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82화 (182/197)

181화.  < 43. 공백의 일 년(2) >

다음 날.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유럽 연합의 이름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1년 전, 하이델베르크에서 세계 마법 연합의 수장들이 학살당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당시에 강민혁은 앙투안 발라르가 직접 공격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대응했다고 밝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상한 부분이 많다. CCTV 화면은 앙투안 발라르와 강민혁이 대화를 나누다가, 갑작스럽게 앙투안 발라르가 공격을 시도하는 부분에서 끊겼다. 앙투안 발라르는 회담 장소인 하이델베르크의 회의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민혁을 공격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을까? 그리고 앙투란 발라르의 아내는 유럽 연합을 찾아와서 남편의 진실을 밝혀주기를 간청했다. 그날의 사건은 앙투안 발라르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것이 아니라, 강민혁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말이다. 고로, 유럽 연합은 강민혁에게 이번 일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바란다.]

1년 전.

당시에도 CCTV와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명확한 증거라기에는 작위적인 면이 있었으나, 마법 학계의 판도가 뒤바뀐 상황에 논란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1년 전의 의혹과 앙투안 발라르의 가족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사실 이번 도발로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정리가 끝난 사건은 강민혁의 세력에 아무런 타격도 입힐 수 없겠지만, 그가 바라는 것은 강민혁을 무대 위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강민혁이 사람들 앞에서, 프란체스코 두란테가 헛소리를 지껄인다고만 해도 상황은 정리된다.

강민혁은 그만한 신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건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강민혁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식어버린 떡밥을 투척하였고, 언론을 자극해서 강민혁에게 해명하라고 부추겼다. 해명하지 않는 것은 곧 논란을 인정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 상황이 강민혁에게 불리하게 흘러가자, 이학범은 강민혁을 대신해 입장을 밝혔다.

[그날의 사건은 명백히 앙투안 발라르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인해 시작된 사건입니다. 당시에도 밝혔던 내용이지만, 가디언 마탑은 언제든 앙투안 발라르가 가디언 마탑을 무너트리기 위해 저질렀던 악행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고로, 이와 관련된 일은 앞으로 일절 대응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되는 것만으로도 강민혁 마탑주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것입니다.]

대응은 좋았다.

이학범의 강한 목소리에, 혹시라는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은 ‘역시 그러면 그렇지’라고 수긍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확실하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민혁에게 분명히 문제가 생겼다.’

해명도 하지 못하는 상황.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프란체스코 두란테가 생각하기에, 구심점이 사라진 마법 학계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고로.

‘지금부터는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낸다.’

코끝의 간질이는 피비린내.

프란체스코 두란테는, 본격적으로 가디언 마탑을 공격했다.

연일 기사가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하이델베르크의 사건이 강민혁의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강민혁은 거짓말쟁이다.]

[앙투안 발라르는 결백하다. 그는 대화하러 나갔지만, 강민혁은 계획된 살인을 저질렀다.]

[영웅의 탈을 쓴 살인마?!]

[강민혁, 그는 왜 직접 해명하지 않는가.]

분위기를 몰아갔다.

강민혁이 이룩한 세력은 세상에서 정의의 상징으로 불린다. 그래서 무턱대고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깎아내릴 필요성이 있었다. 가디언 마탑이 마냥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단체가 아니라는 사실. 강민혁이 계획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질척거리는 진흙탕에 강민혁의 명예를 떨어트렸다.

계획대로였다.

의심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자, 사람들로서도 강민혁이 직접 해명하길 바라는 눈치를 보였다.

시간이 흘렀다.

논란을 일으킨지 약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즈음, 유럽 강화 연합은 드디어 새카만 속내를 드러냈다.

[우리는 하이델베르크의 사건을 해명하지 않는 강민혁이 범죄 사실을 부인하지 못해 숨어 지내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렇기에 현 시간부로 강민혁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를 인도받는 절차를 진행하겠다. 이는 세계 정부의 허가 하에 진행되는 일이며, 한국 정부는 이를 따라주기를 바란다.]

계획대로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강민혁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마법 학계의 사람들은 구심점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급격하게 흔들릴 것이다. 그때, 이 기회를 살려 가디언 마탑을 완전히 무너트려 버릴 생각이었다. 지난 1년 사이에 마법 학계가 상당한 힘을 갖추었다지만, 사실 강민혁만 없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착실하게 진행되는 계획.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계획은 강민혁이 나타나는 순간 모두 종결되지만, 그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바로 한국 정부와 마법 세력들.

그들에게, 강민혁은 버릴 수 있는 패가 아니었다.

“기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

정부의 수장인 김성철이, 강민혁을 인도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에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고위직 중 한 명이 말했다.

“유럽 강화 연합의 주장은 마냥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강민혁 마탑주가 하이델베르크의 사건을 해명하지 못한다면, 당시의 사건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이 됩니다. 그리고 대통령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유럽 강화 전사들의 힘은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무턱대고 거절 의사를 밝혔다간, 전쟁의 불길이 한국 전체로 번질지도 모릅니다.”

긴급회의.

이 자리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 마법 세력의 수장들, 그리고 최병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최병호의 표정이 사납게 변했다.

“어차피 그들은 타국의 세력입니다. 강민혁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얻은 것들을 잊으셨습니까? 강민혁은 대한민국의 국방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은 지난 몇 년간 몬스터들의 위험으로부터 다른 나라에 비해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지금 그러한 은혜를 외면하자는 겁니까? 사람은 말입니다. 은혜를 알아야, 개새끼가 아닌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어디서 그런 망발을!”

콰앙!

“그럼 제가 뭐 잘못된 소리를 했습니까? 이탈리아 코쟁이 새끼들이 입 몇 번 나불거린 거 가지고 이렇게 벌벌 떨 거면, 대체 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사시려는 겁니까? 아군, 적군을 구분 좀 하십시오. 마법 학계가 부흥하면서 가장 이득을 보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마법의 본거지가 되면서 얻는 이득을 알면서도, 칼이 두렵다고 전부 뱉어내 버리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최병호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마법 학계의 부흥.

그에 따라 최병호는 힘을 얻었다.

특히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서 그의 발언은 무시할 수 없었다.

최병호의 살벌한 기세.

최병호는 강민혁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도 강민혁을 인도하는 절차를 밟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마법 세력의 수장들도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유럽 강화 연합의 발언에 잔뜩 움츠러들었겠지만, 지난 1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법 세력의 수장들이 말했다.

“저도 최병호 학과장님과 의견이 같습니다. 강민혁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그 어느 나라가, 영웅을 버리겠습니까?”

“막말로 라 피암마의 의도가 의심스럽습니다. 마법 학계가 부흥하면서, 라 피암마를 비롯해서 이탈리아 강화 전사들의 세력이 약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강민혁이 자리를 비운 지금 일부러 가디언 마탑을 무너트리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을 순순히 따라준다면, 앞으로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마법 혁명.

강민혁은 무상으로 마법을 베풀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금의 세력을 일군 마법 세력의 수장들은, 강민혁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마법 학계의 구심점.

강민혁은 무너져서는 안 되는 인물이다.

그가 있기에 강화 전사와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지, 그가 사라지면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모든 것이 사라질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의견이 통일했다.

강민혁은 어느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그들은 강민혁에게 맹목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도 같았다.

대통령이 날카로운 눈빛을 보였다.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우리는 라 피암마, 유럽 강화 연합과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만 따라서 우리의 영웅을 범죄자로 취급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이에 관해서 다른 의견은 받지 않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전쟁을 운운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가디언 마탑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변했다.

강민혁이 뿌린 씨앗들이 싹을 틔워, 이제는 가디언 마탑을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각.

한 회담 장소에서는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라 피암마와 가디언 마탑.

둘의 화상 회담이 진행되었다.

프란체스코 두란테의 요구는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그는 강민혁의 부재를 확신하면서부터, 일부러 상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우리가 바라는 건 하나입니다. 강민혁 마탑주가 정당한 처벌을 받는 것. 하이델베르크의 사건을 해명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정의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강민혁 마탑주를 끝까지 보호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로서는 가디언 마탑의 선택을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의 의도는 명백했다.

강민혁이 사라졌다면, 어차피 해명할 방법도 없을 터.

강민혁을 숨겨주는 악한 무리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고, 가디언 마탑과 한바탕 전쟁을 벌일 생각이었다.

라 피암마.

유럽 최고의 무력 단체.

강민혁이 존재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가디언 마탑으로서는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

선택은 두 가지다.

타협.

현실을 인정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

그렇게 되면, 강민혁이 돌아왔을지라도 그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콰직!

“빌어먹을 새끼들.”

이학범.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물잔을 악력으로 깨버렸다.

정갈하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겼던 평소와는 다르게, 이학범의 표정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손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그에 개의치 않고, 이학범은 프란체스코 두란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어. 강민혁 마탑주에게 문제가 생긴 것을 눈치채고,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물어뜯으려는 생각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가디언 마탑의 사람들은 대부분 강민혁 마탑주에게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들이야. 그런 우리에게 강민혁을 인도하라고? 개소리!”

이학범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화가 났다.

강민혁.

가디언 마탑에서 그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마법에 대한 갈증이 대단한 사람들이, 강민혁으로부터 얻은 지식으로 새로운 삶을 얻었다.

이곳은 마법사들의 유토피아다.

상상만 했던 세상을 이루어낸 강민혁을 버리는 일은, 이학범의 선택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 범죄자를 옹호하겠다는 뜻입니까? 당신은 가디언 마탑의 공동 마탑주입니다. 본인의 말이 무겁다는 사실을 자각하시길 바랍니다.]

상대가 미끼를 던졌다.

물면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학범은 이미 모든 것을 각오한 상태였다.

“그래서 어쩌라고? 강민혁 마탑주가 설령 죽었다 할지라도 우리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아. 우리의 살길을 모색하는 일 따위는 없어. 그러니 어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강민혁 마탑주가 이미 죽어서 차가운 시체가 되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시체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 생각이니까.”

상대는 칼을 뽑았다.

강민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칼을 들이미는 상황에, 이학범은 타협이 아니라 투쟁을 택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타협을 제시받을 거라 생각했던 프란체스코 두란테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화상 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웅을 믿습니다. 범죄자라는 주장은 인정되지 않을 것이며, 강민혁 마탑주를 인도하는 일 따위도 없습니다.]

그들의 단호한 태도.

프란체스코 두란테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들이 단체로 미쳤나.”

지난 1년.

강민혁의 본거지인 대한민국은, 강화 문명의 상식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그런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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