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독립 영역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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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이전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어떻게 죽었을까?
아르키메데스가 살던 도시 시라쿠사를 함락한 로마 군인들이 그의 집에 쳐들어왔을 때였다.
땅바닥에 아르키메데스가 그려놓은 도형을 군인들이 밟자 아르키메데스는 ‘건드리지 마시오.’ 하고 말했다.
수학이라곤 더하기 빼기만 간신히 할 줄 알던 군인은 그것들의 가치를 당연히 모른다.
그래서 패전국 시민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분개해서 그를 칼로 찔러 죽였다.
적어도 길형준의 눈에는 지금 보이는 광경이 그 일과 유사해보였다.
일단 류영준은 아르키메데스 수준의 눈치 없는 놈인 게 확실하고, 심성열은 어떨까.
은근한 긴장감이 가볍게 흐른 후.
“하. 하하하하!”
갑자기 심성열이 웃음을 터뜨렸다.
닳고 닳은 구렁이 같은 정치인의 머릿속에서 계산이 다 끝났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 류 박사님. 아무래도 제가 요즘 나이가 들다보니, 당 내에서 영향력이 좀 줄어드나 싶어서 마음이 조금 조급했나봅니다. 죄송합니다.”
그가 류영준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심성열은 류영준의 캐릭터를 단숨에 꿰뚫어보았다.
강력한 연구윤리의 화신.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과학의 결정체.
그런 존재라면 다른 정치인하고도 어차피 결탁하지 않을 거다.
심성열의 경쟁자들도 그를 쉽게 이용하지는 못할 거라는 뜻이다. 그럼 지금 조바심을 내거나 화를 낼 필요도 없다.
한 번 숙이고 들어가서 그의 가치관에 맞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환심을 산다.
앞으로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커질 과학자다. 지금 그에게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켜두면 언젠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과학은 정치와 독립되어야지요. 류 박사님의 연구 성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뭐 그럴 생각은 저도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애국하는 마음에 류 박사님 같은 뛰어난 과학자를 지지해주고 싶었던 것뿐이죠.”
심성열이 말했다.
“······.”
“원래 과학기술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 나라에 석유가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사람들 머리 말고는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게 없어요. 하하하. 이번에 류 박사님 덕분에 한 30년 먹거리는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제가 류 박사님한테 이것저것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스타 과학자 같은 실언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가 류영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류 박사님이 싫으시면 언론에 얼굴 비추고 그런 거 안 하셔도 됩니다.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은 연구 하시고, 부족한 것 있으면 얘기만 하십시오. 제가, 이 심성열이가 손닿는 데까지 전적으로 지원해드리겠습니다.”
심성열은 자신의 명함을 류영준의 손 안에 넣어주었다.
“근데 저희랑 같이 안 가시더라도 환자분 얼굴 보러 한 번 가시기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게 류 박사님이니까, 환자분도 류 박사님한테 궁금한 게 많을 테고요.”
“네. 알겠습니다.”
원래 갈 생각이긴 했다.
근데 이 정도로 국민적인 관심이 드글드글 끓으면 어떻게 갑자기 찾아가겠는가. 어쩌면 환자한테도 실례일 수도 있다.
“나중에 따로 가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 저는 지금 찾아갈 일정이었으니, 제가 다녀간 후에 좀 조용해지거든 그 때 가시지요.”
심성열이 말했다.
***
류영준이 받은 스포트라이트만큼 많은 인터뷰 요청이 첫 번째 녹내장 완치 환자 손수영에게도 들어왔다.
하지만 손수영은 그 중 대부분을 거절했다.
녹내장을 정복했다는 희소식은 모든 의약업 종사자들을 고무시켰으나, 손수영은 그렇게까지 기쁘지는 않았다.
그 역사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죽어가는 자신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떠나는 모습이라도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영혼도 팔겠다 생각했지만, 치료가 되고나니 또 욕심이 다르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녀는 매일 면회 시간이면 아기 옆에 서서 파랑아, 파랑아, 하며 주먹만 한 딸을 지켜보았다.
죽어가는 딸을 회복되는 시력에 최대한 오래, 많이 담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면회 시간에 딸을 충분히 볼 수가 없었다.
심성열이라는 거물 정치인이 이곳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의료진들,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손수영 씨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신생아 중환자실에 계신데요······.”
임상 시험을 담당했던 의사 성요한이 대답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왜요?”
“얼마 전에 아기를 낳으셨는데, 따님이 몸이 안 좋아서요.”
“아이고. 녹내장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바로 또 아기가 아파서 어쩝니까. 쯔쯧.”
심성열이 혀를 찼다.
“안타깝죠. 면회 시간은 열두 시 반 까지니까 그 후에 수영 씨 만나시죠. 이제 20분 남았네요.”
성요한이 말했다.
“음.”
심성열은 손목시계를 힐끔 보곤 말했다.
“저희가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런데, 저희가 그리로 가면 안 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신생아 중환자실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요? 흠.”
심성열은 생각을 바꿨다.
녹내장 치료 같은 희소식에 자신의 얼굴을 담는 일이다.
거기 굳이 중태에 빠진 신생아 얘길 더해서 부정적인 에너지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럼 수영 씨를 잠깐 불러내주시겠습니까? 면회는 나중에 또 하면 되지 않아요?”
“······.”
성요한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며 답을 못하자 심성열이 보챘다.
“어서 불러주세요. 손수영 씨 한 번 보고 저희도 가야 하니까.”
고민에 잠긴 성요한의 뒤로 병원장 이준혁 교수가 나타났다.
그는 허겁지겁 이쪽으로 뛰어와서는 심성열에게 인사했다.
“의원님! 언제 오셨습니까. 오시면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시지 않고······.”
“하하. 괜찮습니다. 바쁘신 분 제가 함부로 불러내고 그러면 안 되죠. 근데 제가 여기 온 게 다름이 아니라 녹내장 완치시킨 환자분 한 번 뵙고 싶어서인데요.”
“네. 얘기 들었습니다. 성 선생, 환자분 지금 어디에 계시지?”
이준혁이 성요한에게 물었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그래요? 그럼 얼른 환자분 모셔와요.”
“······. 알겠습니다.”
성요한이 힘없이 대답했다.
그는 병원장과 심성열을 뒤로하고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손수영은 누워서 색색 호흡하는 딸의 발가락을 만지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수영 씨. 저······. 손님이 오셨는데요.”
성요한이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면회 시간에는 절대 누구 안 만난다고 했잖아요.”
“네. 그렇죠. 하지만······.”
성요한이 우물쭈물했다.
“누군데요?”
“국회의원 심성열이라는 분입니다. 병원장님이 잠깐 나오시라고······.”
“휴우······. 알겠어요. 가요.”
손수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요한의 난처한 표정을 보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심성열은 병원장 이준혁과 손수영을 데리고 그녀의 병실로 이동했다.
손수영은 자신의 침대에 앉았고, 그 뒤에 심성열과 이준혁이 함께 나란히 서서 웃는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사진을 찍고, 기자들 앞에서 심성열이 짧은 연설과 쇼맨십을 보이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제는 면회 시간이 지났다.
사진 촬영이 끝난 후, 심성열과 병원장, 기자들은 우르르 흩어져 점심을 먹으러 사라졌다.
시간은 흘러서 저녁 여섯 시.
두 번째 면회 타임이다.
미리 저녁을 먹은 손수영은 면회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입구에서 대기할 요량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복도에서 성요한과 함께 얘기하고 있는 한 남자를 마주쳤다.
“아! 마침 오셨네요.”
성요한이 손수영을 보고 반색하며 남자에게 소개했다.
“류 박사님, 이쪽이 손수영 환자분입니다.”
“류 박사님?”
손수영의 눈이 커졌다.
이번에 워낙 떠들썩했으니 그녀 역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류영준이 인사했다.
이번에는 손수영도 진심으로 반가웠다. 눈이 회복된 이후로 찾아온 외부 손님 중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이다.
손수영이 그의 손을 와락 거머쥐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손수영이 연신 감사의 인사를 거듭했다.
“선생님 덕분에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하하. 저 말고 여기 의사 선생님들께 감사 드려야죠. 시술을 진행한 건 의사 선생님인데요.”
성요한은 깜짝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씀을. 아니에요! 선생님이 만들어주신 줄기세포 시신경이 다 한 건데요.”
“두 분 모두 제 은인이에요.”
손수영이 말했다.
“덕분에 요즘 매일 저희 딸 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앞으로의 진행이 전임상 데이터와 일치한다면, 지속적으로 시력이 회복될 겁니다. 한 달 째 정도가 되면 녹내장이 오기 전과 비슷한 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류영준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퇴원하시면 따님하고 같이 경치 좋은 데 놀러나 가시면 되겠네요.”
“하하······.”
손수영이 쓰게 웃었다.
“그러면 좋겠지만, 저희 딸은 몸이 좀 안 좋아서······.”
“몸이 안 좋다고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옆에서 성요한이 말했다.
“어디가 아파서요?”
성요한은 아기의 담당의는 아니었지만 손수영을 돌보면서 그녀의 딸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알게 되었다.
“지속성 폐고혈압증입니다.”
“······. 그렇군요.”
류영준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손수영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아요. 딸 애 얼굴 볼 수 있게 된 걸로도 만족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는 이제 면회 시간이라서 가봐야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손수영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류영준이 성요한에게 물었다.
“아기 담당의 좀 만나볼 수 있을까요?”
***
아기의 담당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다.
류영준은 그를 보러 병실로 이동했지만 출입 제한 때문에 들어가지는 못했고 밖에서 기다렸다.
거리는 꽤 멀었지만 유리창으로 손수영과 그녀의 딸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에 더해 막 떠오르는 메시지창도.
<동기화 모드 : 신생아 지속성 폐고혈압을 분석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 : 0.4/1초>
달칵.
류영준이 버튼을 눌렀다.
신생아 폐고혈압은 폐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수축하면서 생기는 질병이다.
아기가 출생하여 스스로 호흡을 하게 되면 폐혈관이 부드럽게 이완되면서 혈관으로 산소를 운반해야 한다.
그런데 몇몇 원인으로 인해서 자궁 안에 있을 때처럼 혈관이 빡빡한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혈관이 수축해있으면 당연히 혈관 내부의 공간이 좁아지니까 똑같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는 혈액량이 떨어지고 혈압이 높아진다.
그래서 폐고혈압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혈류량의 감소로 인한 산소 부족이다.
혈액이 충분히 산소를 운반하지 못해서 죽을 수도 있다.
보통은 질산 가스를 투여해서 혈중 산소 농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치료 성공률은?
약 70퍼센트 정도다.
상당히 낮은 편이다. 치료받은 열 명의 신생아 중 셋은 죽는다는 뜻이니까.
“안녕하세요.”
30대 후반의 깐깐하게 생긴 의사가 나타났다. 그녀는 팔짱을 끼면서 류영준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파랑이 담당하고 있는 홍주희라고 합니다. 절 보자고 하셨다고요?”
“네.”
류영준이 답했다.
“아기가 지속성 폐고혈압증이라고 들었습니다. 질산 가스로 치료중인가요?”
“······.”
“예후가 어떤가요?”
“환자 개인 정보는 얘기할 수 없어요. 원래는 제가 지금 밖으로 나오는 것도 안 되는 시간이에요. 근데 류 박사님이 산모 분한테 많은 희망을 주신 걸 알고 있어서 고마운 마음에 잠깐 나온 거예요.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환자 개인 정보는 얘기할 수 없어요.”
“하나만 알려주세요. 질산 치료에 실패했나요?”
홍주희는 대답 없이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며 류영준이란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류영준이 일으킨 파장은 성모 병원 내에서 큰 이슈가 되어있었다.
다들 의사들이다. 류영준이 만든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고, 홍주희는 유독 감상이 더 컸다.
그녀는 눈이 회복된 손수영을 매일 봤기 때문이다.
자기 딸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많이 보고 싶다는 이유로 면회 시간마다 칼같이 찾아와서 덜 회복된 눈으로 아기 곁을 지키는 손수영.
중환자실에서 아기들을 돌보면서 하루에 두 번씩 목격하는 그 광경에는 사람의 가슴 속을 짓무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실패했어요······. 질산 가스 치료는 실패예요.”
손수영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제 방법이 없어요······.”
홍주희가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져있었다.
“홍 선생님.”
류영준이 말했다.
“혈관 내피세포에서 일차적으로 생성되는 아라키돈산의 대사산물 중에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있습니다. 아라키돈산에 사이클로옥시제네이즈가 작용해서 생기는 것이죠. 본래 인체의 혈압이 높고 혈류량이 부족할 때 분비되는 물질로, 지프로틴과 연결된 프로스타글란딘 리셉터에 신호를 전달해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해서 혈압을 낮춥니다.”
“······. 네?”
홍주희의 얼굴에 당혹감이 번졌다.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류영준이 말했다.
“고혈압 치료제 중 하나인 베라텍스는 프로스타글란딘의 구조를 정확히 똑같이 모방해서 생합성한 약입니다. 제약회사 벨로스가 약간의 적자를 보면서 개발한 약이죠.”
“······. 베라텍스를 투여하자는 말씀이세요?”
“뭘 걱정하시는지 압니다. 아직까지 신생아에게 시도된 적이 없는 약이죠. 제가 알기로는 다섯 살 소아에게 사용된 적 있고, 그게 가장 어린 환자의 임상 데이터입니다. 만약 홍 선생님이 저 아기에게 베라텍스를 투여한다면 신생아에게 임상을 진행한 첫 번째 사례가 돼요. 그게 부담스러우신 거죠?”
“······.”
“하지만 지금 저 아기에게 쓰고 있는 질산 가스 치료도, 누군가가 그 첫 번째 사례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일반적인 치료술이 되어있는 겁니다.”
“······.”
“저는 의사가 아니지만, 제약을 하는 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베라텍스보다 더 안정적인 약이 없습니다. 본래 신생아의 몸에서 발생해야하는 물질과 구조가 정확히 동일한 천연물이니까 부작용도 전혀 없습니다.”
홍주희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분명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신생아에게 시도된 적 없는 약을 세계 최초로 임상 수행한다는 게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과감하고 진취적인 의사라면 산모에게 실험적인 치료법을 써보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했을 수도 있지만, 홍주희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매일같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손수영의 옆얼굴. 이제 서서히 빛이 스며들고 있는 눈과, 아직도 숨을 이어가며 기적 같은 생명을 꼭 쥐고 버텨내는 그 아기.
그 둘이 만들어내는 그림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매점에서 산 빵으로 식사를 때울 때도, 의자에 앉아서 선잠이 들 때도, 간신히 받아낸 오프 날 아침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도.
그리고 어쩌면 이 일이 끝난 후에도 생각이 날 것 같았다.
‘부모가 먼저 지치면 안 된다면서 설득했지만 어쩌면 지쳐 있었던 건······.’
홍주희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선생님도 그 동안 저 아기를 살려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셨겠죠.”
류영준이 말했다.
“······.”
“저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이 어떤 곳인지. 하루 다섯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겠죠. 퇴근은 일주일에 겨우 두 번. 그것도 일과 후에 간신히 하고 계실 테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산모도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아기가 죽는다 해도 말입니다.”
“······.”
“하지만 홍 선생님은 정말 그 결과에 만족하실 수 있나요?”
홍주희가 참았던 눈물을 뚝 흘렸다.
수개월에서 1년씩 돌보는 아기들은 때때로 자기 자식 같다. 출생 이후 친엄마보다도 홍주희의 손에서 돌보아진 시간이 더 많은 아기들이다.
“어떻게······. 어떻게 만족하겠어요. 내가 돌본 애가······. 죽는데······.”
홍주희가 두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류영준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조금만 용기를 내주세요. 베라텍스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산모를 설득해서 마지막 수단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해보자고 얘기해주세요. 저렇게 보내면 안 되는 아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