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제 1 저자 (4) (183/301)

26화.  제 1 저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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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선미는 실험동물자원 센터에서 24마리의 망막 변성 마우스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튿날 연구지원 부서 직원이 카트에 케이지 여섯 개를 싣고 나타났다.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들 때는 환자 각자의 세포를 이용해야 한다. 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류영준은 쥐 24마리 중 20마리의 섬유아세포를 채취한 다음, 그들 각각에 유전자들을 집어넣어서 줄기세포로 역분화시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신경으로 다시 분화시켜야 한다. 렌티 바이러스를 이용해 몇 종의 새로운 유전자들을 도입하고 발현을 조절하면서 약 열흘간 조심스럽게 배양했다.

다시 월요일 아침.

류영준이 인큐베이터를 열고 영양 배지를 꺼냈다.

하이드로코르티손이 5 마이크로몰 (μM) 농도로 포함된 배지다. EGF와 돌소몰핀이 처리되어 있었다.

모두 로잘린이 지시한 대로 처리한 것이다. 결과 역시 로잘린이 예상한 대로다.

줄기세포는 시신경 세포로 분화했다.

됐다.

‘시신경을 만들었다.’

새삼 소름이 돋았다. 불과 열흘만에 정말로 시신경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다니.

이제 이걸 망막 변성 마우스의 눈에 주사기로 집어넣어야 한다.

“배 책임님. 저 좀 도와주실래요?”

류영준은 배선미와 함께 동물 실험실로 다시 이동해서 쥐들의 번호를 매긴 후 한 마리를 집어 들었다.

이젠 좀 어려운 작업이다.

쥐의 눈에 시신경 세포를 주사해서 집어넣어야 한다.

쥐를 마취시킨 후 전망막 (sub-retinal) 위치에 정확히 찔러 넣어야 한다. 아주 숙련된 테크니션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선미가 그 테크니션이었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좀 긴장되네.”

배선미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쥐의 체중을 쟀다.

“270그램.”

“케타민 (ketamine)이랑 자일라진(zylazine)으로 마취하실 거죠? 정맥주사해서?”

류영준이 물었다.

“네.”

“용량은요?”

배선미가 계산기를 두들겼다.

“케타민 1.04그램. 그리고 자일라진은 248.4밀리그램.”

류영준이 마취제를 준비했다.

배선미는 침착하게 쥐의 정맥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고 마취약을 밀어 넣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자 쥐의 움직임이 멎었다.

배선미는 쥐의 눈이 상에 맺히도록 쥐를 수술 현미경 (operating microscope)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시신경 세포를 미세 바늘 주사기로 빨아들였다.

“휴우······.”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바늘 끝이 쥐의 눈알 바로 앞에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배선미는 몇 번 애쓰다가 주사를 내려놓았다.

“못하겠어······.”

그녀가 말했다.

“너무 손 놓은 지가 오래돼서······. 미안해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류영준이 현미경 앞에 앉았다.

“류 박사님이요? 류 박사 동물 실험도 해봤어요?”

“아뇨.”

동물 실험 무경험자가 망막에 주사를 놓는다? 쥐 한 마리 희생시키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류영준은 할 수 있었다.

<동기화 모드 발동!>

동기화 모드는 생명 현상을 옹스트롬 단위에서 관찰할 수 있다.

옹스트롬.

보통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단위다. 대중에게 조금 더 익숙한 단위로 쓰자면 0.1 나노미터다.

물론 0.1 나노미터라는 값도 일상적인 값은 아니다.

약간 거친 설명이 되겠지만, 머리카락 굵기의 백만분의 1 정도 되는 값이다.

바늘 끝이 안구의 홍채 위쪽을 찔렀다. 가장자리를 따라 부드럽게 들어간 노즐이 변성된 망막 앞에 멈추었다.

치지지지

동기화 모드의 예민한 감각에 노즐에서 세포가 분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시신경 세포들이 쥐의 망막에 들러붙고 있었다.

너무나 정확한 인젝션에 배선미는 충격에 빠졌다.

“아니 무슨 로봇도 아니고······.”

“잘 됐겠죠?”

“제가 여태 본 것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인젝션이었어요.”

“같이 나머지 쥐들도 후딱 해치웁시다.”

“저도 할게요.”

용기를 얻은 배선미가 왕년의 실력을 되찾았다. 그녀는 류영준과 함께 쥐를 한 마리씩 마취하고 망막에 줄기세포를 주사했다.

물론 류영준이 훨씬 빨랐다.

배선미가 두 마리를 다루는 동안 류영준은 일곱 마리의 주사를 끝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피트니스 고갈>

아무리 빨리 해도 일곱 마리가 한계였다.

“저는 눈이 좀 피로해서······. 약간 쉬면서 할게요. 하하.”

류영준이 둘러댔다.

“네. 걱정 마세요, 류 박사님.”

배선미가 조금 더 스피드를 냈다.

‘역시 배선미 같은 테크니션이 팀에 있는 게 훨씬 편리하군.’

배선미는 빠르고 꼼꼼하게 쥐들의 눈에 시신경을 주사했다. 이제 쥐들이 마취에서 깨어나고 시력이 회복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수고하셨습니다. 책임님.”

류영준이 배선미에게 활짝 웃어보였다.

“성공하면 이것도 새로 특허와 논문을 쓸 거예요. 배 책임님 이름도 들어갈 거고요.”

“고마워요. 류 박사 덕분에 나도 큰 논문에 이름 한 번 넣어보겠네.”

“앞으로도 동물 실험 많이 부탁드려요.”

“저만 믿으세요. 왕년에 동물실험자원 센터에서 최고 실력자였어요, 저.”

“하하,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밖으로 나와서 휴대폰을 열었다.

메일이 한 통 와있었다.

사이언스 학술지 편집자가 보낸 것이었다.

류영준이 투고한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다.

***

생물학계에는 3대 학술지가 있다.

사이언스(Science), 네이처(Nature), 셀(Cell).

세계 최고의 학술지이며 모든 과학자들의 로망이다. 대학 교수들 중에서도 이들 학술지에는 논문을 내본 적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학술지들에 나오는 논문들은 과학계에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거나, 굉장히 엄격한 실험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연구실과 연구자들은 그만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재정이나 시설이 없고, 데이터를 생산할 능력도 없다.

그럼 사이언스, 네이처, 셀. 셋 중 어느 곳이 최고일까?

저마다 조금씩 분야가 다르지만 대중적인 이미지로는 사이언스가 최강이다.

사이언스는 토머스 에디슨과 그레이엄 벨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곳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렌즈 연구, 허블의 은하 연구 논문, 아폴로 계획이나 에이즈에 대한 초기 연구 논문 등이 게재되면서 톱 저널이 됐다.

사이언스 학술지를 출판하는 ‘미국 과학 진흥 협회’의 편집장 사무엘은 이번에 들어온 논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왓 더······.”

일반 세포를 줄기 세포로 역분화시켰다는 내용이다.

앞부분만 좀 읽어봤는데 진짜 미쳤다. 근 몇 년 사이에 본 논문들 중에서 가장 혁신적이다.

제 1 저자이자 교신 저자, 영준 류.

순열 고, 혜림 정, 동현 팍 세 사람이 이후 저자들이다.

불과 네 명.

경험상 이 만한 연구는 하버드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같은 초대형 팀 몇이 함께 집중적으로 몇 년간 연구해야 된다.

그래서 저자도 수십 명 정도 나오고, 그 중 대여섯 명은 교수인 경우가 허다하다.

제 1 저자도 공동 저자로 두세 명씩 등록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논문의 제 1 저자와 교신저자는 한 명 뿐이다.

“영준 류. 이 사람 누구에요?”

사무엘이 에디터 제시에게 물었다.

“에이젠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입니다.”

“이거 사기 아냐? 고작 네 명이서 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이 사람이 혼자서 제 1 저자이자 교신저자라는 건 혼자 연구를 하드캐리 했다는 건데 어떻게 이런 걸 혼자서······.”

“아마 진짜일 거예요. 디스커션에 역분화 과정에 대한 분석도 완벽하게 다 써놨잖아요? 한 번 보세요. 지금 에이젠에서 보도 자료도 돌리고 있던데요.”

“오 갓······.”

사무엘은 디스커션까지 다 읽어보고는 말을 잃었다.

“이거 다음 달 표지 논문으로 실어요. 그리고 인터뷰도 하나 내보냅시다. 한국말 할 수 있는 에디터 있죠? 아니면 통역 고용해서······.”

“근데 그 논문 원고 말고 에디터한테 보내는 편지 있잖아요?”

제시가 말했다.

“편지?”

사무엘이 원고 뒷면에 첨부된 편지를 열었다.

“그 편지에 보시면 한 달 동안 출판하지 말고 대기해달라고 했어요.”

“왜?”

“역분화 줄기세포 만든 걸 다시 시신경으로 분화시켜서 망막 변성 마우스의 시력을 치료하겠다고 하던데요.”

“무슨 미친 소리야 그게?”

“그 데이터가 나오면 같이 묶어서 특집으로 내보내달라고 했어요.”

툭.

사무엘이 펜을 떨어뜨렸다.

역분화 줄기세포 하나만 해도 전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만한 사건이다.

이미 세계 최정상 학술지인 사이언스의 표지를 장식할 논문이다.

출판되고 나면 아마 적지 않은 대학들에서 교수로 모시려고 초빙도 할 것이다.

학회에라도 가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몰려와서 악수를 요청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요청할 만한 일이다.

근데 그걸로 만족을 못하겠다는 건가?

그 다음 단계의 위업을 달성해서 한 데 묶어 같이 내겠다고?

심지어 시신경을 만들어서 망막 변성 모델을 치료한다?

게다가 그걸 한 달만에 하겠다고? 뭐 이런 경우가 있지?

“말이······. 말이 안 돼. 사람을 보내봐야겠어. 제시. 에디터 중에 닥터 류를 만나서 데이터를 직접 보고 인터뷰를 해볼 만한 사람 자원 받아봐. 난 이런 과학자를 여태 들어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어.”

“제가 가겠습니다.”

제시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자네가?”

“네.”

“한국어 못하잖아.”

“통역을 데려가면 되죠. 저 한국 가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BTS 팬이라.”

“놀러가는 거 아냐.”

“물론이죠. 일은 잘 끝내고 올게요. 닥터 류한테 저도 관심이 좀 생기기도 했고요.”

***

인천 공항에 내린 제시는 통역과 함께 곧바로 에이젠의 제 6 연구소로 이동했다.

에이젠 연구소에는 원래 외국인 연구자들도 많이 있지만, 제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외모였다.

딱 붙는 청바지와 스웨터, 흰 코트를 입고 나타난 금발 미인의 모습에 연구소 내의 과학자들이 지나갈 때마다 힐끔거렸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되어 4층 생명창조 부서의 사무실.

“안녕하세요?”

미리 공부해온 한국어 몇 마디로 제시가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류영준입니다.”

류영준은 제시와 악수하고 그녀와 함께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통역을 데려오긴 했지만 사실 류영준과의 미팅에는 그렇게 필요하진 않았다. 과학의 기본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이다.

보통 읽는 논문들이 죄다 영어고, 그래서 논문을 쓸 때도 영어로 쓴다. 미팅도 영어로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류영준은 소회의실에서 논문 데이터를 띄워놓고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SOX2는 DKK1의 발현을 조절해서 윈트 신호를 억제하고 다분화능을 유지하는데요······.”

그의 강의를 듣는 제시의 표정이 점점 황홀하게 변했다.

워낙 급진적인 내용이라 솔직히 제시도 약간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이제 믿음이 생겼다.

“판타스틱······. 이거 후속 연구랑 같이 내겠다고 하셨죠?”

제시가 물었다.

“네. 쥐의 섬유아세포로 줄기세포를 만들고 시신경으로 다시 분화시켜서 신경 치료를 하는 겁니다.”

“그 실험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한 번 보실래요?”

류영준이 제시를 데리고 실험실로 이동했다.

“커피는 여기 두고 들어가요. 실험실 내에 음식물 반입 안 됩니다.”

류영준이 제시가 들고 있는 아메리카노를 가리키며 말했다.

두 사람은 동물실험실에 들어갔다.

커다란 상자가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운데는 유리판과 검은 종이로 막혀 있었다.

종이를 치우면 옆방이 보이게 되지만 이 쥐들은 망막 변성 모델이다. 원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등에 적혀있는 숫자로 1번부터 20번까지 줄기세포로 치료한 쥐들이고, 21번부터 24번까지는 치료하지 않은 쥐들입니다.”

류영준이 종이를 치우자 1번부터 20번까지의 쥐 스무 마리가 옆방의 새 공간에 관심을 보였다.

류영준은 그곳에 냄새가 나지 않는 모형 빵을 넣었다.

그러자 시신경을 치료한 쥐들이 유리벽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머지 네 마리는 반응하지 않았다.

“오 갓······.”

충격에 빠진 제시가 입을 가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이 쥐들의 시력이 복구된 거예요?”

“몇 가지 추가 검증 데이터를 생산해야겠죠. 논문은 이미 다 써놨습니다. 데이터만 추가하고 정리해서 보낼 겁니다.”

“이것도 닥터 류가 하신 건가요?”

“저랑 배선미 책임 연구원님이요.”

“둘이서요?”

“네.”

“······.”

이전 논문에 끼었던 고순열, 박동현, 정혜림이 이번엔 없다. 배선미라는 새로운 인물이 들어갔고, 이번에도 제 1 저자이자 교신 저자는 류영준 한 사람이다.

류영준 한 사람.

팔에 오싹 소름이 돋는다.

데이터를 설명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이 연구에 대해 완전하게 통달해 있는 사람이다.

역분화 줄기세포와 시신경 재건과 동물 모델의 망막 변성 치료. 의학계의 큰 마일스톤이 될 만한 이 위업이 사실상 이 남자 한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가능한가? 그냥 한 명의 과학자가 이 정도의 연구 퍼포먼스를 낼 수가 있나?

이 성과물은 과학계와 의학 산업 전반에 걸쳐 대지진을 일으킬 것이다.

모든 종류의 안질환을 다 치료하진 못하겠지만 상당수의 시각 장애인들을 구제할 수 있다.

제시가 침을 꼴깍 삼켰다.

“발표 후에 바로 임상을 준비할 겁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 닥터 류. 이건 노벨상도 받을 수 있는 연구에요. 당장은 안 되어도 나이가 좀 더 들고 짬이 생기면 분명 노벨상을 수여받을 거예요.”

“그런가요?”

“인터뷰를 하고 싶어요. 사이언스 다음 월간지의 커버와 특집 시리즈로 이 내용을 다루고 싶습니다. 1면에 닥터 류의 사진과 인터뷰를 걸었으면 해요.”

놓칠 수 없다. 어쩌면 줄기세포와 시신경 치료라는 거대 논문 이상으로 중요한 인터뷰가 될 것이다.

생물학계의 대스타 탄생. 다윈 이래 최고의 혁신가.

절대 네이처나 셀에 빼앗길 수 없다. 이런 천재가 과학계에 거인의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처음 리포트하는 건 반드시 사이언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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