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야심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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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떠났으면 좋겠다고요?”
류영준이 되물었다.
“그래. 류 박사 같은 인재가 이런 데서 썩을 필요 없어.”
천지명이 빙그레 웃었다.
배선미와 박동현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동현이 말했다.
“사실 저도 계속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류 박사님. 솔직히 당신이 떠나고 나면 우리 팀은 다시 에이젠 안에서 엄청나게 핍박 받겠지만 저흰 그거 익숙해서 괜찮거든요? 류 박사님 발목까지 잡고 싶지는 않아요.”
“나도 같은 생각. 나는 류 박사님을 오늘 처음 봤지만 역분화 줄기세포 기술을 류 박사님이 만드신 거라면 정말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배선미가 덧붙였다.
류영준은 술잔만 기웃거리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류 박사는 꿈이 뭐야?”
천지명이 물었다.
“꿈이요?”
“이런 거 묻는 게 좀 어색한가?”
“아닙니다. 제 꿈은······. 질병을 하나라도 더 빨리 정복해서 사람 하나라도 더 살리는 겁니다.”
천지명이 피식 웃었다.
“건전한 꿈이구먼.”
“진짜 과학자의 자세랄까.”
고순열이 사이다를 마시면서 말했다.
“근데 우리는 그런 열정 같은 거 거의 다 잊어버렸어.”
천지명이 말했다.
“나나 여기 배선미 책임의 꿈은 애들 잘 키워서 시집 장가 보내는 거 정도야.”
“솔직히 류 박사님은 우리 팀만이 아니라 에이젠에 있기에 아깝다고 생각해요. 류 박사님.”
박동현이 말했다.
“하지만 제가 어디로 갈 수 있을까요?”
“음.”
“국내에 있는 중소기업 제약사들은 전부 에이젠의 그늘 아래에 있어요. 현실적으로 인프라가 너무 부족해요. 제가 그것까지 다 셋업하면서 키울 순 없어요. 이번 역분화 줄기세포만 하더라도 말이에요. 여기선 유전자나 바이러스를 구매 신청하면 다음날 오잖아요? 중소기업에서 했으면 1, 2주씩 걸렸을 거예요. 중간의 유통 루트가 충분히 셋업 돼있지 않아서요.”
“그야 그렇지.”
“그리고 앞으로는 그걸로 장기 배양이나 조직 세포 분화 연구를 해야 할 텐데 그걸 할 수 있는 시설이나 연구 지원 능력을 갖춘 회사가 국내에는 없어요.”
잠깐 우울한 침묵이 흘렀다.
“에이젠의 대체제가 현실적으로 없긴 하지.”
천지명이 말했다.
장비 한두 개가 없으면 사면 된다.
하지만 연구 인프라라고 하는 것은 인적인 부분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쪽은 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에이젠 정도 되는 톱 레벨의 제약 회사였기 때문에 생명창조 팀에 박동현, 정혜림, 고순열이 있는 것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역분화 줄기세포를 다시 근육 세포로 분화시키거나, 메틸레이션 데이터를 뽑거나, 엑솜 시퀀싱 데이터를 생산하는 과학자는 세계에서도 드물다.
리액션케미스트리나 셀바이오도 실력 좋지만 이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에이젠을 나가면 연구 작업들의 진척 속도가 현저히 떨어질 게 분명하다.
테크니션이 없다는 것은 모든 걸 직접 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전임상 실험의 한 부분으로 특정한 유전자가 조작된 마모셋 원숭이가 필요하다 치자.
그걸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이 원숭이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만들어야 한다.
그럼 원숭이의 수정란을 유전자 조작한 다음, 배양해서 암컷의 자궁에 착상시키고 새끼가 태어나길 기다려야 한다. 그게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 후에야 실험을 할 수 있다.
에이젠에서는 기업 내부의 실험동물자원 센터에 요청하면 끝이다. 그곳의 유전자 조작 테크니션들이 원숭이를 제작해서 보내준다.
중소기업에서는?
그걸 할 수 있는 인력이 회사 내부엔 없다.
이런 고난도의 작업을 외주로 받아주는 회사는 국내엔 없고, 해외에서 서비스하는 곳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실력이 떨어지거나 한다.
때문에 아마 류영준이 직접 해야 할 것이다.
로잘린을 쓰면 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에이젠에선 그 시간 동안 다른 연구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단편적인 문제점은 현실에서는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즉, 마모셋 원숭이의 제작이 전부가 아니라 관리와 사육, 폐기까지 류영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중소기업의 CEO들이 셀리제너처럼 에이젠에게 휘둘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회사든 헤드가 휘청거리면 제대로 작업을 할 수 없다.
제약 회사를 창업한다면?
에이젠에게 휘둘리는 문제는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겠지만 많이 돌아가게 된다.
일단 생물학 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에 신청부터 해야 한다.
연구소의 각 연구실 단위로 유전자변형생물체 사용 등급에 대한 허가를 따내야 한다.
실험 기구들을 구매하는 데 서류가 다섯 장씩 나오고, 실험동물이나 세포주를 구매하려면 구매처와 담당자부터 시작해서 운반 계획서와 실험 계획서와 폐기법에 대한 계획서를 전부 써내고 확인을 받고 허가를 따내야 한다.
외부로 유출되었을 때 위험한 물질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만큼 관리와 규제가 까다로운 것이다.
로잘린이 아무리 뛰어나도 정부 당국의 심사관들을 뭐 어떻게 하겠는가.
그걸 하나하나 셋업하면 본래 하려고 했던 실험 하나를 시작하는데 5년씩 걸릴 거다.
“줄기세포를 터뜨리고 주목받고 있으니 나간다고 하면 임원들이 붙잡겠죠. 그럼 뭐, 잠깐 기분은 좋겠네요. 하지만 나가도 현실적인 대안이 없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국내는 그렇지만 해외로 나가면 에이젠만큼 큰 회사들이 있잖아요.”
박동현이 말했다.
“있죠. 하지만 그 녀석들도 에이젠이랑 별 다를 것 없는 놈들이에요. 아시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에이젠 경영진이 사탄 같은 놈들이라면, 그들은 사탄을 은퇴시킬 수 있는 놈들이다.
악랄함이 차원이 다르다.
제 3 세계에서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미성년자들을 데리고 인체 실험을 하거나, 생산 단가 100배의 폭리를 취하기 위해 사람 목숨을 쥐고 각국 정부들을 협박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연구원에게 더 대접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진 않았다.
“제가 존슨앤존슨에서 인턴을 했었는데······. 안 가는 게 나아요.”
정혜림이 말했다.
“새로운 또라이보다는 익숙한 또라이가 낫다는 말도 있으니까.”
“아니면 그냥 회사를 다니지 말고 교수직을 해.”
천지명이 말했다.
“류 박사 실력에 줄기세포 논문 쓰고 나면 정윤대에서도 교수하라고 초빙할걸?”
“하지만 교수들은 별로 힘이 없어요. 보통 기초 기술 정도나 생산하는 거지, 제품화 가능한 물건을 만들어내지는 못하잖아요. 전 좀 더 세상에 도움이 되는 힘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여기서 일하면 에이젠 윗대가리들에게 도움이 되겠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항암신약 부서에서 그렇게 한 번 당해봤기 때문에 이젠 안 그럴 거예요.”
“아무리 류 박사가 똑똑해도 회사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이잖아. 류 박사가 뭘 하든 회사 소유로 넘어가고, 회사는 주주들 것이고 임원들 거야. 솔직히 나는 류 박사가 그 놈들 배 불려주는 부분이 짜증나고 심술 나는 거야.”
“그 사람들이 제 덕분에 배 부를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 역분화 줄기세포만 하더라도 특허 지분을 주주들이 나눠가질 거 아닌가?”
“아뇨. 안 줄 겁니다.”
잠깐 적막이 흘렀다.
배선미는 잔을 들던 손 그대로 굳어버렸다.
“무슨 소리에요 그게? 류 박사님 맘대로 그게 되나요? 사내에서 개발한 기술의 특허는 전부 회사 소유에요.”
“소유는 회사로 되어 있어요. 하지만 로열티로 나오는 수익의 분배 지분은 특허 출원인이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고 법률사무소에 넘길 때 신청할 수 있어요.”
“······. 갑자기 굉장히 불안해지는데 혹시 특허 신청서에 로열티 지분 분배를 어떻게 썼나?”
천지명이 물었다.
“제 1 특허권자로는 제 이름을 썼습니다. 제 2 특허권자는 순열 선배고요. 그 다음은 동현 선배랑 혜림 선배입니다. 데이터의 중요도를 토대로 결정했고요. 부장님이랑 책임님은 그 때 회사에 안 계셨고 실험한 것 없으니 아쉬우시겠지만 지분도 없습니다. 지분율은 제 맘대로 썼어요.”
쨍!
박동현이 실수로 잔을 엎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아, 죄송합니다. 손이 떨려가지고.”
“류 박사. 진짜 그렇게 썼나? 지분율을 류 박사가 썼다고?”
천지명이 물었다.
“네.”
“미치겠군······.”
에이젠의 특허 출원 방식은 특이하다.
제 1 발명자에 해당하는 연구원이 기술을 개발한 다음 특허 출원 신청서를 쓴다. 이 때 제 1 발명자가 특허 지분을 명시할 수 있다. 지금 류영준처럼 말이다.
회사가 스타트업이었던 시절 생긴 규칙이다. 연구자 중심의 회사라는 이념에 따라 만든 건데,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법률사무소에서 서류가 작성된 다음, 임원들이 심사하기 때문이다.
1선 연구원이 써놓은 지분율이 임원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반려하거나, 해당 연구자를 임원실로 불러서 으깨놓고 수정하게 한다.
직원들은 별로 힘이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수십 년간 이어져오면, 연구자가 특허 지분을 처음에 명시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사문화가 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특허 지분율 부분을 아예 쓰지도 않고 신청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법률 사무소에 보내기 전에 각자 연구소의 연구지원부서에 제출하는 것이다. 그럼 연구지원부서에서 연구소장의 명령을 받아 지분율을 적당히 쓰고 법률 사무소로 보내는 식이다.
젊은 과학자들은 아예 그렇게 하는 게 원칙인 줄 알고 있다.
그렇게 해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반발이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대부분의 특허는 사업화가 되지 않아서 돈이 거의 안 된다. 그래서 다들 신경을 안 쓰는 거다.
그리고 간혹 가다 나오는 ‘돈이 되는 특허’의 경우엔, 출원하기까지 최소 몇 년, 최소 수십 명의 과학자들이 달려들어서 밤을 새워가며 연구한다.
즉, 돈이 되는 특허는 필연적으로 초대형 프로젝트라서 엄청난 돈과 인력과 시간이 쓰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역분화 줄기세포 기술을 로잘린 없이 셋업했다면 과연 에이젠이 본사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지원을 퍼부어야 했을까?
이런 종류의 특허가 나오는 경우는 연구의 시작부터 이미 회사가 잘 알고 있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다.
그 쯤 되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1선 연구자들끼리 지분을 나누는 것의 의미가 희미해진다.
참여 과학자가 200명 쯤 되는데 다 지분을 다 주기는 어렵다.
당연히 핵심 인력 몇 명만 소수점 단위의 형식적인 지분율을 받고, 나머지는 성과급으로 포상한다.
그럼 나머지 지분율은?
회사 명의로 돌리거나 주주들끼리 회의해서 조금씩 나눠 갖는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이 경우엔 연구 윤리적으로도 당연한 것이다.
몇 년간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뒤에서 받쳐주며 엄청난 돈을 써버린 연구소장이나 연구지원부, 에이젠 본사의 공로를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영준의 경우엔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
워낙 예외적인 케이스라 이런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천지명은 식은땀을 흘렸다.
“정말 미쳤군······. 류 박사가 지분율을 다 써놨다니. 그리고 거기에 우리 연구소장 길형준이나 CTO를 안 넣었다고? 그 상태로 법률사무소에 보냈어?”
“류 박사님. 임원들 이름이 꼭 들어가야 해요······.”
배선미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무슨 소리에요?”
류영준이 정색했다.
“그 사람들 제가 세미나에서 결과물 들고 발표할 때까지 아예 그런 연구를 한다는 것조차 몰랐던 사람들입니다. 근데 왜 지분을 가지나요? 그거 연구윤리 위반입니다.”
테이블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호······. 혼모노······.”
갑자기 고순열이 중얼거렸다.
“그냥 깐깐한 원칙주의자 그런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진짜 혼모노······.”
“과학은 원칙대로 해야 합니다. 객관성의 학문이고 가장 순수해야 하는 학문이잖아요.”
류영준이 말했다.
“난 동의해.”
천지명이 말했다.
“하지만 그걸 길형준이나 임원들도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니콜라스는 진성 과학자고 류 박사처럼 원칙주의자라서 이 경우엔 오케이 할 수도 있지만.”
“연구지원부서 건너뛰고 6 연구소의 담당 법률사무소에 직통으로 맡긴 거죠?”
배선미가 물었다.
“네.”
“그럼 서류 작성 끝나는 대로 연구소의 연구지원부서로 넘어갈 테고 길형준한테 들어갈 거예요. 발칵 뒤집어질 텐데······.”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로열티 지분의 퍼센트 좀 자세히 얘기해봐.”
천지명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잠재 가치가 큰 특허의 경우엔 개인은 그 누구든 10퍼센트를 초과해서는 가져갈 수가 없게 되어있더군요. 그래서 제가 10퍼센트. 동현 선배와 혜림 선배, 순열 선배가 각각 3퍼센트씩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개발할 때 에이젠 설비를 사용했고, 앞으로 에이젠이 특허 등록 처리를 해줄 테니, 에이젠의 제 6 연구소와 본사에 0.5퍼센트씩 줬습니다.”
“그럼 80% 남은 건가?”
“사내 특허 관련 조항에 지분율의 80% 이상은 반드시 회사 명의로 돌려야 한다는 조항이 있더군요. 그래서 전부 생명창조 부서 예산으로 썼습니다.”
“부서 예산?”
“회사 명의라는 게 에이젠 본사와 연구소 여섯 개에요. 사실 부서 단위로는 안 되는 건데 그냥 썼습니다. 건강식품 같은 부서에서 이 돈 쓰는 건 원치 않았거든요. 그리고 별도의 계약서를 써서 그 예산을 확정시키고 최종 결재권을 제 이름으로 받아낼 생각입니다.”
“······.”
“영준 군 혹시 회귀자입니까?”
고순열이 물었다.
“아~ 아니라니까요. 뭐에요, 그게.”
“한 60살 정도 된 회사 임원이 청년으로 회귀해서 피의 복수를 하는 것 같아서······.”
“류 박사님. 그 특허 지분 문제로 에이젠의 경영진이나 소장들이 잡아먹으려고 덤비면 어떻게 방어할 거예요? 좀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거신 거 같은데.”
정혜림이 물었다.
“한 번 두고 보세요. 생각해둔 게 있으니까.”
류영준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류 박사.”
천지명이 말했다.
“약 하나 더 빨리 만들어서 사람 하나 더 구하는 게 류 박사 꿈이라면, 그 지분들 임원들한테 갖다 바치고 협조를 구하는 게 더 빠르겠지.”
“그렇겠죠.”
“근데 경영진이랑 싸우면서까지 독자적인 연구 예산과 결재권을 확보하려는 건 다른 뜻이 있는 거 같은데. 류 박사가 원하는 게 뭐야?”
“제가 원하는 거요?”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뭐, 저는 우리 팀원들 믿고 있고. 다른 데로 얘기가 새나가도 다들 코웃음치고 한 귀로 흘릴 것 같으니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제 꿈은 아까 말씀드린 게 맞고요.”
류영준이 말했다.
“그걸 이루기 위한 목표로 에이젠의 최대 주주이자 최고 경영자가 될 생각입니다.”
“······.”
다시 테이블에 적막이 흘렀다.
“좀 허황된 얘기 같나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그뿐입니다. 에이젠보다 하드웨어가 좋은 회사는 해외에도 몇 없어요. 문제는 이곳의 OS에 바이러스가 들었다는 겁니다. 제가 그걸 포맷하고 다시 설치할 겁니다.”
박동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뭐 어렵다, 안 된다, 그런 얘기 안 하렵니다. 역분화 줄기세포도 솔직히 거의 SF 소설 수준의 얘기였잖아요? 근데 일주일 만에 해낸 사람이잖아요? 저는 류 박사님 편이에요.”
“류 박사가 성공하면 대리 경영인으로는 채용될 수도 있겠지만 최대 주주는 쉽지 않아. 그건 회사의 오너가 되겠다는 거나 다름없어. 알고 있지?”
천지명이 말했다.
“네.”
“돈이 엄청나게 많아도 주식을 그만큼 사긴 어려워. 경영권 방어한다고 막을 테니까.”
“지금이야 그렇죠. 하지만 앞으로는 바뀔 겁니다. 역분화 줄기세포가 몇 년 안에 혁명을 일으킬 거고, 그 파도를 타면 분명 에이젠 내부에서도 양심 있는 과학자들이 절 지지할 거예요. 그럼 대주주들 중에서도 제 편으로 돌아서는 사람들이 나올 테고요. 그 사람들한테 주식을 살 겁니다.”
“하. 잘 되면 확실히 좋겠지만······.”
천지명이 헛웃음을 지었다.
박동현이 말했다.
“류 박사님. 저는 역분화 줄기세포가 상용화되고 온갖 질병들을 다 고치고 다니기 시작하면 말이에요. 류 박사님의 명성과 재산이 쫙 올라가서 경영권에 도전해볼 만할 거라 생각해요.”
박동현이 말했다.
“만약 그 때가 되면 저 생명창조 팀 부장 시켜주십쇼. 지금 미리 딸랑딸랑 하는 겁니다.”
천지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쏘아보았다.
“그럼 난 어쩌고?”
“그 때면 한 20년 지났을 텐데 부장님은 은퇴하시고 저기 어디 시골에 귀농하셔야죠. 월동 시금치도 캐고 가끔씩 손주 재롱도 보시고.”
“이거 완전 미친놈이구먼······.”
류영준이 피식 웃었다.
“20년씩 안 걸릴 거예요. 최대한 빨리 처리할 겁니다.”
“그래. 나중에 류 박사가 뭐든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서 도와주지.”
“저도요.”
정혜림이 말했다.
“전 지금부터도 가능해요. 류 박사님, 저 뭐할까요?”
박동현이 장난을 치자 배선미가 흘깃 쳐다보았다.
“동현 씨 오늘 텐션 엄청 좋네. 왜 이렇게 신났어?”
“류 박사님이 에이젠 헤드가 되는 걸 생각하니까 너무 짜릿해서요. 류 박사님 이 썩은 회사를 개혁하고 이끌어주십쇼. 제가 미운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아무튼 지금 확실한 건 월요일 쯤 되면 특허 서류를 읽은 길형준이 쇠파이프 같은 걸 들고 우리 부서로 찾아올 것 같다. 정도인가?”
천지명이 말했다.
“저는 망치 예상해봅니다.”
박동현이 말했다.
“난 전기톱.”
정혜림이 말했다.
“······.”
“실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건배나 하죠.”
류영준이 술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