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천재DNA @임이도
우월한 유전자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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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잡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1세기 최고의 혁신은 기술과 생물학의 교차점에서 일어난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인터뷰어가 물었다.
정윤대학교 대강당 세미나실.
수천 명의 학생과 지역 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류영준은 인터뷰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업계에선 유명한 얘기죠.”
찰칵. 찰칵.
학생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댔다.
모니터에서는 인터뷰어의 질문과 류영준의 대답이 자막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류 박사님 덕분에 정말로 그 혁신이 일어났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그것도 알고 계신가요?”
인터뷰어가 또 질문했다.
“혁신이 일어났다고 하기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런가요? 저 같은 비전공자가 보기에는 류 박사님이 이루어낸 일들이 이미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등장에 견줄 만한 사건들 같은데요. 진단 키트 같은 건 벌써 일상에 자리잡았고요.”
“하지만 제가 볼 때 생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상입니다.”
“와. 정말 대단하군요. 류 박사님은 항상 먼 미래를 보고 계신 것 같아요. 다른 과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과학의 중요한 원리나 아이템을 매번 발견하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노벨상도 보이시나요?”
인터뷰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하하. 글쎄요. 혹시 거인의 어깨라는 개념 아시나요?”
“뉴턴이 한 얘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뉴턴이 말했듯이, 모든 과학자들은 ‘이전의 과학’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간 난쟁이들에 불과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그 덕분에 남들보다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었을 뿐이죠.”
류영준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재밌네요.>
로잘린이 보낸 메시지창이 불쑥 튀어나왔다.
‘조용히 해. 인터뷰 중이니까.’
류영준이 눈앞을 떠돌아다니는 상태창을 힐끔거렸다.
<로잘린 Lv. 16>
-전이 상태 : 심장 (17%), 간 (51%), 뇌 (9%), 신장 (15%), 척수 (10%)
-동기화 : 23%
-세포 피트니스 : 2.7
솔직히 말해보자.
류영준이 올라간 거인의 정체는 이전의 과학이 아니라 로잘린이었다.
우월한 존재.
우월한 유전자.
분자생물학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정답 사전.
“그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계신 류 박사님. 박사님의 다음 연구는 어떤 걸 목표로 하고 있나요?”
인터뷰어가 물었다.
“저희가 연구중인 분야는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도 이런 자리에서 공개할 만한 것은 아니네요. 과학자는 인터뷰가 아니라 논문으로 얘기하는 거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박사님! 백혈병 치료제를 만들어주세요!”
갑자기 청중들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안경을 쓴 50대 여성이었다.
류영준은 몰랐지만 정윤대학교 국문과의 교수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이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그녀가 시작이었다.
“박사님! 저희 아버지가 눈이 안 보입니다!”
“치매 치료제 만들어주세요!”
“박사님!”
“조현병은 치료할 수 없나요!?”
“부탁입니다! 폐암 치료제······.”
“저기 여러분!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놀란 사회자가 황급히 마이크를 붙잡고 청중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말 한 마디가 류영준의 귀에 꽂히느냐에 따라서, 가까운 친인척의 평생의 질병이 뿌리 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류영준.
농업 혁명과 산업 혁명, 정보화 혁명을 넘어서, 네 번째 물결인 ‘생물학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되는 21세기 최고의 화제의 인물이다.
생물학의 막대한 힘이 산업을 휩쓸었다.
화장품, 식품, 헬스케어, 환경, 심지어는 신소재나 의류 산업에까지 그의 마이다스의 손이 미쳤으나, 역시 그 중 최고는 제약이었다.
지난 몇 년간 이 과학자의 행보는 그야말로 예수의 재림에 비견될 만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으며, 눈 먼 이에게 시력을 찾아주었다.
물론 손가락 한 번 튕겨서 일으킨 마법 같은 것은 아니다.
그는 마법사가 아니라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술과 구별할 수 없는 법이다.
“선생님! 제발 부탁입니다! 우리 애가 시한부에요!”
급기야는 무대로 난입하려는 사람도 나타났다.
가드가 그들을 막으며 군중을 진정시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류영준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 세상엔 질병이 너무 많다.
고통이 너무 많다.
‘저걸 다 정복할 수 있을까?’
류영준이 로잘린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