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 41. 악역도 때에 따라 필요하다(4) >
위이이잉-
콰앙!
기간트의 후방 부스터가 강력한 열기를 뿜어내며 그대로 땅을 박찼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거인이 득달같이 달려드는 장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강민혁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이 정도에 겁을 먹을 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번 계획을 준비하며.
강민혁은 마법 문명의 괴물들과 싸우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훈련했다.
그들에게 짓밟히고 사지가 찢겨나가는 상상 끝에, 강민혁은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화악-
파랗게 일어나는 마나.
강민혁의 손짓에, 땅바닥이 폭삭 가라앉았다.
“지진.”
콰콰쾅!
콰르르르르르릉.
등급 외 마법.
땅바닥이 뒤집히며 솟구치는 가시 바위가 기간트를 공격했다. 기간트는 거대한 몸체와는 다르게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였으나, 지반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강하게 흔들리는 땅은 기간트의 균형을 일순간 무너트렸다. 그때가 기회였다. 강민혁의 정교한 마법 컨트롤에, 기간트의 몸체에 십수 개의 가시 바위가 작렬했다.
콰직.
콰드드득.
외피가 찢겨나갔다.
기간트의 외피는 수많은 마법 방어진이 중첩으로 사용되었지만, 상대는 8서클 마법사인 강민혁이다. 등급 외 마법은 그들의 상식을 초월하는 위력. 장벽 위의 사람들은 예상치도 못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개 인간이, 거인을 상대하는 모습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지금 방심하고 있다.’
플루토와 기간트.
시모네 브란카는 마지막 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맹목적인 믿음 때문인지, 플루토는 후방에서 방관하고 있고 기간트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포세이돈의 패배로 플루토와 기간트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간트 2대 정도면 강민혁을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그러한 생각이 낳은 결과였다. 기간트는 지진의 범위에서 벗어나 강민혁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그사이 발생한 시간은 강민혁에게 기회를 헌납했다.
마법사에게 시간적인 여유는 기회로 직결된다.
8개의 서클이 강력한 회전을 일으키더니, 폭발적인 마나를 분출하며 하나의 마법을 완성시켰다.
“헬 파이어(Hell Fire).”
지옥의 불꽃.
8서클 마법이 사용되었다.
강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그대로 기간트에게 작렬하는 순간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앙!
화르르르르륵.
기간트의 외피가 빠르게 타들어갔다. 웬만한 마법은 통하지 않는 기간트의 외피이지만, 헬 파이어의 불꽃에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녹아내렸다. 그런데도 끝까지 공격을 시도하는 기간트. 두 대의 기간트가 동시에 강민혁을 공격하는 순간, 강민혁은 블링크로 한발 먼저 도망쳤다.
동시에.
"폭발."
콰앙-
콰콰콰쾅!
후속타가 작렬하였다.
분뇌의 능력을 사용한 머리가 활짝 열리며, 강민혁은 극한의 스피드로 캐스팅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화염의 서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마나. 샐러맨더는 포세이돈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들어준 강민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었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 할 정도의 강력한 불의 힘이었고, 그것은 홍염의 마법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염화.”
콰앙!
화르르르르르륵.
“화우.”
화륵, 화르르륵!
콰콰쾅!
시야에 불길이 넘실거렸다. 시뻘건 불길이 기간트를 모두 집어 삼켜버렸을 때, 시모네 브란카는 뒤늦게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투 불능 상태에 빠져버린 기간트의 모습. 아직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었기에, 황급히 플루토에게 강민혁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브레스(breath)]
마법 명령어.
플루토의 안광이 빛을 발했다.
강력한 마나가 일점에 모이더니, 강력한 레이저가 전방에 작렬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먼지가 자욱하게 일었다.
강민혁은 플루토의 공격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골렘 제작법을 직접 퍼트린 장본인이었기 때문에, 플루토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정면 대결? 미친 짓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플루토가 무적의 병기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수 없다.
‘플루토에는 약점이 있어.’
바로 링크.
사실, 플루토의 약점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골렘 문명의 병기들은 모두 마법사라는 조종사가 있는데, 그들과의 연결이 끊기면 효율이 떨어진다.
강민혁은 그러한 점을 공략했다.
‘마나 방해.’
화악-
마나를 퍼트렸다.
강민혁의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더니, 플루토와 연결되고 있는 마나의 흐름을 방해했다.
당황하는 사람들.
그들이 다시 플루토와 연결해보려고 했지만, 마나라는 힘에서 서클의 경지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자동 공격 모드]
플루토가 붉은 안광을 뿜어냈다.
링크가 끊긴다고 해서 플루토가 완전히 허수아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대로 기존에 입력되어 있던 상대를 공격하지만, 문제는 그 패턴이 단순할 수밖에 없다. 즉각적인 변수에 대응하지 못하는 단순한 공격 패턴. 플루토의 강력한 공격은, 주변을 파괴시킬 정도로 엄청났지만 강민혁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고로.
“블레이즈 템페스트(Blaze Tempest).”
화륵, 화르르륵.
콰르르르릉!
강민혁은 플루토와 거리를 떨어트리며 계속해서 마법을 작렬시켰다.
화염 빙의.
H-7의 마력 증폭.
강민혁의 힘이 절정에 달했다.
분뇌로 빠르게 회전하는 머리는 찰나의 순간에 플루토의 공격을 피해냈고, 동시에 작렬하는 마법은 플루토에게 강력한 충격을 선사 하였다. 확실히 플루토는 강했다. 그로 인해 주변이 쑥대밭이 되어버렸지만,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지적 능력을 갖춘 생명체와의 싸움은 단순히 강하다고만 해서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마법의 정석.
거리를 떨어트리고 공격.
다가오면 도망치고, 거리를 떨어트리고 공격.
강민혁의 힘이 주변을 장악했다.
플루토는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에 불과했고, 그의 강력한 힘은 결국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콰앙!
콰르르르르르릉.
플루토에게서 새카만 연기가 일어났다.
플루토는 무적의 병기다.
플루토라면 혼자서도 S급 몬스터를 능히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오만에 불과했다.
실전은 다르다.
강민혁의 화력에, 플루토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쿠웅.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플루토의 모습에, 장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모네 브란카는 현실을 의심했다.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이게 현실이라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개 인간의 힘으로 플루토를 쓰러트릴 수 있다고?’
플루토 개발에 성공하고.
인류는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플루토는 기간트를 뛰어넘는 괴물이었고, 그들의 강력한 파괴력은 몬스터를 단번에 소멸시켜버렸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었다. 단단한 장벽과 플루토의 힘이라면, 수만의 몬스터가 밀려온다 할지라도 막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강민혁은 골렘 제작법을 퍼트리면서 인류가 재앙을 대비하길 바랐지만, 오히려 플루토의 힘은 안일함의 원인이 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런데 플루토가 쓰러졌다.
플루토의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고, 제 위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진 모습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8서클의 경지라니.’
강민혁의 마법.
분명히 8서클이었다.
7서클은 분명히 대단한 경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들을 절대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절대자(絶對者).
마법 문명의 정점은 8서클 마법사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7서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8서클 마법에, 화이트 캐슬은 정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들의 리더가 8서클 마법라사는 사실은, 화이트 캐슬의 자리를 넘보는 자들의 머리를 강제로 숙이게 만들었다.
강민혁은 그런 경지에 올라섰다.
강민혁을 상대로 포세이돈을 내보냈던 선택은, 지금에 와서 보면 정말 멋모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덜덜덜.
몸이 떨렸다.
수하들에게 강민혁의 공격을 명할 수 없었다.
포세이돈이 죽었고.
기간트와 플루토가 쓰러졌다.
이미 전력이 막혀버린 상황에서, 강민혁을 공격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아아.'
현기증이 일었다.
사실, 그의 주장에는 악의가 없었다.
정말 조금의 시간을 더 투자해서 전쟁을 준비하면, 보다 확실하게 몬스터를 소탕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잘못된 믿음은 치명적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옳다고 믿기에, 인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 강민혁은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눈과 귀를 막고 본인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은, 눈과 귀를 강제로 벌리고 현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심연의 악마.
그들의 힘이 강민혁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이미 결과는 나왔다.
“아직도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나?”
강민혁의 목소리.
시모네 브란카가 고개를 떨구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보수파의 주장을 내세우던 장벽의 지휘관이, 드디어 백기를 내거는 순간이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시모네 브란카는 곧바로 카메라 앞에 섰다.
강민혁과의 대결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는 패배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약속을 이행해야만 했다.
“강민혁의 말이 옳았습니다. 심연의 악마가 정말 강민혁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장벽과 플루토만으로는 그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습니다. 강민혁은 1년간 장벽 너머를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심연의 악마를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힘은 날이 갈수록 상승할 뿐만 아니라, 숫자 또한 증식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결단을 내리고, 인류의 명운을 건 몬스터와의 싸움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파파파팟.
사방에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
시모네 브란카가 초췌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바로 옆.
그곳에는 강민혁이 있었다.
시모네 브란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기자들은, 자연스레 강민혁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필요가 있었습니까?”
의도가 보였다.
그들은 강민혁을 비난하고 있었다.
강민혁의 주장?
이제는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포세이돈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장벽을 지키던 선량한 경비병들은 세상에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마법에 소멸되었다.
강민혁의 잔인함.
기자들의 질문이 가시처럼 꽂혔다.
그러나, 강민혁은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장벽의 경비병들은 심연의 악마가 공격한다 할지라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었고, 저는 그들을 상대로 전력을 다했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패배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보수파는 본인들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며, 전쟁을 한없이 뒤로 밀어버렸을 겁니다. 제 선택이 잔인하고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 대한 비난은 달갑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살의(殺意)가 담긴 공격을 한 것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장벽의 경비병과 포세이돈은 저를 죽이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힘이 약해 패배했을 뿐입니다.”
어떻게 들리든 상관없다.
힘의 논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강민혁의 힘이 강해서 승리했을 뿐이고, 패자는 피해자로 둔갑했다.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두 사람이 붙었습니다. 대체 뭘 기대하시는 겁니까? 서로의 목숨이 걸린 싸움에서, 제가 포세이돈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공격을 했으면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지금은 힘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 세상에서, 서로가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기 위해서 싸웠고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십시오. 무고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장벽의 견고함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던 사람들이 겨우 한 사람에게 무너진 사건이라는 사실을요.”
강민혁이 사나운 기세를 보였다.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한 명의 인간조차도 막아내지 못하는 너희들이, 어떻게 재앙이 닥쳤을 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강민혁은 사람들을 도발했다.
극한의 상황임을 각인시켜주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행보를 보여주어야만 했다.
눈에 콱 박히는 현실.
강민혁은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당시의 영상이 발표되었다.
강민혁의 발언과 같이 퍼져나간 영상에,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로서는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8서클 마법사의 등장.
전후 사정을 떠나,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