동생 건데. 이제 같이 산다며?”

“······.”

“너 고딩 때 지원이가 아끼는 4색 볼펜 학교에 가져와서 썼다가 지원이 울고불고 아주 개난리를 쳤던 거 생각나네.”

“그 때는 지원이 여덟 살이었어.”

“성격으론 우리 집 코카스패니얼이랑 겨룰 만할 때였지.”

“······.”

류영준은 텀블러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거 비밀이다?”

“깨끗이 씻어서 찬장에 도로 넣어놔. 나도 지원이 무섭다.”

“응.”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엘리베이터를 향했다.

“에이바이오 연구실들 셋업하고 나면 중소기업들 몇 군데에 투자하고 같이 협력 연구할 거야.”

이동하는 길에 류영준이 말했다.

“어디?”

“셀리제너랑 셀바이오, 리액션케미스트리, 그리고 나 학부 때 선배 중에 이재홍이라고 생명정보학 하신 분이 스타트업 차린 거 있거든? 거기도 생각하고 있어.”

“생명정보학이 뭐냐?”

“그게 뭐냐면······. 어?”

류영준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을 멈추었다.

통통한 체격의 할머니 한 분이 복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최근 면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새로 합류했지만, 이 할머니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혹시 누구 찾아오셨어요?”

류영준이 다가가 물었다.

“으응······. 아니야.”

할머니는 고개를 쓱 돌리면서 자리를 뜨려 했다.

<동기화 모드 : 6단계 알츠하이머 치매 분석하기. 피트니스 소모 : 0.7/1초>

······.

아니긴 뭐가 아냐.

류영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임상시험을 전담하고 있는 장소는 이곳이 아니다. 에이젠 본사에 임상시험 관리 센터가 있고, 성모병원이 임상시험실시기관이다.

왜 에이바이오에 와서 헤매고 계신 거지?

“할머니, 일행 분 안 계세요?”

류영준이 물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분명 보호자가 있긴 할 텐데, 사내 방송이라도 해서 찾아야 하나?

잠깐 고민에 잠겨있는데 복도 끝 화장실 방향에서 두 사람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온갖 고생을 다 하신 듯한 할아버지와 젊은 여자였다.

“할멈!”

“할머니······. 헉?”

에이젠의 줄기세포 부서 주임 연구원 신영연은 류영준을 보고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애초에 그를 만나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를 데리고 에이바이오까지 왔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좀 떨렸다.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젠 줄기세포 부서 주임 연구원 신영연이에요.”

신영연이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에이바이오 류영준입니다.”

류영준이 그녀와 악수를 나눈 다음 환자와 보호자로 보이는 노부부를 힐끔 돌아보았다.

일행으로 보인다.

에이젠 줄기세포 부서의 주임이 여기까지 온 이유도 분명 이들과 관련 있는 일일 것이다.

임상 때문에 온 건가?

“혹시 어떤 일 때문에 오셨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

69세 박주남.

그녀는 열아홉 살부터 이발소에서 일했다.

썩 예뻤던 외모 덕에 동네의 청년들이 끝없이 기웃거렸지만, 그녀는 따로 맘에 둔 사람이 있었다.

바로 택시 기사 강혁수였다.

그 때만 해도 택시 기사는 전문직의 이미지가 있었다.

요즘에야 스무 살짜리 운전 초보들도 네비게이션을 켜놓고 오토 기어와 주행 보조 장치들의 도움을 받으며 안전하고 편하게 운전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니었다.

손님이 목적지를 말만 하면 길을 손바닥 외우듯 찾아가는 능력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 영어 회화 실력도 요구받곤 했다.

박주남은 우연한 기회에 타게 되었던 강혁수의 택시에서, 그가 수동 변속기를 능숙하게 다루며 차를 모는 모습에 흠뻑 반하고 말았다.

강혁수는 종종 이발소에 와서 면도를 했다. 덕분에 박주남은 그를 만날 기회가 많았으니 쉽게 연결점을 만들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연인이 되었고,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았다.

“당신은 인상이 사나워서 수염이 자라면 꼭 산적 같아요.”

박주남은 아이를 키우면서 전업 주부가 되었지만, 젊을 때의 솜씨를 살려서 매일 아침마다 강혁수에게 면도를 해주었다.

“손님들이 보고 안 도망가려면 내가 항상 면도해줘야겠네.”

아침을 먹은 후 의자에 앉아 있으면 희고 보드라운 손가락이 인중과 턱에 하얀 거품을 촘촘하게 칠해주었다.

면도칼이 피부결을 따라 움직이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앞에서 집중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침을 강혁수는 정말 좋아했다.

그 얼굴에 점점 주름이 늘고 세월이 달라붙어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늙어갔다.

흔하고 평범한, 보통의 인생들의 사연이다.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 그렇듯, 군사정권의 독재와, 민주화 시위와, IMF를 비롯해 근대사의 온갖 크고 작은 일을 겪었다.

여러 사건들에 휘말려서 고생도 했지만 모두 잘 견뎌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아니다.

처음에는 박주남이 건망증이 심해졌다 싶은 정도였다. 음식을 조리하다가 불 끄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고 전에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는 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돈 계산이 느리고 서툴러진다 싶더니 몇 되지도 않는 친구들을 혼동하고 이웃집 젊은 부부한테 애가 몇 있었는지를 헷갈리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사건이 터졌다.

강혁수는 아직도 그 때의 충격이 가슴속에 선명하다.

“나 면도 해줘요.”

우유 한 잔으로 식사를 때우며 강혁수가 말했다.

충격적인 답이 돌아왔다.

“면도? ······. 그게 뭐였지?”

떨리는 마음으로 아내의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았다.

4단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콜린 분해효소 억제제인 타크린 등의 약물을 처방받고 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았으나 그녀의 인지능력과 기억력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인지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어 오늘 날짜가 며칠인지, 어느 계절인지를 인식하지 못했다.

날씨에 맞게 옷 입는 것부터 강혁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식사와 세안, 양치가 힘들어졌다.

그녀는 이따금 정신이 돌아오기도 했으나 어쩔 때는 남편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요실금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박주남은 강혁수가 모는 택시의 조수석에서 하루를 보낸다.

일상생활에 보호자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기 때문이다.

***

“류영준 박사님.”

강혁수가 갑자기 류영준의 팔을 와락 붙들었다.

“아이고, 박사님. 저희 좀 도와주십시오.”

“네에?”

“저희 임상 시험 좀 시켜주세요.”

“그건 성모 병원에서 임상시험 담당자에게 얘기하셔야 해요.”

“가봤어요. 그리고 할머니한테 임상을 하기로 했었어요.”

신영연 주임연구원이 대신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 약간의 우울감이 묻어났다.

“했었다는 말은, 지금은 아니라는 겁니까?”

박주혁이 끼어들어 물었다.

“네. 갑자기 얘기가 바뀌었어요.”

“왜요?”

“할머니가 고혈압이 있어서 그렇대요.”

“음······.”

이번 임상시험은 줄기세포를 정맥 투여해서 혈관을 통해 뇌로 보내는 방법을 따른다.

AKKT 유전자의 발현을 조작해서 본래 줄기세포의 60 퍼센트 정도로 크기를 줄인 소형 줄기세포를 쓴다.

캐벌린 리간드가 부착된 세포막을 이용해 블러드 브레인 배리어를 넘어서 뇌로 보내는 것이다.

이후 3K3A-APC라는 약물을 추가 투여하여, 뇌로 들어간 줄기세포를 신경으로 분화시켜 파괴된 뇌를 재생하는 치료법이다.

따라서 이 실험의 핵심은 줄기세포와 약물이 ‘혈관을 타고 잘 흐르는 것’이다.

그래서 임상시험 담당의가 고혈압 환자를 제외한 건가?

하지만 말이 안 된다. 심부전도 아니고 고작 고혈압 정도로 이미 선별된 사람을 제외시킨다고?

그리고 선별 과정에서 고혈압을 이미 확인한 상태에서 피험자로 뽑았을 텐데. 뭔가 착각한 건가?

“우리가 제안한 임상시험 피험자 선별 요건에 고혈압이 있었습니까?”

류영준이 물었다.

“아니요. 심부전만 있었어요.”

신영연이 대답했다.

“그럼 괜찮을 것 같은데요. 고혈압 정도라면······. 혈압이 얼마나 높은데요?”

“150, 95요.”

“별로 심한 건 아닌데.”

“그래도 가급적 가장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해서 안전성을 확보하고 싶은가보지.”

박주혁이 말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직 임상 1상이다. 감기약 같은 것이라면 본래 건강한 일반인에게 투여해서 부작용이 없음을 증명하는 단계다.

치료법 특성상 1상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환자에게 직접 투여하긴 하지만 총 8명 내외의 소수만을 대상으로 한다.

굳이 고혈압 환자를 포함시킬 이유는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선별된 사람을 굳이 제외할 이유는 또 뭐가 있지?

‘로잘린. 이 환자 정도의 고혈압이면 치료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나?’

류영준이 물었다.

-이미 답을 아시잖아요.

‘문제없지?’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심지어 심부전 환자에게 투여해도 괜찮은 치료법입니다. 저 정도 고혈압은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근데 의사가 왜 제외시켰지?’

고민에 잠겨있는 류영준에게 강혁수가 말했다.

“류 박사님. 저희한테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네?”

“병원에서 이 사람이 삼킴 장애라고 그러더라고요. 치매가 심해지면 생긴대요. 음식을 입에 물고 삼키는 걸 잘 못하는 거라고 합니다. 자꾸 폐로 흡입돼서 폐렴이 생긴대요. 가래도 못 뱉고요. 병원에서 그러더군요. 점점 몸에 경직이 오고 움직임이 둔해지고 힘들어져서 자꾸 눕게 될 거라고. 욕창 생기지 않게 잘 봐주라고 했습니다.”

“······.”

“그런 합병증들이 계속 오게 되면 면역도 떨어지고 낙상으로 다치고 해서 죽는 거랍니다. 치매 자체로 죽는 게 아니고요. 그래서 제가 잘 돌봐줘야 해요. 하지만······. 류 박사님. 저도 올해 일흔 넷입니다. 저 혼자 벌어서 이 사람 먹이고 돌봐가며 함께 사는 거, 솔직히 이제 점점 자신이 없습니다. 의지가 부족한 게 아니라 몸이 안 따라줘서요.”

강혁수가 말했다.

“내가 내일 아침에 못 일어나면 이 사람은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요새 자꾸 합니다.”

“자녀분은 뭐 한대요?”

박주혁이 물었다.

“애들도 제 새끼들 키우고 먹고 살기 바쁜데 어떻게 우리가 거기다 짐을 얹어주겠습니까······. 그리고 애들은 지금 해외에 살고 있어서······.”

류영준이 고민하다가 신영연에게 말했다.

“잠깐 이쪽으로.”

그는 신영연을 사람들로부터 좀 떨어진 구석으로 데려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지금 임상 여덟 명 다 찼나요?”

“네.”

“박주남 할머니 빠진 자리에 누가 들어갔는지 혹시 아십니까?”

아무래도 상황이 돌아가는 게 수상쩍다. 일단 신영연이 강혁수를 설득하고 위로하는 대신 류영준을 찾아온 것 자체가 뭔가가 있기 때문일 거라 짐작되었다.

“저희는 피험자 식별 코드로만 받아서 인적 정보는 모르지만······. 부장님이 성모병원에 아는 사람 통해서 들은 게 있긴 해요. 톱 VIP입니다.”

신영연이 말했다.

“누군데요?”

“그게······.”

신영연은 류영준을 살짝 잡아당겨서 귓속말을 했다.

“국회의원 심성열의 어머니랍니다.”

“심성열?”

심성열의 어머니는 나이 여든의 고령이었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서 요양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심성열은 밖에서는 효자 이미지에 걸맞은 행동들을 열심히 수행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노모의 뒤치다꺼리가 지겨웠다.

주기적으로 요양 병원에 얼굴을 비추러 가는 것도 귀찮고, 한 달에 몇 백씩 나가는 병원비도 아깝다.

그는 머지않은 대선만 바라보고 사는 남자였다. 그것에 플러스가 될 요인은 전부 바람직하고, 도움 되지 않는 것들은 전부 쓸데없는 것이었다.

그런 심성열에게 류영준의 알츠하이머 임상시험은 호재 중의 호재였다.

성공하면 류영준의 이미지를 업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설사 실패한다 해도 동정표를 모으게 될 것이다.

물론 성공하는 쪽이 가장 좋다. 그리고 류영준은 워낙에 뛰어난 인물이니 웬만하면 성공하지 않겠는가?

노벨상 수상자가 같이 일하자고 찾아올 정도의 인물이니까.

‘과학자는 정치와 독립되어야 합니다.’

손수영의 녹내장 때 그의 면전에서 딱 잘라 거절하던 그 새파란 청년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지금 세계적인 과학 스타다.

‘지금은 독립하게 해주지.’

성모 병원 원장을 푸시하면서 심성열은 생각했다.

‘다음엔 정치인이 아니라, 임상 치료를 받은 환자의 효자 아들로서 감사를 전하러 찾아가겠습니다. 류 박사.’

***

“주혁!”

신영연과 잠깐 대화를 나누던 류영준이 이쪽으로 돌아왔다.

“뭐야?”

박주혁이 조금 당황했다.

“뭔 얘길 했기에 또 빡돌아 있냐? 너 인마, 지금 눈빛이 지원이 어릴 때 우리가 걔 하겐다즈 다 털어먹었을 때랑 똑같······.”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류영준이 말했다.

“어딜 가?”

“성모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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