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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3) (160/301)

3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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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보이나요?”

의사가 물었다.

“어······. 무슨 글자 같은 거요.”

류영준이 대답했다.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 모르겠습니다.”

너무 황당한 상황인데다 말해주기엔 어쩐지 창피한 기분이라 자세히 얘기하지 않았다.

“혹시 환청도 들리시나요?”

“아뇨.”

띠링!

말 끝나기 무섭게 알람이 울렸다.

<인공 세포가 당신의 신체를 복구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폰 시리 같은 목소리가 메시지를 읽어주었다.

“······. 들립니다.”

“뭐라고 하나요?”

“띠링, 띠링, 하고 울리는 알람음 같은 거요.”

“알람음.”

의사는 진료 차트에 몇 가지를 더 썼다.

그 사이 류영준은 조심스럽게 메시지창을 손으로 건드려보았다.

차륵!

책장 넘어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메시지창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일단 오늘은 퇴원하시고 내일 신경정신과에 내원하셔서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약 잡아드릴까요?”

의사가 물었다.

“네, 부탁합니다.”

“혹시 다른 불편한 데는 없으시죠?”

“음.”

류영준은 양 손을 벌리면서 자신의 몸 상태를 가만히 점검해보았다.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괜찮아요.”

“좋습니다. 제가 검진할 때도 문제되는 것은 딱히 없었으니까, 내일 낮에 내원하시는 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류영준은 인사하고 일어났다.

“원무과는 저쪽입니다.”

의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동해서 계산을 했다.

병원에서 나와 보니 이미 오후였다.

휴대폰을 꺼내 연락온 게 없나 보는데 갑자기 간호사 한 명이 튀어나와 그를 불렀다.

“환자분!”

류영준은 몰랐지만 이제 막 들어온 신입 간호사였다.

무섭고 깐깐한 상사들 틈에서 환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친절하게 대해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디테일한 것들을 잘 챙겨주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의 눈에서 빼낸 콘택트렌즈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준다든지.

“네?”

류영준이 돌아보자 간호사가 렌즈통을 가지고 다가왔다.

“이거. 선생님 콘택트렌즈에요.”

“아······.”

류영준은 렌즈를 받아들었다.

“조심히 가세요.”

간호사는 생긋 웃으며 인사하고는 안으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류영준은 그 자리에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콘택트렌즈라고?

그럼 지금 안 쓰고 있단 말이야?

‘앞이 너무나 잘 보이는데?’

류영준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생각해보니 몸이 좋아진 것 같다.

병원을 나와서 찬 공기를 마셨기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다.

전신에 활력이 충만하다. 몸이 건강해진 게 직접 느껴진다.

눈이 잘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대학원에서 학위 과정을 하면서 얻은 만성적인 요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하루 중 여덟 시간을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달고 다니던 거북목이 교정됐다.

그게 느껴진다. 목이 아프지 않았다. 모든 관절과 뼈마디가 유연하다.

간염 판정을 받았을 때부터 욱씬거리던 상복부의 통증이 사라졌다.

뱃속이 편안해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대학원 때 살이 찌면서 약간 나왔던 아랫배까지 사라졌다.

몸이 가볍다.

마치 스무 살 때의 유연하고 탄탄한, 생명력이 넘치던 몸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후우우웁.”

류영준은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건강한 폐 속에 뿌듯이 차오르는 산소가 느껴진다. 심장이 뜨겁고 힘차게 박동하고 있었다.

류영준은 휴대폰을 다시 꺼내어 살펴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두 통,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류 박사님. 출근 좀 늦게 하셔도 되니까 충분히 회복하고 오세요. 내일 좀 괜찮으실 때 연락주세요. 별 일 아니어서 금방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괜찮겠지?’

문제가 있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되니까.

***

잠시 후, 류영준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일단 간염 약부터 먹어야지.’

류영준은 내과에서 받은 약을 꺼내어 저녁 분을 꿀꺽 삼켰다.

띠링!

갑자기 귓가에 환청이 울렸다.

눈앞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인공 세포가 경구 투여된 신약을 분해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뭐야?’

당황한 류영준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침대에 앉았다.

메시지창은 류영준의 망막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처럼 균일하게 따라왔다.

류영준은 메시지창을 손으로 휘저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창 옆에 버튼 두 개가 있었다.

<상태창으로>

<메시지창으로>

“상태창?”

류영준은 <상태창으로> 버튼을 손가락 끝으로 톡 두들겼다.

차르르륵!

책장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연갈색의 상태창이 나타났다.

무슨 판타지 소설에서나 볼 것 같은 전개인데, 상태창의 주인공은 류영준이 아니었다.

<인공 세포 Lv. 1>

-전이 상태 : 심장 (2%), 간 (46%), 뇌 (7%), 신장 (13%), 척수 (4%)

-동기화 : 3%

-세포 피트니스 : 1.3

-유전자 발현 조절 : CYP2E1 발현 억제(44%)

“미친······. 이게 뭐야······.”

눈을 질끈 감았다 떠도 또렷하게 보인다.

아무리 손을 휘휘 내 저어도 사라지지 않는 걸 보니 허공에 떠있는 것도 아니다.

저 글자들이 망막 안에 새겨지기라도 했다는 건가?

멍청한 표정으로 문자들을 쳐다보다보니 <메시지창으로>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류영준은 상태창 아래에 있는 <메시지창> 버튼을 눌렀다.

<읽지 않은 메시지를 불러옵니다.>

······.

<축하합니다. 창조주. 인공 세포가 당신의 신체에 동기화했습니다.>

<인공 세포의 레벨을 높이려면 전이 상태나 동기화 상태를 개선하세요.>

<인공 세포의 레벨이 높아지면 피트니스의 총량과 회복 속도가 증가합니다.>

<인공 세포의 주인인 당신은 세포 피트니스를 소모해 생명 현상에 대한 통찰을 얻거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게 다 뭔 개소리야······.”

류영준이 눈을 비볐다.

“내가 뭐가 됐다고?”

<본 메시지와 상태창은 인공 세포가 대뇌 신경피질을 조작하여 발생시키는 것으로, 해마의 기억 정보를 분석하여 당신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UI 디자인을 토대로 제공됩니다.>

<당신이 생명체를 창조하는 순간을 상기시켜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빛이 번쩍이더니 눈앞에 환상이 비쳤다.

현미경의 재물대에 놓인 조그만 실험용 접시에 인공 세포들이 있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아직 ‘생명체’가 아니다.

류영준이 10X PBS를 넣어 염을 추가해준 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찢어지면서 혈액 몇 마이크로리터가 떨어지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간 류영준의 혈액 세포들이 사멸하면서 대량의 ATP가 방출되었다.

그들은 인공 세포 내로 들어가 고에너지를 발생시켰다.

막이 안정되었다.

인공 세포는 곧장 수면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세포의 별난 특성이었다.

배양액에서 공기 중으로 나갈 수 있는 성질.

‘공기 중을 부유할 수 있는 성질.’

인공 세포는 류영준의 손가락 끝의 상처 속으로 들어갔다. 모세혈관을 타고 정맥으로 이동해 심장을 향했다.

“악!”

류영준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인공 세포는 이제 당신과 함께 합니다.>

<창조주. 인공 세포의 이름을 지어주십시오.>

“X발. 뭐, 뭐야······.”

<‘X발. 뭐, 뭐야······.’로 명명하시겠습니까?>

“아냐! 말이 되냐!”

<‘아냐! 말이 되냐!’로 명명하시겠습니까?>

“······.”

류영준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로잘린.”

실험실의 그 샘플 용기에 적혀있는 이름이었다.

<창조주, 당신은 인공 세포에 ‘로잘린’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당신은 이 이름을 불러 로잘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으며, 로잘린은 당신에게 영구히 귀속됩니다.>

<또한 생명 창조는 한 번밖에 실행될 수 없는 이벤트입니다. 동일한 방법으로 로잘린을 창조하려고 하더라도 생명이 탄생하지는 않음을 명심해두십시오.>

이 설명을 마지막으로 모든 메시지창이 일괄적으로 사라졌다.

<인공 세포 Lv. 1> 이라던 기묘한 모양새의 상태창도 마찬가지다.

류영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나지막이 말했다.

“로잘린······?”

차르륵!

<로잘린 Lv. 1>

-전이 상태 : 심장 (2%), 간 (46%), 뇌 (7%), 신장 (13%), 척수 (4%)

-동기화 : 3%

-세포 피트니스 : 1.3

-유전자 발현 조절 : CYP2E1 발현 억제(44%)

전에 본 것과 동일한 상태창이 나타났다. 다만 이름이 인공 세포에서 로잘린으로 바뀌었다.

“좋아. 침착하자.”

모든 기현상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따르는 법이다.

모세가 나일 강을 피로 물들인 것도 적조 현상이라는 과학적인 해석이 존재한다.

인공 세포가 창조된 과정은 솔직히 넌센스다. 머릿속에 강제 입력된 환각과 지식들 때문에 직관적으로 그럴싸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인류의 과학의 범위 밖의 일이다.

일단 이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자.

로잘린이라는 마법의 세포가 창조되었다는 걸 전제로 깔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사실이라고 친다면.

“그럼 지금 내 몸 상태의 변화도 이것 때문인가?”

류영준은 상태창을 읽으면서 거슬리는 부분에 주목했다.

-간 (46%)

전이 상태 항목에서 유독 튀는 값이다.

인간의 몸은 15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2천억 개가 간을 구성하고 있으니, 무려 천억 개의 로잘린 세포가 간을 뒤덮었다는 뜻이다.

간이 무엇인가?

피로의 원인······. 이 아니라 인체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독소를 해독하는 생체 화학 공장이다.

술을 많이 먹으면 지방간이나 간염, 간경변이 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술을 분해하는 게 간이니까.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간이 혹사되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류영준의 간은 매우 상태가 나빴다.

간염은 간에 염증이 생겨서 간세포가 파괴되어 죽어나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거기서 더 진행되면 간이 섬유화되면서 ‘간경변’이 된다. 그 때는 간세포가 죽은 시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것이다.

류영준은 메시지창을 다시 열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들을 쭉 내려보니 놀라운 걸 찾을 수 있었다.

<신체 정상화 작업 시작.>

<간에서 대규모 염증 반응 포착. 염증 억제 및 조직 복구 시작. 전이 상태 최우선 순위로. 다량의 지방 발견. 라이페이즈 액티베이션 및 지방 제거 시도.>

<대량의 간세포에서 CYP2E1의 과발현 탐지. 57% 수준에서 억제.>

<4번, 5번 요추 사이 허리 추간판 탈출증 포착. 스테로이드 호르몬 발현 조절. 27% 과발현.>

<탈출된 추간판의 재삽입 시도. 근섬유 수축 및 신경 손상 복구 시작.>

<신경성 두피 근막 수축증 포착. 신경 이완 시작.>

<경추 2번 위 추간판 후방 탈출 가능성 포착. 위치 이탈 정도 71. 연골 조직 강화 및 신경 복구 시도.>

<심근 세포 재생 액티베이션.>

······.

충격으로 류영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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