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90화 (190/197)

189화.  < 45. 결전(2) >

화르르륵.

땅이 검은 불길로 타올랐다.

방금까지만 해도 자연의 빛깔을 보이던 땅이, 심연의 악마가 땅을 밟자마자 거멓게 변해버렸다.

[캬악!]

[크르르르륵.]

심연의 악마들이 1번 성벽으로 향했다.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6마리 정도였으나, 그중 3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일단 강민혁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1번 성벽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다시금 어둠의 불길을 뿜어내려는 악마의 모습에, 강민혁이 앞으로 나섰다.

‘H-7 장착.’

철컥.

철컥철컥.

마도형 골렘이 몸을 감쌌다.

충만하게 차오르는 힘에, 강민혁은 마도형 골렘의 비행 장치를 이용해서 곧바로 땅을 박찼다.

푸슈슈슈슉-

마력이 불길을 뿜었다.

순간 악마들의 아가리가 기괴하게 벌어지며, 강민혁을 향해 강력한 마력을 분출하였다. 콰콰콰쾅, 소리와 함께 대기가 찢겨나갔다.

한눈에 보아도 엄청난 위력! 성벽 위의 사람들은 난리가 나며 황급히 방어 장치를 가동시켰지만, 강민혁은 악마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그레이트 실드.”

콰앙-

콰르르르르르르릉.

거대한 방패와 마력이 충돌했다.

8개의 서클을 회전시킨 그레이트 실드는 강한 방어력을 자랑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완벽하게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점점 균열이 일어나는 방패. 그러나 강민혁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레이트 실드가 부서지는 순간, 강민혁은 어느새 뽑아 든 검으로 검막을 펼쳤다.

파파팍-

마력이 분쇄되었다.

일차적인 방어로 위력이 약화된 악마의 공격은, 마나의 흐름을 공략하는 검막에 와해되어버렸다.

동시에.

“퓨리 오브 더 헤븐."

콰콰쾅!

콰콰콰콰쾅!

하늘이 번쩍였다.

악마의 머리에 작렬하는 수십 다발의 번개!

하얗게 물든 악마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에 경험한 바로는 8서클 마법 한 방으로는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지난 6개월의 시간. 강민혁은 인류를 단련시키는 데만 시간을 투자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심연의 마나를 연구하였고, 심연의 마나로 이루어진 생명체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것은 바로.

‘융합 마법, 패러사이트(parasite).’

[캬아아아아악-]

심연의 악마들이 비명을 질렀다.

번개에는 패러사이트의 힘이 섞였다.

그것은 심연의 마나로 구성한 기생충이었고, 마법에 적중하는 순간 상대의 몸을 파고들어 마나를 갉아먹었다. 당황하는 심연의 악마들. 그들이 드러낸 찰나의 틈은 강민혁에게 기회였다. H-7의 비행 장치가 강민혁의 몸을 화살처럼 쏘아내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섬멸(殲減).’

강력한 검격.

전력을 다한 강민혁의 검이 그대로 한 악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단단한 그들의 육체는, 패러사이트의 균열로 인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파사삭-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심연의 악마.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심연의 악마가 또 다시 마력을 분출했지만, 강민혁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때부터는 악에 받친 심연의 악마와 격렬한 격돌이 일어났다.

패러사이트로 인해 심연의 악마는 시들시들 약해지는 모습을 보였고, 강민혁은 마법과 검술을 적절히 섞어서 심연의 악마를 공격했다. 지난 전투에서 강민혁은 심연의 악마 1마리와도 비등비등한 싸움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패러사이트와 같은 해법도, 그리고 검술의 힘도 드러내지 않았던 상황. 자신의 무기를 봉인시켰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3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데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폭발.”

콰앙!

콰콰콰콰쾅!

심연의 악마가 매캐한 연기에 휩싸였다.

거대한 몸체가 휘청거렸다.

이윽고 쓰러지는 자세 그대로 사라지는 악마의 모습에, 성벽에서 지켜보던 브룩 빌링스가 경악했다.

“...이게 세계 최고의 힘이구나.”

검술.

마법.

강민혁은 양쪽 세계에서 정점의 자리에 올랐다.

직접 경험한 심연의 악마는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했지만, 원래 강함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효과였다. 강민혁 앞에서는 무력하게 쓰러지는 심연의 악마들. 위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순식간에 정리되어버린 상황이었지만, 강민혁을 비롯한 성벽 위의 사람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심연의 통로.

그곳에서부터 수많은 악마들이 튀어나왔다.

[크르르르르르르륵.]

그들의 숫자는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지상계에 나타나자마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부터는 상황이 변했다.

전장의 범위가 최고 여섯 군데로 확장되었고, 그 말인즉 강민혁은 혼자서 그 모든 범위를 감당하지 못한다.

다른 성벽.

그곳의 안전은, 그들의 몫이었다.

콰앙!

악마의 불길이 3성벽에 작렬했다.

그래도 수차례 시도되는 공격을 버텨내는 방어력을 보여주었지만, 3성벽도 이제 한계에 달했다.

콰르르르릉.

콰앙!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인류가 전력을 다해 쌓아 올린 철옹성은, 결국 1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제 명을 다했다. 와르르, 무너지는 성벽. 그곳으로부터 몬스터들이 밀려들었다. 심연의 악마들이 나타난 이후로부터, 더욱 난폭한 광기(狂氣)를 자랑하는 몬스터들은 오로지 인간에 대한 살의만을 보였다.

캬악!

콰드득.

“크악!”

몬스터와 인간들이 뒤엉켰다.

피가 튀는 광경에, 3성벽을 담당하고 있는 수호문의 사람들은 더 이상 수성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플랜 B로 대응하라!”

“플랜 B!”

3성벽의 지휘관.

이준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이준호의 외침에 수호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명성을 떨친 강화 전사 세력들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몬스터와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플랜 B는 적극적인 반격을 뜻한다. 처음에 고수하던 작전은 성벽을 두고 버티는 것이라면, 지금부터는 강화 전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죽어!”

서걱!

푸화아악!!

정판호의 일격에 몬스터들이 피를 뿌렸다.

강화 슈트를 착용하고 있는 정판호는, 비행 장치를 이용해서 떠오르더니 몬스터 한복판에 떨어졌다.

그리고 마주하는 족족 몬스터들을 도륙하는 정판호.

마나가 들끓었다.

광전사처럼 미친 듯이 싸우는 그의 모습에,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피해!”

확-

정판호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마력 대포에서 발포된 포탄이 전방을 휩쓸었다. 콰콰콰쾅, 하는 엄청난 굉음과 동시에, 목소리의 주인공인 천호명도 마법을 사용하였다. 7서클 마법인 씨 블라스트. 정령 빙의를 통해 한계를 초월한 천호명의 마법에, 파도처럼 밀려드는 몬스터들이 단 일격에 쓸려나갔다.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수차례 진행된 훈련에서 맞춘 호흡이기에, 정판호는 마나가 가라앉자 곧바로 전투를 재개했다.

치열했다.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는데도 3성벽의 사람들은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이 뒤에는 차례로 수많은 성벽이 건설되어있다. 3성벽이 무너진다고 해도 민간인들이 공격받을 위험은 없겠지만, 문제는 다른 성벽과의 균형이었다. 3성벽을 제외하고는 아직 성벽이 무너지지 않은 상황. 만약 3성벽의 사람들이 방어를 포기하고 물러나 버린다면, 나머지 포인트에 위치한 사람들은 여러 방향에서 밀려 들어오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위험해질 수도 있다.

방어와 후퇴는 동일한 타이밍에 진행돼야 한다.

지금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방어할 차례였고, 3성벽의 사람들은 악에 받쳐서 끝까지 저항했다.

그러다, 결단을 내렸다.

퍼억-

몬스터의 머리가 부서졌다.

초월급 몬스터로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괴물이었으나, 강덕철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강덕철이 정판호를 보았다.

“판호야!”

“예, 형님!”

“이대로라면 3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가, 악마를 직접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정판호의 표정이 변했다.

강덕철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멀리 떨어진 거리.

그곳에서는 두 마리의 악마가 3성벽을 공격하고 있었다.

강민혁처럼 그들을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민혁만한 힘을 갖추지 못한 것도 있지만, 패러사이트와도 같은 공략법은 심연의 힘’에 완벽하게 적응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고로.

“개방(開放).”

화악-

감덕철과 정판호가 단전을 열었다.

그들은 지금부터, 온전히 무력으로만 심연의 악마를 쓰러트릴 생각이었다.

콰앙!

콰콰쾅!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다가오는 적에 심연의 악마는 마력을 일으켰지만, 상대는 기어코 매캐한 연기를 뚫고 앞에 나타났다.

화악-

강덕철.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골렘 슈트는 기동함에 있어 자유를 부여했고, 순간적인 틈에 강덕철은 그대로 공간을 갈라버렸다.

번뜩.

공간이 갈라졌다.

제아무리 심연의 악마라 할지라도, 개방을 사용한 강덕철의 일격에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었다. 잘려나간 팔에 심연의 악마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을 호소하는 심연의 악마는 붉은 안광을 뿜어내더니, 아직 남아있는 나머지 팔을 휘둘렀다. 바람이 일었다. 마력과 뒤엉킨 바람이 강덕철의 몸을 억압하였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덕철을 강하게 후려쳤다.

퍼억!

“커억.”

강덕철이 신음을 삼켰다.

검막을 형성하며 막아냈지만, 악마의 공격은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선사하였다.

검막도.

골렘 슈트도.

지금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그나마 강덕철이기에 일격을 버텨낸 것이지, 일반 강화 전사였다면 방금 공격으로 곤죽이 되었을 것이다.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강덕철은 물러나지 않았다.

강덕철과 정판호가 각각 악마를 1마리씩 상대하고 있는 사이, 3성벽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둘의 선택은 옳았다. 악마를 쓰러트리는 것만이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었고, 독기로 일렁거리는 눈빛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파박.

강덕철이 땅을 박찼다.

울렁거리는 것을 속으로 삼켜내며, 검은 마력을 분출하는 심연의 악마와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콰앙-!

콰콰콰콰쾅!

엄청난 격돌이었다.

서로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심연의 악마와 강덕철의 몸에는 상처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강덕철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싸움이었다. 심연의 악마는 상처가 생길 때마다, 검은 마력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상처를 회복하였다. 아예 절단되어버린 팔은 그대로였지만, 다른 상처 부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회복하는 모습에 강덕철의 몸에는 상처가 점점 늘었다.

화르르르륵.

콰앙!

불길이 작렬했다.

강덕철의 몸이 휘청거리자, 심연의 악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거대한 아가리를 찌억 벌렸다.

마지막 일격.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강덕철이 히죽 웃었다.

‘기다렸다.’

심연의 악마.

그것은 완벽한 생명체가 아니다.

악마도 방심이라는 것을 하였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그때가 강덕철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검사로서의 심득(心得).

강덕철의 검격이 하늘에 닿았다.

‘섬멸.’

번뜩.

한 번의 일격.

세상이 갈라졌다.

개방으로 인해 폭발적으로 들끓던 마나가, 그대로 공간과 더불어 심연의 악마를 완전히 베어버렸다.

파사삭, 일어나는 검은 마력.

끝났다.

강덕철은 녹초가 되어버린 상태로 바닥에 추락하며, 자신이 심연의 악마를 처리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숨을 돌릴 틈은 없었다.

아직 한 마리가 남은 상태.

강덕철은 정판호를 도왔고, 나머지 악마도 처리했다.

“와아아아아아!”

“수호문의 전사들이 악마를 쓰러트렸다!”

“악마는 무적이 아니다!”

강민혁이 아닌 사람이, 악마를 쓰러트렸다는 것.

그것의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열광하는 3성벽의 사람들이, 타도 악마를 외치면서 성벽 안으로 밀려들었던 몬스터들을 몰아냈다.

희망적인 분위기였다.

그들은, 이대로라면 재앙을 이겨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심연의 통로.

그곳에서는 최초 6마리를 제외하고도 계속해서 심연의 악마가 나타났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바로 6성벽.

다른 성벽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진정한 위기를 맞이했다.

가장 먼저 성벽이 무너진 곳은 3성벽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닥친 위기에 발터 게르하르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빌어먹을.”

쾅!

콰르르르르르릉.

성벽이 붕괴되었다.

일부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방금 작렬한 공격으로 인해 성벽의 대부분이 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시야가 닿는 곳.

그곳에는 악마가 득실거렸다.

한 십수 마리 정도 되는 걸까.

다른 성벽에는 많아야 2~3마리가 나타난 반면, 이곳에는 무려 십수 마리의 악마가 나타났다.

‘버텨낼 방법은 없다.’

머리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원래는 후퇴하는 것이 맞다.

심연에는 수도 없이 많은 악마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애초에 작전은 결사의 항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 물러날 때가 아니었다.

만약 이곳만이 위기에 빠진 것이라면, 발터 게르하르트는 강민혁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나 다를까.

삐빅-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무전을 통해 강민혁의 음성이 들렸다.

힘이 샘솟았다.

강민혁을 맹목적으로 믿는 발터 게르하르트는, 눈에 보이는 재앙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강민혁이라면.

독일 마법 협회를 구해주었던 것처럼, 인류에 닥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그를 믿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발터 게르하르트는 본인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버텨라! 강민혁님이 이리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버티고 버틴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발악하듯 소리치는 발터 게르하르트.

눈앞에 일렁이는 죽음의 기운에도, 그의 표정에는 조금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