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프로바이오틱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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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준 박사님은 정윤대에서 박사까지 따고 에이젠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에요.”
송지현이 설명했다.
“에이젠.”
최연호가 사명을 곱씹었다.
“그래. 인터뷰에서도 에이젠이랬지. 으. 하필 또 에이젠이야······.”
최연호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셀리제너는 에이젠에 트라우마틱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이 회사는 에이젠의 투자금에 묶여서 경영이 휘둘리고 있는 상태다.
“송 박사님. 우리가 이 사람이랑 같이 협력하면 지금 준비 중인 프로바이오틱스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요?”
최연호가 물었다.
송지현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류영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로슈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을 보면서 비피도박테리움을 더 파는 건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로 드러났다.
줄기세포를 하는 사람이지만 애견에게 감염된 파보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어서 세계 최정상 학술지인 사이언스를 뒤흔들었다.
전공 분야를 종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사람이다. 그 지식의 끝이 대체 어떨지 조금도 가늠되지 않았다.
그런 과학자다.
그리고 그는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막강한 제품을 만들 거라고 했다.
“같이 협업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한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격적으론 어떻습니까? 난 연구 윤리를 잘 지키는 사람하고 일하고 싶어요. 우리 간암 신약 때 많이 당했잖아요.”
최연호의 질문을 받은 사람이 길형준이나 김현택이었다면 ‘병적인 수준’이라며 분개했을 거다.
하지만 송지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김현택에게 쌍욕을 박거나 길형준에게 지분 한 푼 못 준다며 버티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의 리트리버를 구하기 위해 사내 기밀이라는 정보를 경쟁 제약사의 연구원 앞에서 오픈했던 게 떠올랐다.
사람을 판단하기에는 부족한 정보지만, 그 사건이 송지현의 마음속에는 깊이 들어와 박혀있었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좋아요. 그럼 미팅 요청합시다. 연락해서 날짜 잡아주세요.”
최연호가 말했다.
***
셀리제너는 이번 프로바이오틱스에 사활을 건 회사다.
이번 제품의 공정개발이 잘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에이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성장성이 매우 높은 시장이라 알박기를 잘 해놓으면 고정적인 수입을 얻어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
둘째. 국내 제약이나 헬스케어 시장은 어차피 에이젠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그 중 유일하게 취약한 부분이 프로바이오틱스다.
로슈 사의 제품, 액티브바이오가 국제 시장을 빠르게 점령중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간암 신약 때처럼 에이젠이 함부로 셀리제너에게 회사 문을 닫게 하네 마네 윽박지르지 못할 것이다.
셀리제너가 만약 버티면서 법적 분쟁이라도 벌였다간, 그 구설의 기회를 포착한 로슈가 들어와서 국내 시장을 꼴깍 먹어버릴 테니까.
때문에 셀리제너는 캡슐 코팅 신기술을 개발했고, 그걸 토대로 최고의 프로바이오틱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이번 미팅에서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까?
셀리제너의 대표자로 최연호와 송지현, 그리고 구동호 수석 연구원은 에이젠의 제 6 연구소를 찾았다.
“확실히 큰 회사라서 연구소도 크네요.”
송지현이 은근히 감탄하며 말했다.
“이런 게 여섯 개나 있다고 하니 솔직히 부럽긴 하네.”
최연호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셀리제너도 이렇게 커야 할 텐데.
에이젠이 간암 신약을 강탈해가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회사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이렇게 잘나가는 거대 기업이 손바닥만 한 동네 스타트업 제약사의 신약을 훔치다니.
솔직히 억울하고 분하다.
최연호와 송지현, 구동호는 제 6 연구소 입구에서 외부인 방문증을 끊고 들어갔다.
연구 1동에서 미팅룸을 찾아 헤맸지만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너무 거대한 건물이라 길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제가 전화 해볼게요.”
송지현은 류영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만 가고 받지 않았다.
“바쁘신가본데.”
구동호가 말했다.
“이제 곧 미팅이니까 미팅 준비하고 있나보죠.”
송지현이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 때, 복도 끝 코너에서 가운을 입은 여성 둘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이쪽으로 걸어오며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화장실 앞에 류영준 박사 아니야?”
“맞지? 나도 봤어. 미쳤어. 사람이 대성하니까 이제 얼굴도 잘 생겨 보여.”
“사인이라도 받아놓을걸 그랬나봐.”
“그러게. 내 입사동기도 제 2 연구소에 있는데 혹시 류영준 만나면 사인 받아 달라던데······. 그 사람 노벨상 웨이팅 명단에 이름 적혀있대.”
“저기! 잠깐만요.”
송지현이 그들 앞에 뛰어들었다.
“혹시 1층 외부 방문객용 소회의실 104호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그녀가 물었다.
“저쪽 코너 끝으로 가시면 류영준 박사님이라는 분 포스터 붙어있는데 거기서 왼쪽 보시면 있어요.”
과학자들이 대답해주었다.
‘류영준 포스터?’
황당한 기분으로 코너 끝을 돌아보니 진짜 있다.
<제 6 연구소가 낳은 과학계 초신성. 류영준 단독 사내 세미나>
길형준의 지시대로 연구지원부서에서 붙여놓은 거다.
부담스럽게 사람 사진을 커다랗게 걸어놓고 세미나 일정에 대한 안내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낳은’ 위에 줄을 그어 지워놨고 아래에다 네임펜으로 낙서를 해놨다.
<고려대가 김연아 낳는 소리 하네>
<류영준은 류영준 엄마가 낳았지>
“우리 지금 이 사람이랑 미팅하러 가는 거죠?”
최연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엄청난 논문과 인터뷰를 내놓았으니 대스타가 되었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정도로 사람이 뜨면 쉴 새 없이 바쁠 텐데, 프로바이오틱스 미팅을 먼저 제안했다는 것은 꽤 기대해볼만한 게 아닐까?
소회의실에 들어간 세 사람은 류영준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혼자 계시네요?”
송지현이 물었다.
“다음엔 프로바이오틱스 부서원들도 불러다가 같이 미팅하죠. 오늘은 저하고만 간단히 얘기하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먼저 셀리제너 대표 최연호가 캡슐 코팅 기술을 발표했다.
그는 슬라이드를 넘겨가며 로슈, 에이젠의 캡슐 코팅 기술을 설명하고 자사 기술을 비교분석했다.
“······해서 천연 고분자 물질인 알지네이트 (Alginate)를 덧씌운 마이크로캡슐을 이용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이걸로 몇 종의 아미노산이 포함된 프리바이오틱스와 함께 미생물을 코팅하면 굉장히 장기간 보관할 수 있습니다.”
최연호가 말했다.
“프리바이오틱스를 같이 캡슐에 포장한다고요?”
류영준이 물었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일반적으로 장내 미생물의 생육과 활성을 촉진하는 영양소를 일컫는 말이다.
최근에는 프리바이오틱스만을 특정한 것으로 골라 씀으로써, 미생물을 장내에 도입하지 않고도 장내 미생물 조성을 바꾸는 기술도 연구된 적 있다.
근데 그걸 프로바이오틱스와 함께 한 캡슐에 포장한다니?
“맞습니다. 저희가 개발한 캡슐 코팅 기술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미생물의 생존율이 크게 올라가고 보관 기간도 훨씬 더 길어진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그렇군요.”
좋은 기술이다.
확실히 진보적이다. 기존에 로슈나 에이젠이 사용하던 캡슐 코팅에 비해서 체내에 전달된 미생물의 생존율이 더 높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일반적으로 네 가지 단계를 거쳐서 우리 몸에 들어온다.
1. 미생물의 배양.
2. 정제 공정.
3. 보관.
4. 위장 기관을 거친 섭취.
위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에 미생물이 생존해서 장에 안착할 확률은 꽤 낮은 편이고, 그걸 높이는 게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의 핵심이다.
일단 배양 과정에서부터 고효율로 배양하고 거대한 원심분리기와 같은 장비들로 살아있는 세포들만 고도로 집적시키는 게 필요하다.
이건 에이젠의 프로바이오틱스 팀이 잘한다. 최명준은 그 쪽의 스페셜리스트다.
정제 공정과 보관 부분은 지금부로 셀리제너가 세계 최고가 됐다.
“저걸 쓰면 체내에 도입된 미생물들의 생존율이 로슈나 에이젠에 비해 얼마나 더 높아지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약 8 퍼센트 정도 더 높습니다.”
최연호가 말했다.
만족스럽다. 류영준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8퍼센트면 적지 않은 값이다.
“근데 문제가 있어요.”
송지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문제요?”
류영준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문제라기보다······. 아쉬운 점 같은 건데요, 함께 일하게 된다면 이 부분을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떤 건가요?”
“알지네이트 하이드로겔 캡슐은 체내에 도입했을 때, 양이온 교환 반응을 통해서 가교 결합이 풀어져 용해돼요. 이 과정이 초반부에 일어나게 되면 미생물들의 생존율이 많이 떨어져요.”
“음······.”
류영준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의 프로토타입 같은 거, 혹시 지금 갖고 계신가요?”
“저희 제품이요?”
최연호가 물었다.
“네.”
“아직 제품이라 할 만한 건 아니지만······.”
류영준에게 어필하기 위해 제품처럼 포장한 걸 가지고 오긴 했다. 밀봉되어 있는 레모나 같은 모양의 파란색 봉투였다.
“이게 저희 제품 프로토타입입니다.”
최연호가 물건을 내밀었다.
끝을 뜯어내고 류영준은 안을 살펴보았다.
<동기화 모드 : 프로바이오틱스를 통찰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 : 0.2/1초>
달칵.
동기화 버튼을 눌렀다.
<비피도박테리움 락티스, 비피도박테리움 비피덤, 비피도박테리움······.>
이번에도 미생물 이름과 그 생리 현상에 대한 정보가 우르르 나타났다.
캡슐 코팅에 대해서도 뭔가 언질을 해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엇?’
동기화 모드 위에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동기화 모드를 자주 사용하여 로잘린의 동기화 정도가 상승했습니다.>
<로잘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당신의 뇌 속의 로잘린 세포들은 당신의 대뇌 피질의 시냅스와 좀 더 유기적인 전기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당신은 이제부터 로잘린에게 의식적인 조언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도 1점 이상의 피트니스를 소모하는 옵션에서 짧은 대화가 가능했으나, 그것은 옵션에 대한 설명에 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언 듣기의 경우, 미시 세계의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로잘린은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직접 찾아줄 수 있습니다.>
<이 옵션은 로잘린이 당신의 대뇌에서 고차원의 전기 신호와 새로운 뉴런을 발생시켜야 하므로, 막대한 피트니스를 소모합니다.>
“······.”
<조언 듣기 : 캡슐 코팅에 대하여. 피트니스 소모량 : 2/1초>
초당 피트니스 소모량이 2점이다. 정말 막대하긴 하다.
하지만 쓸 수는 있다. 로잘린의 레벨이 오르면서 피트니스도 회복되었고 총량도 증가했다.
지금 가진 피트니스는 2.2.
딱 1초 동안은 로잘린이 캡슐 코팅에 대해 강의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나 문자 같은 전달 매체를 이용한 설명과 흡수, 이해 과정이 아니다.
뇌에서 장기 기억 뉴런을 직접 생성하는, 지식의 강제 주입이다.
1초면 꽤 많은 양의 정보를 흡수할 수 있다.
달칵.
류영준은 <조언 듣기> 버튼을 눌렀다.
강력한 지식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키토산 층을 알지네이트 안쪽에 덧대어 2중 코팅을 하세요.>
<0.4% 키토산 수용액을 만든 후 나일론을 투과시켜 불용성 불순물을 제거한 다음, 0.1M의 CaCl2를 첨가하세요.
이후 셀리제너의 스탠다드 제조 공법을 따르되, 소듐 알지네이트 수용액을 멸균된 키토산 수용액에 첨가하고 섞는 과정을 추가하세요.
균주 보호제와 함께 영하 20 °C.에 보관하면 됩니다.>
“······.”
멍한 표정으로 메시지창을 보고 있는 류영준의 어깨를 송지현이 톡톡 두드렸다.
“류 박사님?”
“아. 해결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뭘요?”
“방금 송 박사님이 말씀하신 캡슐 코팅 문제 말이에요. 키토산을 첨가해야 합니다.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세 사람 모두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제 이런 분위기 익숙하다.
“절 믿고. 한 번만 테스트해주세요.”
***
미쳤다.
레벨 하나 올라간 로잘린은 이제 현상을 통찰해서 정답을 찾아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답을 직접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잠깐만.’
실험실로 돌아가던 류영준이 우뚝 섰다.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 역시 아직 레벨이 낮았던 로잘린이 뽑아준 균주일 뿐이다.
조언 듣기로 살펴보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류영준은 실험실에 돌아오자마자 로또 번호 발표를 기다리는 복권 구매자의 심정으로 피트니스의 회복을 기다렸다.
혹시나 싶어 ATP도 주사기로 정맥에 찔러 넣었다.
충분한 피트니스를 가지고 미생물 균주,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를 다시 통찰하며 조언을 구했다.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는 장 내 점액층에 거주할 수 있는 점액 분해 박테리아입니다. 이들은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보다 훨씬 효율이 좋으며 장 내 정착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소포 생성 능력이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보다 떨어지므로 다음 유전자들을 추가로 과발현시키세요. ATak711, YJ2, mCAL······.>
무슨 소리야 이게?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가 갑자기 거기서 왜 나와?
아커만시아도 미생물 이름이다. 2013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의 주인공이다.
장내에 존재할 때 비만 억제 능력이 탁월한 미생물로 꼽혔던 종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2형 당뇨’에도 약간 효과가 있다고 했다.
<클로로토니스에서 위 유전자들을 과발현시켜 장내에 이식할 경우,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의 1,000배에 이르는 효율을 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 미생물을 경구투여했을 경우, 현존하는 2형 당뇨 환자의 74 퍼센트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피트니스 고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