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44. 계승, 그리고 다가오는 결전(2) >
세간에 이런 소문이 떠돌았다.
“그 소문 들었어?”
“어떤 소문?”
“수호문 말이야. 아직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아닌데, 강덕철이 문주의 자리에서 내려오고 강민혁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던데?”
“엥? 그게 말이 돼?”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민혁이 누구인가.
예전에야 수호문의 후계자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마법 혁명의 장본인으로서 마법 학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던가. 그가 수호문의 문주로 추대받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강민혁과 수호문의 관계가 틀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 데다, 검문의 문주로서 마법사는 적합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는 소문.
믿기지 않는다는 상대의 반응에, 운을 띄운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 사촌이 수호문 소속이잖아. 걔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아. 잘 알잖아. 내 사촌 세상 정의로운 사람이라, 절대 빈말하지 않는 거. 이미 내부에서는 확정된 사안이라서, 아마 며칠 뒤면 그와 관한 소식이 발표될지도 몰라. 정말 대박 아니야? 마법 학계를 대표하는 강민혁이, 한국 최고의 강화 전사 단체인 수호문을 물려받다니.”
아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소문.
그렇게 퍼져나가는 소문에,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수호문도 똑같네. 이준호가 그간 수호문에 헌신한 게 있는데,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민혁을 문주의 자리에 올린다니. 에휴, 수호문도 이제 끝이다. 검문이 그 정통성을 잃어버린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뻔하지.”
아직 계승의 절차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혈연으로 인한 결과라는 오해가 퍼졌고, 사람들은 이번 결정이 수호문답지 않다고 말했다.
수호문은 정의의 상징이다.
강민혁이 검사로서 두각을 나타냈더라면, 어떠한 이해관계가 있었다고 한들 이번 결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마법사가 검문을 이어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수호문에게 해명하길 바랐고,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수호문이 마침내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세간에 떠도는 소문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강민혁이 새로운 문주로 추대되는 것은 결코 혈연이라는 이유만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 계승의 대결이 진행되었습니다. 강민혁은 수호문의 장자로서 대결을 신청할 자격이 있었고, 수호문의 오랜 규율에 따라 대결에서 승리한 강민혁이 수호문의 문주 자리를 물려받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고로, 이와 관련한 유언비어를 퍼트릴 경우 엄격하게 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실.
수호문은 사실을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대응이 되지 못했다.
“강민혁이 계승의 대결에서 강덕철을 쓰러트렸다고?”
“계승의 대결이면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설마, 강민혁이 검으로 이겼다는 거야?”
“에이, 말도 안 돼.”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계승의 대결이라니!
오히려 잘못된 소문이 퍼졌을 때보다 더욱 믿을 수 없었다.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문을 계승하는 것은 그래도 충분히 선례가 있었던 사건이지만, 강민혁은 마법사로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로 검사로서는 전혀 보여준 것이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디언 마탑.
수호문.
양쪽 세계를 대표하는 세력을 거머쥔 강민혁이,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뭐라도 말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며칠 뒤.
수호문의 문주로서, 강민혁은 세상에 핵폭탄을 떨어트렸다.
강민혁이 말했다.
“맞습니다. 저는 계승의 대결에서, 검사로서 전 문주를 쓰러트리고 정당한 과정을 통해 문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팟팟팟.
갑자기 진행된 기자 회견.
강민혁의 발언에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강민혁의 시야에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세상을 강타한 충격적인 소식에, 이 넓은 공간에 전 세계에서 모인 수백의 기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강덕철 전 문주를 쓰러트렸다는 것은, 강민혁 문주님이 검사로서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는 뜻입니까?”
“대체 왜 수호문의 문주 자리에 오르신 겁니까? 강민혁 문주님은 이미 마법 학계에서 상당한 위치에 오르셨습니다. 이번 결정은 오히려 학계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텐데, 선택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후계자였던 이준호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들 궁금한 게 많았다.
강민혁은 차분히, 질문에 모두 대답해주었다.
“저에게 기연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검사로서 발전할 수 있었고, 계승의 대결 당시 마법의 힘은 조금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주의 자리에 오른 이유를 밝히기에 앞서, 기존의 후계자였던 이준호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후계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준호는 후계자로서 그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예정대로 그는 수호문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강민혁님이 문주의 자리에 오르면서, 이준호는 후계자의 자격을 박탈당한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저는 곧 수호문에서 파문(破門)될 것이며, 수호문은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
사람들의 표정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르익은 분위기에, 강민혁은 자신이 생각한 계획을 말했다.
“인류는 이제 결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심연 너머에 있는 악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지금 갖추고 있는 힘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더불어, 수호문의 비기인 공명의 힘을 공개할 생각입니다. 수호문의 규율에 따라 가문의 비기를 유출한 사람은 파문을 당하기 때문에, 저는 문주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상대 했었던 심연의 악마들은, 이 세상을 공격하기 위해서 심연 너머에서 세력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싸우는 것에만 집중해주십시오. 제가, 여러분들에게 힘을 드리겠습니다.”
강민혁의 선언.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다.
강민혁은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부 공개해버렸다. 최상급 마법과 골렘 제작법, 그리고 수호 검법과 공명의 힘까지 말이다. 강민혁의 발표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넋을 잃은 반응을 보였다. 이런 과감한 결단을 내린 강민혁의 결정에 감탄한 것도 있지만, 강민혁이 발표하는 지식의 수준은 일개 개인이 이루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강민혁.
그의 지식은 이미 하늘에 닿았다.
현재 인류로서는 상상도 조심스러울 법한 지식들이, 강민혁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표되었다.
발표는 간략하게 끝냈다.
나머지는 문서로 전달하겠다는 말에, 한 기자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방금 강민혁 문주님이 발표하신 지식의 힘이라면, 이 세상에서 강민혁 문주님에게 대항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모든 것을 세상에 공개하시는 겁니까?”
궁금했다.
강민혁의 의도.
선의(善意)에서 그랬다고 한다면, 강민혁은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라 불릴 것이다.
그만큼 힘든 결정이었을 테고, 인류가 시련을 이겨낸다면 그건 전적으로 강민혁의 덕일 테니 말이다.
이유.
강민혁은 고민했다.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당연히 인류의 멸망을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강민혁은 당장 떠오르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인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고, 지금도 여러분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그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인류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 것은 저 또한 같습니다만, 그 시작은 그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탁-
마이크를 내려놓는 강민혁.
그렇게, 기자 회견이 막을 내렸다.
당연히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대단한 지식을 공개한 강민혁을 영웅이라 부르면서도, ‘그’라는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클리스만.
그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그 시각.
“문주님.”
“문주라니. 난 이제 문주가 아니야.”
수호문.
그곳에서, 정판호가 강덕철을 찾아갔다.
익숙했던 문주의 사무실이 아니라, 정자(事子)에서 만나는 지금의 상황이 그로선 낯설기만 했다.
“저에게는 문주님은 영원한 문주님입니다. 그리고.....대체 왜 계승의 대결을 받아들이신 겁니까? 강민혁은 이미 파문된 상태였습니다. 장자라 할지라도 애초에 계승의 자격에는 부합하지 않는데, 어째서 강민혁의 요청을 받아들이셨습니까?”
강덕철이 웃었다.
맞는 말이다.
강민혁은 계승의 대결을 신청할 자격이 없었다.
강민혁이 수호문을 떠났을 때, 강덕철은 이준호의 후계자 자리를 공고히하기 위해서 강민혁의 파문이라는 선택을 내렸다. 그것은 이준호를 위한 배려였다. 강민혁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차단하는 선택이었고, 그래서 계승의 대결은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거절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간 생각이 많았어. 나는 마법사를 도구로만 생각했고, 강화 전사들만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이라고 믿었지. 그런데 그 낡은 생각이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어느 한쪽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인류를 위해서는 편협한 생각을 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어.”
마법 혁명.
세상이 바뀌었다.
그것은 인류에게 긍정적인 변화했고, 시대의 흐름을 목격하며 강덕철은 현실을 직시하고 말았다.
그는 구시대적 사람이었다.
원칙을 강조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계승의 대결을 받아들였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확실한 결단을 통해서 변화의 흐름에 힘을 실어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수호문의 규율에 따라 민혁이는 곧 파문을 당하겠지만, 나는 다시 문주의 자리에 오르지 않을 생각이야. 그 자리는 이제 준호와 같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자리겠지. 그리고, 문주의 자리를 내려놓아야만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목숨을 걸 수 있지 않겠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음성.
정판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덧 늙어버린 문주.
정판호는 강민혁을 은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사의 고비에서 항상 등을 맡겼던 강덕철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순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문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제 등을 맡길 사람은 문주님, 아니 형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나약한 표정은 보이지 마십시오. 제가 끝까지 보필하겠습니다.”
강덕철이 피식, 웃었다.
시대의 흐름에서 내려오는 것.
예전에는 상상조차 싫었던 그것이, 정판호의 굳은 표정을 보니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은 이토록 평화로운데, 전쟁의 때는 다가오고 있었다.
강민혁은 전쟁을 준비할 시간으로 반년 정도를 예고했다.
마법 문명.
그곳에서 전쟁을 시작할 시기에, 이쪽도 그에 맞춰서 전쟁을 치를 생각이었다.
문제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인데, 애초에 계산할 수 없는 변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전쟁이라는 건 원한다고 해서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화 문명의 인류에게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고, 섣부름은 오히려 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강민혁은 수호문의 비기를 공개함으로써 파문을 당했다. 당연한 결과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지만, 이준호가 강덕철을 대신해서 수호문의 문주가 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혈연(血緣)의 계승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고, 수호문은 새로운 인물을 문주로 내세움으로써 변화를 예고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강민혁이 세상 곳곳에 뿌린 씨앗이 발아되었다.
인류는 발전했고, 몬스터와의 결전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서로 힘을 합쳤다.
그 와중에 유의미한 성과도 거두었다.
[골렘 개발 성공!]
[플루토의 프로토타입(Prototype) 공개!]
[마침내 성공한 개발!]
골렘 제작법.
강민혁은 그것을 세상에 공개하면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로 연구를 도와주었다.
강민혁의 지식과 실제 모델이 존재하다 보니, 강화 문명의 기술력으로도 결국 성공해낼 수 있었다.
긍정적인 시그널이였다.
인류가 무엇을 이루어낼 때마다, 사람들은 강민혁의 이름으로 건배사를 외쳤다.
그들도 알았다.
이토록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이유는, 강민혁이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공개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내.
인류는 결전의 날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