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87화 (187/197)

186화.  < 44. 계승, 그리고 다가오는 결전 >

계승의 대결이 성사되었다.

강덕철은 강민혁이 계승의 자격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그의 고지식함은 견고한 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대결을 위해 연무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앞서가는 강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수뇌부 중 한 명이 말했다.

“...민혁이가 정말 오라의 힘을 얻은 걸까요?”

떨리는 음성.

사실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강민혁은 검사로서 계승의 대결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검사의 삶을 완전히 포기했던 강민혁에게 유의미한 발전이 있었다고 봐야만 한다.

한숨이 나왔다.

왜 지금이란 말인가.

강민혁이 몇 년만 더 일찍 오라의 재능을 꽃피웠다면, 이준호가 수호문의 후계자로 낙점받는 복잡한 과정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강민혁은 수호문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이준호가 모자란다는 것이 아니라, 강민혁이라는 사람은 그 어린 나이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강민혁과 강덕철의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문주의 승리가 당연하건만, 수뇌부는 자신도 모르게 일말의 불안감이 생겼다.

“당연히 문주님이 이기시겠죠?”

“그게 무슨 망발입니까? 의문을 가지지 마십시오. 강민혁은 수호문을 박차고 나가, 몇 년 동안 검이랑은 먼 세월을 살았습니다. 설령 오라의 힘을 깨달았다 한들, 지금은 문주님의 상대가 되기에는 시기상조입니다.”

정판호.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강민혁에게 가지고 있는 호감을 떠나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냉정하게 ‘문주의 편’을 들었다.

황당하게도 다른 수뇌부들은 정판호처럼 확고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다들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라의 재능만 갖추었다면 능히 세계 최고에 올랐을 사람. 그것이 강민혁에 대한 평가였고,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강민혁은 추락할 때 남들보다 더 큰 상실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검을 내려놓았다. 세계 최고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의 검에 만족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

최고가 당연한 사람.

강민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강덕철을 믿으면서도 확신하지는 못했다.

“정판호 장로의 말이 맞습니다. 민혁이가 수호문 최고의 재능이라고는 불렸으나, 그건 먼 미래를 예견하는 평가였습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성장한다면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이지, 당장 세계 최고였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의도로 계승의 대결을 신청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검사로서의 공백기가 있는 강민혁이 한국 최고의 검사인 문주님을 이길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신중하게 지켜봅시다. 혹시 강민혁이 대결 도중에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는지, 그가 수호문의 사람이 아니라 ‘가디언 마탑’을 대표하는 인물임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합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말.

그것을 끝으로, 수뇌부들의 대화는 끊겼다.

마침내 도착한 연무장.

이제는 현실을 직접 확인할 차례였다.

강민혁이 연무장에 올랐다.

투박하고 딱딱한 연무장의 풍경에,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곳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지.’

어린 시절.

강민혁의 기억은 대부분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아버지인 강덕철과 수많은 대결을 진행했고, 밤을 지새우며 검을 휘두르는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때의 강민혁은 대단한 독종이었다. 사람들에게 받는 기대치를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자신을 학대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옮겼다.

반대편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강덕철이 있었다.

“검을 뽑아라.”

“알겠습니다.”

슥.

검을 뽑았다.

잠시 담담한 눈빛으로 시선을 마주치던 부자(父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카캉!

카카카캉!

순식간에 스파크가 일었다.

마나를 폭발시키며 빠르게 시도한 강덕철의 공격에, 강민혁은 오라를 일으키며 상대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었다. 부닥칠 때마다 크게 요동치는 오라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강민혁이 정말로 오라의 힘을 깨우쳤다는 사실에,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저, 정말이었다니.......!”

감탄도 잠시.

금세 대결에 빨려 들어갔다.

상단과 하단을 노리는 연계기에 이어, 매섭게 타오르는 강덕철의 검이 강민혁의 사각을 공략했다.

번뜩.

일섬(一閑).

쾌검의 수였다.

상대의 목숨 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강덕철은 진심으로 이번 대결을 빠르게 끝내고자 했다. 만약 강민혁이 어중간한 실력으로 도전했다면 받아치지 못할 공격이, 눈을 잠깐 깜빡이는 사이에 강한 반발력으로 튕겨 나갔다. 카앙-,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 강민혁은 본능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너무나도 깔끔한 방어에, 순간 강덕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전 감각이 떨어지지 않은 건가?’

방금의 수.

검사로서의 공백을 노린 공격이었다.

검을 내려놓은 강민혁이 반응하기 쉬운 공격이 아닐 텐데, 강민혁은 공백의 시간이 보이지 않았다.

클리스만의 삶.

그때의 경험이 살아났다.

사람들은 강민혁이 마법사로서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차원 너머의 세상에서 강민혁은 다양한 일을 겪었다. 검사로서 마법사들을 상대했고, 왕실 마법 아카데미가 재앙으로 무너졌을 때는 실전을 차고 넘칠 정도로 경험했다. 덕분에 강민혁의 본능은 날카롭게 단련되어 있었다.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자마자, 균형을 무너트리는 일보로 반격을 가하는 것이 그 증거였다.

확-

".........?!"

빨랐다.

활활 타오르는 오라에, 강덕철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카앙-

카카카카카카카캉!

엄청난 격돌이었다.

서로가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아주 뛰어난 수준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그 상황을 보면서 수뇌부들은 확신이 생겼다. 강민혁은 오라의 힘을 깨우친 것으로도 모자라, 수뇌부들의 실력으로는 쓰러트릴 수 없는 경지에 이미 올라 있었다. 강민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한 명. 폭풍 같이 이루어지는 공격에도 흔들림이 없는, 수호문의 가주 강덕철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다.

동등하게 싸운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내 검이 먹힌다!’

어린 시절.

강민혁은 강덕철과 매일 한 번은 검을 맞대었다.

수천, 수만 번 이루어진 대결에서, 강민혁은 단 한 번도 정면에서 부딪친 경험이 없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오라의 힘이 약한 강민혁으로서는, 강덕철과의 정면 승부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항상 힘을 흘리는 방법이나, 상대의 허점을 공략하는 방법으로 강덕철을 쓰러트리려고 발악했다. 당연히 승리하진 못했으나, 그때 강민혁의 검술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은 정면에서도 검이 먹혔다.

짜릿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강민혁은 대결의 목적도 잠시 잊은 채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빠져들었다.

카앙!

휘청.

강덕철이 뒤로 밀렸다.

방금 이루어진 정면 승부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평정심을 유지하던 강덕철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넌 대체.........."

믿기지 않았다.

강민혁이 검사로서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강덕철이 잘 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건 상식 밖이다.

그간 대체 강민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다시 달려드는 강민혁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덕철은 어리기만 했던 앳된 강민혁의 과거를 투영시켰다.

강민혁이 처음 검을 잡았던 날.

강덕철은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검을 제법 멋지게 휘두르는 강민혁의 모습에, 그리고 가르치는 대로 배우는 습득력에 그는 확신했다.

‘민혁이는 검의 천재다.’

확신이 생겼기 때문일까.

강덕철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강민혁을 닦달했다.

아내가 죽은 이후로 강덕철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폐인이 되어버린 삶에 희망이 되어준 것은 강민혁과 몬스터들을 몰살시키겠다는 목표 하나였고, 그것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버렸다. 강덕철은 본인의 실력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 최고의 검사라고 불리지만, 차원 너머에 득실거리는 수많은 몬스터들은 그 정도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강민혁에게 악착같이 매달렸다.

강민혁이 괴물 같은 재능을 드러내자, 강덕철은 어쩌면 복수에 눈이 멀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강민혁은 빠르게 성장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강민혁의 반격에 위기감을 느꼈을 때, 강덕철로서는 재능의 차이를 깨닫고 말았다.

‘천외(天外)의 재능이다.’

검의 천재.

그러한 수식어로도 부족한 재능이었다.

강덕철도 천재라 불리는 삶을 살았지만, 절대 강민혁만큼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실은 곧 수뇌부들에게도 알려졌다. 말로 내뱉은 것은 아니지만, 다들 강민혁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연하게도 강민혁은 수호문의 미래가 되었다. 사람들은 강민혁이 없는 수호문의 미래는 상상하지도 못했고, 오라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어도 포기하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강민혁이다.

검술로는 이미 강덕철은 넘어섰던 그가, 지금 오라의 힘마저도 깨우치고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강덕철은 알았다.

‘이길 수 없다.’

본능이었다.

단 일격이었지만, 힘에서 밀리는 순간 강덕철은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술만으로도 자신을 위협하던 검의 천재가, 강력한 힘을 얻었으니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웃겼다.

지난 세월.

오로지 검을 위해 달려갔건만, 재능이라는 높은 벽은 이렇듯 그를 시련에 빠트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강덕철은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다. 섣부르게 승부수를 걸지 않는 아들이 자신에게 대결을 요청하는 순간부터, 강덕철은 이 자리가 수호검의 명성이 끝나는 자리임을 알았다.

그래도 나섰다.

그래야만 한다.

그게 가주이고, 물러서지 않는 것이 바로 수호검이다.

대결은 격렬했다.

수호검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다.

강덕철의 매서운 공격에 강민혁으로서도 위험에 빠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지켜보는 수뇌부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강민혁은 쉽사리 당해주지 않았다. 예전에는 상상치도 못할 상황. 애초에 강덕철의 검술을 뛰어넘었던 강민혁은, 서서히 강덕철을 궁지에 몰아가고 있었다.

끝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패배할 것이라는 사실에, 강덕철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승부수를 띄운다.’

확-

간발의 차이.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강민혁의 검이 자신의 머리칼을 베고 지나감에도, 강덕철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일보를 내디였다.

그리고.

‘지금이다!’

마지막 일격.

상대의 틈을 공략했다.

마나가 폭발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상대의 가슴팍을 갈랐다.

그러나.

서걱-

".........?!"

따끔하게 일어나는 고통.

얕지만, 오히려 가슴을 베인 것은 강덕철이었다.

강민혁은 상대가 어떻게 나오리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강덕철의 검술을 뛰어넘으면서, 강덕철의 패턴은 알고 있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순간 강덕철과 강민혁의 시선이 마주쳤다. 흔들리는 강덕철의 눈동자는, 자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였다.

강민혁이 검을 거두었다.

대결은 끝났다.

쿵.

그대로 쓰러지는 강덕철.

그 뒤로, 경악으로 얼룩진 수뇌부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뇌부들은 말을 잃었다.

강민혁의 검술이 대단하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오라의 힘마저 갖춘 그의 검술은 아예 차원이 달랐다.

괴물이었다.

수호검조차도 무력하게 쓰러진 상황.

아무도 강덕철을 탓하진 않았다. 강덕철은 강민혁을 상대로 매우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상대가 강해서 패배했을 뿐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강덕철의 공격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반격을 시도하는 장면은, 직접 보면서도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예술적이었다.

강민혁의 시선이 수뇌부들을 향했다.

“제가 문주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다들 동의하십니까?”

담담한 음성.

수뇌부들이 고개를 숙였다.

아마도 이 결과가 세상에 알려지면 발칵 뒤집히리라.

그래도 결과에는 승복해야만 한다.

계승의 대결이란 그런 것이고, 그들은 적어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새로운 문주님을 뵙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했던가.

수호문의 소식은, 곧 세계를 강타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