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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독감 치료제 (4) (169/301)

12화. 독감 치료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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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준과 박주혁은 근처 식당에서 백반을 주문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류영준은 연락처에서 돈 빌릴 만한 사람들을 찾아 헤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주혁이 말했다.

“너 진짜 천만 원만 있으면 건물주 될 수 있냐?”

“어.”

“네가 만든다는 약이 어떤 건데?”

“독감 신약이야. 타미플루 같은 건데 타미플루보다 효과가 더 좋아. 그리고 보관이나 생산도 더 간단하다.”

“그걸 외주 실험 맡겨서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회사랑 무관하게 하겠다는 거지? 그래서 특허를 네가 먹고?”

“응.”

“뭐 법률적으론 말이 된다만, 그걸 네가 개발해서 특허를 혼자 먹으면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나?”

“타미플루 1년 매출이 얼마인지 알아?”

“얼만데?”

“3조.”

박주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3······. 조?”

“지금은 제약 회사 로슈가 그걸 팔고 있는데 세계 1년 매출이 3조야. 그 중 로열티로 특허권자에게 계약에 따라 5퍼센트 정도가 들어가고.”

“······.”

박주혁이 고민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류영준이 말했다.

“주혁아. 혹시 돈 빌려줄 수 있으면 나 믿고 한 번만 투자해라. 올해 안에 다섯 배로 갚아줄게.”

“약을 개발하면 제품화하기 전에 임상기간만 몇 년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올해 안에 돈을 벌어?”

“동물실험에서 약효를 보여준 다음에 프로토타입으로 제약사에 팔 거야. 아무리 성공하는 약이라도 그거 개발하는 동안 몇 년씩 가난하게 살고 싶진 않으니까. 프로토타입으로 팔면 100억 정도 예상하고 있어.”

박주혁은 미역국을 몇 번 떠먹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새끼 약 파는 거 같은데.”

류영준이 빙긋 웃었다.

“주혁이, 너니까 솔직하게 얘기해준 거야. 나 이미 그 신약 구조도 알고 있고 약효도 얼마나 나올지 감 잡고 있어. 실험해서 증명만 하면 돼.”

“음······. 좋아. 내가 빌려줄게.”

박주혁이 말했다.

“돈 없다며?”

“오백밖에 없어. 나머지 오백은 내가 빌려서 너한테 빌려줘야지.”

“미쳤어? 그렇게 하라는 뜻은 아니었어. 돈 없으면 무리하지 말고 관둬 인마. 지금 네가 투자 안 한다고 내가 성공했을 때 설마 너를 못 본 체 하겠냐. 괜히 네가 빚까지 낼 필요 없어.”

“나 아니면 네가 어쩌려고? 너 인성 빻았는데 분노조절장애도 있어서 나 말고 친구도 몇 없잖아. 어디서 빌리게? 또 사채?”

류영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가 박주혁의 눈치를 보자 박주혁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이 새끼 진짜 또 사채 쓰려고 했네. 됐어. 내가 빌려다 줄 테니까.”

박주혁은 곧바로 휴대폰을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네 형님! 접니다. 주혁이요. 네.”

그리고는 뭐라고 인사치레를 몇 마디 하더니 급한 일이 있다고 오백만 원을 빌려달라고 설명하고는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끊었다.

“누구야?”

류영준이 물었다.

“사법 연수원 동기. 돈 많은 형이야.”

“얼마나 많기에 오백을 불쑥 빌려줘?”

“재벌 3세야.”

“와우······.”

“근데 재벌이라고 돈을 아무데나 쓰고 막 빌려주는 건 아냐. 원래 부자들이 돈 쓰는 데 더 깐깐해. 하지만 나도 이제 변호사고, 정윤대 아싸 류영준과 다르게 나는 항상 핵인싸로 살아왔기 때문에 인맥과 신용이 튼튼하단다. 500 정도는 빌릴 수 있지.”

띠링!

박주혁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돈 들어왔네. 네 계좌로 보내줄게.”

“고맙다.”

“10만원 더 넣었다. 어디 가서 굶고 다니지 마.”

“밥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커피는 내가 살게. 지금 네가 준 10만원으로.”

류영준은 박주혁과 함께 가게를 나와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드시고 가세요?”

아르바이트생이 물었다.

“아니요. 테이크아웃이요.”

류영준이 말하자 박주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가려고?”

“약국 가야 해. 잠깐만. 나 전화 한 통만.”

류영준은 리액션케미스트리의 김지철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김지철 과장이 생글거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잘 지내셨죠? 합성 문의하실 게 있나요?

“네, 지금 이메일로 합성할 화학 물질의 구조식을 보내드릴게요.”

류영준은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던 독감 치료제의 구조식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네, 받았습니다. 흠······. 어떻게 제작할지 생각을 좀 해봐야겠는데요.

“합성법도 거기 있습니다. pdf 파일 같이 첨부했죠? 그거 합성법이에요.”

류영준이 말했다.

-합성법이요?

“네.”

생물학자인 류영준이 유기화학 합성법을 알 리가 없다.

그 둘은 미술과 음악만큼 서로 다르다.

류영준이 에이젠에서 몇 번 합성을 의뢰할 때도 이런 식으로 일을 맡긴 적은 없었다.

하지만 류영준은 자신이 있었다.

로잘린의 상태창이 알려준 합성법이기 때문이다.

‘피트니스를 0.9나 썼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

유기 합성은 바둑을 두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진행된다.

다음 수를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서 전개되는 국면이 달라지는 것처럼, 화학 구조의 변화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떼를 모는 것처럼 원하는 방향으로 반응이 진행할 수 있도록, 원치 않는 방향은 보호기를 써서 방어하고, 정반응을 유도한다.

당연히 간단한 작업은 아니고 숙련된 화학자들도 만들어내야 할 최종 물질의 구조를 가지고 신중하게 디자인을 해야 한다.

시간도 돈도 꽤 소요된다.

하지만 합성법이 있으면 훨씬 편리해진다.

그리고 스타트 머츄리얼이 있으면 더욱 쉬워진다.

“거기 합성법에 해당하는 스타트 머츄리얼도 있는데, 제가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스타트 머츄리얼이 있다고요?

김지철 과장이 반갑다는 듯 물었다.

‘스타트 머츄리얼’이란 유기 합성의 시작 단계에 해당하는 화학 분자를 일컫는 말이다.

바둑으로 치면 하수를 위해서 미리 ‘몇 점’ 돌을 둘 수 있게 해주는 것과 같다.

선점된 위치들에서부터 시작하면 일반적으로 훨씬 합성이 용이하니까.

“네. 지금 메일로 스타트 머츄리얼의 구조도 보내드리겠습니다. 한 번 검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류영준의 스타트 머츄리얼이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 감기약 ‘코젤’이었다.

구조식을 찾아보니 굉장히 유사해서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오, 스타트 머츄리얼이 이 정도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겠는데요.

김지철 과장이 약간 신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많이 필요하신가요?”

-넉넉잡아 10그램?

“좋습니다. 견적은 얼마나 들까요?”

-아무것도 없었다면 300 정도 들었겠지만, 합성법도 주시고 스타트머츄리얼도 주셨으니 200만 원 정도 들 것 같습니다.

그 감기약은 한 통에 4000원이었다.

10그램에 해당하는 양을 산다고 하더라도 몇 만원 이내다. 굉장히 많이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좋아요. 그럼 지금 회사 계좌로 입금해드리겠습니다. 스타트머츄리얼은 이번 주 내로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네. 반응 끝나면 최종 산물은 선생님 직장으로 보내드리면 되죠? 제 1 연구소 B1 동의······.

“아니에요.”

류영준이 막았다.

“다른 주소를 불러드리겠습니다.”

-네. 알려주세요.

“어······.”

류영준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정윤로 14길 77을 부르려다가 멈추었다.

이 주소까지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주소가 ‘현대원룸 B101호’다.

안될 건 없지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세상 과학자들 중에 실험 결과물을 자택으로 수령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는가.

잠깐만.

그러고 보니 어차피 이 신약을 만들면 셀바이오로 보내서 세포 실험할 것 아닌가?

“그냥 셀바이오 회사로 보내주실래요?”

-셀바이오요?

“네. 그 약품은 에이젠에서 실험할 게 아니거든요. 셀바이오에 세포 실험을 위탁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보내드릴게요. 수취인은 선생님 성함으로 하면 될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어차피 셀바이오측에 류영준 이름으로 물건이 올 거라고 얘기만 해주면 상관없으니까.

“합성은 언제쯤 완료될까요?”

-스타트 머츄리얼 받은 날로부터 일주일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류영준이 박주혁을 돌아보았다.

마침 음료가 딱 맞게 나왔다.

류영준은 아메리카노를 들면서 말했다.

“자, 스타트 머츄리얼 사러 갈까?”

조그만 종이 박스 하나에 들어있는 코젤은 총 8정.

한 알이 500밀리그램이니까 적어도 3박스는 있어야 10그램 이상이 확보된다.

셀리제너 연구원이라는 그 여자를 또 마주치게 될 것이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잠시 후.

류영준과 박주혁은 송지현이 운영하고 있는 약국에 도착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송지현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박주혁이 순간 숨을 헉 들이마셨다.

약국 안에는 손님들이 몇 명 있었고, 류영준과 박주혁은 뒤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게 되었다.

“야 봤냐?”

박주혁이 류영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속삭였다.

“나도 정윤대에서 로스쿨 했지만 솔직히 우리 학교 애들 공부밖에 안 하잖아. 류영준급 샌님들밖에 없어가지고 술집 차리면 3년 안에 폐업할 확률이 80퍼센트인 이 절간 같은 동네에 저런 준엘프가 있었다니?”

“원래 여기 약국 하시던 할머니의 조카분이야. 그 할머니는 휴가 가셨고 잠깐 맡아준 거래.”

“어떻게 알아?”

“전에 물어봤으니까.”

“혹시 이름도 알아?”

“명찰이 있잖아. 송지현.”

“이럴 수가. 벌써 선수를 쳤냐? 혹시 번호도 있어?”

“뭐래.”

“사람이 상도덕이 있지. 내가 연수 교육에 갇혀서 엿같은 판례나 읽는 동안 비겁하게 먼저 들어간 거야?”

“너 변호사 된 후에 좀 더 애가 맛이 간 것 같다? 원래 좀 하이하긴 했는데 혹시 로스쿨에선 단체로 무슨 약이라도 해?”

“저 약사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지?”

“내 인생 챙기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럴 시간도 의욕도 돈도 없어.”

“좋아, 그럼 내가 번호 딴다.”

“화이팅. 응원할게.”

쓸데없는 농지거리를 나누는 사이 카운터 앞의 손님들이 빠르게 줄었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송지현이 물었다.

“코젤 세 통 주세요.”

류영준이 말했다.

송지현이 빙그레 웃었다.

“요즘 자주 오시네요. 프로바이오틱스에 영양제에 이번엔 감기약?”

그녀는 카운터 아래에서 코젤 세 통을 꺼내 내밀었다.

“만이천원입니다.”

지익.

리더로 카드를 읽은 후 송지현이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주었다.

“혹시 코젤 기반으로 신약 연구하세요?”

봉투에 코젤을 담는 류영준에게 송지현이 물었다.

“아, 뭐, 비슷하긴 한데.”

“그럼 코감기 신약 나오는 회사 보면 어디 다니시는 지 알 수 있겠네요?”

“하하, 글쎄요.”

류영준은 박주혁을 힐끔 쳐다보았다.

‘번호 딴다더니 그냥 굳어 있잖아?’

카운터를 막고 가만히 서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박주혁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번호 딴다면서?”

“아무 말도 못하겠어.”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여자 번호 따고 그런 데 재주가 없는 놈이다.

류영준은 박주혁과 함께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지퍼백을 하나 사고 거기다 코젤 세 통의 알약을 모두 담았다.

상자를 하나 산 다음 편의점 택배로 곧장 리액션케미스트리로 붙였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조금 더 남았다.

“주혁아. 너 혹시 특허 등록도 할 수 있냐?”

류영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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