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머릿속에 2000년 마법역사-179화 (179/197)

179화.  < 42. 격동하는 세계(2) >

벤자민 케인즈.

화이트 캐슬의 대외 활동을 맡은 얼굴마담이면서도, 본인 또한 7서클에 도달한 상당한 실력자.

그의 태도는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랐다.

다소 오만한 얼굴로, 강민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인기가 상당히 많으시군요. 마법 학계의 회담 때나 볼법한 얼굴들을, 오늘 모두 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크게 관심이 있는 얼굴은 아니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취를 정하지 못하셨다면, 아니 정했다 하더라도 화이트 캐슬로 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본래 화이트 캐슬은 ‘정확한 검증’을 통해서만 캐슬의 멤버를 받아들이지만, 강민혁님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강민혁이 희미하게 웃었다.

벤자민 케인즈는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았다.

화이트 캐슬의 이름값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특별함을 알 것이라는 확신이 보였다.

인정은 한다.

화이트 캐슬은 마법 학계의 정점.

그들보다 뛰어난 세력은 마법 문명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마법사인 가브리엘 칼데론을 비롯해서, 수많은 대마법사를 보유하고 있는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강한 집단. 화이트 캐슬의 배경을 등에 업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하다. 그리고 그들이 오랜 세월 쌓은 마법적 지식을 얻는다면, 똑같은 경지의 마법사라 할지라도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게 한다.

하지만.

“그게 끝입니까?”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까?”

“화이트 캐슬이 대단한 세력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화이트 캐슬에 들어갈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제가 굳이, 화이트 캐슬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재밌는 말을 하시네요.”

벤자민 케인즈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강민혁님이 바라는 것이 장벽 너머의 땅을 다시 되찾는 것이라면, 화이트 캐슬보다 더 적합한 세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간 화이트 캐슬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앞장섰습니다. 우리는 이득을 강민혁님에게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은 청산유수였다.

그런데 대화를 듣다 보니, 강민혁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화이트 캐슬은 나와 클리스만의 관계를 모르고 있다.’

사실, 화이트 캐슬을 만나고자 했던 이유는 그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다.

화이트 캐슬이 강민혁의 존재를 안다면?

그때부터는 그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클리스만과 거래를 했고, 강민혁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많은 것을 감추었으니 말이다.

‘단발성의 거래로 끝난 건가.’

클리스만과 가브리엘 칼데론.

둘은 모종의 거래를 맺었고, 그것을 통해 화이트 캐슬의 리더는 8서클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만약 그게 끝이라면.

화이트 캐슬의 의도를 알아야만 한다. 어쩌면 화이트 캐슬의 정의는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클리스만과의 거래를 통해 억지로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브리엘 칼데론이 8서클에 오른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니, 진짜 정의를 바랐다면 심연의 악마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맞다.

강민혁이 말했다.

“벤자민 케인즈님은 8서클의 비밀을 아십니까?”

“무슨 비밀을 말씀하시는 거죠?”

“심장에 8개의 서클을 형성하는 데는 아주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심연의 악마를 처리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마나의 결정체. 그것을 흡수하는 것이죠. 저 또한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8서클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고, 이 비밀을 세상 모든 마법사에게 알릴 생각입니다.”

벤자민 케인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까지는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가던 그가, 지금은 조금 격양된 목소리를 보였다.

“그건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라. 그 말은, 애초에 마나의 결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화이트 캐슬의 내부 기밀이라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마나의 결정체는 보통의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인간이 마나의 결정체를 흡수할 경우, 인간의 몸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고 맙니다. 그러니, 8서클의 비밀을 밝히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조금은 더 신중하게 공개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강민혁이 피식, 웃었다.

화이트 캐슬.

세상의 정의를 위해 앞장서는 집단.

그런데 그들은 지금, 8서클로 향하는 실마리를 말하지 말라고 했다.

인류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공개해야 마땅한 진실을, 그들은 감추겠다고 강민혁을 만류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도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정말 정의일까?

강민혁은 화이트 캐슬에 대한 생각을 수정했다.

벤자민 케인즈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확고한 결단을 내렸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군요. 참으로 아이러니하네요. 위험하고 말고는, 화이트 캐슬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는 인류가 강해질 방법이 필요하고, 마나의 결정체가 그 해답이 된다면 공개하고 모두가 같이 연구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앞두고 있는 지금도 공개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그건 화이트 캐슬의 이득을 위한 결정이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아니 그건............."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간 제가 잘못된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강민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화는 끝났다.

지금부터는, 자신의 계획을 행할 차례였다.

“그곳에서 지켜보십시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보호가 아니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대화가 끝나고.

강민혁은 기자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대체 왜 불렀지?”

“기다려 봐. 지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강민혁이라면, 뭐라도 특종이 될만한 말을 하겠지.”

“강민혁이다!”

수백의 기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덤덤히 걸음을 옮긴 강민혁은,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지는 것을 받아들이며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앞두고 생각이 많았습니다. 인류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정말 간단한 문제더군요. 그러한 사실을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그 생각대로 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습니다.”

장벽 너머.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심연의 악마라는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강해져야 한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다.

“제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 지식이 있습니다. 8번째 서클을 형성하는 방법과 최상급 마법, 그리고 등급 외 마법 같은 것이 그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걸 지금부터 여러분들에게 공개하겠습니다. 이번 전쟁은 저 하나만 강하다고 해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공개할 테니, 여러분들 또한 강해져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십시오.”

강민혁의 머릿속.

그곳에는 클리스만이 전수한 지식의 보고(寶庫)가 있다.

그동안 강민혁은 지식을 제한적으로만 공개했다.

그런데 화이트 캐슬의 태도를 보고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소수가 통제하는 힘.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강민혁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권력이 아니라면, 높은 수준의 지식을 공개해서 인류의 힘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있다. 이에 관해 클리스만과 자신의 생각이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클리스만이 자신에게 칼자루를 쥐여준 이상,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헉.”

“.........8번째 서클을 형성하는 방법이라고?”

“특종이야!”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그들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강민혁의 모습을 담았고, 곧바로 기사를 통해 이 사실을 세상에 밝혔다.

곧바로 공개된 지식.

그것을 확인하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강민혁의 발언은 장난이 아니었다.

2000년간 발전한 마법 문명에서도, 강민혁이 공개한 지식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지식이었다.

새로운 마법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최상급 마법.

이 세상에서도 보물이라고 불릴만한 것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흔하게 굴러다녔다.

-이거 꿈 아니지?

-내가 최상급 6서클 마법을 인터넷에서 접하게 될 줄이야.

-이건 마법 혁명이야. 강민혁은 인류를 위해서, 정말 어려운 선택을 내렸어.

사람들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일개 개인이 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지도 않았는데, 막상 공개하자 충격을 받았다.

1서클부터 8서클까지.

강민혁은 최상급의 마법을 모두 공개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강민혁은 등급 외 마법과 심법도 사람들에게 밝혔다.

그것들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기에, 사람들은 마법 혁명을 외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대체 강민혁의 정체가 뭐야? 어떻게 일개 개인이 이토록 방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거지? 특히 월하 심법을 기반으로 한 등급 외 마법의 위력은 충격적일 정도야. 이런 대단한 지식을 인류를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하다니. 사실 장벽을 무너트리는 그의 행보에 참 극단적인 인물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여론이 변했다.

강민혁은 호불호가 갈렸다.

강민혁의 행보에 죽어나간 사람들이 있다 보니, 당연히 평화주의자들에게 찍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발표를 통해 평판이 바뀌었다.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인물.

강민혁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수준은 정말 엄청났지만, 강민혁은 그 모든 것을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8서클의 실마리는 엄청난 이슈가 되었다. 처음에는 등을 떠밀리듯이 전쟁을 준비하던 사람들이, 반드시 마나의 결정체를 얻어서 8서클에 올라서겠다는 열의를 보였다.

천외(天外)의 지식.

그것을 알고 있다 해서 사람들이 단기간 엄청나게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강민혁과 같은 수준에 오르려면 한참의 시간과 축복받은 재능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는 있었다.

1의 위력을 발휘하던 사람이 2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

그것이 수십억의 인구를 기준으로 한다면, 2배의 힘은 이전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사람들이 말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어.

-나가서 싸웁시다!

-몬스터와의 악연을 끊어버릴 차례입니다!

동조하는 사람들.

세상이 들끓었다.

강민혁.

그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한참 강민혁의 이름으로 시끄러울 그 시각.

강민혁은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가볍게 차를 즐기며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계획은 시작되었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인간은 집단으로 움직이는 생명체고, 이 정도의 열기라면 몬스터와의 전쟁은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이번 전쟁에 인류의 명운(命運)이 걸렸다.

그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도피처로 택했던 마법 학과의 입학이, 어느 순간 클리스만과의 연결고리를 형성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도달하게 만들었다. 그간 모두 옳은 선택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강민혁은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만을 내렸다.

문득, 클리스만이 보고 싶었다.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도 나름의 계획이 있을 것이고, 지금도 본인이 생각하는 것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을 터.

차를 마셨다.

달콤한 향이, 입가에 맴돌았다.

‘클리스만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아직도 의문이야. 그는 내 마법적인 재능을 보고 선택했다고 말했지만, 아직 나는 8서클 마법사에 불과해. 전쟁을 앞두고 있는 나는 9서클의 경지는커녕, 그 실마리도 찾지 못했어. 그래도 내가 그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일까? 어쩌면 인류를 부추겨서 전쟁을 시작한 나의 선택이, 언젠가는 닥칠 인류의 멸망을 앞당기는 선택이 될지도 몰라.’

목이 탔다.

가끔 불안한 생각이 떠오르고는 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으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까 봐.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매달렸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좋게 기억되길 바라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인류가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하길 바랐다.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결단은 내렸다.

번뇌(煩權)는 일을 그르치는 문제.

강민혁은 머리를 비우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마법 혁명이라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니, 분명히 자신을 보려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강민혁님?”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어느 때보다 심각해 보이는 엘리샤의 표정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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