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독감 치료제 (2)
=================
‘바이러스라고? 내가 아는 그 바이러스?’
바이러스의 크기는 머리카락 굵기의 1/2,000 정도 된다.
박테리아랑 비슷한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니다.
박테리아가 코끼리면 바이러스는 쥐다. 그 정도로 작은 입자다.
너무 작고 단순하다보니 심지어는 그것이 생물인지 무생물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정말이다. 과학계는 아직도 바이러스를 생물로 분류해야할지 무생물로 분류해야할지 결정하지 못했고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 정도로 원시적인 미물이며, 먼지 같은 입자다.
현미경으로 보더라도 렌즈가 좀 허접하거나 실험자가 숙련되지 않았다면 바이러스를 관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근데 그걸 육안으로 봤다.’
류영준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려 애썼다.
세포 피트니스 : 1.7
피트니스가 0.1만큼 떨어졌다.
이런.
‘내가 A형 독감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피트니스를 소모해서 강제로 보여주다니.’
재채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노출되니 로잘린이 일종의 방어 기제로 반응한 것인가?
“괜찮아요?”
송지현이 그에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류영준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송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노인이 작게 콧김을 내뿜더니 송지현에게 말했다.
“감기약 하나 주시요.”
송지현은 다시 노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증상이 어떠세요?”
“기침하고 코가 나옵니다.”
“열은요?”
“약간 있는 거 같은데요.”
류영준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노인의 옆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반 감기약을 받으면 안 된다.
좀 심한 감기가 독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둘은 판이하게 다른 질병이다.
“열을 한 번 볼게요.”
송지현이 서랍에서 체온 측정기를 꺼내어 노인의 귀에 가져갔다.
37.4도
“미열이 있네요.”
그녀가 말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아프셨죠?”
“5일 정도 됐습니다. 쿨럭!”
노인이 말 끝에 기침을 했다.
“병원 진료는 안 받으셨고요?”
“네. 열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렸고요. 기침, 가래가 많이 나옵니다.”
“그럼 일단 일반 감기약 드릴게요. 진해 거담제랑······.”
“안 돼요!”
류영준이 자기도 모르게 나섰다.
송지현과 노인이 놀란 표정으로 류영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방금 이 노인이 재채기하며 뱉은 침에서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고 얘기할 순 없는 거 아닌가?
“5일째면······. 보통 감기는 증상이 많이······. 완화되지 않나요?”
류영준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직 많이 아프시면 요즘 그, 독감이 유행하잖아요. 진단을 받아 보시는게······.”
“물론 의사의 진단을 받으면 가장 확실하죠.”
송지현이 말했다.
“하지만 5일째면 원래 독감이었다 하더라도 사실 이미 타미플루 같은 약을 처방하기에는 늦었어요. 아마 지금 위층의 내과에 가도 항바이러스 처방을 받진 않을 거예요.”
“타미플루 쓰기에 늦었다고요?”
“네.”
류영준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것은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과 약을 처방하는 약사의 차이다.
연구원은 자신이 개발하는 약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약사나 의사가 본 적도 없는 수많은 실험 데이터와 약의 구체적인 메카니즘을 기억하고 있다.
그 경쟁약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안다.
하지만 그 필드로부터 몇 걸음만 벗어나면 그들의 지식은 일반인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 된다.
게다가 타미플루 같은 화학 합성신약의 약성에 대해서 생물학자인 류영준은 거의 무지하다.
생화학 수업 때 조금 배운 게 전부니까. 그의 전공은 합성생물학이다.
“타미플루는 감염 이후 48시간 이내에 투여했을 때에만 효과를 볼 수 있어요. 바이러스가 체내에서 왕성하게 복제되며 고열이 지속되고 있을 때죠.”
송지현이 말했다.
“그 시점을 넘어서 37도 정도의 미열 상태로 회복되었다면 이미 어느 정도 자가 치유된 것이기 때문에 타미플루를 처방해도 큰 의미가 없어요.”
그녀는 본래 처방하려던 일반 감기약을 내밀었다.
“그러니 면역 반응에서 고통을 좀 덜어드릴 수 있는 약을 처방해드릴게요. 항히스타민과 진해거담제에요. 이건 하루에 세 번, 식후에 두 알씩 드시고요. 이건······.”
능숙하게 처방하는 그녀를 보면서 류영준은 약간 민망한 기분이 되었다.
주제넘게 나선 것을 잠깐 반성하는 사이, 노인이 약을 받아서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다시 약국에는 영준과 송지현 둘만 남게 되었다.
“줄기세포 전공자가 프로바이오틱스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아시더니, 타미플루 같은 화학 합성 신약은 잘 모르시네요.”
송지현이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화학 쪽은 전혀 못해서.”
류영준도 따라 웃었다.
“완전히 바이오만 하시는구나.”
“네.”
“바이오 신약. 전망 좋은 쪽이죠.”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바이오산업은 머지않아 제약 시장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거예요.”
“약사님. 그런 얘기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들었어요. 지금은 박사 받은 지 4년이나 됐고요.”
“아직 그런 미래가 오지 않은 거죠. 글쎄, 왜 그럴까요?”
송지현이 카운터에 턱을 괴며 말했다.
“저희 회사 수석 연구원님이 그러더라고요. 생물학 필드에 아직 개척적인 천재가 나오지 않아서라고.”
“개척적인 천재?”
류영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훌륭한 생물학자들은 많았지만, 그 시장의 답답한 문제들을 한 번에 부숴버리고 막대한 잠재력을 끌어올릴 천재가 없었다는 거죠.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요.”
송지현이 대답했다.
“우리 같은 제약 회사 연구원들이 독감 백신을 아무리 만들면 뭐해요? 독감 바이러스는 매년 진화해서 이전의 백신들을 무용지물로 만드는데.”
그녀가 말했다.
“그렇죠.”
“그거 알아요? 지금 있는 독감 백신으로도 이론상으론 독감을 멸종시킬 수 있어요.”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량과 인력이 충분하다면요.”
전 세계의 70억 인구가 한꺼번에 동시에 독감 백신을 맞는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모든 사람이 독감에 저항이 생기니, 독감 바이러스는 그 누구도 감염시킬 수 없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감염시켜야 증식할 수 있는데,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멸종이다. 아프리카 흑코뿔소가 절멸한 것처럼 그냥 ‘A형 독감바이러스’라는 종의 모든 개체가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매년 백신을 새로 만들어내고 접종하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70억 명을 동시에 접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된 백신으로 아메리카의 모든 사람들을 접종한 다음, 아시아에서 접종을 시작하면 유럽에서는 독감 바이러스가 진화하는 식이다.
이 진화한 바이러스는 백신이 안 먹혀서, 아시아에서 접종을 마치고 유럽을 시작할 때 쯤이면 미국에서 다시 독감이 유행하는 거다.
한 마디로 독감을 아직 뿌리 뽑지 못하는 이유는 독감 바이러스의 진화 속도가, 인류의 백신 접종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요.”
송지현이 말했다.
“아주 천재적인 어떤 생물학자가 나타나면 백신의 개념을 통째로 바꾼다거나. 뭐 그런 방법을 통해서 독감을 절멸시켜버릴지도 모르죠.”
그녀가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빛냈다.
“독감 절멸이라······.”
“마치 의학이 오래전에 탄저균이나 천연두를 멸종시킨 것처럼요.”
로잘린 상태창에서 독감을 한 번 열어볼까?
“아참, 근데 다니시는 제약 회사, 어디에요? 물어봐도 돼요?”
“약사님은요?”
“셀리제너라는 회사에요.”
예상대로다.
셀리제너. 직원이 3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소규모 벤처 제약회사다.
거기서 임상 1상까지 성공시킨 막강한 간암 치료제를 내놓아서 업계 관계자들이 크게 놀랐다.
물론 그 관계자들 중엔 김현택도 있었고, 무슨 수를 썼는지 그 쪽 경영진을 삶아버린 후 약을 사왔던 것이다.
“에이젠한테 뺏겼다는 약, 간암 신약인가요?”
류영준이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아요?”
송지현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정말 힘들게 개발한 약이었거든요. 근데 에이젠에서 가져가서 없애버렸어요.”
“······.”
“우리 모두 처음에는 에이젠이 그 약을 잘 개발해서 쓰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 우리보다 연구 경력도 많고, 약 생산 파이프라인도 잘 갖춰진 곳이니까 더 잘할 거라 믿었죠. 그거 말고도 그쪽 경영진의 압력이나 돈 문제도 있었지만.”
송지현이 말했다.
“순진했던 거죠. 에이젠은 그 약을 없애버리려고 사간 건데. 그걸 알았으면 우리 모두 기를 쓰고 판매를 막았을 거예요.”
“······. 그렇군요.”
송지현은 아련한 표정으로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휴, 제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별 얘길 다 하네요. 미안해요. 괜한 소리해서 불편해지셨죠?”
송지현이 웃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쪽은요? 회사가 어디에요?”
송지현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
류영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이 상황에서 어떻게 에이젠입니다, 하고 밝히겠는가.
심지어 간암 신약 사건 같은 경우 처음에 류영준이 담당했던 일이었다.
경쟁약이 개발되었음을 그가 리포트하면서 시작되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김현택한테 쌍욕을 하고 부서 이동 당하고······. 그 일련이 상황들을 얘기해야 할까?
류영준은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셀리제너가 직원 30명의 소규모 회사라는 것, 그리고 그 회사에서 그렇게 훌륭한 항암제를 개발했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은 직원 대부분이 그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분투했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 중에는 송지현도 포함돼있었을 것이다.
“어디에요? 네?”
송지현이 재차 물었다.
“그······. 사실은······.”
말하려는 순간 약국 문이 왈칵 열리면서 환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위층 내과에서 차례로 검진 받고 함께 내려온 할머니 네 분이었다.
“오메, 여기 약사님 아가씨로 바뀌었디야.”
“전에 하시던 분은 어데 가고?”
그들이 카운터로 몰려들어 진단서를 앞다퉈 내밀었다.
“잠시만요. 순서대로 제조해드릴게요.”
송지현은 서류를 하나씩 챙기고는 제조실로 들어갔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감기약 제조를 마친 후, 그녀가 다시 나왔을 때, 류영준은 이미 약국을 떠난 뒤였다.
***
지이잉!
약국을 나오는 길. 휴대폰이 진동을 울렸다. 관심 표시를 해둔 주제에 새 뉴스가 올라와 메시지가 날아온 것이다.
-계절 독감 유행중. 백신 접종······
미리보기 화면에 뜬 첫 문장만 읽었는데 좀 전 약국에서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독감을 치료한다면?’
타미플루 개발자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던가?
집으로 돌아온 류영준은 곧바로 로잘린의 상태창을 열었다.
“A형 독감을 치료하고 싶어.”
그가 말했다.
<미시세계 포커스 : A형 독감에 대해 통찰하시겠습니까? 다음 선택지가 있습니다.>
1. 독감 감염 기작 확인하기 (피트니스 0.05/1초 소모)
2. 독감 치료제 확인하기 (피트니스 0.9 소모)
3. A형 독감 멸종 전략 확인하기 (피트니스 1.5 소모)
‘뭐라고?’
류영준의 눈이 커졌다.
‘멸종?’
류영준은 잠깐 고민에 잠겼다.
3번 선택지를 눌러도 류영준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1번은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봐도 찾을 수 있으니 굳이 피트니스를 쓸 필요가 없다.
‘2번으로 갈까?’
하지만 독감을 멸종시키겠다는 전략이 도대체 뭔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리고 어차피 피트니스는 30분마다 0.1씩 회복되고 있다. 여차하면 반나절 정도 피트니스를 쓰지 않고 모으면 그만이다.
류영준은 고민 끝에 3번 선택지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