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91화 (191/197)

190화.  < 45. 결전(3) >

현세에 지옥이 있다면 이러할까.

수많은 인간과 몬스터가 뒤엉켜 싸우는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혔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6성벽에 작렬한 어둠의 불길에, 그 자리에 있었던 수십 명의 사람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골렘 슈트와 같은 방어구는 아무런 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마법 문명의 산물은 그간 수많은 방어 테스트에서 상당한 방어력을 발휘했지만, 실제로 닥친 재앙 앞에서는 한낱 방어구에 불과했다.

“막아!”

“크아아아악!”

사람들이 발악하며 달려들었다.

그들도 안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일반 병사들은 머릿수를 채워주는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걸 알면서도 전쟁에 참여했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전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였다. 좁은 땅덩어리에 그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강한 사람 위주로 선발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악마를 상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들 또한 선택받은 자였다.

인류의 영웅이며, 그들은 이름 없이 죽어 나가는 자신들의 희생에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았다.

“인류를 위하여!”

콰직!

몬스터의 공격에, 방금까지만 해도 끝까지 투쟁하던 한 사내의 육체가 잔인하게 박살이 났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역겨운 광경에도, 사람들은 표정 하나 찌푸리지 않고 비어있는 자리를 메웠다. 다른 성벽의 상황은 어떠한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후퇴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끝까지 싸우라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고,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는 살고자 뒤로 물러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기다렸다.

악마들을 물리칠 영웅이 나타나기를.

발악하듯 소리치는 발터 게르하르트의 말처럼, 강민혁이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가, 강민혁님이 나타났다!”

“드디어....!”

강민혁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강민혁은 6성벽에 도착하자마자, 8개의 서클을 강력하게 회전시키며 등급 외 마법을 사용하였다.

“유성우.”

휘이이잉-

콰앙, 콰콰콰콰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발의 유성이 그대로 심연의 악마들에게 작렬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패러사이트로 악마들의 힘을 약화 시키는 것. 유성에 섞인 심연의 마나가 빠르게 악마들에게 퍼져나갔다. 괴성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강민혁은 악마들이 모인 한복판에 떨어졌다.

휘잉!

바람이 일었다.

강민혁의 검이 바람을 일으키더니, 동시에 자신을 바라보는 심연의 악마들에게 바람의 칼날을 휘둘렀다.

파바바바박!

악마들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튀었다. 칼날이 닿는 곳마다 쩍쩍 갈라지며 새어 나오는 마력에, 악마들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그대로 강민혁에게 발사하였다. 그것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세상을 모두 멸할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전방을 휩쓸었지만, 강민혁에게는 검술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블링크.’

간발의 차이.

연속적으로 블링크를 사용함으로써, 강민혁은 마력의 범위에서 멀어지더니 순간 악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푹!

콰콰콰콱!

위에서 아래로.

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오라가 휘몰아치는 일격에 악마의 몸은 그대로 찢겨나갔고, 분뇌로 나누어진 뇌는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

화륵.

화르르르르륵.

불길의 폭풍이 일었다.

주변에서 휘몰아치는 불길이 악마들에게 역으로 공격을 가했고, 곧바로 이어진 화우가 블레이즈 템페스트의 기운과 더불어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심연의 악마들은 단 한 명의 인간을 상대로 고전하였다. 그들의 숫자는 십수 마리에 달했으나, 강민혁은 숫자의 열세를 압도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심연의 악마.

그들의 능력에는 편차가 있었다.

적어도 심연의 통로로 나타난 심연의 악마 중에는, 강민혁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악마는 없었다.

‘플루토.’

콰앙-

콰득!

그래도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지금은 시작 단계일 뿐이기에, 강민혁은 플루토를 소환하며 심연의 악마들을 공격할 것을 명했다.

플루토가 휘두른 공격에 심연의 악마가 그대로 뭉개졌다. 출력을 향상시킨 플루토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플루토가 시간을 버는 사이에 강민혁은 검과 마법으로 심연의 악마들을 도륙하였다. 그러한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었다. 십수 마리의 악마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이라고 생각했건만, 강민혁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아아!”

“강민혁님을 따르라!”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들은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옆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죽음에 개의치 않고 힘을 냈다.

싸우고, 또 싸우고.

수많은 시체가 쌓여가는 중심에는, 악마들을 상대하는 강민혁이 있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승전보가 울렸다.

강덕철과 정판호뿐만 아니라, 다른 성벽의 사람들도 강민혁의 도움 없이 악마를 쓰러트린 것이다.

희망 어린 상황.

그렇게,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번 전쟁은 하루 이틀로 끝날 싸움이 아니다.

심연의 공간을 이 세상과 동화시키면, 그때부터는 어느 한쪽이 끝날 때까지 전쟁을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한 전술이 있다.

“퇴각하라!”

“모두 퇴각하라!”

퇴각 명령.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썰물처럼 빠졌다. 성벽에 남아있는 마법 병기와 같은 것들은 챙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들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인류는 6개의 성벽에서 결사의 항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괴를리츠의 땅은 너무나도 협소했고, 인류의 힘을 모두 발휘하기에는 부족했다.

지금으로부터 반년 전.

성벽을 쌓아 올리는 작전을 말하면서, 강민혁은 추가로 덧붙인 설명이 있었다.

“심연의 공간에는 얼마나 많은 악마가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괴를리츠의 성벽에서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일단 일차적으로 6개의 성벽을 두고 싸움을 벌이다가, 성벽이 무너지고 병력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우리는 곧바로 후퇴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12개의 성벽에서 2차전을 벌이고, 그때도 역부족이라고 판단한다면 후퇴해서 또 다시 뒤에 있는 성벽에서 3차전을 벌일 계획입니다. 기존의 병력이 체력을 회복할 시간을 번다면, 우리는 끝없이 몰려드는 적들을 상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브룩 빌링스와도 같은 지휘관들은 처음부터 승패가 결정되길 바랐지만, 그건 과한 바람에 불과하다.

강민혁은 계획대로 움직였다.

성벽들이 무너지고 병력의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자, 미련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후퇴를 택했다.

이번 계획.

사실 그것은 심연 너머의 상황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연의 공간은 차원과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마법 문명에서도 심연의 악마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을 테니, 우리가 무조건 끝낸다는 생각으로 미련하게 싸울 필요성은 없다. 내가 강화 문명에 바라는 것은 악마들을 소모시키는 것. 양쪽의 세계가 힘을 합쳐야만,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르는 비밀이었다.

심연 너머.

악마의 숫자도 결국 한계가 있다.

양쪽 세계가 소모전에 돌입한다면, 심연의 악마들은 결국 그 끝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강민혁.

두 세계를 오가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만약 그 사실을 모르고 극단적인 싸움을 벌였다면, 승패의 결과에 따라 한쪽 세계는 멸망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민혁은 현명하게 대처했다. 마법 문명에서는 클리스만과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으며, 강화 문명에서는 본인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퇴각한 병력은 어느새 이차 방어선에 도착했다.

활짝 열린 성문 위로는, 충분한 휴식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다 한 병력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지휘관 유재명의 말.

그에, 강민혁이 웃었다.

그들을 믿고, 첫날 싸움을 벌일 사람들은 휴식을 취할 차례였다.

전쟁은 끝이 없었다.

1일 차 전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강민혁은 7일 차 전투를 끝나고 휴식을 취했다.

“후욱, 후욱.”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강민혁은 다른 병력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전투에 참여했다. 홀수일의 전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합류하였고, 짝수일에는 위기의 순간에만 나타나 도움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로 인해 강민혁의 체력은 바닥에 떨어졌다. 남들보다 체력적인 소모가 극심할 수밖에 없었고, 7일 동안이나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투쟁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강민혁도 잘 안다.

다른 병력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자신은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십수 마리의 악마들을 혼자만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강민혁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얼른 쉬십시오.”

한 번의 전투가 끝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강민혁의 상태를 살폈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들은 전장에 나섰고, 그 외에 비전투 인원들은 부상자를 치료하거나 휴식을 도왔다.

강민혁으로서는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휴식을 위해 자리를 옮기면, 먹거리부터 침상까지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강민혁은 일단 바닥을 보이는 마나를 회복하면서, 현재 상황을 찬찬히 되새겨보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어. 희망적인 상황이기는 한데.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클리스만은 말했었다.

심연 너머에는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악마들이 존재하고, 그중에는 가브리엘 칼테론이 상대했던 악마보다도 더 강력한 존재가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심연의 통로를 통해 나타난 악마들은 그 정도로 많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7일간 약 100마리 정도? 그 정도의 악마를 처리한 것은 분명히 대단한 일이지만, 클리스만이 말한 멸망의 위기와는 괴리감이 있었다.

의문이 생겼다.

클리스만이 잘못 알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그게 아니라면.

“설마."

강민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초반 며칠.

당장의 위험에 대항하느라고 강민혁은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7일 차까지 경험하고 나니, 강민혁은 하나의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법 문명에서 이미 악마와의 전쟁을 시작했다면? 대부분의 악마들은 그쪽으로 몰려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 나는 두 세계에서 동시에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악마의 숫자를 분산시키길 바랐지만,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면 변수의 가능성은 충분해.’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문제는 가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강민혁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공간 이동은 강민혁의 능력이 아니다.

상대 쪽에서 자신을 소환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그들이 자신을 소환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현실에 집중했다.

가설은 사실이 아니다.

강화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강민혁에게는 더욱 중요한 일이었다.

전쟁이 2주 정도 진행되었을 때.

인류에는 희망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악마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출몰하는 악마가 현격히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쟁이 끝나는 징조라고 확신했지만, 강민혁은 가설에 더욱 힘을 실었다.

‘마법 문명에 문제가 생겼다.’

분명했다.

그들은 지금 공격을 당하고 있다.

클리스만이 말한 규모라면 그들의 힘만으로는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할 텐데도, 강민혁을 소환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아니, 그런 결과는 희망일 뿐이다.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클리스만이, 자신을 소환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고로.

‘진짜 재앙은 마법 문명에 닥쳤다.’

확신이었다.

2주 차 전투를 끝낸 강민혁은, 자신을 반기는 이학범을 보자마자 말했다.

“심연 너머로 직접 가야겠습니다.”

마법 문명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

그것은 일말의 가능성이다.

강민혁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직접 마법 문명으로 넘어가는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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