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프로바이오틱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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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어서 혈액 속의 당분이 많아지면 사람의 췌장은 인슐린이라는 물질을 분비한다.
인슐린은 혈관을 타고 인체 곳곳을 순환하면서 세포들에게 ‘당분을 삼키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럼 세포들은 혈액 속의 당분을 흡수하고, 결과적으로 혈당이 내려간다.
당뇨糖尿는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는 거다. 때문에 결국에는 소변으로 당이 배출되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제 1형 당뇨는 혈당이 높은데도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경우다.
제 2형 당뇨는?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인체 곳곳의 세포들이 인슐린의 명령을 안 듣는 상태다.
이걸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인슐린 저항성의 분자생물학적인 원인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방금까진 그랬다.
‘이제 이유를 알겠어.’
로잘린이 보여줬다. 이건 면역 반응과 관련되어 있었다.
면역 시스템은 원래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적들을 제거하기 위한 군인들이다.
그런데 어떤 환자들의 몸에서는 오작동을 일으켰다.
이 면역 세포들은 약간 정신이 나가버려서 아군에 해당하는 지방 조직이나 근육, 간, 심지어는 뼛속으로 침투했다.
그리고는 각 기관의 세포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인슐린 신호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게 2형 당뇨의 원인이었다.
그럼 클로로토니스나 아커만시아 같은 장내 미생물들은 어떻게 당뇨를 억제할까?
그들은 인체 세포가 아니라 박테리아다. 원래 면역 세포들이 진짜로 관심을 갖는 대상인 것이다.
아무리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부를 점거한 막장 군인들이라 해도 북한이 쳐들어오면 일단 막긴 해야 하지 않겠는가?
클로로토니스가 내뿜는 생체 물질 에이먹Amuc은 면역 세포들이 환장하는 유인제였다.
에이먹은 면역 세포들에 들러붙어서 그들의 활성을 조절하고, 면역 세포들은 더 이상 엄한 데 들러붙어서 인슐린 신호를 막아버리지 않게 되었다.
클로로토니스는 장내 점액층에 숨어서 에이먹을 소포에 싸서 퐁퐁 뿜어내는 것만으로 인체의 면역 세포들이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교정되는 것은 인슐린 저항성이며, 당뇨가 치료된다.
“시바 이거 실화인가······.”
20세기 이래 의학계의 최고 골칫덩이 중 하나.
그 누구도 원인을 명확히 몰랐던 2형 당뇨병의 기작을 알아버렸다.
너무 거대하고 충격적인 지식을 한 순간에 흡수해버렸더니 뒷골이 다 얼얼하다.
이거 이제 건강 보조 식품 정도가 아니잖아?
헬스케어 산업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서 건강을 유지해서 질병 발현을 막는 게 베스트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개발할 프로바이오틱스는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환자까지 치료해버릴 수 있다.
그럼 의약품이냐?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거의 모든 의약품은 장기 복용에 대한 독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환자’가 일정 용법으로 투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하지만 이 프로바이오틱스는 건강한 사람이 매일 투여해도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비타민C처럼 말이다.
애초에 건강한 사람의 몸에는 아커만시아나 클로로토니스 같은 균주들이 ‘있는 게 정상’이다.
당뇨 환자의 몸에서 없어진 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의 몸에 이 프로바이오틱스를 투여하면 장내에 자리 잡을 빈자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배출될 뿐이다.
즉, 헬스케어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이제 의약품도 아니고 헬스케어도 아니다.
시중의 2형 당뇨 치료제들을 전부 은퇴시켜버릴 만큼 효능이 압도적이지만, 환자든 건강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항시 복용해도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천연 건강증진제.
아니 뭐 이딴 게 만들어질 수 있지?
거의 이 바닥 생태계 파괴자 수준이다. 2형 당뇨 한정으로 보면 진짜로 제약 산업의 베스나 가물치다.
류영준은 최명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이사님! 전화 받았습니다!
최명준이 힘차게 전화를 받았다.
“······.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이사 아닙니다.”
-하하하. 곧 되실 거잖아요. 저는 전부터 류 박사님이 크게 될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류 박사님. 정말 축하드립니다!
······. 이 아저씨 너무 속보이는데.
역겹거나 하진 않지만 좀 웃긴 게 사실이다.
역분화 줄기세포 이전에는 그렇게 무시하다가 이렇게 돌변하다니.
“알겠습니다. 근데 최 부장님. 혹시 인도 마드라스 대학에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를 요청한 건 언제쯤 받을 수 있나요?”
-아마 닷새 안에 올 겁니다!
최명준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닷새?
류영준이 깜짝 놀랐다.
미생물을 수입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까다롭다.
단순히 그 쪽에서 택배로 보내주고 이쪽에서 받는 게 아니다.
일단 장기 운송 과정에서 미생물들이 죽지 않도록 동결 건조하거나 고체 배지에 접종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미생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전자 변형은 없는지, 정말로 안전한 것인지 따위에 대해서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에 서류를 잔뜩 내야한다.
수입 신고서, 수입 계약서, 운반 계획서, 안전 관리 계획서, 개요서, 사용 계획서, 인보이스 따위들 말이다.
정부에서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끔찍할 정도다.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미생물들은 공항 창고에 갇힌 상태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리고 그 허가를 기다리던 중에 믿을 수 없지만 ‘장기 보관 처리된’ 미생물이 수명이 다해 그냥 죽어버리는 황당한 사건도 가끔 일어난다.
그 정도로 미생물 수입 과정의 시간 소모량은 심각하다.
근데 지금 최명준이 뭐라고 했지?
“닷새 만에 온다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시면 닷새 만에 그게 되죠? 정부에 신고해야 하잖아요?”
-네. 그렇죠. 근데 저희가 누굽니까? 에이젠에서 미생물을 가장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 중 하나 아닙니까. 저희 정도 되면 그 동안 정부 부처에 수천 번씩 미생물들을 수입 신고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부 다 아무 문제도 없었거든요. 신뢰도 자체가 남다르다는 것이죠. 여기 더해서 저희 내부에서도 자체적으로 안전성 심사를 하고 있고, 그걸 정부에서도 알기 때문에 저희 것은 심사가 꽤 빠른 편입니다. 특히 이번 건은 중요한 일이라고 제가 좀 우선적으로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요.
최명준이 자기 피알을 줄줄 쏟아놓았다. 무슨 면접 보는 기분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심사가 빨리 되겠네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럼요. 심지어 수입 신고 서류들은 이미 저희가 밤을 새워가며 다 써서 제출했기 때문에 허가는 모레 즈음에는 떨어질 겁니다. 마드라스 대학에서도 내일 제일 빠른 비행 편으로 보낸다고 했고요. 공항에 도착하면 제가 바로 가서 가지고 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도착하면 연락주세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최명준이 소리쳤다.
전화를 끊었다.
최명준은 기뻐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예쓰!”
학계의 20년 후배에게 딸랑딸랑하는 꼴이 좀 웃기긴 하지만, 상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손에 꼽힐 만한 천재적인 인물이다.
무슨 밥 로스도 아니고 역분화 줄기세포! 이렇게 쓱쓱 그리면 됩니다. 참 쉽죠? 시신경이요? 이렇게 쓱쓱! 하는 인간인데 앞으론 어떨까.
지금부터 줄을 잘 서야한다.
최명준은 류영준에게 자신의 쓸모 있음을 최대한 어필할 생각이었다.
일단 류영준이 첫 번째로 맡긴 리무비투스의 수입 건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뚜르르르!
갑자기 다시 전화가 울렸다.
“예, 류 이사님!”
최명준이 다시 힘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까 전에 얘기 못한 게 있는데요. 리무비투스 균주 도착하면 유전자 조작을 좀 해야 합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유전자 조작이요?”
-네. 일곱 개 유전자들의 발현을 높여야 합니다. 제가 자세한 실험 방법을 써드릴 테니 그 부분 처리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고, 그럼요. 제가 밤을 새서라도 원하시는 대로 만들어내겠습니다!”
최명준이 말했다.
두 번째 미션을 받았다.
***
여기저기 뿌려놓은 씨앗들의 결과물들이 하나씩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온 것은 실험 의뢰를 맡긴 지 가장 오래된 독감 신약이었다.
세포 실험은 진즉에 끝났고 동물 실험에 들어갔는데, 그 데이터도 드디어 나왔다.
셀바이오는 데이터를 전부 류영준에게 보냈고, 류영준은 그걸 전부 이혜원 변리사에게 보냈다.
특허 심사 청구를 마친 이혜원 변리사는 사무실에서 휴대폰으로 인스타 피드를 구경하며 잠깐 쉬다가 류영준의 메일을 또 받았다.
<애완 및 축산용 동물 신약 122종 특허 출원 건입니다.>
34개 질병에 대한 신약 122종 중에서 먼저 실험에 들어간 31종의 동물 실험 데이터가 나왔다.
“아······.”
울고 싶은 기분이다.
박사님, 일복이 너무 과합니다. 살려주세요······.
류영준을 만나기 전에는 일이 없어서 사무소 문을 닫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젠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류영준 한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서 직원을 한 명 고용해도 될 판이다.
“휴. 그래도 해야지. 이런 비즈니스 파트너 또 어디 없다.”
진상도 안 부리고 데이터 생산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요청하는 서류들 써주는 것도 깔끔하고.
이혜원은 동물 신약 특허를 쓰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류영준은 줄기세포 임상 관련 리포트를 읽고 있었다.
‘이제 임상이 코앞이네.’
역분화 줄기세포로 시신경을 만드는 기술을 류영준이 확보한 후, 그 임상 시험 업무는 줄기세포 부서로 이전됐다.
류영준은 그들과 협력하면서 임상 시험 대상자의 조직을 얻고, 거기서 역분화 줄기세포와 시신경을 차례로 분화시켰다.
이 다음은 병원이 할 일이다.
그 진행 상황에 대한 리포트가 류영준에게 온 것이었다.
아직까지 겉으로는 최우수 성과 상을 받은 생명창조 부서에 대한 ‘부서 협력’ 형식을 취하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형식적인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자는 류영준이니까.
사락. 사락.
류영준은 리포트를 한 장씩 넘겨가며 꼼꼼히 읽었다.
그 동안 에이젠은 임상시험계획서를 작성하여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에 승인신청을 넣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부에서도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래 의학 동력이 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이므로, 성공한다면 그 보상과 상징성이 매우 클 것이다.
정부에 대한 지지율까지 상승할 수 있고, 이는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반대로 실패하면 그만큼 손실도 크다.
때문에 식약처와 임상시험심사위원회는 시신경을 복구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일명 <아이스템>을 매우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결국 임상을 승인했다.
이제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의 임상시험실시기관으로 일이 넘어가 있었다.
에이젠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
“수영 씨, 이제 임상 시험에 들어갈 건데요, 전에 환자분의 체세포를 채취할 때에도 여쭤봤던 거지만 한 번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식약처의 직원이 말했다.
“임상 시험 담당자로부터 이번 임상 시험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얘기를 들으셨나요?”
“네.”
환자복을 입은 30대 여성이 병원 침대에 앉은 채 말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 임상은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한 시신경을 망막에 주사하는 것입니다. 알고 계신가요?”
“알고 있습니다.”
“시신경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고, 줄기세포 유래라는 특성상 종양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충분히 들으셨나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시술을 했을 때······.”
“선생님.”
손수영이 말했다.
“저는 제 아기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영혼도 팔 수 있어요.”
그녀의 왼 쪽 눈은 황반 변성으로 이미 오래 전 빛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오른 쪽 눈의 차례가 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속을 썩이던 눈이다. 이번에는 타이밍도 끔찍했다.
그녀는 임신중이었다.
일반적으로 임신하면 안압이 내려간다고 하는데, 그녀의 경우는 반대였던 것이다.
갑작스런 안압 상승과 함께 찾아온 급성 녹내장은 의사 입장에서도 굉장히 난처한 질병이었다.
녹내장 치료제 중 상당수는 태아에게 유해하다. 특히 탈산탈수 효소 억제제는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치료제 중 임상에서 안전성이 입증된 약은 존재하지 않고, 동물 실험에서는 대부분의 약들이 유해성이 보고되었다.
의사의 권유로 선택적 레이저 섬유주 성형술이라는 레이저 치료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의사는 브리모니다인 이라는 약을 쓰자고 했다. 임상에서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되진 않은 약이지만 가장 안정적이라고 했다.
손수영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마지막 남은 시력과 뱃속의 아기.
문득 자신이 그 둘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녀는 약간의 자괴감을 느끼고 의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뱃속의 태아에게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녀는 혼자 병마와 분투해가며 딸을 낳았지만, 아직도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손수영의 눈은 영원히 빛을 잃었다.
하지만 악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때때로 사람 일이란 게 막장 드라마에서 구르는 주인공보다 더 비참해질 수 있는 법이다.
이번엔 아기가 문제였다.
지속성 폐고혈압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었다. 인큐베이터에서 100 퍼센트 산소를 투여하고 알칼리 용액을 주입해 산혈증을 교정하는 등 집중적인 치료를 퍼부어댔다.
그래도 위험했다. 의사는 침울한 목소리로 아기가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했다.
산후조리실에서 그 소식을 들은 날, 손수영은 평생 쏟아본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빛을 잃은 그녀의 두 눈은 이제 눈물도 모두 흘려 잃어버렸다.
‘나 때문이야. 내가 고민해서 그런 거야. 내가 안약을 넣을까말까 고민해서.’
잘못된 자책감이었지만 자신에게라도 책임 소재를 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으면, 내 딸이 탓할 사람조차 없이 초라하게 떠난다면 그 비극은 더욱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아서.
이미 몸도 마음도 무너질 대로 무너진 그녀였다.
이제 모든 것을 포기했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딸을 보낼 준비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소원이 있다. 그녀가 식약처 직원에게 부탁했다.
“제 딸을 한 번,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돼요.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