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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과학계 초신성 (4) (187/301)

30화.  과학계 초신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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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분 주는 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김현택이 말했다.

이사들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김현택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속내는 착잡했다. 그가 말했다.

“류 박사가 보여준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확실히 그 사람이 대주주이자 임원이 되었을 때 전체 파이를 키우긴 할 겁니다.”

COO 손진갑이 끼어들었다.

“황 소장님 말이 맞아요. 일단 그 사람이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에 더해서 인터뷰 내용이 나간다면 회사 주가가 크게 올라갑니다. 근데 만약 그 사람이 회사 임원이 되었고 4 퍼센트의 대주주가 됐다고 알려지면 어떨까요? 주임 연구원이던 사람에게 우리가 막대한 지분을 주면서 임원으로 만들고 집중 육성한다고 얘기하면? 우리가 판을 짜는 것에 따라서 주가 상승률이 4 퍼센트 지분을 훨씬 웃돌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럼 다음부터 류 박사가 이사회에 들어오는 겁니까?”

김현택이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류 박사는 경영에 끼워주기엔 위험한 사람이에요. 사상이 우리랑 좀 다릅니다. 저는 그 부분이 솔직히 좀 걱정됩니다.”

“주식을 주고 비등기이사로 처리하시죠. 그 구실로 이사회에 들어오는 건 막고요.”

지광만이 말했다.

이사들의 시선이 이번엔 지광만에게 집중됐다.

“아니 본부장님. 그 놈이 황 소장 수준의 지분을 들고 있는데 비등기이사가 되겠어요?”

고유성이 황당한 듯 물었다.

“대충 둘러대서 설득해야죠. 아직 많이 젊고 경영 경험이 없어 상황이 특수하니까 이사회의 의결권은 안 주겠다, 하지만 지분을 이만큼 주고 주총에선 그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가면 될 겁니다.”

지광만이 말했다.

“그 영악한 놈이 받아들일까요? 이사회 참석도 하게 해달라고 난리 쳐대면 어쩝니까? 내 보니까 지 맘에 안 드는 것들 보이면 죄다 걸레짝 될 때까지 물어뜯는 게 비글 수준이더만.”

길형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저한테 걸었던 조건은 4퍼센트 지분뿐이었습니다. 그걸 챙겨주면 아무리 그 놈이 막장이어도 설마 뭐라 하겠어요?”

“흐음.”

이사들이 고민에 잠겼다.

“4 퍼센트를 들고 있으면 당연히 등기 이사가 되어야죠.”

김영훈이 말했다. 지광만이 침을 꼴깍 삼키며 그를 쳐다보았다.

김영훈. SG 그룹에서 꽂아 넣은 사람들 중 하나다.

에이젠의 최대 주주는 대표 이사 윤대성 일가다. 윤대성과 그의 아내와 아들 윤보현, 그리고 윤대성의 형 윤대평의 주식을 모두 합친 값이다.

그 총합 14 퍼센트가 사실상 윤대성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절친한 사이인 지광만과 손진갑이 우호 지분으로 있다.

니콜라스 킴 역시 윤대성과 약간 어색해진 것 같지만 학연으로 얽혀있고, 연구소장들도 아직까진 윤대성을 따른다.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있어 그들의 지분은 꽤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회사엔 다른 세력들도 있다. 11 퍼센트를 쥐고 있는 국민 연금은 둘째 치더라도, 국내 기업 SG가 6 퍼센트를 갖고 있다. 에이젠이 초기에 돈이 없던 때 투자받은 게 이렇게 됐다.

같은 이유로 외국계 투자사 버크셔가 회사 지분 8 퍼센트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 연구소 몇 개를 창설하면서 진출하던 때에 생긴 거다.

그리고 에이젠이 작은 제약사였을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존슨앤존슨이 4 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셋의 지분을 합치면 윤대성 일가를 넘는다.

아직까진 그들 사이에 접점이 없었고, 윤대성의 우호 지분이 많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었다.

그리고 SG그룹의 핵심인 SG전자는 반도체 만드는 게 주 업무다. 아무리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를 확장해서 이 사업, 저 사업 건드린다 해도 에이젠 경영에 손댈 정도로 이 필드를 잘 알지는 못했다.

그러나 류영준의 등장과 함께 어마어마한 잠재가치가 드러났기 때문에 이제부턴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지광만 이 새끼 류영준을 이사회에선 빼놓고 뒤에서 작업하려고 하는군.’

김영훈은 지광만을 지그시 쳐다보며 생각했다. 사외이사인 김영훈을 비롯한 버크셔와 존슨앤존슨 등은 상대적으로 류영준과의 접점이 적은 편이다.

이사회에서 빠지면 그만큼 그와의 연결고리를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그건 안 되지. 류영준은 윤대성 일가의 견제 카드로 키워야 돼.’

“자사주도 애초에 경영권 승계 때문에 만들던 거 아니었습니까?”

알렉스가 물었다.

버크셔 쪽 사람이다.

“그 지분을 함부로 줘버려도 괜찮을지 걱정되는데요.”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윤대성이 말했다.

“지분 줄 거면 이사회 참석권도 주시죠. 4 퍼센트 갖고 있는데 이사회 의결권이 없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김영훈이 말했다.

“근데 우리 회사에 몇 가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지광만이 말했다.

“이사회 참석 시켰다가 류영준 박사가 그거 알게 되면 무슨 짓 할지 모릅니다. 그 사람 성격 장난 아니에요.”

“4 퍼센트 지분을 주고 이사직을 주면 언젠가 알 수도 있죠. 이사회에 참석 안 시키면 알기까지 시간을 좀 벌수는 있겠지만, 그걸로 성격도 바꿀 수 있답니까?”

“류 박사가 특허 로열티를 나눠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무슨 소립니까 그건 또?”

길형준이 물었다.

“실험 안 한 놈한테는 로열티 못 준다고 별 지랄을 다 떨면서 로열티 지분을 혼자 꾸역꾸역 90을 처먹더니 다시 나눠준다고요? 아니 뭐 다중인가?”

“이사회에서 자기 지분을 따내는 데 카드로 써달라는 거죠. 류 박사도 사내정치를 배워가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똑똑한 사람이니 순식간에 배울 겁니다.”

“그러니까 본부장님 얘기는 좀 시간이 지나면 경영진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될 거다?”

김현택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피곤한데, 잠깐 휴식하고 다시 얘기하죠.”

김영훈이 말했다.

***

금요일 점심.

사내 식당에 줄을 서있던 류영준과 생명창조 팀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관심어린 시선을 따갑게 받았다.

“세미나에서 상 받은 다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천지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런 분위기의 이유는 당연히 사이언스 학술지의 발표 때문이다.

10,000자의 거대한 논문이 메인에 실렸다.

앞으로 의학계에서 줄곧 회자되며 전설적인 인용지수를 자랑하는 역작이 될 것이다.

논문 뒤에는 이어진 특집 기사와 함께 류영준의 인터뷰가 나왔다.

<의학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개척자 : Ph.D. 류영준>

과학자들의 눈으로 보면 논문도 충격적인 내용인데 인터뷰에 나온 포부는 그야말로 전두엽이 얼얼해질 정도다.

‘모든 신경질환을 뿌리 뽑겠다.’

‘몇 년 안에.’

그 동안은 어떤 과학자든 이런 얘길 하면 미친놈 소리와 함께 비웃음이나 샀겠지만, 류영준은 그걸 실현할 능력이 있음을 앞의 논문에서 보여주었다.

과학자들은 모두 논문을 읽는다.

배달 오는 신문을 밥상 앞에 앉아서 읽는 90년대 아버지들처럼, 금요일 아침만 되면 전부 사이언스 메인 화면을 컴퓨터에 띄워놓는다.

오늘 아침에는 다들 류영준의 논문과 기사와 인터뷰를 읽은 것이다.

그리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벌써 임원이니 4 퍼센트 지분이니 하는 얘기들이 여기저기 떠돌았다.

“저기, 류영준 박사님이시죠?”

50대 과학자 한 명이 다가왔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신경연구부서 하헌욱 부서장입니다. 논문 잘 읽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류영준과 악수했다.

“시신경 가지고 임상하실 때 혹시 저희랑 같이 진행해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그가 물었다.

“저희 부서는 말초 신경 재생 쪽으로 많은 연구를 했었고, 병원들과 컨택도 많이 되어 있고요. 임상 진행 경험도 여러 번 있습니다. 류 박사님께서 괜찮으시면 실제로 시신경이 파괴된 녹내장 환자들이나 망막 변성 환자들 대상으로 줄기세포 기술을 이용해서 임상을 같이 하면 좋겠는데요. 서로에게 도움 많이 될 겁니다.”

하헌욱이 명함을 내밀었다.

“혹시 관심 있으시면 나중에 연락 한 번 주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류영준이 명함을 받아 챙겼다.

하헌욱이 스타트를 끊자 갑자기 과학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류 박사님. 역분화 줄기세포로 장기 조직을 배양하는 쪽도 혹시 생각하고 계십니까?”

“시신경 다음에는 척수 신경으로 가실 거죠?”

“뇌 질환 쪽으로 가시면 영상 의학팀하고 많이 협력하셔야 할 텐데 저희 부서에······.”

“······.”

식권 받기 직전까지 명함 일곱 개를 받았다. 그것도 죄다 각 부서의 팀장급들의 명함이었다.

“아니 제 6 연구소에 부서가 여섯 개인데 부서장 명함이 왜 일곱 개야? 어디 연구소에서 온 거야?”

박동현이 황당한 듯 말했다.

“근데 그건 진짜예요?”

정혜림이 류영준에게 물었다.

“뭐가요?”

“임원 되신다는 거요.”

“음.”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짭니다.”

“미친.”

“맙소사······.”

두 사람이 입을 딱 벌렸다.

“아이고, 류 이사님. 이 누추한 구내식당까진 행차를 다 하시고. 저희가 진즉에 알아서 좋은 데로 깍듯이 모셨어야 했는데 미처 몰라 뵈어서 송구하고······.”

“윽. 그만해요.”

천지명이 장난을 치자 류영준이 부담스럽다는 듯 끊었다.

“저기, 류영준 박사님이죠?”

딱 봐도 똑똑하게 생긴 젊은 남녀 세 사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맞습니다.”

류영준이 대답하자 세 사람은 잠깐 우물쭈물했다.

“프로젝트 제안하시려고요?”

박동현이 물었다.

“아니요. 저기, 저희는 6 연구소의 연구지원부서 직원들인데요. 혹시 류 박사님 명함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제 명함이요?”

연구지원부서에서 대체 왜?

류영준은 황당한 기분으로 외투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그러자 저쪽에서는 펜을 들이밀었다.

“혹시 사인도 해주실 수 있나요?”

“······.”

“류 박사님 이제 연예인 다 되었네.”

배선미가 말했다.

“한 10년에서 15년 후에 노벨상 받을 분이잖아요.”

류영준의 사인 명함을 받으면서 연구지원부서 직원들이 말했다.

“저희야 뭐 과학을 하더라도 연구직은 아니니까 프로젝트 제안할 입장은 못 되고요. 근데 한국 과학사에 길이 남을 대스타시니까, 이런 걸 좀 받고 싶었어요.”

“응원합니다. 류 박사님! 파이팅!”

“꼭 임원 되어서 나중에 제 6 연구소의 소장으로 와주시길 바라요!”

세 사람은 류영준에게 몇 번이고 인사한 후 까르르 웃으면서 떠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박동현이 말했다.

“류 박사님 혹시 우리 사진 좀 찍어놓을래요? 쓰던 물건 교환도 좀 하고. 신던 양말이라든지······. 아니면 저 속옷 브랜드 게스인데······.”

“뭔 소리에요!”

류영준이 질색했다.

“근데 확실히 류 박사 명성이 엄청나게 올라가긴 했네. 오늘만 해도 프로젝트 제안이 몇 번인지······.”

천지명이 말했다.

“류 박사님 다음 연구 뭐 하실 거예요?”

정혜림이 물었다.

“일단 시신경 임상은 들어갈 겁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역분화 줄기세포 다음 실험은요?”

“그건 당장 안 들어가요. 좀 더 이따가 타겟을 결정할 생각이거든요.”

“그럼 임상만 진행할 거야?”

천지명이 물었다.

“아니요. 프로바이오틱스 할 겁니다. 중요한 미래 시장이니 지금 선점해야 돼요.”

류영준이 말했다.

제 6 연구소의 건강식품 부서는 프로바이오틱스를 연구하기 위한 최적의 시설과 테크니션들을 갖추고 있고, 에이젠의 초대형 프로바이오틱스 생산단지와 연계되어 있다.

그들의 인프라를 빌린다.

그리고 셀리제너는 개발된 균주의 코팅 신기술을 가지고 있다. 셀리제너와 협업하면서 그 기술을 빌릴 것이다.

마지막은 로잘린이 뽑아준 마법의 균주,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

약국에서 송지현이 내준 로슈 사의 프로바이오틱스를 통찰했을 때 알아낸 박테리아 종이다.

이 셋의 조합은 정말로 막강한 아이템이 될 것이다. 벤처 하나와 사내 부서 둘이 협력해서 성과를 나눈다는 걸 감안해도 어마어마한 몫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아마 이후의 프로바이오틱스 시장을 독점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 시장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인간의 몸은 약 37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그 세포들은 모두 인간의 것이다. 수정란에서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꾸준히 분열하면서 만들어온 인간 자신이다.

하지만 사실 이 거대한 생체 공화국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다.

인체에 공생하는 미생물들.

예를 들어 장에 살고 있는 유산균 같은 박테리아들 말이다.

사람 한 명의 몸속에 그들은 과연 몇 개나 있을까?

논문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른데, 적게 견적을 잡은 논문은 ‘39조’ 개라고 주장한다.

좀 많게 잡은 논문은?

인체 세포 수의 열 배까지 보는 논문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이 몸이 더 이상 인간이라고 주장하기가 민망해지는 시점이다.

믿을 수 없지만 이전의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저 막대한 숫자의 박테리아들을 거의 무시했다.

그러나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될수록 경악할 만한 사실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체에 공생하는 미생물들은 사람의 피부를 매끈하게 만들어주거나 체중을 날씬하게 유지해준다. 반대로 나쁜 미생물이 많아지면 피부가 나빠지고 비만이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진짜다.

더 나아가서 그 미생물들은 사람의 면역 반응을 조절해주며, 심지어는 기분에도 영향을 주고, 인체의 ‘생물학적 나이’를 결정짓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떤 사람의 장내미생물 조성을 알면 그 사람이 몇 살인지 플러스마이너스 두 살 이내의 오차범위에서 맞출 수 있을 정도다.

헬스케어의 21세기 최고 화두.

제약 산업이 막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아이템 프로바이오틱스.

줄기세포와 시신경으로 학계를 흔들어놓은 천재의 다음 걸음은 그 분야로부터 한참 떨어진 미생물 시장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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