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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과학계 초신성 (3) (186/301)

29화.  과학계 초신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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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에서 새어나간 정보를 듣고 찾아온 CNN 기자는 류영준에게 제시와 비슷한 질문들을 했다.

그리고 지광만 본부장에게도 곤란한 질문들만 골라서 던졌다.

“회사로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우수한 과학자 한 사람에게 90%에 해당하는 특허 지분을 수여하면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것 말입니다.”

“······.”

지광만의 얼굴이 하얘졌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역시 에이젠 경영진도, 류영준 박사님처럼 ‘질병 치료’ 그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순수한 의약인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예······.”

“아마 사이언스의 특집 기사와 인터뷰가 며칠 내로 나갈 것 같습니다. 그 때 저희 인터뷰 방송도 같이 나갈 겁니다. CNN 방송 메인 뉴스로요. 류영준 박사님께서 사이언스와 인터뷰하실 때, 지분 문제를 결정해준 분이 본부장님이라고 하셨다기에 이 인터뷰를 요청드린 겁니다. 본부장님, 한 말씀 해주시죠?”

“······.”

“본부장님?”

“맞······습니다······. 제가 그렇게 지분을 할당해주었습니다. 에이젠의 목표는 돈 벌이가 아니라······. 질병 퇴치니까요.”

지광만이 부들부들 떨리는 양 손을 꽉 쥐고 말했다.

4퍼센트! 이 미친 새끼.

‘대표님하고 같이 바닥을 구르며 여기까지 온 나도 3퍼센트밖에 없는데.’

이 젖비린내 나는 햇병아리 과학자가 논문만 파는 먹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선수였다.

이 놈은 위험하다.

내버려두면 경영권을 차지할 생각으로 폭주해서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 할 거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만한 저력이 있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행동력도 넘치고 과감성은 웬만한 벤처 CEO급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역분화 줄기세포인지 뭔지 그 엿 같은 기술을 진짜로 끝까지 파헤쳐서 모든 제약, 의약 산업을 통째 구조 개편할 실력이 있다는 것.

에이젠은 연구소 중심의 회사다.

벤처에서 경쟁약을 사서 없앤다거나, 조그만 벤처들을 지분으로 지배하면서 지주 노릇을 한다든가, 그런 정치질들을 하지만 그래도 일단 ‘신약 연구’가 베이스다. 천 명의 과학자가 이 회사를 지탱하고 있다.

그 말의 뜻은 이곳에서 류영준은 완전히 자유로운 물 만난 고기라는 뜻이다.

좀 더 정확히 비유하면 여기는 거대한 바다고 류영준은 메갈로돈 쯤 되는 괴물일 것이다. 생태계를 다 아작낼 수 있는 놈 말이다.

‘여태 그냥 뭐 어디 씹을 거 많은 참치 새낀 줄 알았지······.’

그런 놈이 연구소장 수준의 회사 지분을 쥐게 되면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회사를 흔들어놓을 것이다.

일단 말단 주임 연구원에서 갑자기 회사의 대주주로 급부상하면 연구원들이 크게 동요하면서 그들 사이에서 대스타가 될 것 아닌가?

사람들은 비슷한 위치에 있던 사람이 성공하면 질투한다. 하지만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어버리면 동경하는 법이다.

어쩌면 일시적으로는 차기 CTO라는 김현택보다도 더 많은 지지와 존경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아······.’

지광만은 속으로 한숨을 훅 내쉬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대충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에이젠은 화이트 기업이죠.” 하면서 둘러대기만 했다.

머릿속으론 이 상황의 타개책을 고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 분노로 열린 뚜껑이 다시 뒤집어져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화가 가라앉으며 냉정을 찾았다.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궁지에 몰린 게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이 국면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류영준을 아군으로 만들면 되는 거잖아?

지금은 윤보현이 지어준 별명처럼 윤리충이라 끌어들이기 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젊어서 그런 거다.

약간 삭혀서 아군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 돈과 권력에 절이면 썩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는가?

현재 에이젠의 CEO인 윤대성이 떠올랐다. 에이젠의 창립자의 아들이며, 제 아버지와 함께 에이젠을 키운 사람이다.

그 가족 일가가 회사 지분을 14퍼센트 보유하고 있으며, 사실상 최대 주주다.

그리고 윤대성은 지광만하고는 형 아우 하는 사이고 오래된 비즈니스 파트너다.

류영준을 이 그룹으로 끌어들인다면 천군만마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인터뷰가 끝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지광만은 윤대성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접니다.”

-네, 본부장님. 식사는 했어요?

지금 밑에서 어떤 사고가 터지는 중인지 아직 모르는 대표이사가 속편하게 허허 웃었다.

“대표님, 전에 연말 세미나에서 기술 이사님한테 기립박수 받았다는 사람 기억나십니까?”

-그럼요. 류영준 박사라고 했나? 역분화 줄기세포 만들었다던.

“그 친구 관련해서 얘기할 게 좀 있습니다. 지금 잠깐 만나시죠.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지광만은 이동하다가 우뚝 멈췄다.

“앗, 잠시만요. 제가 곧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본부장 사무실 앞에 윤보현이 서있었다.

“본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들어오세요.”

지광만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음료 하나를 꺼내주었다.

윤보현은 뚜껑을 따고는 의자에 편하게 앉았다. 다리 하나를 쓱 꼬고, 지광만을 쳐다봤다.

“류영준하고 무슨 얘길 하셨나요? 갑자기 CNN에서 찾아와서 인터뷰도 하시던데.”

그가 물었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시신경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더군요. 그리고 사이언스에 발표하면서 로열티 지분을 확정 시키듯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본부장님이 말 못 바꾸게 하려고 못박아놓은 건가요?”

“······.”

“실수하셨군요.”

“인정합니다. 권력에 관심 없는 줄 알았고, 있어도 쉽게 꺾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전 류영준이 그런 놈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몇 번 경고 드렸잖아요? 저 놈 위험하다고.”

지광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장님. 아니, 광만 아저씨.”

“윤 과장. 회사에선 말조심하세요. 소문내고 다닐 거 아니잖아요?”

“에이젠 경영본부 과장 말고, 경영 수업 받는 후계자 입장도 말고, 그냥 개인적인 친분 관계로 하는 얘기라서요.”

“······.”

“혹시라도 저 놈 아저씨 라인에 넣거나 해서 아군으로 회유해볼 생각 하고 계신가요?”

“으음······.”

지광만이 침음을 냈다.

“걱정돼서 여쭤봤더니 진짜네요. 아저씨, 무리하지 마세요. 류영준 감당 못할 겁니다. 우리 회사에 솔직히 더러운 비리들 좀 있잖아요?”

“······.”

“저 놈 성격에 뭐 하나라도 알면 회사 폭파시켜버릴 거예요. 저 새끼 리셋 증후군이라고요. 회사 터져요 진짜. 절대 경영에 끼워주면 안 됩니다.”

“······. 후우.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더 크기 전에 지금 꺾어야한다고 봐요. 지금이 마지노선이에요.”

“방법 있나?”

지광만이 물었다.

“세게 나가야죠. 일단 그 엿 같은 특허 출원 신청서랑 계약서부터 찢어버립시다. 그리고 좀 먹여서 설설 기게 만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사이언스 발표와 CNN 뉴스가 나온 후에 우린 국가적인 대역죄인이 돼. 그 이미지 테러를 감당할 수 있겠어? 모든 신경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천재 과학자의 앞길을 막아버리고 수천 조 규모의 제약 시장을 싹 다 미국에 양보하는 미친 회사 꼴이잖아.”

“그 놈이 설마 나가겠어요? 회사 나가면 화이자나 로슈로 간댔나요? 개소리에요. 이민이 그렇게 쉽습니까? 그 놈 초중고 다 한국에서 나오고 정윤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다 딴 토종 한국인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 터전을 모두 버리고 다른 나라로 떠난다? 그거 그렇게 간단한 결정 아니에요. 일단 기세를 꺾어놓고 돈과 직급으로 보상을 세게 주면서 둥기둥기 해주고 구슬리면 남을 거예요.”

“······.”

“겁먹지 말고 그냥 세게 나가요. 아저씨답지 않게 왜 그래요.”

“휴우······. 보현아. 아니다. 그건 안 돼. 네가 아무리 윤 대표님 밑에서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다고 해도 지금 심각하게 잘못 판단했어. 류영준은 그렇게 쑤시면 안 되는 놈이야.”

“아잇. 좀! 답답하게 그러지 마시고요. 기껏해야 주임 연구원이에요. 우리가 그 놈 하나 제압 못해서 휘둘리고 기싸움에서 밀리면 어쩝니까?”

“그 사람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고 그걸 시신경으로 분화시키고 그걸로 눈이 안 보이는 쥐를 치료한 사람이야.”

지광만이 말했다.

“그 정도면 그 놈은 자기 실력에 배팅해서 4 퍼센트의 회사 지분을 그냥 달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어. 로열티 지분 가지고 딜을 안 해도 됐단 말이야. 주식을 안 주면 화이자로 가버린다고 억지 쓰면 대표님이나 니콜라스 같은 직감 좋은 사람들은 그냥 지분 주고 임원으로 모시자 했을 거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다들 지금 류영준을 과대평가하는 겁니다.”

윤보현이 말했다.

“물론 저도 그 놈 성과는 인정해요. 운발이 미쳐서 미국에 살았으면 슈퍼볼 당첨됐을 놈이긴 한데, 그것도 거기까지죠. 그 놈 집에 외계인을 감금해놓고 고문이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설마 앞으로도 손대는 것마다 다 성공하겠어요? 이 바닥에 반짝 스타들 많았잖아요. 그리고 금방 사라졌잖아요?”

“그게 무서운 부분이야!”

지광만이 소리쳤다.

“너처럼 생각하는 주주들이 분명 있을 거란 말이야. ‘저 놈 그냥 반짝 스타일 거다, 무슨 주임급한테 지분을 4퍼센트나 주냐, 황 소장이 4퍼센트인데 서른 살 박사가 황 소장급이냐.’ 그렇게 화내는 사람들이 분명 나온단 말이야!”

“네?”

“그러면 자기가 지분을 못 받을 수도 있어. 그래서 그 싸움을 확실하게 만드는 거잖아. 역분화 줄기세포의 로열티 30퍼센트를 나한테 주겠다는 것 말이야! 그 사람들한테 로열티를 나눠주면서 구슬려서 설득하라는 뜻이라고!”

지광만이 식은땀을 닦아냈다.

“사이언스 인터뷰로 내 퇴로를 막아놓은 다음,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길을 만들어준 거야.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기 권한을 확실하게 못박아버리려고!”

“······.”

지광만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로열티 지분을 받게 된 이사들은 어떻겠어? 류영준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더 지켜보고 싶어 하겠지. 그럼 그 때부터 그 놈에게 우호적인 지분들이 이사들 사이에 생겨나는 거야.”

“음······.”

“진짜 미친놈이야. 그 로열티 지분은 자기 것도 아니고 이미 회사에 속해있는 거야. 근데 그걸 제 것처럼 회사 이사들한테 팔면서 그 대가로 조 단위 지분을 받고 경영에 발을 담그겠다? 무슨 대동강 물 파는 김선달도 아니고······.”

윤보현이 머리를 긁적였다. 지광만이 말했다.

“그냥 실력 있고 자신감만 넘치는 애송이가 아니야. 류영준은 자신에 대한 평가도 정확히 측정하면서 그 견적에 딱 맞는 스텝만 밟고 있어. 화이자로 가라고 배짱부려보라고? 그 놈 진짜로 갈 거야. 막말로 그 놈이 아쉬울 게 뭐가 있나?”

“그래도······.”

“나도 널 오랫동안 봐온, 아버지 친구로서 얘기하는 건데 류영준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지뢰 같은 인간이라 잘못 밟으면 네 발목이 없어져. 나중에 네가 경영 승계를 무사히 하려면 지금 아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한테 맡겨.”

“하지만 그 놈 이사회에 들이면 안 된다고요. 우리 회사에 비리들 좀 있잖아요? 특히 몇몇 건은 셀리제너 간암 신약이랑 비교가 안 되는데 그 놈이 그거 알면······.”

“그 부분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대표님하고 같이 얘기해서 처리할 테니까. 너는 이제 더 신경 쓰지 마.”

***

긴급 이사회가 열렸다.

사이언스의 논문과 특집 기사, 인터뷰의 발표를 조금 앞둔 시점이었다.

시차를 고려할 때 금요일 아침이 되면 뉴스와 기사들이 와르르 올라올 거다. 그리고 에이젠의 주가는 분명 폭등한다.

그 전에 이 문제의 가부를 결정지어야만 했다.

워낙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지라 이사들에게도 하루 전에 회의를 알리고 참석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사들이 이미 자리에 와 있었다.

그리고 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4 퍼센트······. 개인이 들기엔 너무 많아요. 황 소장님이랑 같은 값이잖아요?”

“검증도 안 된 젊은이한테 갑자기 4 퍼센트는 안 돼요. 라인도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그 만한 지분을 주면 임원직도 줘야할 텐데. 임시 주총을 열어야겠네. COO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준태의 물음에 COO 손진갑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하다가 답했다.

“류영준 박사가 하는 일이 정말 잘 된다고 전제해보면, 우리 모두의 주가가 어마어마하게 폭등할 겁니다. 그 신경질환 치료를 전부 해내면 회사 자체가 몇 배는 커질 수 있어요. 그 메리트를 생각하면 고작 4 퍼센트가 아깝다고 거절하는 건 큰 실수일 수 있죠.”

“하, 진짜 세상 별 일이 다 있군. 나도 2퍼센트밖에 없는데.”

고유성이 짜증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길형준 소장님은 1퍼센트죠? 하하, 주임급이던 놈이 갑자기 자기 연구소 소장의 네 배가 돼버리네. 겸상 정도가 아니라 상전으로 모시는 수준이구만.”

길형준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지광만 이 머저리가 류영준 잡으랬더니 본인이 지근지근 씹혀서 왔잖아?

4 퍼센트?

4 퍼센트라고? 조 단위의 지분을 서른 살 루키가 혼자 꿀꺽하겠다고? 뭐 이런 정신 나간 새끼가 있지?

이 회사가 아직 중견기업이던 때부터, 대표 윤대성과 함께 온갖 궂은일을 해오며 회사를 키운 김현택 소장이 가진 지분이 4퍼센트다.

지분을 그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개인은 이제 COO 손진갑과 CTO 니콜라스 킴, 그리고 대표이사 윤대성밖에 없다.

“줍시다.”

니콜라스가 쿨하게 말했다.

“COO님 말씀대로, 류 박사가 정말 성과를 더 만들어내면 우리 모두의 주가가 폭등할 겁니다. 그리고 에이젠의 기술이사로서 확신하는데 류 박사는 더 만들어낼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4 퍼센트를······.”

“우리 회사 자사주 12 퍼센트 정도 있잖아요? 거기서 4 퍼센트 떼어 줘요. 류 박사는 그만한 걸 받을 가치가 있는 연구자입니다. 다들 그 분을 그냥 회사의 일꾼, 직원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이 회사의 미래 밥그릇을 만들어주는 엘리트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니콜라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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