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생명의 플레이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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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철은 재선에 성공한 젊은 정치인이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면서 착착 실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명예욕에 목마른 그는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그리고 때마침 대전에 와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류영준을 만나러 올 수 있었다.
슈퍼스타의 피습이라는 자극적인 사건에 얼굴을 같이 걸어 팔 수 있다면 이름을 알리는 데 꽤 도움이 될 터였다.
김주철이 류영준의 병실을 방문한 목적은 그 정도였다.
늦은 시간이었던 만큼 기자를 데려다 요란을 떨기보다는 함께 사진을 찍어서 SNS에 홍보하는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주철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류영준의 병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건조하게 답했다.
머릿속에서는 로잘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일상 대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피트니스를 1점 소모했다.
‘어떤 거 같아?’
-위암이 있군요. 1기입니다.
‘절제하면?’
-전체절제술로 가야합니다.
저 나이대의 사람이면 잔병 하나씩 들고 있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시작부터 큰 병이다.
과연 김주철은 자신에게 위암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류 박사님. 몸은 좀 어떠십니까?”
김주철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우리나라의 과학의 발전을 위해서 밤낮없이 노력하시는 분한테 이게 무슨 변고입니까. 참 마음이 아프네요.”
김주철이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류영준의 곁에 와서 앉았다.
“괜찮습니다.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그렇게 심각하진 않더군요. 내일은 내시경을 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김주철에게 던진 미끼였다.
정치인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어떤 소재든 가져다 쓰니까.
“아. 그러시군요. 저도 최근에 내시경을 했습니다.”
김주철이 말했다.
“어떤 내시경이요?”
“위 내시경을 했습니다.”
빙고.
내시경을 했다면 심각한 위궤양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무슨 문제는 없던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하하. 사실 정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해서 해봤더니 위암 1기 판정을 받았어요. 근데 1기 정도니까 내시경 치료로 고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주철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재선으로 당선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 한참 바쁠 때이다 보니 당장 수술을 받지는 못하는데, 조만간 다시 내원해서 치료하려고 합니다.”
“내시경 치료요?”
류영준이 물었다.
“네.”
“담당의가 그렇게 말했나요?”
“아니요. 하지만 1기잖아요?”
“그럼 담당의한테 위를 얼마나 절제해야 하는지는 안 물어보신 건가요?”
“네······.”
류영준이 연거푸 물어보자 김주철의 표정에 약간의 불안감이 번졌다.
“한 번 여쭤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1기라고 전부 내시경 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요?”
“전체절제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암의 진행 정도가 높아질수록 위를 많이 절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위를 얼마나 절제하느냐는 암의 발생 위치에 달려있는 거거든요.”
김주철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의원님. 병원에서 암의 발생 위치가 어디라고 하던가요?”
“위, 위쪽이라고······.”
“제가 문진표를 보지 못했으니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위를 3등분해서 종양의 위치가 위쪽이면 전체절제술을 합니다. 위를 통째로 들어내고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입니다.”
김주철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위를 전부 들어내야 한다고?
“그게 무슨······. 1기인데 전체를 다 들어내야 한다고요? 1기인데요? 왜요?”
“암세포가 있는 위의 상단부만 절제할 경우에는 심각한 역류성 식도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럼 보통은 식사를 아예 하지도 못하죠. 그래서 위를 전체 절제하는 겁니다.”
“하, 하지만 의사는 그런 얘길 안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사정까지는 제가 모르겠습니다. 위치가 애매해서 고민 중이실 수도 있고요. 의사도, 의원님도 바쁜 직업을 가진 분들이니 서로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을 수도 있고요. 아무튼 저는 일반적인 경우를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
진료를 받았을 때는 재선 의원 모임에 늦은 시점이었다. 1기 위암은 완치율이 100 퍼센트에 육박한다는 얘기까지만 듣고 나왔다.
바빠서 그런다고, 나머진 나중에 전화로 듣겠다고 했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연락하는 걸 며칠 미뤄두었을 뿐. 근데 지금 듣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일수도 있다.
“담당의 선생님께 전화 한 번 드려서 여쭤보시죠. 위 절제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안색이 새파랗게 변한 김주철이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담당의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미 의사들도 퇴근했을 시간이지만 김주철은 너무 충격이 컸던 나머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다.
“여보세요. 선생님, 저 국회의원 김주철입니다. 지난번에 진료 받았던······. 예. 맞습니다. 네. 다름 아니라 혹시 제가 위 전체를 다 절제해야 하나요?”
김주철이 물었다.
그리고 잠깐 시간이 지난 후, 그의 손과 휴대폰이 힘없이 떨어졌다.
충격에 빠진 호흡이 약간 거칠어졌다.
류영준은 그 옆모습을 보면서 슬쩍 끼어들었다.
“전체절제를 해야 한다고 하시나요?”
“네······. 그게 좋을 거라고······. 하십니다······.”
“어쩔 수 없죠. 너무 염려하진 마십시오. 삶의 질이 좀 떨어지긴 하겠지만.”
류영준이 말했다.
“위를 들어내고 나면 음식물을 최소 30번 이상 씹고 20분 이상 천천히 드셔야할 겁니다. 위가 소화시키지 못하는 대신 입에서 많이 씹어야하는 거죠. 그리고 음식물 저장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교적 소량으로 하루 5, 6회 이상 자주 먹어야 하고요.”
“······.”
“조심하지 않으면 덤핑 증상이라고, 소화되지 않은 고농도의 음식물이 장으로 쏟아져내려가면서 복부 팽만과 경련, 구토, 설사 같은 증상들이 올 수 있고 운이 나쁘면 현기증이나 혼수상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식이요법은 반드시 조심해서 지켜야 돼요.”
“······.”
“그리고 식사 후에 30분 정도는 비스듬한 자세로 기대어 누워있어야 합니다. 음식물 통과 속도를 늦춰야 하거든요. 바로 일어나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식품의 종류도 유제품을 비롯해서 이것저것 제한해야하는 게 좀 있는데, 뭐 병원에서 알려줄 겁니다. 잘 관리하셔야 해요.”
김주철이 황급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서, 선생님.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요?”
“녹내장도 낫게 하신 분 아닙니까? 알츠하이머도 치료하겠다고 하셨고······.”
류영준은 잠깐 고민하는 듯 턱을 어루만졌다. 김주철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선생님······?”
“암세포의 표면에는 CD44라고 불리는 생체물질이 부착되어 있습니다. 일반 세포에도 있지만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많이 존재합니다. 일반 세포에 한 개 정도 있다면 암세포 표면엔 백 개 정도 있어요.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그걸 표적으로 삼아서 항암제를 개발하려고 했죠. 그럼 항암제가 백 배 효율로 암세포만 파괴할 테니까요.”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개발하다 알게 된 건데, 체내의 줄기 세포 계열의 아주 일부 세포들은 CD44가 암세포만큼 많았습니다. 100개는 아니어도 80개 쯤 있었죠. 그래서 항암제를 쓰면 그 세포들도 다 죽었고, 그게 꽤 치명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CD44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를 아직까지 제약업계가 만들지 못했어요. 가장 효율적인 표적 중 하나인데도 말이죠.”
“······.”
“그런데 암세포 중에서도 위암세포는 특이하게 CD44의 변이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변이체요?”
“CD44v8이라고 불리는 물질입니다. CD44에서 유래한 것인 만큼 숫자는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변이체라서 다른 세포들에는 존재하지 않죠.”
“그럼······.”
김주철이 간신히 류영준의 설명을 따라왔다.
“그럼 그걸로 약을 만들면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1기 정도의 위암은 아예 절제할 필요가 없게 될 겁니다. 약을 종양부에 도포하는 걸로도 치료할 수 있어요. 암세포 독성 효율이 매우 높아서요.”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개발 과정이 아주 까다롭습니다. CD44v8에만 특이적인 항체를 만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아직까지 과학계가 그걸 제약화하지 못한 겁니다. 전 몇 가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꽤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발은 시작도 못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류영준이 링겔 주사가 꽂힌 팔을 쓱 들어보였다.
“이런 꼴이니까요.”
순간 김주철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류영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좀 더 일찍 태어났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저한텐 줄기세포 기술도 있습니다. 의원님. 위를 전부 절제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조금만 버티시면 제가 위를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 때까지 제가 살아있을 수 있다면 말이죠. 누가 제 목숨을 노리는 것 같으니.”
“······.”
김주철이 이를 으득 물었다.
“류 박사님. 혹시 누구한테 원한 살 만한 짓을 하셨습니까?”
“올바르게 살려다보니 적도 생기더군요.”
“짐작 가는 사람이 있으면 얘기해주십시오.”
“짐작은 가지만 말 그대로 짐작입니다. 전 증거에 기반해 실증적으로, 법대로만 처리하고 싶습니다. 의원님께 함부로 이름을 알렸다가, 그 사람이 자기 몫 이상의 피해를 볼까봐 걱정되네요.”
“류 박사님 같은 사람을 건드렸다면 그만큼 힘이 있는 사람이겠죠. 내버려두면 은폐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김주철이 말했다.
“류 박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법대로만 하겠습니다. 철저히 조사해서 밝히도록 할 겁니다.”
***
불과 며칠 사이에 류영준을 만나고 간 사람들은 십여 명에 달했다.
그리고 정계에는 슬슬 흉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수사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정계에서 오래 묵은 구렁이들에겐 진부한 자극이다.
하지만 류영준이 준 것은 그보다 훨씬 막강한 모티베이션이었다.
류영준을 한 번 만나고 나온 사람들은 모두 이글거리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사이에 류영준은 좀 더 친밀하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다.
류지원은 소식을 듣자마자 오후 수업을 모두 째고 그대로 기차를 탔다.
장난기도 많고 항상 쾌활한 동생이었지만, 살인미수 같은 얘기에는 충격이 매우 컸던 모양이다.
그녀는 류영준의 병상에 엎드려서 펑펑 울었다.
“어쩐지 오빠답지 않게 갑자기 요즘 잘 나간다 싶었어!”
그녀가 흐느끼며 눈물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오빠 그냥 연구 하지 마. 그것 때문에 무슨 문제 생긴 거지? 유명해져서 이상한 놈들 꼬인 거잖아?”
“유명해져서라고 하긴 좀 그렇고, 적이 많아지긴 했지······.”
“적이 많아져? 오빠가?”
“응.”
“······. 그래. 오빠 좀 성격 더럽긴 하지. 이제 어디 갈 때 경호원 데리고 다녀. 내가 찾아보니까 아인슈타인도 경호원 데리고 다녔다더라.”
“그 사람은 독일계 유대인이면서 히틀러 집권 시기에 유럽에서 나치를 깠잖아. 그건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노빠꾸 인생이었고.”
“오빠도 만만치 않거든?”
“그리고 그 아인슈타인도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경호 뗐어.”
“아무튼.”
“됐고. 아인슈타인은 인종차별주의자에 사생활도 꽤 쓰레기였단다. 나랑 비교하지 마.”
“근데 엄마, 아빠는?”
“나 입원한 날 오셨는데 거의 매일 여기 붙어계셔. 지금은 식사하러 나가셨는데. 이따 네가 모시고 나가서 커피나 한 잔 사드려라.”
“영준!”
병실 문이 왈칵 열리면서 박주혁이 나타났다.
이혜원 변리사가 따라왔다.
“야, 이 미친놈아, 뭐하는 거야 여기서? 어떻게 된 거야?”
박주혁이 호들갑을 떨며 다가오다가 류지원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지원이 오랜만이네. 학교 잘 다니고 있어?”
“네. 헤헤.”
“수고가 많다.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 네 오빠, 이 멍청이 때문에 여기까지 오고. 에휴.”
박주혁은 류영준을 몇 초간 쏘아보았다.
그가 말했다.
“아니 네가 뭔 김정남이세요? 좀 유명해진다 싶더니 아주 주체를 못하네? 무슨 권력 암투 벌이는 재벌 3세도 아니고 암살은 진짜 개오바야, 인마.”
박주혁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막나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당했지. 근데 변리사님은 왜 데리고 왔어?”
“우수 고객이고 밥줄인데 네가 끊기면 쟤는 누가 먹여 살리냐?”
박주혁의 말에 이혜원이 약간 민망한 듯 웃었다.
“그래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퇴원하면 또 일 잔뜩 드릴 테니까 변리사님도 지금 많이 쉬어두세요.”
“윽······.”
이혜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박주혁이 끼어들었다.
“야. 류영준. 내가 사설 경호업체 좀 조사해봤어. 네이버에 검색하면 한 백 개 나오는데 그 중 절반은 유령회사고 절반은 실력이 형편없어. 진짜 훈련받은 경호원이 아니고 알바생 쓰는 데도 많아. 혹시 네가 또 호구같이 그런 데다 돈 갖다 바치고 어디 골목에서 칼 맞을까봐 내가 엄선해왔다.”
“어딘데?”
“케이캅스.”
“······. 로봇수사대?”
“너 그거 지원이는 못 알아듣는 개그다. 약간 아재 냄새나니까 조심해.”
실제로 류지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이럴 수가······.
“아무튼 케이캅스는 믿을만한 곳이니까 그쪽에 사설 경호 부탁해. 아니면 정부에 보호 신청 하거나.”
“알았어. 고맙다.”
“몸조리 잘 하고. 에휴. 형이 너 때문에 고민이 많다.”
박주혁이 혀를 쯧 차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