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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생명의 플레이어 (1) (196/301)

39화.  생명의 플레이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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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총회가 끝났다.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이탈해 류영준에게 달려왔다.

사방을 둘러싸고 질문을 퍼부어댔다.

“류 박사님! 알츠하이머 치료제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임상은 언제 들어가게 됩니까?”

“녹내장 추가 임상도 진행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쪽에는 류 박사님은 참여하지 않으십니까?”

류영준은 최대한 짧게 대답해주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왔다.

가드들이 뒤따르는 기자들을 막아주었다.

하지만 류영준은 곧 또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이번엔 주주들이다.

하지만 주가 상승 덕분에 돈 좀 벌었다고 감사를 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그들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류영준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류 박사님, 진짜 고맙습니다.”

“제가 한쪽 눈 녹내장이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치매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치료제 빨리 개발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치매는 정말 너무 슬프고 힘든 병이에요. 가족들한테도요.”

“류 박사님만 믿습니다.”

“류 박사님. 죄송하지만 혹시 척수 신경 쪽으로는 아직 안 되는 건가요?”

“혹시 장기 재생으로는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 남편이 간이식을 기다리고 있어서······.”

“혹시 레비소체 치매에도 이번 치료제가 효과가 있을까요? 제 동생이 지금 레비소체를 앓고 있거든요.”

“줄기세포랑은 다른데 혹시 암은 치료하실 수 없을까요?”

“저희 와이프 대장암 때문에 장 절제하고 나서 두 시간마다 화장실 갑니다. 혹시 이것도 어떻게 못해주실까요?”

“······.”

불과 몇 달 사이에 녹내장을 치료하고 알츠하이머도 치료한다고 하니, 어떤 병이든 다 고쳐줄 것처럼 보였다.

환자를 주위에 둔 사람들이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연구자한테라면 이렇게까지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류영준의 업적은 질이 다르다.

이 사람이라면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몰려든 이들이 온갖 심각한 질병들에 대해 해법을 구하고 있었다.

어쩐지 숙연해지는 기분이다.

“빠른 시일 내에 그 질병들도 모두 잡겠습니다.”

류영준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일단 해달라니까 해주는 건데, 너 진짜 괜찮냐?”

식사 후, 카페에서 박주혁이 말했다.

“뭐가?”

“회사랑 상의도 안하고 계열사 만드는 걸 네 맘대로 이렇게 진행해도 되냐는 거지.”

“괜찮아. 안 해주면 뭐 어쩔 거야. 외통수라서 상관없어. 감정 상하는 걸 걱정할 사이도 아니고.”

“허······. 주금납입은 잘 했고?”

“응. 독감 신약 팔아서 잘 끝냈어. 그 때 내가 너한테 빌린 돈도 갚았지? 요즘 하도 정신없이 바빠서 헷갈리는데.”

“신약 값 들어왔다던 날에 다 갚았어.”

“다행이네. 아직 꽤 많이 남았는데 주혁이 차나 한 대 뽑아줄까. 나 도와준다고 항상 고생하는데.”

“됐어 인마. 근데 너 묘하게 좀 변한 거 같다?”

“뭐가 변해? 혹시 내가 혹시 돈 벌었다고 띠껍게 행동했어? 차 얘기한 거?”

류영준이 물었다.

“아니. 그건 진짜 그냥 고마워서 그런 거 알아. 말이라도 그렇게 안 하면 네가 배은망덕한 새끼지. 내가 영준이 코 찔찔이 때부터 얼마나 챙겨줬는데.”

“그럼 뭐가 변해?”

“그런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뭔가 좀······.”

박주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적당한 말을 찾아 헤매다가 말했다.

“영악해졌다고 해야 되나? 회사 경영진들 다 통수 치고 설계 오지게 짜는 게 어째 머리 좋은 싸이코패스 같은 느낌인데.”

“뭔 개소리야.”

“개소리였다. 미안.”

류영준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았다. 그가 잠깐 생각하다 물었다.

“혹시······. 진짜로 나 좀 변한 거 같아?”

“어.”

박주혁이 말했다.

“내가 아는 류영준은 은근히 소심한 찐따 같은 면모가 있거든? 이렇게 과감한 일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 아냐. 너 고딩 때 나랑 야자 째고 피씨방 갔을 때 도저히 쫄려서 게임 못하겠다고 다시 학교 간 거 기억 나냐?”

“그건 너무 옛날이잖아. 그 땐 어렸어.”

“근데 나한테 네 이미지는 그런 거란 말이야. 그래서 에이젠 같은 거대 기업 경영진들 상대로 이런 과감한 계획을 짜고 그걸 실행에도 옮기는 게 좀 낯설긴 해.”

“음.”

“물론 똘기도 있어서 가끔 빡돌면 이상한 짓 저지르곤 했지만. 대학교 때도 너네 지도교수랑 피터지게 싸우고 대자보도 붙이고 난리 쳤잖아. 근데 그래도 이번 건 뭔가 심한 느낌?”

“······.”

“왜? 신경 쓰이냐? 괜찮아. 류영준이 변해 봤자지 뭐. 독한 척 해봤자 알맹이는 찌질한 거 다 알고 있으니 상관없다. 아, 잠깐만. 나 전화 한 통만.”

박주혁이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통화할 때 항상 서서 왔다갔다하는 버릇이 있는 놈이다.

“······.”

류영준은 그 모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변했다고?

옛날, 연말 세미나 때 박소연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오빠 좀 변한 것 같다’고.

그 때 박소연은 류영준에게 화가 나있는 것 같다고 했다. 강아지처럼 사람 좋아하고 헤실헤실 웃고 다니던 착한 사람이 변했다고 했다.

근데 20년을 넘게 봐온 친구의 입에서 이런 말을 또 들었다.

이번엔 싸이코패스 같은 느낌이란다.

류영준은 로잘린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로잘린 Lv. 4

-전이 상태 : 심장 (2%), 간 (46%), 뇌 (7%), 신장 (13%), 척수 (4%)

-동기화 : 11%

-세포 피트니스 : 2.5

-유전자 발현 조절 : 없음.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레벨이 하나 더 올라가 4가 되었다.

특별한 기능이 늘어나진 않았지만 맘에 걸리는 값도 있다.

11 퍼센트의 동기화.

로잘린은 독감을 멸종시켜버리는 방법을 류영준에게 알려준 적 있었다.

신종 플루를 모체로 한 바이러스를 퍼뜨려 전 세계 인구를 감염시키는 전략이었다.

수만에서 어쩌면 수백만에 이르는 인구가 죽을 수 있었지만, 3년 독감 사망자 수 이내이므로 손익분기점을 쉽게 넘을 거라고 했다.

그 후엔 모든 인류가 독감에 저항성을 갖게 되므로 독감 바이러스는 절멸할 거라고.

진짜 싸이코패스가 할 법한 발상이다.

어쩌면 로잘린과의 동기화 정도가 강해짐에 따라 성격이 영향을 받게 된 것 아닐까?

인간의 정신은 마치 물리 세계를 초탈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역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아니다.

‘성격은 유전자에 영향을 받는다.’

캠브릿지 대학의 연구팀이 프랑스, 미국 대학들과 협력하여 네이처에 낸 논문이 있다.

‘공감 능력’의 유전자적 요인을 분석한 논문이었다.

무려 46,0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감 능력을 평가하고, 그들의 유전자 전체를 분석했다.

그리고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에게서만 22개 유전자들의 특별한 위치의 변이를 발견했다.

반대로 그 변이가 없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결핍된다는 것이다.

공감능력은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 셈이다. 싸이코패스한테도 유전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게다가 사회 고위직으로 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위직 진출 과정’의 험난함이 공감능력이 낮은 사람들을 가려 뽑았다는 게 과학계의 일반론이다.

약간 거친 비유를 하자면,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고 밤에 불러내는 친구를 거절하고 수험 준비를 할 수 있는 이들이 합격한다는 식이다.

그리고 류영준은 이제 에이젠의 임원이고, 에이바이오의 CEO가 될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상당한 고위직에 해당한다.

그 과정에서 해온 일들은 지광만을 협잡하고, 회사가 모르게 거대한 일들을 저질러버리고, 막대하게 치솟는 유명세를 이용해 경영진이 대처 못할 상황으로 끌고가는 것이었다.

‘내가 원래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사람이었나?’

계획력이나 지능의 문제를 떠나서 대담성 같은 성격 차원에서 말이다.

어쩌면 이게 로잘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여태까진 그냥 직접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고만 여겼지만, 사실 류영준이 생각한 게 아니라 로잘린이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밀어준 거라면?

류영준은 상태창을 다시 살펴보았다.

-전이 상태 : ······ 뇌 (7%) ······.

오싹

소름이 돋았다.

“야! 이혜원 왔어.”

카페 밖으로 나갔던 박주혁이 이혜원 변리사와 함께 돌아왔다.

이혜원은 얼굴이 좀 해쓱해져 있었다.

“근데 애가 얼굴이 반토막이 나있네. 요즘 일 많냐?”

박주혁이 이혜원에게 물었다.

“네. 일복에 치여 죽을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축 처진 목소리로 인사했다.

“넌 또 왜 갑자기 우울해져 있어?”

“그런 게 있어.”

“허, 이상한 놈일세.”

류영준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괜찮아.”

그렇게 겁내지 않아도 된다.

일단 안정적으로 연구할 자리를 잡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고, 원했던 약들을 개발하고 있으니까.

잘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혹시 모르니까 동기화 모드는 한 동안만 가급적 자제하면서, 혹시 어떤 다른 부작용이 있는지 지켜보면 된다.

“그럼 이제 일 얘기나 하자고.”

박주혁이 이혜원을 힐끔 쳐다보았다.

“혹시 더 맡기실 게 있나요?”

이혜원이 물었다.

이젠 없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눈빛이다.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에이젠에서 제 6 연구소의 전담 특허법률사무소를 통해서 출원한 특허가 있습니다. 회사 지분이 꽤 높게 책정돼있는데, 그걸 새로 창설할 회사 에이바이오로 옮길 겁니다.”

“어떤 건인데요?”

“프로바이오틱스예요. 에이바이오에서 쓸 겁니다. 일단 준비만 해주세요. 에이젠 경영진은 아직 모르는데, 제가 나중에 거래해서 받아낼 겁니다. 그 때 본격적으로 진행시키면 되니까요.”

“네 회사 지분으로 그걸 받을 거야?”

박주혁이 물었다.

“이거랑 주식. 그리고 하나 더.”

***

모든 대출을 갚았다.

제 3 금융의 사채는 물론이고, 부모님의 빚과 학자금 대출까지 전부 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 류영준은 경부선 기차를 탔다. 본가인 대전으로 가기 위해서다.

성공해서 금의환향하는 것은 수많은 청년들의 꿈이다. 류영준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이 정도로 성공할 줄은 몰랐지.’

돈 많다고 함부로 쓸 생각은 없지만 부모님이 사실 집 정도는 사드릴 생각이었다. 이번에 내려가서 부동산을 좀 보고 다닐 작정이다.

자리에 앉은 류영준은 휴대폰으로 사이언스에 접속했다.

너드 기질이 있는 열성적인 과학자들은 쉬는 시간에도 논문을 읽는 경우가 꽤 있다.

그림 그리는 걸 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쉬는 시간에도 펜과 노트를 들고 있으면 뭔가를 끄적거리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소사이트레이트 디하이드로지네이즈 1 (IDH1) 이라는 유전자에 대해 다룬 논문이 나왔다.

세포 내의 물질대사와 에피지네틱스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다.

그리고 신경교종 (뇌와 척수에서 발생하는 종양)에서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많이 발견된다.

띠링!

논문에 집중하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동기화 모드 : IDH1에 대해 분석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량 : 0.1/1초

류영준은 메시지창을 닫았다.

한 동안 동기화모드를 자제하면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지켜볼 요량이다. 안 쓰면 동기화 값이 떨어지거나 할 수도 있으니까.

-왜 안 누르시죠?

메시지가 떠올랐다.

류영준이 손이 굳었다.

어떻게 된 거야? 동기화 모드를 쓰지도 않고 조언도 쓰지 않았는데 메시지가 날아오다니?

-지금 로잘린의 레벨은 4입니다. 당신이 지금처럼 논문을 읽거나 실험을 하는 등 연구에 집중하면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며 그곳의 로잘린 세포들이 캐스케이드를 일으킵니다. 그로 인해 제 의식이 발생하기 위한 자극의 역치를 넘습니다.

-동기화 메시지가 떠오를 때, 피트니스에 여유가 있으면 항상 버튼을 누르셨는데 이번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군요. 이유가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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