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에이바이오 (1) (203/301)

46화.  에이바이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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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

류영준이 말했다.

“췌장암을 분석해줘. 이제 할 수 있지?”

로잘린은 레벨도 많이 올랐고 피트니스도 늘었다. 이제는 암을 열어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타겟을 췌장암으로 잡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줄기세포 치료제의 후발 연구는 당장 진행하기 어렵다. 줄기세포 쪽의 사내 전문가들은 전부 알츠하이머 임상에 집중해야 할 때니까.

둘째, 이번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갈 시점에는 이미 에이바이오가 만들어져있을 것이다.

그럼 이 일은 에이젠의 연구원이 아니라 에이바이오의 CEO로서 진행하는 연구가 된다. 달리 말하면 에이바이오가 항암 시장에 진입한다는 뜻이다.

에이바이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아직 줄기세포에 집중돼있는 게 사실이다. 다들 재생 의학 회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에이바이오는 그 정도 회사여선 안 된다. 이곳은 의약업의 모든 분야를 석권하는 프론티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헬스케어인 프로바이오틱스도 가지고 왔다.

당연히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거대한 질병, ‘암’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건 에이바이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될 것이다.

그럼 왜 수많은 암 중에서 하필 췌장암을 목표로 잡았을까? 췌장암 환자는 전체 암 환자 중에서 고작 2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가장 다루기가 어려운 암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거의 모든 암 종에서 수많은 진보가 이루어졌지만 췌장암만큼은 아직도 난공불락이다.

암이 발견된 후 5년 이내 생존율을 계산해보면 국내 암 환자의 평균이 70 퍼센트인데, 췌장암은 10 퍼센트 안팎이다.

애플의 CEO이자 가장 유명한 기업인이었던 스티브 잡스조차 췌장암으로 죽었다.

스티브 잡스 정도의 인물이면 세계 최고의 의사들이 전부 달려들어서 살려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를 다 써보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죽었다. 아직 인류에게 너무 어려운 질병이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어려울까?

일단 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면 이미 중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치료 약물을 췌장으로 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항암제는 보통 독극물이기 때문에 일반 세포도 죽일 수 있다. 그래서 암세포에게만 전달하는 게 관건이다.

이걸 약물의 국소 전달 (local delivery)이라고 하는데, 췌장암 치료제의 국소 전달은 너무 어려워서 그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을 절망에 빠뜨려왔다.

그 정도 고난도의 질병이기 때문에 정복했을 때 항암제 필드에 일으킬 파장이 클 것이다.

-코팅된 버나바이러스 (Birnavirus)로 췌장암을 제거하죠.

로잘린이 말했다.

“버나바이러스?”

바이러스를 약물 도입의 운송 수단으로 쓰는 전략은 그리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AAV 같은 종의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버나바이러스는 생물학자인 류영준에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버나바이러스가 뭔데?”

-연어과의 어류에서 전염성 췌장 괴사증 (Infectious pancreatic necrosis) 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입니다. 췌장을 파괴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바이러스예요.

“연어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서도 작동해?”

-포유류 몸에서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쩐지 생소하더라.

인간에겐 감염성이 없는 바이러스다. 그래서 의약업계가 그 바이러스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그걸 써?”

-바이러스 표면의 수용체 몇 개를 조작하면 사람의 췌장에서 암세포만 감염되게 할 수 있습니다.

팍!

로잘린이 분석한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버나바이러스의 표면에 네 종류의 생체 물질이 솟아있었다.

본래는 어류 세포의 표면에 구멍을 뚫는 물질들이지만 지금은 그 구조가 바뀌어 작동 메카니즘이 변했다.

그 생체 물질들은 췌장암 세포 표면의 트랜스페린 수용체와 ERBB2 라는 고분자 물질의 구조를 인식했다.

둘 다 췌장암 세포에서만 대량으로 발현되는, 췌장암 표적 물질들이다.

버나바이러스는 췌장암 세포의 막을 찢고 내부로 침투했다.

잠시 후 버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네크로시스 기작을 작동시켰다.

췌장암 세포가 하나씩 사멸되기 시작했다.

-본래 췌장을 파괴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췌장에 생긴 종양도 파괴할 수 있죠. 췌장암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

환각에서 빠져나와 숨을 돌리면서 류영준이 물었다.

“물어볼 게 한둘이 아닌데, 일단 바이러스의 도입 방법은 어떻게 하지? 정맥 투여?”

-췌장은 소화 기관 일부니 먹는 약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 편이 환자들도 더 편하고요.

“좋아. 근데 저 바이러스는 위험한 종이야. 췌장에 남겨두면 안 될 것 같은데.”

-BVP3 유전자를 제거하면 췌장 내에서 증식은 불가능합니다. 넣어준 바이러스들은 암세포들을 파괴한 후에 대식세포에 의해서 제거될 겁니다. 췌장암을 제거할 만큼만 버나바이러스를 정량적으로 투여하면 안전합니다.

“음.”

-근데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버나바이러스는 위에서 전부 파괴됩니다.

위산의 산성 소화액이 바이러스의 구조를 파괴한다.

췌장은 위의 유문 바로 다음인 십이지장과 연결돼있는 기관이다.

버나바이러스를 입으로 삼킨다면 결국 위를 지나가야 췌장에 접근할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럼 위산을 견뎌낼 수 있게 해야겠는데.”

-위산을 견뎌낼 수 있게 구조를 변형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습니다. 소화 기관 특성상 위에서 오래 머물게 되는데, 그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위세포에도 버나바이러스가 일부 감염됩니다.

모든 생물학에는 예외가 있다. 

아무리 엄격하게 통제되도록 만들어진 약이라도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다. 결국은 정상 세포를 조금씩 건드리게 된다.

당연히 정상 세포의 노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약물이 정상 세포를 실수로 건드릴 확률도 올라간다.

“위산에 활성을 잃으면 췌장으로 갈 수 없고, 위산을 견뎌내면 위를 감염시킨다 이거지?”

-네. 그래서 바이러스 자체를 위산에 견디게끔 조작하기보다는, 바이러스의 표면을 캡슐로 코팅하는 걸 추천합니다. 이 코팅은 위산을 견뎌내지만 췌장 분비액에 의해 제거될 겁니다.

“······. 정리해보자. 그럼 캡슐 코팅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파괴되는 것과 위 세포가 감염되는 걸 동시에 막은 다음, 위를 지나서 췌장 분비액에 의해 코팅이 파괴되면 흘러나온 버나 바이러스가 췌장으로 이동해서 암세포들만 감염시키고, 바이러스의 특성상 유도하게 되는 네크로시스를 작동시켜서 췌장암을 제거한다? 이 때 바이러스는 자가 증식 능력을 제거한 상태로 암세포를 파괴할 만큼만 넣어줘서 부작용을 없애고?”

-네.

와, 이거 난이도 실화인가?

그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을 무릎 꿇린 악명에 어울리는 해법이다.

의학계가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창조적인 방법으로 뚫어야 한다니.

일단 암을 연구하는 대부분의 과학자는 버나바이러스 같은 것의 존재조차 모른다. 수의학이나 어업 쪽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나 공부하겠지.

생선 나부랭이를 감염시키는 병원체를 조작해서 사람을 감염시키겠다는 아이디어도 정신 나간 것이다. 굉장히 발칙하고 위험하고 황당한 상상 아닌가?

근데 그것의 증식 능력을 제거한 다음 암세포에서만 작동하게끔 만들어서 췌장암을 파괴하겠다?

게다가 그 전달 과정은 경구 투여고 이자액에 반응하는 캡슐 코팅으로 위를 지나친 다음 췌장으로만 도입하겠다?

거의 SF 소설 수준이다.

“피트니스 모자라서 암은 분석 못한다고 징징대던 데 다 이유가 있구나······. 이렇게 복잡한 방법이라니.”

-걱정 마십시오. 이젠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습니다.

로잘린의 대답과 함께 선택지들이 떠올랐다.

-버나바이러스 유전자 조작 방법 보기. (피트니스 소모 : 1.0)

-버나바이러스 캡슐 코팅 방법 보기. (피트니스 소모 : 1.5)

류영준은 각각의 선택지들을 열어 읽어본 다음 내선 전화를 들었다.

ARS의 안내를 따라서 1. 실험용 물품 구매, 2. 실험동물 및 유전자 구매, 3. 바이러스 구매를 순서대로 따라 들어갔다.

-네, 연구지원센터 김영희입니다.

“안녕하세요, 생명창조 부서의 류영준입니다.”

-헉.

김영희가 흠칫 놀랐다.

“여보세요?”

-앗, 네. 죄송합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녀가 물었다.

“버나바이러스를 구매하려고 합니다.”

-버나바이러스······?

김영희는 바이러스학으로 박사 학위를 했고 연구지원센터에서 바이러스 담당을 맡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나바이러스는 생소한 종이었다.

-······. 죄송한데 그게 어떤 바이러스죠?

그녀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이다. 에이젠이 연어 양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저런 걸 어떻게 알겠는가.

민망하게 만들 생각은 아니었는데.

류영준은 약간의 미안함을 느끼며 그녀의 혼란을 덜어주었다.

“연어한테서 전염성 췌장 괴사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입니다.”

혼란이 가중됐다.

-연어요? 물고기 연어요?

김영희가 황당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연어한테 감염되는 바이러스입니다. 혹시 연구소 내에 샘플이 있을까요?

-아니요······. 연구소 내에 있는 바이러스는 제가 전부 알고 있는데 그런 건 없어요.

김영희가 말했다.

“밖에서 구매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잠시만요.

김영희는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본 후 말했다.

-한 달 정도 걸립니다.

“알겠습니다. 구매 진행해주세요. DNA 벡터 상태로 부탁드립니다.”

***

제 1 연구소에서 도보로 7분 거리.

건축면적 200평 규모에 7층 높이의 건물이 있었다.

본래 제 1 연구소에서 별도의 연구동으로 만들어서 항암 신약 부서를 이주시키려던 건물이다.

연구소 등록도 되어 있고 폐액 처리 설비도 갖추었지만 사정이 틀어져서 쓰지 못했다.

때문에 매물로 나온 것이 이제는 에이바이오의 사옥이 되었다.

“생각보다 작은데. 네 이름값이면 한 2,000평 되는 건물일 줄 알았더니.”

류영준과 함께 건물을 보러 온 박주혁이 말했다.

“사업과 직원 수가 늘어나면 더 큰 건물로 옮길 거야.”

류영준이 대답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생산이나 연구 지원은 에이젠 설비를 다 갖다 쓸 거고, 여기선 핵심 연구만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

“직원 몇 명이냐?”

“지금까지 일곱 명.”

“······. 한 사람당 한 층씩?”

“말이 되냐? 아, 아니다. 나까지 포함하면 여덟 명이네.”

생명창조 부서가 전부 이직했고, 프로바이오틱스 사업을 넘겨받으면서 최명준과 서윤주가 들어왔다.

대기업 에이젠을 나와서 에이바이오로 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서윤주를 최명준이 열렬히 설득했다. 류 이사님이야말로 진짜 황금 동아줄이라면서 말이다.

“너 혹시 사내 변호사로 일할 생각 없냐?”

류영준이 물었다.

“에이바이오에서?”

“어.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법무팀을 만들 거야. 네가 그거 전담해주면 좋겠는데.”

박주혁은 팔짱을 끼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좋아. 나도 그저 그런 변호 수임이나 받으면서 먹고 살고 싶진 않아.”

“오케이, 이제 아홉 명. 이혜원 변리사도 데려와서 열 명 채우자.”

“그건 괜찮은 생각이지만, 구인 공고를 내지 그래? 고작 열 명 가지고 회사 굴릴 거 아니잖아?”

“이미 냈어.”

“사람인?”

“거기도 냈고······.”

류영준은 휴대폰을 열었다.

그의 메일함에 약 40통의 입사 지원 메일이 와있었다.

그리고 지원자들이 전부 외국인이다.

휴대폰 화면을 본 박주혁이 충격을 받았다.

“대체 구인 공고를 어디다가 내면 지원자 명단에 압둘 아지즈 같은 이름이 있냐? 요새는 사람인을 중동에서도 보냐?”

“사이언스 커리어 잡에 구인 냈어.”

“미친······.”

“잠깐만. 지원자 중에 카펜티어가 있는데. 이거 진짜 카펜티어인가?”

류영준의 손이 떨렸다.

“카펜티어가 누군데?”

“나 지금 좀 멘붕이니까 말 시키지 말아봐.”

류영준이 메일을 열었다.

혹시나 동명이인인가 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진짜다.

지방 줄기세포를 이식해 피부 조직 재건을 연구했다는 내용이 첫 문단에 나왔다. 정말 류영준이 아는 그 카펜티어였다.

“아니 우리 회사가 확실히 포텐셜이 있긴 하지만 진심인가? 이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테뉴어를 버리고 한국으로 온다고?”

“대체 누군데 그래?”

박주혁이 답답하다는 듯 대답을 보챘다.

“칼텍 교수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고.”

“······.”

박주혁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는 한 동안 어버버 하다가 물었다.

“그런 사람이 네 회사에 온다고?”

“나도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 지원 메일이 와있는데.”

“······. 나 노벨상 수상자랑 입사 동기 되는 거냐?”

“칼텍 정리하고 오시면, 입사일 기준으로는 네가 선배겠지. 직급으론 아니어도.”

“그 사람 한국 오면 기자들이, 두 유 노우 류영준? 하겠네.”

“으악!”

끔찍한 국뽕 상상에 류영준이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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