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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5) (162/301)

5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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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준은 카운터의 간호사에게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기, 죄송한데 저 뒤에 있는 환자분 무슨 병인가요?”

“네?”

간호사는 황당한 듯 반응했다.

“환자 분 정보는 공개할 수 없어요.”

“저도 의사입니다. 지금 저 분 상태가 안 좋은 것 같고 걱정돼서 그래요. 긴급한 상황일 수도 있어요.”

의사라는 부분은 거짓말이었지만 이 쯤 해야 먹히지 않을까?

“안 돼요.”

“조현병이죠?”

류영준이 재차 캐물었다.

“······.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간호사가 의료 윤리를 고집했다.

그렇지만 그녀도 사람인데 순간적으로 놀라는 표정 변화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사실 남자는 이 병원에서 여러 번 치료받은 환자였다. 간호사가 얼굴도 알고 있었다.

조현병이 맞다.

로잘린이 여태 통찰한 게 다 맞았다. 그럼 저 사람이 지금 의식이 없다는 것도, 계속 환청을 들으면서 극도의 긴장과 불안과 공황 상태에 빠진 것도 사실일 것이다.

“안에 의사 빨리 불러오세요. 저 사람 지금 위험해 보입니다.”

류영준이 말했다.

하지만 간호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듯 류영준을 쳐다보며 굼뜨게 반응했다.

“······.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녀가 꾸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아아으!”

갑자기 조현병 환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괴성을 질렀다.

“꺄악!”

놀란 간호사가 단음의 비명을 내지르는 사이.

쾅, 쾅, 쾅!

갑자기 환자가 바닥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투신하려는 것이다.

“안 돼!”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이었다.

콱!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류영준이었다.

상대는 키가 190에 체중이 110 킬로그램은 될 법한 거구인데 류영준은 표준 키에 표준 체형이었다.

혼자서 붙잡고 제어하는 게 어려울 것처럼 보였지만 류영준에게는 다른 힘이 있었다.

<완요골근, 상완이두근, 장두심두근, 총지굴근 섬유세포에 특이적인 자극 수용.>

<긴급 상황. 피트니스의 자율적 소모 상태로 변경.>

<아드레날린 과발현.>

<액틴 활성 액티베이션.>

메시지창들과 함께 팔뚝에 힘이 돌았다.

콰앙!

류영준은 그대로 조현병 환자를 바닥에 쓰러트리고 몸을 눌러 붙잡았다.

남자는 발버둥쳤지만 류영준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그제야 놀란 의사가 튀어 나왔고 남자 간호사도 몇 명 달려 나왔다.

어수선한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의사는 진정제를 놓고 환자를 결박했다.

“휴우우.”

카운터의 간호사는 소란이 가라앉자 비로소 한 숨 돌렸다.

자칭 의사라던 남자가 빠르게 움직여주지 않았다면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를 찾아서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어디 갔지?”

그녀는 남자가 준 접수표를 다시 보았다.

<류원준.>

<010-1111-1234>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정윤로 50길 27 병원룸 101호>

“······.”

아까 받을 때는 대충 보고 넘겼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적혀있는 정보가 죄다 거짓이다.

1111-1234 같은 번호가 있을 리 없다. 정윤로도 37길까지밖에 없다. 이 정도면 이름도 가짜라고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

류영준은 병원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로잘린은 진짜다.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분자생물학을 분자 단위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막강한 지식의 소스가 있다.

류영준은 조현병 환자의 머릿속에서 도파민 구조도 봤다.

어쩌면 조현병을 치료하는 약을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감기약 성분인 코데인이 모르핀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 어떤 실험도 하지 않고 눈 한 번 깜빡해서 그런 사실들을 파악한다는 게, 과학자로서는 치트키나 다름없는 능력이다.

“······.”

이걸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응용법은 무궁무진하게 떠오른다.

띠링!

그리고 메시지창도 하나 떠올랐다.

<현재 로잘린의 피트니스가 낮은 상태입니다. 로잘린은 피트니스를 복구하면서 아래와 같은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현재 장내 미생물들의 균형이 깨진 상태입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로잘린이 다음을 요구합니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 보상 : 피트니스 0.8>

‘프로바이오틱스?’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장내미생물 제품을 말한다. 한 마디로 유산균 같은 것이다.

‘보상으로 피트니스를 준단 말이지?’

호기심이 일었다.

류영준은 건물 1층의 약국으로 이동했다.

“어서 오세요.”

약사가 인사했다.

하얗고 예쁜, 젊은 약사였다.

자취방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 약국은 대학원생 시절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이다.

원래는 나이 많은 할머니 한 분이 하시던 약국이다.

뜻밖의 새로운 얼굴에 약간 놀랐다.

“프로바이오틱스 주세요.”

카운터로 다가가 류영준이 말했다.

“네, 잠시만요.”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 카운터 위의 찬장을 뒤졌다.

가슴께의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약사 송지현>

“약국 주인이 바뀌었나요?”

류영준이 물었다.

“아. 원래 저희 고모님이 하셨는데 휴가를 가셨거든요. 저도 마침 회사를 휴직했고. 잠깐 맡아주기로 했죠.”

송지현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카운터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여기요. 프로바이오틱스.”

송지현이 ‘액티브유산균’ 이라는 이름의 제품을 내밀었다.

“약사인데 회사를 다니셨으면 제약 회사였나보죠?”

류영준이 포장을 뜯으며 물었다.

“네. 별로 큰 회사는 아니에요. 벤처 회사였죠.”

“그랬군요. 그럼 혹시 이 제품은 그쪽 회사에서 개발한 건가요?”

“하하, 아니에요. 저희 회사도 프로바이오틱스를 하고는 있지만 제품은 아직 없어요. 그리고 그 제품으로 드린 이유는 그게 제일 좋은 제품이라서 그래요. 저도 그거 먹는데 확실히 효과 있어요.”

약사도 먹는 제품이라면 좀 믿을 만하겠지?

류영준은 제품의 제조사를 확인했다.

“로슈?”

“네. 에이젠만큼 큰 회사에서 만든 건데, 공정 기술도 좋고 균도 다양한 종류로 많이 들어가 있어요. 저희 회사의 벤치 마킹 목표이기도 하고요.”

류영준은 성분분석표를 읽어보았다.

“비피도박테리움 락티스라는 게 가장 많네요. 박테리아 종 이름인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박테리아인가요?”

“어······.”

송지현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변비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 어?”

류영준이 포장을 뜯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아닙니다.”

류영준이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는 굉장한 것들이 떠있었다.

-락토바실루스 아시도필루스 AT0021, 락토바실루스 카세이 AT0014, 락토바실루스 불가리쿠스 AT0033, 락토바실루스 람소서스 AT0041, 비피도박테리움 비피덤 AT0051, 비피도박테리움 브레베 AT0117, 비피도박테리움 락티스 AT0121, 락토코커스 락티스 AT0449, 엔터로코커스 페칼리스 AT0511

······.

성분 분석표가 저절로 나타났다.

미생물의 학명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확실히 훌륭하긴 하지만 아주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제품 뒤에 표기되어 있는 것을 읽으면 결국 똑같은 것이니까.

‘잠깐만.’

감기약을 통찰할 때와는 달리 동기화 모드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그럼 혹시?

류영준은 침을 꼴깍 삼키며 내용물을 가만히 주시했다.

동기화 모드를 사용하면 프로바이오틱스의 각 성분들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통찰할 수 있지 않을까?

띠링!

<동기화 모드 : 프로바이오틱스를 통찰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량 : 0.02/1초>

<동기화 모드 발동!>

류영준의 눈앞에 각 박테리아의 개수와 생물학적 활성과, 장내 메카니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윽!”

류영준은 프로바이오틱스 약을 꽉 쥐고는 비틀거렸다. 송지현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저, 저기요?”

그녀가 카운터 앞으로 달려 나왔다. 혹시나 류영준이 쓰러질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류영준은 몇 초 사이에 정신을 차렸다.

<피트니스 고갈.>

빨간색 메시지가 깜빡거렸다.

“헉······. 헉······.”

“괜찮으세요?”

송지현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습니다.”

류영준은 프로바이오틱스를 꿀꺽 삼켰다.

“근데 약사님 회사에서도 프로바이오틱스 연구하신댔죠?”

“네? 네.”

“잘 되어간대요?”

“제가 나오기 전에는 좋은 아이템을 찾게 되어서 그걸 파고 있었어요. 잘 되겠죠.”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에서 분석된 데이터 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약 2년 전부터 비피도박테리움의 새로운 균주를 발굴하려는 시도들이 수많은 제약회사들에서 진행되었다.

아직도 대다수는 현재진행형이다.

“혹시 비피도박테리움 쪽인가요?”

“네? 아하하······.”

송지현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그쪽이 가장 핫한 쪽이니까요. 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 같은 거죠. 제가 휴직한 지 꽤 되었으니 이제 얼마나 연구가 진척됐을지······.”

“안 될 겁니다.”

“네?”

비피도박테리움의 새로운 균주는 의미가 없다.

지금 개발된 균주들이 이미 최적의 조건이라고 로잘린이 알려주고 있었다.

“비피도박테리움은 끝났어요.”

“하지만······.”

완전히 제3의 균주를 파야 한다.

지금껏 모든 제약 회사들은 완전히 엉뚱한 타겟을 잡고 있었다.

‘클로로토니스 리무비투스.’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가 알려준 비밀의 균주를 떠올렸다.

“비피도박테리움이 아니면 뭘 해야 하나요?”

송지현이 물었다.

“글쎄요. 저도 모르죠.”

헛우물 판다는데 딱한 마음에 그 아래에는 지하수가 없다고 알려주었지만, 노다지 위치까지 공유할 생각은 없다.

류영준은 싱긋 웃으며 인사하고 약국을 빠져나왔다.

흥분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류영준의 복잡한 머릿속이 차분히 정리되었다.

생물학은 아직 개척이 덜 된 학문이다.

항해에 비교하자면 인류는 대항해시대 초기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지식의 바다를 헤매면서 조잡한 지도를 그리는 중이다.

하지만 로잘린의 지식은 고해상도의 인공위성과 같다.

이 힘은 막강하다.

“김현택······. 항암신약······.”

류영준이 중얼거렸다.

그의 과학자 커리어를 진창에 처박아버린 이들이다.

하지만 연꽃은 그런 데서 자라는 법이다.

바닥에 도달했다면 이제 박차고 솟아오르는 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류영준은 사직서 양식을 내려 받았다.

어차피 의 상할 대로 상한 곳. 약자들의 것을 빼앗는 블랙 기업에 지켜줄 의리 같은 것은 없다.

맘에 걸리는 게 하나 있다면 생명창조 부서원들이 십 년 넘게 연구해온 로잘린을 가지고 나와 버렸다는 것뿐.

사실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추론한다면, 일반적인 과학자가 그 인공세포에 자기 혈액을 넣어볼 일은 없다.

류영준이 실수로 유리조각을 만지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로잘린이 그곳에서 탄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순전히 우연으로 발생한 로잘린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솔직히 없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류영준 본인의 도덕관이 너무 투철한 탓일 것이다.

박소연도 그런 것 좀 죽이고 살라고 했었지.

‘······.’

좀 죽이고 살아야 할까?

생명창조 부서원들에게 미안하다는 이유로 로잘린 같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에이젠에 돌아가서 경영진이나 김현택 같은 악당들의 배를 채워줄 필요는 없지 않나?

류영준은 사직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에이젠을 그만두면 어디로 가지?

국내에서는 에이젠의 위상이 압도적이고 독점적이라 다른 제약사들이라곤 조무래기들뿐이다.

그런 곳으로 가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연구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잘린은 정답을 알려주지만, 그걸 현실 세계에 구현해내는 것은 류영준의 몫이다.

작은 회사들은 유세포 분리기나 격자 빛 장 현미경이나 하이식 시퀀서 같은 고급 장비가 없다.

실험에 필요한 유전자 변형 생물체나 인체 유래 검체들을 구할 때도 많은 장애물에 부딪힌다.

임상 시험의 허가를 받을 때는 그야말로 극악의 난이도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국내 시장을 에이젠이 꽉 쥐고 있기 때문에, 어떤 약을 개발해도 에이젠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간암 치료제 때 뼈저리게 경험했었다.

“하지만 해외에는 에이젠과 경쟁할 만한 곳들이 몇 있지.”

로슈나 화이자, 존슨앤존슨 같은 초대형 제약 회사들은 에이젠과 맞서 싸울 만큼 덩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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