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41. 악역도 때에 따라 필요하다(3) >
가끔 강민혁 같은 녀석들이 있다.
세상이 특별하게 떠받들어준다고 해서, 본인이 세계 최고일 것이라고 착각하는 멍청한 부류들.
짜증이 일었다.
십수 년간 마법 학계의 실력자로 인정받았던 포세이돈으로서는, 주제도 모르는 건방진 녀석들을 볼 때면 속이 뒤틀렸다. 강민혁의 실력? 인정한다. 그가 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마법 문명이 찬란하게 발달한 이 세상에서는 상대가 누군지 봐가면서 입을 놀려야 한다.
“내가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주지.”
화악-
쿠르르르릉.
마력이 들끓었다.
포세이돈의 마력에 반응하며, 운디네의 힘이 마력을 증폭시켜주었다.
“씨 블라스트(Sea Blaster).”
콰앙!
콰콰콰콸!
해일이 일어났다.
엄청난 양의 물이, 성벽 위에서 터져 나오더니 그대로 강민혁이 있는 방향으로 매섭게 밀려 들어갔다.
웬만한 방어 마법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운디네의 축복을 받은 포세이돈의 마법은 7서클 최상위의 위력을 발휘하기에, 그는 상대가 같은 7서클의 경지라 할지라도 쓰러트릴 자신이 있었다. 이제껏 용병으로서 살아가며 강민혁과 같은 상대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때마다 승리했기에, 포세이돈은 강민혁을 앞에 두고도 강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씰룩.
강민혁이 웃었다.
상대의 생각이 보였다.
마법 문명에서도 강자라고 불리던 포세이돈은, 본인보다 높은 경지의 마법사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었다.
확신에 찬 공격.
그것에는 뒤가 없었다.
상대가 당연히 방어할 것이라고 깔린 전제를, 강민혁은 부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해일(海溫).”
등급 외 마법.
씨 블라스트와 같은 성질의 마법이나, 전혀 다른 위력을 발휘하는 강민혁의 마법이 사용되었다.
콰앙-
콰콰콰콸!
씨 블라스트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양의 물이 폭발했다. 순간 자신과 같은 마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포세이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건방진 자식, 이라는 말이 절로 입술 밖으로 새어 나왔다.
허나, 의심하지 않았다.
물의 대결.
운디네의 축복을 받는 한, 자신이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콰앙!
콰콰콰콰콱!
".........?!!"
포세이돈이 눈을 부릅떴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은 예상과 달랐다. 그가 사용한 씨 블라스트는 해일에 그대로 먹혀버렸고, 강민혁의 해일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장벽으로 밀려왔다. 진심으로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물의 대결에서 밀렸다는 사실에, 포세이돈은 아주 잠깐이지만 넋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찰나의 시간.
그건 강민혁에게 기회였다.
해일이 장벽에 도달하기 전, 강민혁의 마력이 하늘에 닿았다.
“기가 라이트닝(Giga Lightning).”
번뜩.
콰콰콰쾅!
하늘에서 작렬하는 번개.
동시에 해일이 장벽을 덮치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장벽 위에서 우르르 떨어졌다.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손속에 사정을 둘 수는 없는 법이다. 강민혁은 악역의 역할을 받아들였고, 상대가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 공격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이 싸움에 목숨이 걸렸다.
인간은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순식간에 장벽 위를 휩쓸어버리는 강력한 위력에, 포세이돈은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문제는 상대를 파악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완성되는 강민혁의 후속타는, 장벽 위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절망케 만들었다.
콰앙!
콰르르르르릉.
장벽이 무너졌다.
황급히 물의 장막으로 일부분의 장벽을 보호했지만, 포세이돈이 하나의 마법을 사용할 때 강민혁은 두 개의 마법을 완성시켰다. 황당할 정도로 빠른 캐스팅 속도였다. 처음에는 메모라이즈와 각인을 활용한 속도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빨랐다.
포세이돈 또한 빠른 캐스팅 속도를 자랑하는데, 강민혁의 캐스팅은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기가 라이트닝."
콰앙!
콰르르르릉.
다시 한번 작렬하는 번개.
포부 넘치던 포세이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지만,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의 모습에 경비병들의 사기가 떨어졌다.
“겨우 이게 끝인가?”
강민혁의 도발.
포세이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처음에는 적당히 상대해줄 생각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오냐, 네 녀석을 반드시 죽여주마.”
철컥!
철컥철컥!
마도형 골렘.
미리 착용하고 있던 갑옷 형태의 골렘이, 포세이돈의 전신을 뒤덮으며 그 사나운 기세를 드러냈다.
동시에.
“정령 빙의.”
화악.
포세이돈의 마력이 폭발했다.
수신(水神)이라 불리는, 포세이돈의 진정한 힘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포세이돈이 수성을 포기했다.
수비적인 자세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는 상당히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
“블링크.”
파밧.
장벽 아래.
강민혁 앞에 포세이돈이 나타났다.
파란 눈빛으로 일렁이는 그는, 강민혁이 대응하지 못하도록 즉각적으로 마법을 발현시켰다.
“워터 캐논(Water Cannon).”
퍼엉!
눈앞에서 마법이 작렬했다.
강민혁은 간발의 차이로 실드를 형성했다. 단단한 방어에 공격이 막혔지만, 포세이돈은 애초에 공격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강민혁은 만만치 않은 상대. 마도형 골렘의 출력이 강하게 힘을 표출하더니, 주변으로 튀어 오르는 수십 개의 물방울을 마법으로 변화시켰다.
“쏜(thorn).”
파바바박.
사방에서 물의 가시가 강민혁의 육체를 관통했다.
위협적인 공격.
이번만큼은 포세이돈도 기대하는 눈치였으나, 강민혁의 몸을 관통하는 순간 파스스- 사라졌다.
미라지.
강민혁의 특기가 발휘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사용되는 전기 계열의 마법에, 포세이돈이 물의 마나를 일으켰다.
“워터 미러(water mirror).”
팟.
빠지지지직!
강민혁의 공격을 되돌려주었다.
동시에 운디네의 마력은 또 다른 마법을 완성시켰다. 정령 빙의로 인해 그의 마력과 지적인 능력이 향상되었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캐스팅 속도가 빨라졌다. 확실히 포세이돈의 마법은 공격적이면서도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가 강민혁이라는 것이었다.
팟.
파스스스-
강민혁이 일으킨 마력에 물줄기가 증발하였다.
강민혁은 여유가 넘쳤다.
애초에, 이 승부는 강민혁에게 전적으로 유리했다.
서클은 하나의 단계마다 하늘과 땅의 차이고, 포세이돈의 공격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공격에 텀을 두었다.
상대가 깨닫길 바랐다.
자신이 얼마나 여유를 부리는지, 본인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7서클이 절대의 경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새끼가.”
포세이돈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드디어 눈치를 챘다.
자신은 마도형 골렘에 정령 빙의까지 사용했는데, 강민혁은 마치 상대를 농락하는 것처럼 적당한 공방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피해를 입는 쪽은 포세이돈이였다. 점점 축적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충격에, 포세이돈의 표정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파문이 일었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났단 말인가.
포세이돈이 발악하듯 마력을 폭발시켰지만, 어김없이 그의 공격은 강민혁에게 허무하게 막혔다.
클라이막스.
강민혁은 무대의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곳은 공개 처형대였다.
포세이돈을 쓰러트림으로써, 강민혁은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임팩트를 선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결정타로 8서클 마법을 생각하던 강민혁에게, 샐러맨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힘을 .........빌려주겠다.]
이유는 모른다.
포세이돈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샐러맨더는 운디네의 처지에 강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진정한 무대는 따로 있지 않은가.
‘너의 뜻대로 하지.’
샐러맨더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의 강한 분노를, 그리고 강한 화염을 받아들이는 순간, 강민혁의 몸에 엄청난 힘이 차올랐다.
화염 빙의.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동화(同化).
샐러맨더의 힘이, 온전하게 강민혁에게 깃들었다.
강민혁은 그간 수차례 화염 빙의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
그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그때는 단순히 힘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온전히 자신의 것처럼 느껴졌다.
완전한 빙의.
샐러맨더가 진심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마법의 위력으로 나타났다.
“염화.”
화르르륵.
콰앙!
공격 방법을 바꾸었다.
포세이돈과 비슷한 형태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서, 상대와 반대되는 속성의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포세이돈은 황급히 물의 장막을 펼쳤다.
화염 마법은 물에 상쇄된다.
그래서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나, 물의 장막을 집어삼키는 화염에 그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이게 무슨?!”
화륵.
화르르르륵.
속성을 뛰어넘는 힘.
강민혁의 화염은 포세이돈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떤 방법으로 운디네의 힘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디네가 포세이돈에게 허락한 것은 ‘최소한의 힘’이었다. 그 정도만으로는 애초에 서클의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화염 빙의까지 사용한 강민혁을 이길 수 없다.
“화우.”
콰앙!
화륵, 화르르르륵!
강민혁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화염에, 포세이돈은 연신 밀리는 모습만을 보였다. 그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지휘관의 요청을 받아서 강민혁을 상대하겠다고 나설 때만 하더라도, 포세이돈은 상대가 평범한 7서클의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상대하자 자신 따위가 범접할 대상이 아니었다. 장벽에서는 엄청난 명성을 떨치는 포세이돈이라는 이름이, 강민혁 앞에서는 너무나도 무력했다.
“범람(況溫).”
콰앙!
포세이돈이 발악했다.
일인전승의 비기.
서클에서 긁어모은 마력을 한 번에 폭발시키자, 푸른 마나가 강민혁의 시야를 뒤덮었다.
그건 마지막 발악이었다.
상대가 설령 8서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포세이돈은 이번 공격만큼은 먹힐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에.
“염화.”
강민혁은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강하게 타오르는 화염이 푸른 마나와 부닥쳤고,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뿌옇게 수증기가 일어났다. 푸스스스슥, 시야를 뒤덮는 수증기. 장벽 위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포세이돈이 밀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그들은, 이 대결의 승부가 어떻게 났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시종일관 압도적이었던 결투.
누가, 이 승부의 승자인지를 말이다.
툭.
털썩.
“포, 포세이돈이 졌어.”
“포세이돈 정도 되는 마법사가 이 정도로 무력하게 패배하다니.”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들의 시선에는, 새카맣게 탄 채로 쓰러지는 포세이돈의 모습이 보였다.
포세이돈의 죽음.
정면으로 승부를 벌였던 포세이돈은, 붉게 타들어가는 푸른 마나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다.
장벽에서 명성을 떨친 대마법사.
그의 최후라기에는 상당히 허무한 모습이었다.
시체 위.
운디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것은, 강민혁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모습이 옅어지며 사라졌다.
‘이제부터가 시작인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하지만, 강민혁은 이게 끝이 아님을 알았다.
“포세이돈의 패배가 장벽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우리는 너를 몬스터로 규정하겠다.”
장벽 위.
시모네 브란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포세이돈이 쓰러지는 모습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쿠웅!
콰르르르릉.
하늘에서 착륙하는 괴물들.
기간트 2마리와 플루토 1마리의 모습에, 강민혁은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를 지우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마도형 골렘.’
철컥.
철컥철컥.
H-7을 장착했다.
아직 화염 빙의는 남아있는 상태.
저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강민혁은 8서클의 힘을 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무적이라고 믿는 병기.
플루토.
그것을 상대하는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쇼타임의 시작이었다.