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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역분화 줄기세포 (3) (165/301)

8화. 역분화 줄기세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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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영준이 뒤를 힐끔 돌아보자 박동현이 어깨를 감쌌다.

“신경 쓰지 마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들리게 수군거리는 정도가 아닌데요. 우리 들으라고 대놓고 저러는 것 같아서······.”

“여기서 못 버티고 퇴사하는 이유 중 젤 큰 게 저것이긴 하죠. 근데 한 동안만 버텨내면 적응돼서 그냥 못 들은 척 할 수 있게 돼요.”

박동현이 쓰게 웃었다.

“스고이!”

갑자기 앞에 들어간 고순열이 감탄을 터뜨렸다. 그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적응하면 저렇게 되는구나.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순열이 이쪽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박 선임님! 내가 그랬잖아요. 오늘 메뉴 존맛이라니까! 닭강정 이타다키마스요?”

“어어, 그래. 많이 먹어요.”

박동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구내식당은 뷔페식이다.

류영준은 몇 가지 음식들을 받고 음료 한 잔을 뽑았다.

테이블 쪽을 둘러보니 정혜림이 손을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이미 그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모두 모여 있었다. 류영준은 그 테이블에 합류했다.

“순열 선배는 닭강정 노래를 부르더니 왜 안 받았어요?”

류영준이 물었다.

“안 받은 게 아니라 다 먹은 거예요.”

정혜림이 대신 답했다.

“스마나이나~ 너무 맛있어서 참을 수가 없었달까.”

“아니 다 먹었다고 해도 양념도 안 남아 있는데요? 뭘 어떻게 먹으면 이렇게 돼요?”

고순열은 안경코를 검지손가락으로 눌러 올리더니 빙긋 웃었다.

“후후. 닝겐에게 보여주려면 어쩔 수 없군. 좀 더 가져올 테니 기다리도록.”

그리고는 식판을 들고 다시 일어났다.

구내식당은 자율배식이고 뷔페식이다. 더 가져와도 상관은 없다.

“좋아하는 음식 나오면 가끔 저래요.”

정혜림이 웃으면서 말했다.

“뭐 좋아하는 음식 나오면 더 먹는 건 저도 마찬가지지만 닭강정 받은 자리가 설거지 한 것처럼 깨끗했는데······.”

“그건 아까 핥았······.”

“······.”

“그래도 순열 씨 좀 특이하지만 착하고 순수하고 똑똑한 사람이에요.”

류영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열 씨 오는 거 기다리면서 천천히 먹고 있죠.”

박동현이 젓가락을 들면서 말했다.

쨍!

갑자기 시끄러운 쇳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퍼졌다.

세 사람 모두 놀라서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고순열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리고 젊은 여자 과학자 한 명이 충격과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자신의 셔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셔츠 가운데가 흉측하게 빨갛게 물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씨! 뭐에요!”

그녀가 셔츠를 손으로 탁탁 털어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 어디 부서에요?”

“새, 생명창조······.”

“아 진짜 머저리 같은 게.”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고순열이 안절부절 못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죄, 죄송······ 하다는······. 근데 제가 먼저 와서 앞에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부딪히셨······.”

여자의 뒤에 중년의 부장급 남자가 또 나타났다.

“뭡니까?”

“부장님! 이 사람이 부딪혀서 이거 봐요!”

그녀가 빽빽 우는 소리를 냈다.

부장이란 사람이 인상을 찡그렸다.

류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저거 가서 도와줘야······.”

이미 박동현, 정혜림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없었다.

둘 다 고순열 쪽으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건강식품 부서는 제약회사 에이젠 안에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제약’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목표는 기능성 건강식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홍삼이다.

어떤 환자에게 홍삼을 써서 어떤 약효를 임상에서 보겠다, 이런 게 아니다.

그냥 먹으면 건강에 좋다,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신진대사를 증진시킨다, 같은 약간은 두루뭉술한 목표로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을 한다.

건강식품 부서의 팀장 최명준은 올해 연말 보고 세미나에 매우 자신감이 넘쳤다.

호박즙과 도라지배즙을 믹스해 만든 새로운 제품이 맛도 영양도 뛰어나서 제품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강식품 부서는 이미 유산균 제품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효자 부서다.

이번 연말 보고 세미나도 제 6 연구소는 작년처럼 건강식품이 캐리할 게 뻔했다.

생명창조 팀 그 멍청이들이 얼마나 분위기를 망칠지가 변수지만.

그래도 건강식품이 욕먹을 일은 없다. 훌륭한 성과를 빼곡이 채워서 이미 발표 자료까지 만들어놨으니까.

부푼 기대감과 여유.

요즘 건강식품 부서는 연일 칼퇴근을 하며 분위기가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특히 팀의 주임 연구원 중 하나인 서윤주는 오늘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여섯시에 칼같이 퇴근한 후에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러 갈 거라고 하얀 실크 셔츠와 스타킹에 테니스스커트를 입고 예쁘게 꾸미고 왔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러 나올 때도 굉장히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웬 뚱뚱한 오타쿠 하나가 망쳐버렸다.

“생명창조 부서 고순열 주임연구원님.”

최명준이 피식 웃었다.

“······.”

“그 쪽, 생명창조 부서는 어째 눈에 뵐 때마다 사고치는 모습이네요? 몇 주 있으면 연말 세미나에서도 그러실 텐데.”

“죄, 죄송합니다.”

고순열이 연신 사과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최명준이 고압적인 분위기로 물었다.

“어······. 어어······. 세탁비를 드리면 되겠냐는······?”

“세탁비? 이런 식으로 옷감을 망쳐놓고 세탁으로 되겠어요?”

서윤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 그럼 물어드리면······?”

“이게 얼마짜린 줄 알고?”

“하, 하지만 제가 부딪힌 것도 아니고 그쪽이 저한테 부딪히셨······.”

“순열 씨!”

정혜림과 박동현이 헐레벌떡 뛰어와서 그의 옆에 섰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닭강정 받으려고 서있는데 이 분이 통화하면서 걸어오다가 저랑 부딪히면서 식판을 엎었다는······.”

“내가 부딪혔다고요?”

서윤주가 미간에 힘을 주었다.

“마, 맞잖아요. 한 손으로 식판 들고 오다가 스텝 꼬이셨ㄴ······.”

“꼬이셨······. 뭐요?”

서윤주가 다그치듯 물었다.

“······.”

겁에 질린 고순열이 입을 다물어버렸다.

“뭐요? 말을 왜 하다가 말아?”

“······.”

“당신 말 못해? 왜 얘길 안 해? 내가 뭐 어쨌는지 얘기해보라고요!”

“죄송합니다······. 쓰, 쓰리디 여자랑 얘길 잘 안 해봐서······.”

“아, 진짜 별 오타쿠 새끼가 짜증나게.”

서윤주가 신경질적으로 쏘아보았다.

“밥 다 처먹었으면 퇴식대에 식판 넣어놓고 가서 일이나 하지, 얼굴값 하려고 또 더 먹겠다고 와가지고······.”

“뭐라고요?”

정혜림이 황당한 표정이 됐다.

“왜요? 내가 틀린 말 했어요? 밥 다 먹고 줄 서려고 또 오더만! 일부러 근처에 안 가려고 식권 받는 데서도 먼저 보내고 한참 후에 들어온 건데.”

“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에요? 누가 부딪혔든 실수잖아요? 순열 씨 잘못이면 세탁비든 옷값이든 물어주면 되는 거지, 사과도 했는데 그런 식으로밖에 말 못해요?”

“당신 같은 부서에요?”

서윤주가 물었다.

“네. 생명창조 부서 정혜림이에요.”

서윤주가 비웃었다.

“누가 싸움닭 부서 아니랄까봐 우르르 몰려와서 오타쿠 실드 치는 거예요?”

“뭐라고요?”

“잠깐만.”

박동현이 정혜림을 막으며 나섰다.

“고순열 씨가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솔직히 저는 당신이 부딪힌 게 맞을 거 같군요. 만약 그렇다면 세탁비는 당신이 물어줘야겠죠. 순열 씨 티셔츠에도 좀 묻었으니까.”

“세탁비? 저 구질구질한 티셔츠를 빨기도 하는 거예요? 그냥 버리고 새 걸 사고 말지.”

“아니 대체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정혜림이 이를 부득 갈았다.

“솔직히 당신들 연말 세미나에서도 계속 민폐만 끼치잖아요. 연구소 내에서라도 좀 사고 안 치고 얌전히 못 있어요? 이런 식으로 사람 옷, 기분 망쳐놓고 우르르 몰려와서 시비 걸고 그래야 해요?”

“씨씨티비 한 번 보죠.”

박동현이 말했다.

“구내식당에 씨씨티비 있어요. 몰랐죠? 저기, 수저 챙기는 곳 위에 있어요. 여기도 찍힐 거 같은데.”

씨씨티비 얘기가 나오자 서윤주의 표정이 약간 구겨졌다.

박동현이 말했다.

“내가 생명창조 팀 고인물이라서 제 6 연구소에 대해서 꽤 많이 알거든요. 저거 열어서 한 번 보고 당신이 부딪힌 거면 우리한테 정중하게 사과하고 세탁비 내는 겁니다?”

“누······. 누가 부딪혔든 뭔 상관이에요. 이게 얼마짜리 셔츤데.”

서윤주가 말했다.

“누가 비싼 셔츠 입고 오랍니까? 그리고 스타킹에 치마도 입으셨네요. 그거 실험실 이용 규정 위반입니다.”

“제가 입고 오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최명준이 끼어들었다.

박동현과 정혜림, 고순열 모두 놀란 얼굴이 되었다.

부장급의 ‘수석연구원’이 복장 위반을 허락해줬다고 자기 입으로 얘기하다니?

최명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윤주 씨 요즘 실험 안 하시거든요. 왜 안하시는 지 아십니까?”

“네······?”

“모르시겠죠. 그쪽은 연말 세미나 준비 같은 거 안할 테니까. 그렇죠?”

최명준이 말했다.

“윤주 씨는 우리 팀 에이스입니다. 실험 다 끝냈죠. 올해 목표는 초과달성 했습니다. 우리 팀 발표 슬라이드도 거의 다 만들었어요. 윤주 씨는 요즘 사무실에서 그거 다듬는 일만 하고 있죠.”

“······.”

“여러분은 지금 씨씨티비를 뜯어보고 누구의 잘잘못인지 가리고 어쩌고 할 시간이 있습니까?”

최명준이 말했다.

“제가 생명창조 팀이라면 조금이라도 폐가 안 되도록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면서 실험하고 데이터 만드는 데 열중할 것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

“당신들이 그 동안 연말 세미나에서 6 연구소의 성과를 아무리 깎아먹어도 우리 팀은 그쪽에게 돈을 내놓으라거나, 도대체 일 안하고 뭘 하기에 성과가 안 나오냐고 따진다거나, 업무 시간에 하는 일 좀 보자고 연구실 어디에 씨씨티비라도 뜯어보자거나, 그런 얘기 한 적 없습니다. 그렇죠?”

“네······.”

“그런데 연말 세미나 앞두고 6 연구소에서 가장 많은 성과를 생산하는 우리 팀 윤주 씨한테 이런 식으로까지 발목을 잡아야 합니까? 같은 연구소 직원에 대한 배려나 최소한의 양심 같은 게 없어요?”

“······.”

“윤주 씨. 그 셔츠 얼마지?”

최명준이 서윤주에게 물었다.

“20만원이요.”

“그 셔츠 사러 또 매장까지 가야하잖아. 그렇지? 세미나에서 제 6 연구소의 성과를 책임지는 건강식품 부서의 에이스가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잃어버리는 거잖아? 그렇다고 윤주 씨가 할 일을 여기 있는 생명창조 부서 직원분들이 설마 대신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그렇지?”

“네.”

“그럼 양심이 있으면 매장까지 오가는 데 택시비라도 이 분들이 지원해주시지 않을까 싶은데. 오늘 데이트 가려고 했는데 옷도 망치고 기분도 망치고. 속상하겠네. 돈으로라도 받아야하지 않아? 한 40은 받아야겠어. 그렇지?”

정혜림이 주먹을 뿌득 쥐었다.

“말도 안 돼요······. 새 옷도 아니고 입던 옷을, 20만원에 산 걸 40을 받겠다고요?”

박동현도 이를 갈았다.

“심지어 그 쪽이 잘못한 것인데도 말입니까?”

“아직 누가 잘못했는지는 모르죠.”

최명준이 반박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씨씨티비를 열자고 하면 성과도 없는 것들이 그렇게 시간은 남아도느냐고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질 것이다.

일 더 크게 벌이지 말고, 너희는 6 연구소의 감자 같은 놈들이니까 알아서 기라는 협박이었다.

“드릴게요······.”

고순열이 말했다.

“순열 씨?”

정혜림이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스미마센······. 지금 입금해드릴 테니 화 푸시라는.”

“그럴 필요 없어요.”

뒤에서 류영준이 불쑥 튀어나왔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순열 씨가 잘못한 거 아니라면서요. 근데 입금을 왜 해요.”

“어······. 하지만······.”

“누구세요?”

서윤주가 물었다.

“일주일 전에 생명창조 팀으로 온 류영준이라고 합니다.”

“아, 김현택 소장님한테 욕한 사람?”

최명준이 웃었다.

“네, 그게 접니다. 임원인 소장한테도 쌍욕을 했는데, 그보다 직급 낮은 직원들이 상대라면 더한 짓도 할 수 있어요.”

류영준이 말했다.

최명준이 움찔했다.

“협박하는 겁니까? 뭐 주먹질이라도 할 기세네요?”

“아뇨. 그럴 리가 있겠어요? 근데 저 씨씨티비는 지금 뜯어봅시다. 서윤주 주임님이 잘못한 거면 사과하세요.”

“저거 뜯을 시간에 실험이나 하라고 했을 텐데.”

“실험 다 해놓고 왔으니 걱정 마십쇼.”

“연말 세미나에 뭐 발표할 거 있나보죠?”

최명준이 큭큭 웃었다.

“네, 있습니다.”

류영준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옆에서 박동현을 비롯한 세 사람이 화들짝 놀랐다.

“뭐, 뭐가 있어요······?”

박동현이 소리 죽여 속삭였다.

류영준이 단호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건강식품? 그쪽 팀이 어떤 성과를 발표하든 그거 한 방에 찍어눌러버릴 수 있는 거 내놓을 테니까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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