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과학계 초신성 (2) (185/301)

28화.  과학계 초신성 (2)

==================

“역분화 줄기세포로 시신경을 만들고 그걸로 망막 변성 쥐를 치료했습니다.”

류영준이 지광만에게 말했다.

“아직 성과 리포트로 올라온 건 없는데.”

지광만이 류영준의 데이터 자료를 보면서 말했다.

“기안을 안 올렸으니까요.”

“그럼 기안을 올리시지, 왜 나한테 먼저 찾아와서 이 얘길 합니까?”

“본부장님한테 미리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지광만은 뚱뚱한 몸뚱이를 의자에 눌러 기댔다. 의심스런 눈빛으로 류영준을 쳐다보았다.

“뭡니까 그게?”

“역분화 줄기세포 특허의 로열티 90퍼센트를 제가 쥐고 있다는 것은, 이후의 모든 연구와 그로 인한 수익에 대한 키를 제가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 연구물들은 사이언스에 출판 예정되어 있습니다. 역분화 줄기세포만이 아니라 시신경 치료까지도요. 생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야 줄기세포 얘길 해도 잘 모르겠지만 장님 눈을 띄워줄 수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겁니다.”

“······.”

“이제 상황이 좀 바뀌었어요. 논문이 출판되면 주목하는 건 과학계와 의학계만이 아닐 겁니다.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겠죠. 그리고 우리 회사의 주주들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기존엔 어떤 약이 개발되느냐보다 매출과 순익과 배당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더 치중하던 양반들이셨지만 이번엔 다르겠죠.”

“흠.”

“그리고 역분화 줄기세포 로열티를 고작 주임급 연구원 한 명이 쥐고 있다는 걸 알면 언짢아하실 겁니다. 이만한 특허를 내고도 주주들에겐 로열티가 한 푼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도 받을 테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제 계약서와 특허 출원 신청서를 승인하는 분이 본부장님이시니, 본부장님에게도 책임이 지워질 겁니다.”

“그래서요?”

“저하고 손을 잡으시죠.”

지광만이 류영준을 빤히 쏘아보았다.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생명창조 부서 몫으로 할당된 80퍼센트 지분 중 일부를 본사에 팔겠습니다. 그럼 본부장님은 실력 있는 주임 연구원의 연구 의욕을 장려해 좋은 결과물을 뽑으면서 동시에 주주들의 몫을 극대화한 최고의 경영자가 될 겁니다.”

“판매 가격으로 얼마를 원합니까?”

“돈 말고, 에이젠의 지분을 주세요.”

지광만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뜨거운 차를 몇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얼마나?”

“역분화 줄기세포 원천 기술의 로열티 5 퍼센트 당 에이젠 본사 지분의 1 퍼센트는 주셔야 합니다. 얼마나 사시겠습니까?”

“미쳤군요. 그런 거래를 할 것 같습니까?”

“왜 못하시나요?”

“그 80 퍼센트 지분은 회사 공금입니다. 당신 개인 돈이 아니에요. 주주들이 언짢아하긴 하겠지만 결국 회사에 재투자 되는 금액입니다. 주주들에겐 그 수익을 주면 그만입니다.”

“그건 제가 그 80% 지분 몫의 예산으로 성과를 생산한다는 전제의 얘기군요.”

지광만의 눈이 커졌다.

“······. 무슨 소립니까······. 당신은 에이젠의 직원입니다! 지금 의도적으로 태업을 하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겁니까?”

“제가 태업을 하는 건지, 열심히 일을 하는데 성과가 안 나오는 건지 누가 판단합니까?”

“뭐라고요?”

“저보다 역분화 줄기세포와 신경 분화와 신경 이식 치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있나요?”

“······.”

“그리고 제가 주주들 사이로 들어가면 주주들이 정말 싫어할까요? 사이언스에서 특집 논문이 발표된 이후에는 제 이름값이 지금과 다를 겁니다. 제게 주식을 줘서 임원들 사이로 초대하는 건 본부장님께 해가 되는 선택이 아닙니다.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고, 주주들은 좋아할 거예요. 게다가 로열티까지 준다면. 우리는 서로 윈윈할 수 있습니다.”

지광만이 입술을 깨물었다.

류영준이 말했다.

“좀 인심 쓰겠습니다. 회사 지분 4퍼센트를 주시면 로열티 30 퍼센트를 드리죠. 그걸 주주들한테 나눠주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세요.”

“4퍼센트면 연구소장 수준이군요. 그리고 현금으로는 조 단위의 금액입니다!”

“특허의 가치를 생각하면 굉장히 싸게 파는 겁니다. 기반 기술이라 이거 자체에선 큰 돈이 안 나올지 모르겠는데,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을 다 합치면 수천 조는 될 겁니다.”

“싸고 비싸고를 떠나서 그만한 양의 주식을 내가 맘대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는 겁니다.”

“방법은 본부장님이 생각하셔야죠. 제 개인적으로는 현실적인 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행동하는 데는 에이젠의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맘이 있다고 봐도 됩니까?”

“그렇습니다.”

류영준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내가 당신을 잘못 봤군요. 사내 정치와 경영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줄기세포를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전부라더니?”

“제겐 연구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관심 두지 않았더니 연구자들의 성과물을 이상한 데 쓰더군요. 더 이상은 그렇게 이용당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만.”

지광만이 손을 내저었다.

“류 박사. 당신이 가지고 온 계약서, 그거 종이쪼가리에 불과합니다. 난 아직 거기에 서명을 하지 않았고,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린 다시 논의하고 법대로 다룰 수도 있어요. 정말 그 길을 원합니까?”

“뜻밖이군요. 저는 본부장님의 말을 믿고 시신경 분화와 동물 모델에서 망막변성 치료를 완성했는데, 본부장님이 약속을 안 지키신다고요?”

“전에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난 비즈니스맨입니다. 내 손익만 계산해서 행동해요. 이 경우엔 약속을 어기고 뒷얘기 좀 듣고 당신의 원망을 사는 게 더 이익인 것 같은데? 이제 류 박사에게 끌려다닐 생각 없습니다. 화이자로 가든 말든 맘대로 하십시오.”

“글쎄요. 그렇게 하기 쉽지 않으실 텐데. 제가 이미 80 퍼센트를 받기로 얘길 해버려서.”

“누구한테요?”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본부장님, 주 비서입니다.”

본부장의 비서가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지금 미팅 중인데.”

“저기······.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데요.”

“기자?”

“CNN 기자요.”

“CNN?”

지광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SBS나 KBS 말고 CNN이요? 미국 CNN? 갑자기 왜? 누구랑 인터뷰를 해요?”

“본부장님하고 류영준 박사님이요.”

쿵.

가슴속에 뭔가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다.

뭔가 잘못됐다.

류영준이 옆에서 음, 음, 소릴 내며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벌써 올 줄은 몰랐네요. 진짜 소식 엄청 빠르구나. 아직 사이언스 특집 나가지도 않았는데······.”

“뭘 한 겁니까?”

“사이언스 저널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뭐라고요?”

“전부 사실만 얘기했어요. 그리고 회사에 좋은 얘기만 했습니다. 중소기업의 간암 치료제를 빼앗아서 없애버렸다거나, 퇴사시키고 싶은 부장급 연구자에게 시금치를 뽑게 했다든가, 뭐 그런 나쁜 것들은 얘기 안 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본부장님께서 제게 약속하신 것을 좀 휴머니즘적으로 포장해서 얘기한 게 전부입니다.”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지광만의 어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단번에 상황이 이해됐다.

지광만. 그는 이 바닥에서 30년을 넘게 굴러오며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고 별별 싸이코패스와 내일 없이 미친 종자들을 다 물리치면서 이 자리까지 온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이런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저 미소가 악마의 웃음처럼 보였다.

“제가 제안했던 거래. 잊지 마십시오. 4 퍼센트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사이언스에 투고되는 연구논문은 4,500자의 분량 제한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류영준이 투고한 논문은 두 편 합쳐서 10,000자가 넘었다.

사이언스의 편집장 사무엘은 그냥 규칙을 무시하고 모조리 실어버렸다. 사이언스 저널 역사를 통틀어서 한 손에 꼽히는 논문이다. 글자 수가 대수인가?

사무엘은 흐흐 웃으면서 논문의 요약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줄기세포는 손상된 신경과 장기를 복구할 수 있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나, 수정란을 필요로 한다는 큰 한계점에 제약받고 있었다. 본고에서 우리는 사람의 일반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줄기세포를 만드는 기술을 확보했다. 또한 줄기세포를 다시 심근섬유 세포와 시신경 세포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중 시신경 세포는 망막 변성 엔드 스테이지의 마우스의 전망막 지역에 주사하여 시력을 회복함을 확인하였다.>

굉장히 짧고 데이터 설명으로만 꽉꽉 채운 집적률 100 퍼센트 짜리 요약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과학계를 두들겨 패는 도끼 같다.

“네이처 이 새끼들. 이건 몰랐지? 오늘부로 생물학의 톱 저널은 사이언스야.”

원고를 업로드하면서 사무엘이 흡족하게 웃었다.

사이언스 역사를 통틀어서 아마 ‘게놈 프로젝트’ 논문 말고는 이것에 필적할 게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 역대급 논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생물학자, 닥터 류영준의 발굴.

불과 나이 스물여덟밖에 안 된 새파란 청년이라고 했다.

한국이 해 바뀌면 다 같이 한 살씩 사이좋게 먹는 이상한 문화가 있어서 자기 나라에선 서른이라는데, 아무튼 미국 나이로는 스물여덟이다.

DNA의 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도 16살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넷에 박사 학위를 딴 엘리트였지만 이쪽은 더하다.

과연 이 천재가 앞으로 잔뜩 남은 수십 년의 연구 기간 동안 뭘 만들어낼까?

류영준은 인터뷰에서 전 세계 의약업 종사자들과 과학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발언을 쏟아놓았다.

이 부분이 진짜 킬링 포인트다.

제시가 가져온 인터뷰의 마지막 부분.

-닥터 류, 역분화 줄기세포로 만든 시신경으로 실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 있습니까?

제시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에이젠에서 임상을 지원해줄 겁니다. 그리고 저희는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겁니다.”

-그럼요?

“역분화 줄기세포는 모든 조직과 모든 신경으로 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실력이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저희는 역분화 줄기세포를 토대로 파킨슨, 척추 손상, 뇌졸중, 뇌전증, 치매, 다발성 경화증, 루게릭, 레프섬 같은 모든 신경 질환을 뿌리 뽑을 계획입니다.”

인터뷰 원고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순간 제시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그게······. 그게 가능한 겁니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모든 종류의 신경질환을 전부 없애버리는 대형 제약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천연두로 고통 받는 사람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없듯이, 앞으로는 그 어떤 신경질환도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할 겁니다. 인류의 의학은 이미 다음 단계로 도약했고, 모든 인간은 아프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키면서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저희가 전쟁을 선포할 대상은 ‘신경질환’ 그 자체이며, 그 중 첫 번째 타겟은 시신경 질환입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반 년. 정확히 그 시간 안에, 시신경에 손상을 입은 모든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완성하겠습니다.”

숨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제시의 가슴에 차올랐다.

그녀는 MIT에서 박사를 하고 연구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다. 연구는 수년씩 걸리고, 어렵고, 힘들고, 지겹다.

어느 순간 그녀는 연구를 포기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연구물들을 소개하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 사이언스의 에디터가 된 이후 한 번도 1선 연구자의 삶을 그리워해본 적이 없었다.

새로운 논문들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들이 하나씩 발굴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적인 갈증이 해소되고 즐거웠다.

그녀의 과학은 그런 것이었다.

에디터로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제시가 아는 과학은 경탄과 유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깨달았다.

과학은 감동의 대상일 수도 있다.

류영준이 그리는 미래는 신비하고 재밌는 미래가 아니다.

그는 아름답고 짜릿한 진리를 찾아내어 에디터와 대중에게 알리는 데서 지적 고양감과 즐거움을 찾는 과학자가 아니다.

1선 연구자인 그는 전사에 가까웠다.

그가 분투하는 지점은 첨단 과학의 신기술이나,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굴 같은 게 아니라 질병을 퇴치하는 전장이었다.

인류와 질병의 대결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장 최전방에서 싸우는 과학의 병사.

본인이 자신의 지위를 그것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걸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 연구 재정은 에이젠이 지원해주는 건가요?

제시가 물었다.

“물론입니다. 에이젠은 세계 최고의 제약사입니다. 연구자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답니다. 심지어는 역분화 줄기세포의 지분을 주주들이 가져가지도 않았습니다. 오로지 연구에 재투자하기 위함이었죠.”

-정말입니까?

“네. 이번 연구에 성공한다는 조건으로 역분화 줄기세포의 로열티의 10%를 그냥 제게 주고, 80%에 대해서는 부서 예산으로 처리한 후 결재권을 제게 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전부 할 수 있게끔 하려는 배려였습니다.”

-와아!

“심지어 나머지 10 퍼센트도 1선 연구자들에게 대부분 돌아갔답니다. 주주들은 로열티 지분을 조금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그 정도로 류 박사님을 신뢰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 정도로 이 연구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는 뜻이죠.  에이젠은 그런 곳입니다. 연구물로 나온 성과에서 단물을 짜내기보다는 1선 연구자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그를 격려해서 다음 연구를 완성시킬 수 있게 뒤를 받쳐주는 곳입니다.”

-대단하군요. 이거 화이자나 존슨앤존슨 같은 경쟁 제약사들은 좀 긴장되고 걱정도 되겠는데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어째서요?

“그들 근처에도 심각한 신경 질환을 앓는 사람이 있거나,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환자는 남이 아닙니다. 누구든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이 마비될 수 있죠. 제가 개발하든, 화이자가 개발하든, 로슈가 개발하든, 상관없습니다.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만 있으면 되니까요. 과학자는 돈이나 명예를 좇을 게 아니라, 인간의 편리와 복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군요. 에이젠의 경영진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주주들 몫의 모든 지분을 포기하고 저와 연구자들을 전폭 지원했으니까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