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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4) (161/301)

4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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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들은 약 80여 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길고 긴 문장들 끝에 마침내 아래와 같은 메시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신체 정상화 작업 완료. -3시간 44분.>

<모든 신체 기관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정상화했습니다.>

<로잘린이 아직 남아있던 간염 치료제 Prednisolone 1.7 mg과  Pentoxifylline 22 mg을 분해하여 파괴했습니다.>

<현재 간 조직의 상태는 최상이며, 치료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끝이었다.

이제 모든 메시지를 다 읽었다. 류영준은 창을 전부 닫고 상태창만을 남겨두었다.

혼란스럽다.

류영준은 상태창의 한 항목에 주목했다.

-유전자 발현 조절 : CYP2E1 발현 억제(44%)

한 개의 세포는 약 2만 종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CYP2E1은 그 중 하나다.

CYP2E1은 알코올을 해독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들 중 하나다.

이 유전자가 잘 돌아가면 알코올이 빠르게 분해된다.

정직 기간에 매일 술을 두 병씩 마신 류영준의 간은 대량의 알코올을 해독하기 위해서 이 유전자를 비정상적으로 굴렸던 것이다.

유전자는 너무 혹사시키면 악에 받쳐서 괴물처럼 돌변한다.

마치 덤벨을 매일 들면 팔에 근육이 붙는 것과 같다.

류영준의 간은 CYP2E1 유전자가 지나치게 강력해진 상태였다.

‘지나치게’라는 말의 뜻은 몸에 안 좋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유전자가 남용되고 있는 사람은 타이레놀 같은 진통제 몇 알을 먹고도 간에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매일 저녁에 포도주를 마시던,  부시 대통령의 측근 ‘베네디’가 그렇게 골로 갈 뻔 했다.

타이레놀을 정상 용량으로 며칠 먹고 혼수상태까지 갔었다.

그 때문에 로잘린은 이 유전자를 억제했다. 머리 아프다고 타이레놀 먹고 죽으면 안 되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다 돋는다.

알림메시지를 다시 살펴보자.

레벨이고 뭐고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다음 이 문장.

<로잘린의 주인인 당신은 로잘린의 피트니스를 소모해 생명 현상에 대한 통찰을 얻거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피트니스를 소모해서 생명 현상에 통찰을 얻거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고?

류영준은 로잘린의 상태창을 노려보았다.

-세포 피트니스 : 1.3

자세히 보니 1.3 옆에 게이지 바가 있었다.

게이지 값은 계속 차오르더니 끝에 도달하는 순간 다시 0으로 돌아갔다.

-세포 피트니스 : 1.4

피트니스가 올랐다.

피트니스는 세포의 건강도를 의미한다.

세포막이 얼마나 튼튼한지, 세포 내의 소기관들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부착형 세포라면 바닥에 잘 붙어있는지 따위를 말한다.

이 피트니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류영준은 그 방법을 찾아보려 애썼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세포 피트니스 : 1.5 (MAX)

잠시 후, 피트니스는 1.5에 이르렀다.

그리고 게이지 바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피트니스의 총량이 1.5다.

“후우.”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내가 정신병이 생긴 걸까?’

그는 뼛속까지 과학자다. 지금 상황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류영준의 뇌에 어떤 문제가 생겼고, 미쳐버렸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다.

회사와 동료들의 배신. 1개월의 정직과 부서 이동. 끔찍한 채무의 무게. 막대한 우울감.

이 모든 것에 대해 뭔가를 받아내야 했다. 보상 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다.

그게 이런 망상과 환상으로 나타나는 것일 테다.

<내일 오전에 정밀 검사를 하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가능한 빨리 출근하겠습니다.>

류영준은 박동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

화요일 아침.

류영준은 정신과에 내원했다.

문을 연 지 30분밖에 안 된 시간인데도 안에 환자가 한 명 있었다.

이 겨울에 얇은 옷차림이었다. 낯빛은 창백하고 해쓱했지만, 살집이 있고 키가 190은 될 듯한 거구의 남자였다.

류영준은 접수를 하기 전에 그의 뒤에 서서 잠깐 기다렸다.

‘몸통에 가려져서 간호사의 얼굴이 보이지도 않네.’

잠깐 잡생각에 잠기는 사이.

<조현병>

갑자기 남자의 등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조현병?’

흔히 정신분열증이라고 알려져 있는 질병이다. ‘정신의 암’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을 정도로, 정신질병 중 최악이고 끔찍한 병이다.

끊임없이 심각한 환청과 환각을 겪고,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행동들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메시지창 환각이 자꾸 보이는 걸 보니 나도 조현병인가?’

류영준은 쓰게 웃었다.

잠깐 기다리자 곧 류영준의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신 적 있으세요?”

정신과 카운터의 간호사가 인사했다. 그녀는 감기에 걸려 있었다. 코가 막힌 듯 맹맹한 소리가 났다.

조현병 환자에 간호사는 감기에.

그야말로 종합병원이다.

“처음 왔습니다.”

류영준이 답했다.

“이거 작성해주세요.”

간호사가 코를 훌쩍이면서 작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간단한 병력 사항의 기재항이 있었다.

카운터에 서서 펜으로 쓰는 중이었다.

간호사가 감기약을 꺼내 물 한 잔과 함께 꿀꺽 삼켰다.

띠링!

갑자기 류영준의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동기화 모드를 사용하면 분자생물학적 현상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동기화 모드 : 감기약에 대해 통찰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량 : 0.1/1초>

류영준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이걸 눌러보라는 듯 버튼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좋아, 잘 기억해놨다가 의사를 만나면 이런 환각이 보인다고 얘기해야지.’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이 동한다.

류영준은 손가락 끝으로 동기화 모드 버튼을 쿡 눌러보았다.

<동기화 모드 발동 : 감기약 통찰.>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찌릿!

“윽.”

류영준이 짧게 신음했다.

그의 머릿속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감각이 흘렀다.

<동기화 모드에서는 빠른 속도로 피트니스가 소모됩니다.>

<당신은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옹스트롬(Å)과 달튼(Da)과 피코초(ps) 단위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동기화 모드에서는 그 어떤 분자생물학적 현상이든 호출하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간호사의 위장으로 내려가는 감기약의 환각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약은 종합감기약이다.

감기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체내에서 일어나는 각종 반응들을 조절하기 위한 약이 집합해있다.

그녀의 몸에서는 해열진통제의 일종인 이부프로펜이 돌기 시작했다. 열을 내릴 것이다.

이 여자의 체온은 현재 37.4도. 미열 상태다. 지금 그녀의 몸에서는 백혈구가 감기 바이러스를 추적하여 제거하고 있다.

그러나 해열제가 작용하면 체온이 1도 떨어질 것이며 잠시 후 백혈구의 기능은 28 퍼센트만큼 감소할 것이다.

거담, 소염 효소인 카르 시스틴이 포함되어 있다. 가래를 제거할 것이며 염증 반응을 억제하면서 감기로 인한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

다음엔 항히스타민 성분의 클로로페니라민밀레산염이 있다. 코막힘과 콧물을 억제해준다.

마지막은 기관지 확장 성분으로 포함된 인산 디히드로코데인.

기침을 억제하는 데 효과가 좋다. 하지만 지금 류영준의 눈에는 그 이상도 보였다.

코데인은 몸속에서 모르핀으로 변하고 있었다.

모르핀!

마약의 일종이다.

삑!

<피트니스를 절반 소모하셨습니다.>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류영준은 화들짝 놀라면서 고개를 들었다.

<동기화 모드 종료.>

그러자 자동으로 감기약의 분석이 끝났다.

“······.”

“다 쓰셨나요?”

간호사가 물었다.

“아. 잠시만요.”

류영준은 떨리는 손으로 남은 기재항을 쓰고 환자들이 대기하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류영준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코데인이 모르핀이 되다니. 말이 되나, 역시 이건 내가 미친 거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구글에 코데인을 검색했다.

<디히드로코데인 복합제 "갑자기 왜?">

뉴스 기사가 하나 떠있었다.

“······?”

설마 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유럽의약품청이 코데인 함유 의약품을 소아에게 쓰지 못하도록 막아버렸다. 코데인이 체내에서 모르핀으로 변함이 최근 알려짐에 따라, 소아에게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진짜잖아?”

당혹스럽다.

전혀 몰랐던 지식이다. 하지만 감기약을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알아내고 말았다.

‘잠깐만. 그래도 아직 못 믿겠어.’

류영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 번 더 실험해보고 싶었다.

어디서든 동기화 모드라는 걸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면······.

<조현병>

류영준의 시선이 조현병 환자 앞에서 멈췄다.

<동기화 모드 : 조현병에 대해 통찰하시겠습니까? 피트니스 소모량 : 0.2/1초>

류영준은 동기화 모드 버튼을 눌렀다.

찰칵.

그의 머릿속에 들리는 환청들이 류영준의 머릿속에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앨비스는 결국 새미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병신 같이 행동했기 때문이에요.”

“흐흐흐흐하하하하하하하하.”

“오. 이십삼. 칠. 육. 사십. 뒤에 있어요. 아니, 그 쪽 뒤 말고 옆. 그래, 거기. ······ 거기에 살인마가 있잖아!”

“저는······.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걸었던 벚꽃나무 아래, 호수 옆, 그곳을 지날 때마다 당신 생각을 한답니다······.”

“고양이. 책. 신발 밑창. 때가 꼈어. 더러워. 고양이 침. 책. 찢어진 책. 신발 밑창. 더러워.”

“어떻게 찾은 거예요? 지금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죠?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팍!

<위험!>

<동기화 모드 종료.>

심장이 억세게 쾅쾅거리고 있었다.

“헉······헉······.”

충격적이다. 조현병에 걸리면 저런 상태가 되는구나.

모든 문장들이 서로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 아무 말 대잔치인데 가끔씩 상황에 맞게 하나씩 얻어걸린다.

저 정도의 환청이 계속 들리면 원래 제정신이었어도 며칠 내로 미치겠군.

류영준은 호흡을 고르면서 눈앞의 메시지창을 읽었다.

<당신은 동기화 모드를 처음 다루는 초심자입니다. 로잘린은 당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조현병 환자의 환청을 들었습니다. 처음 겪는 종류의 스트레스가 지나쳐 심박수가 크게 올라갔습니다.>

<로잘린이 당신의 건강을 염려하여 동기화 모드를 종료했습니다.>

<다시 재개하시려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류영준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버튼을 눌렀다.

다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환자의 뇌였다.

전에는 환청에 정신이 팔려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다.

류영준은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뇌의 신경 세포들 간에 신호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물질인 ‘도파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환자는 현재 의식이 없다.

뇌전증이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측두엽 일부를 포함한 뇌의 한 쪽에서부터 신경 전달 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일시적으로 마비되었다.

마치 과전력에 의해 도심이 정전 상태에 빠진 것과 비슷하다.

류영준은 과학자다.

그는 의사가 아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지식은 없다.

하지만 의사는 발작과 뇌파 데이터 따위를 토대로 병명을 추측하고 진단할 뿐이다.

로잘린이 보여준 것은 그보다 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정보였다.

‘직선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 같은 지식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는 데 수학자의 증명이 필요 없는 것처럼, 류영준은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환자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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